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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새 시대를 열어간 사람들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동아시아의 대립하는 두 분단국가 한국,북한,중국,대만이 일제히 한목소리를 낼때가 있다. 바로 일본이 국사교과서 검정을 할때다. 다른 나라들은 일본이 늘 자기 편의에 의해 사실을 왜곡한다고 생각하고 강력 항의하면 일본이 반론을 펴면서 자기 식대로 밀고 나가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 권력의 편의에 의한 역사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다시 쓰여야 한다. 아니 역사교과서라는게 없어지고 다양한 책으로 직접 역사를 배워야 한다.
희대의 천재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는 사실 닫힌시대였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서 느낀 감상은 조선이 실은 후진국이고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소중화라는 얼토당토 않은 자존심을 내세워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청과의 전쟁에서 지고난 다음에는 북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나라를 전시체제로 몰아가 민생을 피폐시키고 선진문물과의 교류를 단절시켜서 과학과 상업의 발전을 막아버렸다. 그렇게 살아온지 100여년이 지난 조선은 실은 가난하고 몽매한 고집불통의 나라였다. 지금의 북한처럼 그들은 우상을 모시면서 그것이 우상인지 몰랐다.
1800년대는 유럽에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봉건제가 종말을 맞게되는 시점이다. 이 때 조선은 여전히 사농공상의 엄격한 구분을 통해 사람을 차별하고 억누르는 체제를 고집했다. 억누르면 억누를 수록 벗어나고자 하는 억눌린 사람들의 욕구는 천주교로 뻗어나갔다. 왜 천주교 일까?
전에 파키스탄 사람 하나에게 너희 나라에는 카스트가 없냐고 물어보았다. 답은 알라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가르친다라는 나의 무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기독교가 이슬람교가 전세계의 종교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시 평등사상이었다. 반면 조선의 유교는 인도의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차별을 위한 종교를 고집하고 있었다.
반면 중국이나 일본은 양이와의 교류가 전면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과학과 기술에 호기심을 막지는 않았다. 특히 일본은 사무라이들의 엄청난 반발을(라스트 사무라이 영화를 보시면) 물리치고 차별을 폐지시켰다. 그렇게 살아온 결과는 후일 조선 스스로 근대체제로 가는 것이 실패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귀결되었다.
조선왕조는 천주교를 믿는다고 참수한 백성도 많지만 더 많은 수를 학정에 의해 굶겨죽였다. 여기 정약용은 그러한 시대에 불합리한 점을 느끼고 자기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고쳐보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그래도 정약용을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잡고 읽어내려가 보니 정말 생생하게 삶의 순간순간을 잘 살려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체와 서술방법을 굳이 비교하자면 스펜스의 <옹정제>류의 역사서들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된다. 교과서와 다른 역사 현실에 의문을 던지며 새롭게 해석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게 하는 역사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역사 만들기의 초석을 만들어가야 한다. 아직도 효종의 북벌을 민족의 자주로, 광해군의 현실외교를 불의로, 영조를 현명한 군주로 배우는 역사서를 이제 던져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