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가려면 같이 가라는 이야기 2탄이다.

한국사회는 매우 좁다
그래서 다시 만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황당한 건 처음 만날 때와 갑을 관계가 바뀌는 경우다
나이 들어 회사를 옮기다 보면 작은 곳의 헤드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예전 부하가 큰 기업의 갑쪽에 있을 수 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때서야 제대로 살았는지 평이 나온다

실제 나도 예전 상사들의 레퍼런스 첵을 할 때가 몇번 있었다.
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고려해야 할 충분한
자료도 제공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그 분이 횡령혐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든가하는 정보도 근거에 의해 전달하려고 했다.
결과? 상상에 맡긴다.

또 다른 케이스 갑회사에서 조기 출세하면서 힘 많이 쓰던 과장이 있었다
일은 잘해서 위에는 잘 했지만 동료들에게 빡빡하게 했다
사실 그래서 더 일이 잘 되기도 하지만 단기성과 위주로 열심히 하다보면
인간적인 면에 소홀하게 된다.
그러다 회사를 떠나 작은 곳의 영업대표로 나서게 된다
어제의 옛동료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
세상은 의외로 작아서 다시들 보게 된다.
회사를 떠나며 업계를 떠난다고 호언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업계 주변에 머물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 자신의 자산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물질이 자산이 아니다. 관계가 자산이다.
그리고 그 관계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평판 그것이 자산이다
관계자산,평판자산 이 두가지를 잘 관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다음이 있다.

어떤 이는 한 회사를 그만두고 이를 트윗이 나 페북에 알리자마자 일자리가 쏟아져들어온다. 어떤이는 조용하다.
그 다음을 위해서
헤드헌트를 믿으면 될까?
대부분의 헤드헌터가 40대 중반 이후의 프로파일은 검토하지 않는다.
결국은 평판이라는 자산이 나에게 가장 큰 힘일 따름이다.

다시 강조하는데 한국사회는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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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0-1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결국 사람은 각자 자신이 판 우물을 퍼 마시게 되어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1859년에 출판된 기념비적 저서로 일컬어지는 새뮤얼 스마일즈의 《인생을 최고로 사는 지혜》라는 책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여럿 발견할 수 있더군요. 이 책을 2003년에 무척 감명깊게 읽었었는데, 다시 읽어봐도 제겐 여전히 감동적입니다.ㅎㅎ(같은 해에 나온 중요한 책들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찰스 디킨슨의 《두 도시 이야기》등인데 스마일즈의 책이 비소설 중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책이었다고 하네요.)
* * *
우리는 비즈니스가 인생의 그 어떤 분야보다도 더 혹독하게 인격을 시험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정직성, 극기, 정의, 진실성을 가장 혹독하게 시험한다.(273쪽)

정도를 걷는 거북은 그보다 빠르지만 거짓된 길을 걷는 토끼를 이기고 만다. 근면하기만 하다면 굼뜬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332쪽)

개인의 근면과 열정으로 많은 일들을 이룰 수 있지만 인생의 여정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워즈워스는 다음과 같이 아주 일리 있는 말을 했다.
"모순되게 들릴지 모르지만 씩씩한 종속과 씩씩한 독립, 씩씩한 타인 의존과 씩씩한 자기 의존이 함께 해야 한다."(48쪽)

사마천 2012-10-16 15:26   좋아요 0 | URL
역시 오렌님, 긴 코멘트 감사합니다. 주신 글귀 하나 하나가 다 귀하게 느껴집니다. 비즈니스가 인격을 시험한다는 이야기는 잘 될 때 혹은 안 될 때 등 다양한 경우에 나타납니다. 뻔한 듯 보이는 말들이지만 정말 살면서 깨우침을 줍니다. 권해주신 책들도 참고 하겠습니다.

사실 저도 사이 나쁜 상사에 대해 코멘트 할 때 정말 쾌감을 느꼈거든요.. ^^

saint236 2012-10-1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한국 사회는 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판이라는 것도 의외로 같이 따라다니더군요. 학교 다닐 때 동기였던 사람들의 평판에 대해서 묻는 전화를 꽤 여러번 받았습니다. 물론 저에 대한 평판도 암암리에 묻겠죠. 한국 사회가 좁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새삼 더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사마천 2012-10-16 15:2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좁아진 세상이 이제 소셜 네트웍으로 해서 더 좁아진다는 생각입니다. 나도 어디서 누군가에게 그런 평을 들으면 안되겠지라는 마음이 자리합니다.

oren 2012-10-17 10:07   좋아요 0 | URL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꼽을 만한 하이데거 역시 그의 명저 『존대와 시간』이라는 책에서 '세상이 자꾸만 더 좁아지는 경향'을 갈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까이 하려는 경향'을 '라디오 방송'을 보고 떠올렸는데 그가 오늘날까지 살아서 '인터넷'이나 온갖 다양한 SNS를 봤더라면 또 어떤 생각을 떠올렸을지 몹시 궁금하더군요.

* * *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

거리를 없앰은 거리를,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의 멂을 사라지게 함을, 가까워지게 함을 말한다.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거리를 없애며 존재한다. 그는 그가 무엇인 그 존재로서 그때마다 존재자를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해준다. 거리를 없앰은 멂을 발견한다. 이 멂은 거리와 마찬가지로 현존재적이지 않은 존재자에 대한 범주적 규정이다. 그에 반해서 거리를 없앰은 실존범주로서 확고하게 견지되어야 한다. 도대체 존재자가 현존재에게 그것의 멂이 발견되는 한에서만 세계내부적인 존재자 자체에서 다른 것과 관련되어서 "거리"와 간격이 접근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존재자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것의 존재양식상 거리를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거리를 없앰에서 발견되는 측정 가능한 간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거리없앰은 우선 대개 둘러보는 가깝게 함, 조달함으로서의 가까이 가져옴, 예비해놓음, 손안에 가짐이다. 그런데 존재자를 순수하게 인식하며 발견하는 특정한 방식들도 가깝게 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존재에는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놓여 있다. 우리가 오늘날 다소 강요되듯이 함께 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속도상승은 멂을 극복하도록 몰아세운다.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과 함께 현존재는 오늘날 일상적 주위세계의 확장과 파괴라는 방법으로써 그것의 현존재의 의미를 아직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세계'의 거리를 없애고 있다. (149쪽)

사마천 2012-10-17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루만쇼라는 영화에서 카메라에 둘려쌓여서 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소셜은 어떻게 보면 스스로 드러내는 카메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페친 하나 맺으니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버리는 의도하지 않는 드러냄을 만듭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점점 벌거벗고 살아가는 모습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