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서 시작한다. 잭 니콜슨은 작가로서 꽤 많은 독자와 명성을 얻고 있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정말 상대하기 힘든 대단한 괴짜다. 같은 아파트의 바로 이웃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꼴보기 싫다고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 버린다. 만약 현장을 들켰다면 아마 애완동물 학대죄로 고발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이런 적대시하는 감정은 굳이 동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가 움직이며 부딪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떡하든 깊은 마음의 상처를 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한걸음 나아가 문제는 그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그가 고정적으로 발걸음을 멈추는 곳이 한 곳이 있다. 밥을 먹으러 가기 위해 들르게 되는 작은 식당이다. 이곳을 그가 찾는 이유는 메뉴가 좋아서도 아니고 식당의 분위기가 고급스러워서도 아니다. 딱 하나 우수가 깃든 미모의 헬렌 헌트가 웨이트리스로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에게 그렇게도 중요한 것은 이 식당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상대하기를 포기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잭이 만났던 모든 웨이트리스 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를 상대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주인공인 화가는 모델로 기용했던 길거리의 부랑자에게서 폭행을 당해서 걷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갑자기 강아지가 잭의 집으로 맡겨지게 된다. 처음에는 정말 싫어했지만 점점 이 녀석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보자마자 겁내고 도망다니던 녀석이 진짜 고기로 만들어진 먹이를 주자 점점 따르게 된다.
그러더니 정말 자신의 주인인 화가가 돌아왔는데도 그쪽으로 가지 않고 잭에게 온다.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지만 진짜 고기와 유사품을 구별해내는 강아지의 본능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찬찬히 음미해 보면 잭과 세상과의 고리가 넓혀져 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강아지를 유혹하는 방식은 어떻게 보면 잭도 그런 일에 재미를 느껴간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다 여느 때처럼 식당에 찾아갔지만 헬렌은 없었다. 대신 서빙하는 약간 뚱뚱한 웨이트레스에게 ‘엘레판트 걸(코끼리 같은 여자)’라는 정말 모욕적인 말을 던졌다.
어쨌든 잭은 헬렌을 찾으러 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가정과 이곳을 누르고 있는 짙은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잭 니콜슨이 부를 가졌지만 매우 거북하게 느껴지지만 헬렌은 가난하면서도 무척 친절하다. 그런 헬렌은 아들 하나를 데리고 홀로 살고 있다. 하지만 아들은 꽤 오랫동안 원인을 모르는 병에 걸려 있어서 이를 치료하기 위해 무척이나 고생하고 있었다. 한밤중에도 갑자기 발작을 하게 되어 곧 숨이 넘어갈 듯하니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도저히 새로운 사랑을 맞아 가정을 꾸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얌전한 헬렌이지만 화를 낼 대목에서는 정말 불같이 화를 내었다. 잭이 “모든 인간은 죽는다. 나도 당신도 그리고 당신의 아들도”라고 늘 하던 투로 남의 속을 긁는 말을 했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거부할 수 없는 이치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항상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헬렌이라면 정말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정말 드물게도 잭은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 그렇다고 잭이이 대목에서 자존심의 굴복을 느낀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여인으로서는 약하고 가난하지만 어머니로서는 정말 용감한 존재 하나를 바로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집에 있던 헬렌은 불청객을 하나 맞게 된다. 자신의 아들을 보러 온 소아과 의사였다. 당연하지만 considerable amount라고 아주 정중하게 표현된 엄청난 비용이 발생했을 것이다. 이런 일을 꾸미고 감당해준 사람은 물론 잭이다.
이를 위해서 잭은 처음으로 사적인 부탁을 그의 출판사의 사장에게 하게 된다. 사장은 여자였고 그녀의 남편이 꽤 유명한 소아과 의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감히 개인왕진을 의뢰한 것이다. 유명해지면 모두 그렇지만 찾아가도 만나 뵙기 힘든터에 몸을 움직여달라는 것은 쉽지 않은 부탁이다.
어쨌든 헬렌의 아들의 병의 원인이 밝혀지게 된다. 사실은 죽어야만 하는 불치병이 아니고 그렇다고 찾기가 쉬운 것은 아닌 알레르기였다. 몇가지만 주의하면 정상인과 별다르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기쁜 것은 계속적인 치료 비용도 그렇게 많이 나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심한 병도 아닌 것을 왜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야 했을까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게 된다.
이런 간단한 것을 왜 그동안 헬렌이 다닌 병원에서는 알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나온다. 이유는 단 하나 헬렌이 가입했던 의료보험에서 그런 특이한 알레르기에 대한 테스트 비용을 보조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의사들은 자신들의 방법만 고집했던 것이다.
여기서 정말 미국사회의 병폐를 잘 드러내주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What a fucking shit bastards”
굳이 번역을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심한 욕이다. 늘 주변에 친절하고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입에서 나오기는 더더욱 힘든 소리다.
여기에 대해 의사가 답하는 말이 더 걸작이다.
“그게 바로 HMO(미국 의료보험 조합)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참고로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에 대해 설명을 하겠다. 미국에서는 유럽과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매우 약하게 되어 있다. 아주 저소득층을 위한 부조제도는 있지만 이것의 기능은 극히 미약하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책임으로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각자가 사는 의료보험 상품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서로 다르게 된다. 결국 돈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의료비가 마구 올라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결과적으로 돈이 정말로 많은 사람을 위한 아주 좋은 서비스도 발달되어 있지만 일반 대중을 위한 서비스는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소홀한 편이다. 이런식으로 상호부조 제도가 약한 이유로는 다민족국가라는 것과 프로테스탄티즘이 상대적으로 다른 종교보다 개인의 책무를 강하게 지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쨌든 이제 무척 가까워진 잭과 헤렌은 화가와 함께 셋이 함께 화가의 가족을 찾아 나서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서 점점 많은 고백을 하게 된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잭이나 청년 화가 둘 다 사실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화가는 어머니의 목욕 장면을 우연찮게 훔쳐보다가 아버지에게 들켜서 그야말로 늘씬 두들겨 맞고 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더 이상 가족을 찾지 않았다.
잭도 엇비슷한 경험으로 가족과 담을 쌓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로 정열을 안으로 쏟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냈지만 사회와는 여전히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이 두 사람 모두에게서 헬렌은 자신들에게 없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없는 것이지만 아쉬워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국 영화는 상실한 낙원에 대한 동경과 여기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드러내어 보이게 된다.
두 사람은 모두 자기 극복을 해나가게 된다. 헬렌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들이 놓였던 정말 어려운 환경을 넘어서 이를 이겨내고 과거와 화해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열리는 삶은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은 헬렌을 그렇게 우상시하는 것이다.
결국 영화의 주제는 가족 사이의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