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영화
평점 :
상영종료


King’s speech라는 제목은 왕의 한 말씀이라는 거창한 의미로 다가왔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언어치료였다. 약간 엉뚱한 듯한 주제라 나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영화를 대했다. 미래의 왕 알버트와 언어 치료사 로그 이 두 주인공 사이에는 커다란 갭이 있다. 신분도 하늘과 땅이고 출신도 영국 본토와 식민지 호주로 서로 차이가 크다. 호주가 원래 범죄인 추방지역이었다는 걸 상기 해보면 왕의 측근들이 보이는 혐오감 많은 태도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 이들이 머리를 맞댄 것은 영국이 현재 두 개의 세계대전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세계대전은 세르비아를 놓고 자존심 대결을 한 여러 왕들의 전쟁이었다. 엄청난 대중의 희생위에서 치러졌고 결과적으로 대중들은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았다. 그 결과 일어난 혁명의 흐름은 독,오스트리아,러시아 세 황제를 퇴진시켰다.
그 공백은 히틀러와 레닌이라는 두 대중정치가가 나타나 메웠다. 그들은 각기 긴 책으로 설명된이념을 가지고 대중을 선동하는 재주를 가졌다. 히틀러는 고교중퇴, 레닌은 대학중퇴고 이들 모두 머리가 명석하며 미래를 내다보고 특히 대중을 설복시키는 힘을 가졌다.

반면 고색창연한 이미지의 영국 왕가는 이제 점점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자주 연습하는 대사인 to be or not to be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끊임없이 되뇌이는 말이다. 이 말이 주는 뉘앙스는 영화 속 실 주인공인 미래의 조지왕에게도 똑 같은 수준의 압박을 준다.
이유는 그가 대중들 앞에서 한마디도 못하는 말더듬이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전쟁을 또 다시 눈앞에 둔 영국의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라는 질문을 대중들이 던질 때 가장 빨리 가장 명쾌하게 답해주어야 하는 위치가 왕이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말을 못한다는 건 치명적 불구가 되어 버린다.

내 앞에 있는 마이크에 한 마디를 하면 이는 라디오를 타고 전세계로 나아가 버린다. 이는 더더욱 말더듬이에게는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가 된다.

고심에 빠진 이 말더듬이 알버트를 교정하는 일이 또 하나의 주인공 로그에게 맡겨졌다.
그의 다양한 실험 등도 재미있지만 결국 요체는 마음의 장벽 걷어내기였다. 신성한 왕은 이제 체면과 격식을 강력히 요구한다. 그런데 그러한 외관의 무거움이 사실은 마음의 장벽을 만든 근본이었다. 어린 소년의 일상은 커다란 그림의 장중한 조상들의 모습으로 둘러싸여졌다. 조상들은 위대한 인물들이다. 변방의 가난한 나라 영국을 이끌고 세계로 떠나는 모험에 나서 전세계에 해가 지지 않는 왕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계자의 임무는 아마 나에게도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식의 압박과 자신보다 재간 있고 특히나 개성이 강한 형과의 비교는 더욱 그에게 무거움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로그가 시도한 방법들이 과학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문가가 아니니 감히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자신을 잊으면 자신을 찾게 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치료법으로 보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신분의 차이를 넘어 우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화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라디오라는 문명의 이기가 준 영향을 잘 이해해야 한다.
사람은 권리와 의무가 함께 가야만 공정하게 느낀다. 체제는 권리와 의무를 조화시키며 부과할 수 있어야 발전한다.
당시 사회의 모습은 오래되고 계층이 많았다. 아마 영화 타이타닉을 연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 타이타닉의 구조가 더 잘 확대된 모습이 바로 영국 사회였으며 최고의 상징물은 왕이고 왕궁이다.
반면 당대의 유럽의 대중들은 자신들에게 막대한 의무만 부과되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 경향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강했다. 독일은 1차 대전 후 나타난 인플레를 통해 자산의 상당수를 유태인 금융가들에게 빼앗겼다. 덕분에 이들은 형식과 절차만 남은 민주주의를 거부해버리고 히틀러를 지도자로 맞이한다. 배경도 한미하고 교양도 의심스러운 인물이지만 그에게는 매력이 있었다.
바로 독일인들에게 당신은 독일인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자랑스러워 하라고 이야기하는 선동가로서의 매력이었다. 당시 독일의 관광선은 1등,2등,3등이라는 구분이 아예 없었다.
히틀러는 대중들에게 권리를 먼저 부여하고 그 다음에 의무를 이야기했다.
그는 연설의 대가였고 최고의 무기는 바로 라디오였다.
수백만 대중과 바로 마음이 통하도록 만들어주는 이 문명의 이기 덕분에 그는 최고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아마 인쇄술이 루터의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한 이후로 최고의 변혁이었을 것이다.

그 히틀러에 맞서기 위한 조지 왕의 분투는 정말 눈물겨울 정도다.
한번 즐겨보고 또 이야기하면 어떨까 한다.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장점은 관광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런던의 명소들을 겉으로만 볼 수 밖에 없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웨스트민스터에서는 대관식 장면을 볼 수 있고 버킹검 궁에서는 대중을 환호에 답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다우닝스트리트에서는 수상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 모두가 런던을 겉으로만 본 대중 관광객들에게 괜찮은 보충교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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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4-12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를 개봉 첫날에 봤는데, 뒤늦게 사마천님의 리뷰를 읽으니 새록새록 영화속 장면이 다시금 떠오르는군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내부도 흥미로웠고, 버킹검 궁을 '관광객의 시선과 정반대'에서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더군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 *
엉뚱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은 1917년의 공산주의자가 이전에 일어난 것과 동일한 형태의 혁명, 과거의 결함과 오류가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혁명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일어난 것은 역사적으로 별다른 흥미가 없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인간 삶의 새로운 시작과는 반대다. 그것은 과거 혁명의 단조로운 반복이며 완전한 재탕이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대중의 반역』中에서

사마천 2011-04-13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님 격찬에 저도 꼭 담아놓았는데 이제야 보았습니다. 과찬의 말과 격려 늘 감사드립니다. 영화의 매력인데 버킹검 궁은 1년에 한번만 그것도 많은 돈을 내야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이점에서 영화는 또 다른 관음증을 만족시켜줍니다. 아마 그것도 감독의 배려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