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루 - [초특가판] 일본 고전명작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시무라 다카시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낡은 흑백 화면에 소리도 깨끗하지 않고 아무런 스펙터클도 없는 일본 영화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은 다른 여느 작품 보다 크다.

매일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시청 공무원이 있다. 시민과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는 반복적으로 도장만 찍어댈 뿐이다. 마침 한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자신의 집앞에 공원을 만들어달라는 민원을 들고와도 그는 그냥 듣고 다른 부처로 보낼 뿐이다. 이게 공원과의 일인지 토목과의 일인지 이곳저곳 다니다가 결국 아무런 해결이 없다. (딱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공무원 내지 노무현 정부 같지 않은가? 보다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런 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위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이제 시한부 인생이다.

곰곰히 자신을 돌아보니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발견하기 어려웠다. 가장 소중했던 명분은 아들이었다. 아내를 젊어서 잃고 홀로 키우며 갖은 고생을 다했다. 그런 아들이지만 이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버지의 퇴직금 정도라는게 너무 가슴에 슬픔을 안겨주게 되었다. 안그래도 위장약 먹다가 쓰리게 된 속에 말이다.

잠시 환락도 추구해보았다. 어느 착한 시인이 자처하는 메피스토의 모습에 이끌려서 말이다. 이곳저곳 다녀보았디만 그건 본래 그의 체질은 아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그가 찾게된 깨달음은 무엇일까?

작은 아이들 완구를 만드는 옛 부하직원이 던진말은 자신이 돈만 벌기 위한 노동자가 아니라 이 만듬을 통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데 자신의 의의를 찾는다고 했다.

그래 바로 이 대목이다. 삶은 남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된다. 더 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소명을 찾아야 한다. 그냥 때워서는 안된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서 무엇인가 남을 위한 일을 해야만 한다.
인간이 공동체라는 것은 나에게 먹을 것을 위해 흙을 파야 할 노동을 면해주었다. 반면 당신이 세상이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짧은 시간에 그로서 최대한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은 바로 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사람들이 절실히 바라던 공원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 앞길은 그냥 마음만 먹어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전 자신처럼 뭉개고 가만히 버티는 다른 과장들을 설득하기 위해 3일간 옆에서 설득하기도 하고 말단에 까지 머리를 숙이는 것은 약과다. 처음에는 모멸감 주는 상사는 나중에는 권위로 제압하려고 한다. 옆에서는 다들 말린다. 왜 가만 있으면 중간이나 가는데 나서서 정맞냐고... 더해서 가끔은 야쿠자한테 신변의 위협도 받는데 목숨도 별로 아까와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상대방이 질려버렸다. (하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데 ... )

이 대목에서 삶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주인공은 먼저 자신의 삶이 이제 끝나감에 따라 무엇이 세상에 남는지를 물어갔다.

전통적인 의의는 인간 복제, 즉 자손을 남기는 것이고 당연히
1번으로 떠올랐지만 실제 확인해 보니 그만큼의 의의는 가지기 어려웠다.
아들은 그냥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준 기쁨 이상의 답이 되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유형적인 사물, 즉 자신이 만든 공원이 남게 된다.
눈에 보이는 이 공간속에서 존재감을 얼마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공원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이 박힌 것도 아니고
개소식에서 공치사라도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수준도 아니다.
오히려 공을 가로채려는 상사들의 행동들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다.

그래도 더 남는 것은 역시 사람들의 마음 일 것이다.
적어도 혜택을 입는 많은 아줌마 등 많은 사람들은 그가 진정으로 이 일을 하고 싶었고
제대로 노력했다는 점을 잘 알고 감사의 예를 표한다.
더해서 주변의 동료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일을 하기 위해 직접 흘린 땀과 수고에 대해 이들은 잘 알고 자신 스스로 비교하면서
개인들로서 느낀 바가 많다.
덕분에 그들이 우리도 고인의 사례를 모범으로 삼아 제대로 해보자하고 마음 먹고 결의하는 것
(실제로는 잘 안되지만)은 분명 사람을 변화시킨 것이다.

고대로부터 영웅은 꼭 대단히 힘을 많이 쓰고 전장에서 무공을 세운 사람만 뽑아서 열전이라고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하나의 절의를 지킨 자객이라던가 장사꾼,예인들에 대해서도 그 삶의
의의를 발견해서 기록을 남겼다.
주변을 자극하고 마음의 변화를 주어 오래 기억에 남는 것 이것이 또 하나 삶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장치의 하나다.

우리 삶 속에서도 교훈은 계속 이어진다.

작가는 존재의 가치를 외부에서도 내세에서도 찾지 말라고 한다. 바로 오늘 당신 자신에게서 찾아 스스로 변하면 그 여파는 점점 퍼져 주변의 모두에게 의의를 준다고 말이다.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머리를 차지하는 당신의 일 그 자체에서 매력을 찾지 않는다면 어느 것도 한계에 부딪힐 따름이다.
그 일을 잘 해나감이 바로 내일의 나를 더 낫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삶의 마지막에 아쉬움이 없도록 해주는 것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술 2007-05-0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 정부라는 대목에서 저도 웃었습니다.

사마천 2007-05-0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역시 걸작인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