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
마가렛 조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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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게이라면 졸업생 파티에 처음으로 데려간 여학생이 누구였는지 생각해보라. 그녀가 바로 당신의 첫 번째 패그해그다.' 내게는 '보코논서' 만큼이나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책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마가렛 조라는 한국계 여자 코미디언이 쓴 '내가 되고싶은 사람은 바로 나'라는 '패그해그 입문서'이다. 지난밤의 음주가무가 남긴 두통으로 지독한 숙취에 시달릴 때면 나는 종종 이 버릇없는 여자의 책을 꺼내읽곤 한다.

여기서 '패그해그'란 단어는 '게이 남자와 어울리기 좋아하는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세상에서 가장 심한 경멸의 대상인 남자 동성연애자와 여자의 결합을 상징'하고 있는데, 패그해그 로 자처하고 있는 마가렛 조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내가 남자 동성연애자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을 때의 첫 느낌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미국 이민 1세대인 한국인 부모님 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오줌을 참지 못 하고 스니커즈에 지린 것을 시작으로 지독한 왕따에 시달렸고, 미국 한인사회의 사교계 필수코스인 한인교회에서도 아이들의 놀림과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모란(牡丹)이라는 예쁜 한국이름은 어느새 모론(moron 저능아라는 뜻)이라는 무시무시한 미국이름으로 불려지고 그 이름은 평생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젊은 나이에 쓴 이 자서전은 성경의 묵시록처럼 무시무시하지만 매혹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13살 어린 나이에 첫경험은 데이트 강간이나 다름없었고,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다 올 F학점으로 고등학교를 쫒겨났다. 보수적인 부모님은 꼴 보기 싫은 딸을 지하실로 내쫓고 한동안 한지붕 두가족으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연애생활은 어떤가. 평생 '뚱보 콤플렉스'에 시달린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을 거절하는 데 죄책감까지 느껴야했고 그 지저분한 손길을 뿌리치지 못 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들을 만나고 술에 취해서야 함께 침대로 갈 수 있었다. 연인과 헤어질 때는 오히려 깊이 감사했을 정도다. (한때의 연인 쿠엔틴 타란티노도 그랬을까?)

마지막으로 직업생활이라도 만족할 만 해야하는데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는 순회공연 생활 중에 동양인 최초로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의 주연자리를 따내는 일생일대의 행운을 잡지만, 스크린 테스트를 받고 살이나 빼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 후 새 모이처럼 먹고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강도 높은 운동으로 일관한 끝에 2주 만에 14kg 감량에 성공하지만 그 결과 신장이 망가졌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운동만으로는 되지 않아 다이어트 약에 의존하면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시트콤이 중도하차하면서 자신의 모든 불행이 이 놈의 살 때문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었다. '내 인생은 오직 살빼기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살아 있는 것보다 날씬해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결국 밥을 먹지 않으려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알코홀릭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루종일 술과 동시에 마약을 하고 외로움에 아무 남자와 사랑을 하는 생활이 몇 년동안 계속되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바람만 불어도 꺼질 거 같은 가냘픈 체구에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동양여성이었다면 그런 폭력적인 삶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가렛 조는 그녀가 주연한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처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올 아메리칸 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행히 그 모든 비극적인 상황을 자신의 유머감각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책에는 무엇보다 그녀만의 펑크적인 유머와 불손하기 짝이 없는 위트가 폭우 뒤의 무지개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코미디 예술가이자 작가이자 여신인 이 작가의 책을 넘길 때마다 훔쳐오고 싶은 구절이 하나 둘이 아니라 손이 근질근질했을 정도다.

그리고 이제 게이를 친구로 가진 이민 2세대 뚱뚱한 동양인 여자라는 핸디캡은 주류 사회가 가지지 못한 독특한 아우라를 그녀에게 부여한다. 그녀는 다시 일어선다. 클럽을 통해 코미디 쇼 '내가 되고싶은 사람은 바로 나(I'm the one that I want)'가 연일 매진행진을 계속하고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배경에는 '패그해그'로 살아온 그녀의 지난 삶이 있다.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인 미국 사회에서 힘들 때 마다 함께 울어주었던 같은 2류 계급의 친구들이 있다. '전세계 남성 동성연애자들에게 약속의 땅과 같았던' 70년 대 폴크 스트리트 거리의 수많은 게이 남성 사이에서 성장한 그녀는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패그해그로 살아왔다는 점에서 감히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내 수호천사들로 나를 돌봐주었으며 그 사실에 행복해했다. 그들로 인해 나는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하느님은 게이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마가렛 조의 코미디를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지금까지 영화조차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3년 전에는 게이 남자친구를 가지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 내 친구들이 열광하는 게이 로맨스 드라마 QAF에는 관심도 없다. 그러나 국적과 성별과 취미를 떠나 우리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너와 나 우리는 평생을 주류에 영입하지 못 하는 패그해그로 살아온 것이다.

'만약 우리의 관계가 당신에게도 익숙하게 들린다면 아마 당신 역시 패그해그일 것이다. 패그해그는 신분과 계층, 나이, 인종을 초월한다.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혹은 그 중간이건 상관없다. 패그해그는 그 숫자만큼이나 다 제각각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패그해그란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패그해그가 되려고 작정했던 사람은 없다. 어느날,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그렇게 되어있음을 깨달은 것 뿐이다.'
 
'여성과 게이 남성은 사회의 지배문화에 의해 오랫동안 2류 계급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힘을 유지해야 할까? 우리를 억압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씹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비서의 날처럼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패그해그 데이' 창설을 위한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다면 함께 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좋다는 이 샌프란시스코 풍의 자서전을 통해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신의 '패그해그' 교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 유혹은 모든 이단 종교처럼 두렵지만 너무 유혹적이고 치명적이다. 그러나 마가렛 조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우선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나누고, 거기에 빛을 비춰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마치 그림자가 사라지듯 그것 역시 빛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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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7-03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그해그랑 패그해그가 번갈아 나와서 헷갈려요. 피그해그랑 패그해그는 다른 거에요?
이 책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마가렛 조, 예전에 연예방송에서 한 번 본 거 같은데..

히나 2005-07-0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앗 죄송.. 오타여요. 패그해그란 말이 맞아요 패그는 게이를 가리키고 해그는 흉칙한 노파를 가리키는 말로 같이 쓰였을 때는 게이를 좋아하는 여자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

하이드 2005-07-0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꽥!

panda78 2005-07-03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FAG 내지는 FAGOT는 알고 있는데, 패그해그는 첨 들어봤어요. 그런 뜻이었군요-
시트콤 윌 앤 그레이스의 그레이스가 전형적 모델이겠습니다. ^^;

히나 2005-07-0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FAG고 FAGOT이고 하나도 모릅니다 그치만 판다님, 저도 그레이스 좋아했어요~~ 사실은 그레이스보다는 윌을~~ (그 당시 케이블이 안 나와 자주 보진 못 했지만 ^^;) 우리 마가렛 조 언니 그레이스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절대 못 하지는 않죠 흐흐.. 사진은 QAF의 피터씨와 찍은 사진, 재미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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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7-0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ㅋㅋㅋ 너무 좋아하네요- 둘 다!
전 QAF도 자주 봤어요. 대학 다닐 땐 gay인 친구들도 꽤 있었구..
윌 앤 그레이스는 요즘들어 보는데, 참 남얘기 같지가 않은 것이.. ㅎㅎ
 
청춘, 덴데케데케데케~
아시하라 스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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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역시 록이 아니면 안 돼!' 라고 혈기에 불타 소리지르는 네 명의 소년을 한번 만나보자. 우선 이 책은 표지부터 그 유명한 비틀즈의 abbey road 앨범을 패러디하고 있다. 각 소제목 또한 6, 70년대를 풍미했던 로큰롤이니 비틀즈는 물론이요, 벤처스, 로버타 플랙, 밥 딜런 따위의 이름들이 제목으로 줄줄히 불려 나온다.

그런데 로버타 플랙이라 최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그렇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마커스가 친구들 사이에서 매장될 각오까지 하고 불렀던 엄마의 18번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의 가수 아니던가? 아아, 그 순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구나! 대망의 2005년을 살아가는 우리 젊은 청춘들에게 이 노래는 락이라기 보다 올드 팝송에 가까울 뿐 그 어떤 저주받은 락 스피릿도 선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산이 30년도 넘게 흐른 지금,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고래적 하이스쿨 밴드 '락에 미친 말들 rocking horseman'은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러 현해탄을 건너 온 것일까? 어느새 '베이스 소리에 따라 심장이 둑, 둑, 둑, 둑, 하고 요란하게 뛰고 있다.' 준비가 되었다. 덴데케데케데케~ 그 일레트릭 기타의 트레몰로 글리산도 주법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런데 나로선 그 주법도 모르겠고 자세히 설명할 자신도 없다. 대략의 줄거리만 말하자면 아래와 같으니, 1965년 일본의 어느 한 시골 가가와현립 캉온지제일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후지와라 다케요시 외 3인의 요절복통 고교밴드 결성기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만큼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일렉기타를 구입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나 합숙훈련을 빙자한 여름캠프, 코니 프랜시스 풍의 해변의 데이트 같은 에피소드란 청춘영화에 의례 따라오기 마련인 필수공식이란 얘기다.

그렇지만 눈 딱 감고 촌스럽긴 해도 애틋하기 짝이 없는 그 추억의 페이지를 넘겼을 때, 우디 알렌의 말을 빌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쓰레기 같은 세상'에선 눈 뜨고 찾아 볼 수 없는 눈부신 선의로 가득하다. 칫쿤의 말처럼 '이 세상에는 악의라는 것은 없어, 있다고 해도 아주 조금이고 선의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이 책에도 잠깐 나오는 비틀즈의 명곡 yesterday 가사처럼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 우리에겐 때로 숨어버릴 수 있는 과거가 필요하고, 이 노래들은 현실로부터 도망친 어른들이 잠시 쉬었다 올 수 있는 청춘의 마지막 피난처 '노스텔지어의 주막'과도 같다. '수많은 추억 중에서도 소년 시절의 달콤하고 안타까운 추억만큼 사람들의 가슴에 언제나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고 했던가. 청춘의 환영 메텔을 떠나보내는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그 유명한 마지막 말이다.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되고 추억은 일렉트릭 기타의 트레몰로 글리산도 주법으로 영원히 남는다. 안녕 록킹 호스맨, 청춘의 시절이여..

찰랑찰랑 모던락 기타에 익숙한 20대 후반의 여성으로서 나는 울부짖는 일렉트릭 기타가 좀 많이 부담스럽고 그래서 별이 평소보다 하나 적어졌다. 그렇지만 나보다 조금 윗세대들은 다를 지도 모르겠다. 토마의 일러스트레이션 삽화가 참 사랑스럽다는 말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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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6-28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덴데케데케데케...저도 꿈에서 이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히나 2005-06-29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식스티 나인'의 츠마부키 사토시군이 자동연상된다는~ ㅎㅎ
 
명동백작
이봉구 지음, 이제하 그림 / 일빛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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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우연히 EBS 채널을 돌리다가 '명동백작'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드라마를 보았다. 정보석이 나레이터로, 이진우가 김수영, 차광수가 박인환, 이재은이 전혜린으로 출연, 중심인물 이봉구 역은 연극인 박철호가 맡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1950~60년대 좋았던 시절의 명동을 향수범벅으로 그리고 있는 이 다큐 드라마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누구도 모르게 명동폐인으로 살다시피 했다.

방영시간을 놓쳤을 때는 VOD(EBS는 VOD가 무료)서비스로 다시 보았고 이봉구가 쓰고 이제하가 그린 원작 '명동백작'이 절판인 걸 알고 안타까워했다. 극본을 쓴 정하연 작가가 50년대 명동키드로 그 시절 예술가들에 둘러 쌓여 자라났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고 성장배경까지 질투했으며, 어느 날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박인환 손녀의 감상문에 최고조로 흥분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절판된 책이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달아가 손에 넣었다. 그 책이 바로 '명동백작'이었다.

거리도 젊고 사람도 젊고 예술 또한 젊었던 1940년대 중반, 화가 사석원의 말처럼 '바람아, 사람아, 그냥 갈 수 없잖아' 라고 명동 거리로 꾸역꾸역 모여들던 이들이 있었다. 이 책 '명동백작'은 해방을 전후해 명동 일대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술집들이 70년대 들어 무교동으로 옮겨가기까지 작가, 연극인, 음악가 등 문화인이라 일컬어지던 사람들과 함께 술에 살고 사랑에 살았던 지난날의 이야기이다.

그 지난날 명동의 마지막 교두보였던 은성술집에서 있었던 저자 이봉구와 수주 변영로 선생의 일화를 잠깐 들어보자. '주량이 어느 급인가? 아직도 형편없습니다. 그러면 애주? 그 급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그러면 뭘 했어? 죄송합니다.'

'은성술집'이 '봉구술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술집에 살다시피 한 저자 이봉구는 그 시절 명동술집에 나와 시를 쓰고 사랑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현장 통신원처럼 현장음을 살려 생생하게 들려준다. 드라마에서는 김수영, 박인환, 김관식, 서정주, 전혜린이 주인공이었지만 이 책 속에서는 그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이 한 꼭지마다 돌아가며 주인공으로 불려나온다.

1945년 조국 광복 속에 명동 거리는 해방이 되었고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스산한 그 거리에 '봉선화'라는 이름의 다방이 첫 꽃을 피운 것을 계기로 하나 둘 떠났던 예술가들이 돌아온다. 1946년 봄부터 1949년 겨울까지 명동거리는 낭만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감격에 겨워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것도 잠시, 오장환을 비롯해 '오랑캐꽃'을 노래하던 이용악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어느새 우리는 이 책이 4,50년대 명동을 말하는 생생한 현장통신이 아니라 종군기자가 전하는 비극에 가깝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해방 이후 남과 북이 갈리는 순간부터 6.25 전쟁 발발까지 명동거리에서 수 많은 예술가들이 사라지고 행방불명이 되고 죽어가게 된다.

'이번 25일은 일요일이니까 토요일에 월급 봉투가 나올 것이고, 덥기 전에 이번 일요일을 한번 근사하게 놀아야 할 텐데...' 그러나 6월 25일 어떻게 즐길 것인가를 떠들던 명동 거리는 빼앗긴 일요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9월. 다시 명동이 손에 들어왔지만 김기림, 이시우, 최재덕, 남궁연 등이 사라지고 없었다. 단골술집 주인들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괘씸해하고 거리에서 꽃을 파는 아이들이 그 소식을 궁금해한다. 친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친구를 목놓아 찾아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폐허의 거리에도 꽃은 피고 다시 명동은 주객들로 불야성이다. 명동장, 무궁원, 돌체, 휘가로는 명동 순수파들로 매일밤 대성황. 공초선생 오상순, 서정주, 그리운 옛 이름들. '어디로 가세요. 모나리자 아니면 문예싸롱. 그러면 돌체-술 하시러- 그러면 명동장 아니면 무궁원 -아이 참, 새로 난 딱총이라는 술집. 길에서 만나면 이런 인사가 오고갔다.'

술집 모나리자는 밤이면 중태에 빠졌다가도 이튿날이면 용하게 깨어나고 예술가들의 주정을 지겨워하는 마담은 '오늘 밤 주정은 어느 정도 어떤 스타일로 하실 심산이세요?'라고 먼저 묻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젊음을 믿고 독주를 즐기던 사람들이 하나 둘 아깝게 쓰러진다. '노란 스웨터와 멋진 양복과 넥타이에다 캡을 쓰고 그 크고도 검은 눈동자를 두리번거리며 심각한 얼굴빛으로 혼자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무슨 탐정 소설의 주인공 같아 유심스레 두세 번 그를 힐끗힐끗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하는 시인 김수영.

알핀 바이올렛 전혜린도 빠질 수 없다. '선생님 저 색시 눈이 무서워요. 누구? 잘 아시는 대학생. 머리를 길게 늘이고 그 큰 눈을 두리번거리는 색시말이예요. 아, 저 색시. 법과대학을 다니고 있는 전혜린.' 시시한 유행가 따위나 틀어주는 모나리자 말고 순 명곡다방인 돌체에 가는 걸 좋아했던 천재소녀 전혜린, 어느날 은성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집으로 돌아간 이튿날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나 봐 맥주 좀 줘. 또 외상이야. 사랑만 있으면 되지. 빨리 가져와. 흥, 참, 내 별거 다 보겠네. 다짜고짜 정이 들게 하거든.'

그리고 여기, 사람들 사이에서 '명동백작'이란 불리며 사랑받았던 박인환의 죽음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위스키를 마신다. 한 잔은 과거를 위해, 두 잔은 오늘을 위해서. 내일을 위해서는, 그까짓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노래했던 명동의 신사, 박인환. '박인환의 '선시집' 출판 기념회는 명동 거리의 청춘과 낭만이 최고조로 꽃 피었던 두 번 다시 없는 밤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박인환은 서른 한 살을 일기로 술을 마시고 돌아간 다음날 갑자기 숨을 거두어 버렸다. 친구들은 그 좋아했던 조니 워커 한 병을 죽은 박인환의 입에다 부어주고 자기들도 마시며 그리워했다. '유행가를 짓는 사람이라고 경멸한다면 명동 거리의 인사가 아니야' 라고 누가 말했던가. '명동백작'이라는 이름답게 박인환은 불후의 명동샹송을 하나 남겼는데 바로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요, 명동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다.

'조병화 못 봤소? 이명온 여사는? 술이 거나해지면 친구들이 그리운 모양이다. 이래서 마담이 자주 갈리고 어딘지 쓸쓸해가는 동방싸롱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서로 찾는 게 아닐까? 그리고 금강산의 주인도 닫는다. 왠일이요, 갑자기? 골치가 아파서 쉬려구요. 골치 아픈 것은 마담뿐인가. 명동 거리에 사는 사람은 피차 일반이지. 정들고 떠나고 변하고, 병들고 죽어가고. 낼부터 딴 사람이 해요. 외상은? 그대로 깔린 채 포기할 수 밖에. 이게 명동 거리의 사랑이라면서요. 라무르란 뭐야? 사랑이라나. 사랑, 흥, 그 놈의 사랑 때문에 모두 이 꼴 이 모양이지.'

박인환이 술에 취해 쓰러지고 동방싸롱 설립자 김동근이 뱃놀이로 빠져 죽고 김인수 또한 술잔을 손에 든 채 쓰러진다. 함대정이 죽고 조각가 차근호가 자살한다. 천재화가 이중섭도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아는 얼굴들이 점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궁금하다. 어디로 가야 그래도 아는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은성에 가면 더러 만나볼 수 있지.'

명동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순정지대의 주막'같다는 은성으로 몰려들고 그 곳은 명동의 마지막 교두보가 된다. 예술가 아닌 손님들은 '개뿔도 없이 문화인들은 멋에만 산다'고 불평이고, 예술가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마음에 무슨 상처가 있는' 마음에 금이 간 사람들. 그러나 '금이 갔다고 버릴 수 있어요? 까닭이 있어 금이 간 것을'이라고 20년 은성술집 경영에 문화인이 다 된 마담이 쓸쓸히 대꾸한다.

'수주 가고, 또 공초가 가고!' 어느새 수주 변영로도 술병으로 세상을 뜨고 술은 못 마시는 대신 담배는 지독하게 피워대는 공초선생 오상순도 조계사에 늙고 병든 몸을 의탁했다 결국 세상을 뜨고 만다. 전혜린의 죽음 후 김흥수가, 그리고 윤용하가 여름날 굶주림에 허덕이다 산 밑 판잣집에서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박수근도 죽는다.

그런데 그 시절, 밥 사먹을 돈도 없었다는 가난한 그 시절, 왜 예술가라고 자처하던 이들은 그렇게 새벽같이 일어나 명동으로 몰려들어 하루종일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댔을까? 왜 하필이면 술을 마시고 죽어가야 했을까?

명동의 문화인이었던 연극인 이해랑이 수필 '애주'를 빌어 그 이유를 말한다. '친구도 술친구가 그 중 좋다. 술친구는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들 하지만 내 경우는 그와는 다르다. 우선 술친구는 서로 흉허물이 없어서 더 구수한 정이 간다. 시인 조병화 형은 그러한 우리를 계보없는 가족이라고 불렀다.'

그래, 그들은 너무도 가난한 나라에 그마저 예술가가 할 일도 별로 없던 시절에 태어난 것이다. 할 일을 찾아 예술인들이 많은 명동으로 몰려든 것은 당연했고, 그 곳에서 시를 쓰고 원고를 청탁받고 원고료를 받으러 돌아다닌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자존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데 있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택한 것이 바로 술이었다는 말이다.

전혜린의 얘기를 들어보자. '감옥, 자살, 알콜, 이 세 가지 길에서 독일의 레지스탕스는 싸워왔어요. 지조를 지키고 방위하기 위하여 감옥으로 잡혀갔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고 가장 약한 방법으로는 어두운 술집에 숨어 앉아 알콜에 몸을 담그고, 알콜처럼 고마운 건 없어요. 선생님, 알콜에 중독은 절대 안 되지만 지조를 지키는 덴 필요한 음료수예요.'

이제 다들 떠난 그 자리에 은성술집의 새로운 단골이 된 여대생이 이미 죽은 지 10년이 넘은 박인환의 명동 샹송 '세월이 가면'을 부른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그리고 화려했던 명동시대는 끝이 나 무교동 시대로 이어지고 저자 이봉구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내가 운명을 같이해온 명동 20년! 그리운 그 입술은 내 서늘한 가슴 속에 영원토록 있을 것이다. 잘 있거라 명동이여'라고.

'오늘같이 조용히 비 내리는 밤이면 그대들의 이름이 한 절(節)의 서정시. 한 방울 비 한 방울은 그대들의 이름을 먼 나라로 싣고 온 한 절의 노래' 어느날 명동 한복판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권투선수 시인 배인철이 흑인 친구를 그리워하며 읊은 시를 나지막히 따라 불러 본다.

이렇게 장맛비가 추적추적 오는 밤에도 혼자 거리를 방황하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노래를 들어왔던 나는 불러올만한 추억이 없다. 생각나는 사람도 없고 가슴아팠던 사랑도 없으며 되돌리고 싶은 안타까운 순간도 없다. 그 대신 나는 책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지난날 아련했던 추억을 불러와 곱씹어 본다. '간 사람은 갔고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살아야지요. 한 주전자 더 올릴까요?'라고 말하는 본 적도 없는 술집 마담을 그리워하면서. 그러면 나는 대꾸하리라. 일제 치하 만주로 떠나던 유치환을 슬피 배웅했던 한 여급의 말처럼 '저도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같은 여자예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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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6-27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아! 언제 한번 야밤에 명동 어디쯤에서 술 한잔 하십시다. 크아아!

히나 2005-06-27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부로 돌바람님을 술바람 언니라 명명하겠싸와요~ㅎㅎ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명동이 그때의 명동이 아니라는 것..

돌바람 2005-06-27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이, 술바람이라니, 정곡을 찌르고 그려! ㅎㅎ~ 근데 명동은, 꼭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그대와 거하게 술잔을 나누면 우리의 명동도 기억하게 되겠지요.

2005-06-27 0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5-06-27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멋집니다. 한편의 소설을 보는 듯한. 저도 그렇게 좋은 술친구들과 술마실 때가 있었는데 말이죠...

인터라겐 2005-06-2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두 저 명동백작이라는 EBS프로그램을 보면서 책을 검색했던 기억이 있어요..
다시 나왔군요.. 보관함으로 들어갑니다..

히나 2005-06-2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라님, 비가 그친 후 좋은 바람이 불고 있어요 ㅎㅎ
클리오님, 술친구는 계보없는 가족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더이다..
인터라겐님, 재미있게 읽으셔요..~

로드무비 2005-06-30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밤 주정은 어느 정도 어떤 스타일로 하실 심산이세요?ㅎㅎ
마음에 꼭 드는 대사네요.

히나 2005-06-3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주정 스타일도 궁금하네요 ^^
 
초콜릿
조안 해리스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오늘은 찾아뵙는 날이 아니라는 거 저도 압니다. 신부님. 하지만 누군가 대화상대가 필요했습니다.' 프랑시스 레노 신부님, 탐식, 탐욕, 나태, 음란, 교만, 시기, 분노, 성서에 나오는 7가지 죄악 중에서 저는 요즘 탐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반성하는 의미에서 무분별한 외식을 지양하고 있으나 3일 연속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조금전 냉장고를 열었더니 초콜릿 시럽이 상했더군요. 지나친 탐식으로 지금 벌을 받고있는 건가요? 당신을 알게 된 지 두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만, 이제 와서 리뷰를 쓰고 찾아뵙기에 너무 늦었다는 거 저도 압니다. 신부님. 하지만 누군가 대화상대가 필요했습니다. 초콜릿 시럽이 상했단 말입니다!

책 뒷표지에 이렇게 나와 있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이 소설은 쾌락과 사랑과 관용에 대한 찬가이다. 놓치지 말것. - 옵저버 

레노 신부님, 정말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당신의 선의를 의심부터 하고 보는 심술궂은 비안 로셰처럼 그렇게 생각할 리 없어요. 제 생각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자의 의도를 잘 못 이해하는 거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책이 쾌락이 아닌 금욕에 대한 찬가이고 사랑하고 싶으나 끝끝내 사랑할 수 없는 마음,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용 보다는 자신의 고결한 신념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신부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어느날 갑자기 사육제의 바람과 함께 나타나 '이 답답한 동네에는 마술이 좀 필요한 게 아닐까' 혼자 지례짐작하고선 (돈도 많은 지 겨우 3일 만입니다) 2월 14일 성 발렌타인 축일에 '천상의 프랄린'이라는 초콜릿 가게를 연 다음, 인구라고 해봤자 겨우 200명도 안 되는 자그만한 마을을 뒤흔들어고 자신이 떠난 다음 뒷수습은 어떡하라고 '잠시만 머물자 바람이 바뀔 때까지만' 이따위 무책임한 말을 늘어놓나요?

편견은 가지기 싫지만 이 여자, 마녀같아요. 이상한 마술도 하는 거 같습니다. 흑마술만 위험한가요? 보통 사람이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제 집 드나들 듯이 훤히 들여다 보고 그에 맞춰 사람을 대하는 영악함을 지녔습니다. 그렇다고 '거의 죄책감까지 느끼는 이 엿봄'을 포기하지는 않아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닳아빠진 도시여자에게 뭘 기대하겠어요. 아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걸요.

물론 그녀는 자신이 떠돌아다니게 만든 원인 제공자로 가엾은 어머니를 내세웁니다. 흔히들 하는 변명이죠. 어머니는 그녀와 달리 실제 마녀였대요. '그들은 일상으로부터 도둑들처럼 끊임없이 달아났고 안정적인 삶을 감당 못해 프랑, 크로네, 파운드, 달러로 바꿔 바람결을 따라 도망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시절 삶은 멋진 모험이었다고 그녀도 인정은 하고 있어요.

어떤 이유인 지 모르지만 카드로 점을 치며 끊임없이 달아나기만 한 어머니와 달리 딸은 요리를 배우면서 정착을 하고 싶어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암에 걸린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그 소원은 비로소 이루어지죠. 이제는 어머니가 된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만은 그 아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처음으로 마을에 정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망할, 검은 옷의 사제가 문제예요. 죄송합니다. 신부님. 이 욕은 제가 한 게 아니예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서 기쁘군요. 나도 그렇습니다.

신부님과 비안,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 거립니다. 별다른 이유도 없어요. 초콜릿은 그저 핑계에 지나지 않죠. 그러나 신부님, 저도 바보는 아니예요. 제가 보기에 두 사람은 같은 영혼을 지녔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있는 물고기자리예요. 같은 주파수를 가진 사람이 그러하듯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단번에 알아본 거죠. 한 사람은 금식을, 다른 한 사람은 초콜릿을 택했지만요. 장정일의 시 '요리사와 단식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두 사람은 거울의 양면같은 존재입니다. 

심지어 그 여자는 하느님의 사제인 당신을 유혹하려고도 했어요. '그 사람은 나의 사제가 아니예요. 정말 나의 사제가 아니예요' 라고 말하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 다 거짓말이예요. 신부님은 금욕적인 생활을 하셔서 그런 쪽으로는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여자의 마음을 알아요. '맛보세요. 느껴보세요. 즐겨보세요. 전 이걸 보면 신부님 생각이 나요' 라고 지껄이면서 입을 꼭 다문 굴처럼 생긴 조그맣고 납작한 프랄린을 내밀었어요. 아니 감히 초콜릿으로 신부님을 유혹하려 들다니요. 괘씸한 여자 아닙니까. 굴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 꼭 제 입으로 말해야 할까요?

그러나 알고보면 비안 로셰 이 여자도 불쌍한 여자입니다. 생의 직관(直觀)을 타고난 비범한 여자들이 그러하듯 외로운 여자예요. 농촌의 촌부들은 도시에서 온 이 세련된 여자를 사랑의 전령사로 여기지만 정작 자신은 평범한 남자의 사랑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요. 잠시동안 떠돌이 집시인 루를 좋아하지만, 글쎄 그게 사랑일까요? 나아가서는 루와 조세핀에 대한 질투에도 휩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가졌거든요.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에게는 아이라는 신비한 존재가 있어요. 그녀는 모성으로 자신을 완성합니다.

그럼 신부님, 당신은 무엇때문에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는 거죠? 무엇때문에 금식을 하고 커피와 물만으로 생활하며 강도높은 노동으로 신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려는 건가요? 사람들의 말처럼 어쩔 때 당신은 신의 존재를 믿고 있는 거 같지도 않아요. 도대체 당신이 그토록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찾으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끊임없이 말하는 그 '정갈함'이라는 건가요?

그에 대한 답으로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놀랄만한 진실이 밝혀집니다. 어쩌면 짐작했던 바이기도 하구요. 세상에 드러났을 때 그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했던 사실들이 폭로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신에 대한 믿음때문에 혹은 외로움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고 살아가요. 그러나 누가 그들을 비난하고 단죄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값을 치르며 평생 십자가를 지고 살아왔는데 말이예요.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무스카의 죄를 이해한 신부님처럼, 어머니를 용서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처럼, 저도 알 거 같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지 말이예요.  

그러나 신부님, 당신은 그 싸움에서 실패했습니다. 심성이 꼬일대로 꼬인 작가 조앤 해리스는 '모든 것을 비밀로 하겠어요' 라고 말하는 착한 줄리에트 비노쉬는 준비해 놓지도 않았어요. 당신이 유혹이라는 덫에 걸려들자 마자 실컷 조롱하고 비웃은 다음 내쫒아 버립니다. 당신은 꼬리를 내린 개처럼 달아났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알까요? 그 고통이 조앤 해리스 방식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당신이라는 존재가 없는 이상 비안 로셰는 이 마을에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해결되자 허무함까지 느끼는 거 같았어요. 이제는 금욕이 그리워질 차례입니다. 그러니 신부님 돌아오세요. 이 마을은 본래부터 당신의 것입니다.

신부님 아무래도 당신과 저는 너무 늦게 태어났습니다. 때로는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광야의 사람들이 그리워요. 이 쓰레기 같은 이 세상에서 '거칠고 청결한 구약(舊約)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건 너무 늦은 깨달음인가요?  

그렇다면, 내가 평생 믿어왔던 것들 -죄와 구속과 육신의 고행에 관해서- 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셈이오, 그렇지요?
두 분은 그런 믿음을 가질 자격이 있으시다고 생각해요. 그 믿음이 행복을 주기만 한다면.
이런, 무례한 질문이 아니길 바라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믿소?
전 행복해지는 거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걸 믿어요. 행복. 한 잔의 초콜릿처럼 단순하면서도 마음처럼 복잡 미묘한. 씁쓸한. 달콤한. 살아있는.

레노 신부님, 어쩌면 비안 로셰 이 여자의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 믿음이 행복을 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갈 목적을 잃지 않을 수 있겠죠. 내가 사는 방식이 옳은 지 그에 대한 믿음을 입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만큼 인생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행복을 찾는 것도 중요할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신부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세요?

당신이 돌아와봐야 알겠지만 사순절의 바람과 함께 도착한 모녀는 행복을 찾은 거 같습니다. '좋은 바람이 온다. 상쾌한 바람이 온다. 내 삶이 나를 부르네' 소설은 아이를 재우는 어머니의 노래로 끝이 납니다.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가 궁금하시죠? 들려드릴게요. '지금만큼은 이 노래가 자장가로 들리기를 바란다. 지금만큼은 바람 소리가 안 들리기를 바란다. 지금만큼은 - 제발 이번 한 번만큼은- 바람이 우리를 떼어 놓고 가기를 바란다.'

저도 이번 만큼은 그녀가 정착을 하고 바람 소리에 현혹되지 않은 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그 바람이 좋은 바람이라 하더라도, 아니 좋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시인 남진우는 폴 발레리의 말을 인용해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연습'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기가막히게 천명한 바 있죠.

기욤의 말처럼 '인생은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어요' 그리고 이 소설 '초콜릿' 또한 깜짝 놀랄만한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물론 가장 신비로운 존재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현대에서 지극히 구약적인 삶을 살아가는 신부님 당신이죠. 그러니 신부님 빨리 우리 곁으로 돌아오세요. 이 글은 신을 믿지 않는 자의 때늦은 고해성사이고 부칠 수 없는 러브레터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참, 너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가까스로 반으로 줄였는데 알라딘이 잡아먹어버렸어요. 배가 고파서 더이상 쓸 수가 없군요. 금욕이고 뭐고 밥부터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물론 당신을 존경하지만 다 행복하자고 하는 짓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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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6-2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말없이 추천합니다.. ^^

검둥개 2005-06-2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 받아서 제 서재에 장정일의 "요리사와 단식가"를 올렸더랍니다.
이 소설 영화와 완전히 달랐군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

비연 2005-06-26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군요. 추천~

히나 2005-06-26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리뷰 읽고 재미있어서 잔잔한 미소를 띄우는 거죠? 그렇죠?
검정개님, 고마워요 제목 고쳤어요
비연님, 반갑습니다 고마워요.. 별표 5개도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책 같아요

하루(春) 2005-06-26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이야기언니 같아요. ^^

히나 2005-06-2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고마워요~ ^^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윤은오 옮김 / 아테네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헤밍웨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지극히 단편적인 프로필 뿐이었다는 사실을 그만 털어놓으시지.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미국 태생의 마초작가로 부인을 네 번이나 갈아치운 화려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쿠바에서 엄청난 수의 고양이를 키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양이 무덤까지 만들어 주었다는 일화 말고는 흥미로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말년에 권총자살을 했다는 것도 빠져선 안 될 사실이지. 좀 더 덧붙인다면 모델이자 배우로 활동하는 손녀딸 마고 헤밍웨이라는 존재가 있을테고. 

그러나 나는 안타깝게도 중학교 때 문고판 책날개에서 접했던 드라마틱한 그 몇 줄의 삶에서 한 발자욱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동네 서점을 두리번거리다 이 멋진 책을 발견한 것은 정녕 행운에 가까운 일이다. 그의 말처럼 파리에서 살아보는 행운은 잡지 못했지만 젊은 시절의 배고픔은 좋은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헤밍웨이를 아직 더 늙기 전에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분명 삶의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젊은이로서 파리에서 살아보게 될 행운이 충분히 있다면, 그렇다면 파리는 이동하는 축제처럼 당신의 남은 일생 동안 당신이 어디 가든 당신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그는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파리로 온 이래 까페 되마고에서 커피 한 잔이나 맥주 한 컵을 시켜놓고 배고픔을 참으며 하루종일 글을 썼다. 그리고 실비아 비치가 경영하는 '세익스피어 컴퍼니' 서점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아직 예술가들이 보잘 것 없는 신용으로도 분에 넘치는 호의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 자리에는 에즈라 파운드나 스콧 피츠제랄드같은 대단한 작가들이 함께 했고 조금만 눈을 돌리면 그 시대의 독특한 아이콘 거트루트 스타인과 앨리스 B. 토클라스도 보인다. 아, 두근두근거린다.

그리고 그 시절 사람들은 늘 술에 취해 형편이 없었지만 적어도 친구의 작품에 대해서는 비난을 삼가야 한다는 예의를 잃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헤밍웨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에즈라 파운드의 수치스러운 전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좋은 친구였고 언제나 모든 친구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에즈라 파운드가 시인 T.S 엘리어트를 위해 은행에서 나와 시를 쓸 수 있도록 벨 에스프리 후원기금을 마련한 일은 다시 읽어도 가슴이 벅차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대목들은 따로 있다.

어쨋든 우리는 여전히 너무나 가난했고, 나는 항상 점심식사에 초대되었다고 말하고는 두 시간 동안 뤽상부르공원을 산책하면서 글을 썼으며 그리고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훌륭했던 점심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적게나마 절약을 하곤 했다. 스물다섯의 한창 나이에, 당연히 중량급의 체중이라 식사를 거를 때는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p139)

그 시절 점심을 거르는 일이 많아 늘 배 고픈 상태였지만 오히려 더 맑은 정신으로 생각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밤이면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기쁨이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의 단편이 많이 팔릴 거라는 소박한 믿음이 전부였지만 청년 헤밍웨이는 그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젊음은 그의 말처럼 덧없는 봄이라 사랑도 변하고 젊은이도 결국 늙은이가 된다. 그게 삶의 법칙이다. 생에 어느 순간 잃어버린 계절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은 더할 나위 없이 애틋하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이었고, 우리가 이 카페 테이블의 나무를, 혹은 대리석판을 두드린다 해도 얻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다. (p236)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하기에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부디 시를 쓰고 술에 취하고 사랑을 나누자. 그리고 가난한 젊음을 축복하자. 

헤밍웨이 사후에 출간된 이 에세이의 원제는 '파리는 축제다'로 20대 청년기를 보낸 파리 시절에 대한 시니컬하지만 정감어린 회고록이다. 60대 노인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위트 넘치며 분명 후회없는 삶을 살아온 이가 그러하듯 쉬이 회고조로 흐르는 법이 없다. 골치아픈 과거와 맞짱떠야 하는 순간에도 그는 그 어떤 젊은이보다 신랄하기 짝이 없지만 역시 그 더께에는 무시할 수 없는 깊이와 연륜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에는 잘 익은 상처는 포도주처럼 좋은 향기가 난다는 말이 상찬으로 따라와야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번역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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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6-22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도 읽을껀데, 끔찍하기 짝이 없는 번역이라구라?

zipge 2005-06-2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이 끔찍할 정도라면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읽기가 망설여져요.ㅡㅡ;

인터라겐 2005-06-22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제목을 보고는 황정민이 쓴 책인줄 알았어요.. 끔찍한 번역이라.. 이책은 필히 서점에가서 직접 봐야 결정할수 있겠어요..

로드무비 2005-06-2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드보일드한 헤밍웨이의 문체에 대해 칭송이 자자한데
그 맛을 살려내지 못했나 봅니다?
아무튼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히나 2005-06-2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번역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괜히 선입견을 심어준 게 아닌가 싶네요. 문장은 분명 술술 넘어가고 맛깔스럽고 박진감 넘치며 그 시절에 대한 향수로 뚝뚝 묻어나는데 문제는 인물들의 대화예요.

그 시절에는 모두가 그렇게 말했나요? 대화체가 마치 문어체같아요 사람들은 연극대사를 읊는 거 같습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한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극존칭이 이뤄지구요 제가 그런데 유난히 민감해서 그런 지 모르지만요 갑자기 '해라'체에서 '하오'체가 되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일성이 없는 거 같아 좀 아쉬워요 ㅡ_ㅡ 분명 역자는 애정을 가지고 이 책을 소개한 거 같은데 끔찍하다는 말이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읽어보면 정말 헤밍웨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돼요. 감탄감탄감탄~ 영화 LA 컨피덴셜같은 따뜻한 하드보일드 문체라고 할까. 회색과 핑크빛의 표지도 사랑스럽구요. 기라성같은 작가들과 함께 한 책 속 흑백사진들도 보석처럼 빛이 난 답니다. 5살의 헤밍웨이는 덩치 큰 어른으로 성장한 게 아쉬울 정도로 정말 귀여운 소년이예요~~ ㅎㅎ

플레져 2005-06-2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헉...재미나게 읽어내려오다가... 번역이 그러그러하다구요? 흠...
조카의 위인전 만화에서 헤밍웨이를 읽고는 매력적이야! 라고 했던 순간이 있어 그에 관한 걸 읽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어쨌든 살 때는 꼭 땡스 투 누를게요! 추천!

perky 2005-06-26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헤밍웨이 책을 '노인과 바다'밖에 읽어보진 못했지만,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박진감'넘치고 '위트'가 철철 넘치더군요. 거기에 '인생의 연륜'까지 느껴지다보니 홀딱 반했지 뭐에요. 이렇게 글빨 센 작가 오랫만에 만난것 같아요. 문체는 전혀 화려하지 않는데, 그토록 간결하면서 힘있는 문체를 구사하다니..거기에 유머감각까지 탁월하고..노벨문학상은 아무나 받는게 아니구나..를 실감했답니다.

히나 2005-06-26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우차우님, 저도 놀랬어요 헤밍웨이의 재발견! ㅎㅎ

파란여우 2005-07-15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보관함에 집어 넣은지 반년이 다 되갑니다.
번역이 그렇다니 또 망설...^^

히나 2005-07-16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치만 번역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만족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