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동백작
이봉구 지음, 이제하 그림 / 일빛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작년 가을 우연히 EBS 채널을 돌리다가 '명동백작'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드라마를 보았다. 정보석이 나레이터로, 이진우가 김수영, 차광수가 박인환, 이재은이 전혜린으로 출연, 중심인물 이봉구 역은 연극인 박철호가 맡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1950~60년대 좋았던 시절의 명동을 향수범벅으로 그리고 있는 이 다큐 드라마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누구도 모르게 명동폐인으로 살다시피 했다.
방영시간을 놓쳤을 때는 VOD(EBS는 VOD가 무료)서비스로 다시 보았고 이봉구가 쓰고 이제하가 그린 원작 '명동백작'이 절판인 걸 알고 안타까워했다. 극본을 쓴 정하연 작가가 50년대 명동키드로 그 시절 예술가들에 둘러 쌓여 자라났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고 성장배경까지 질투했으며, 어느 날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박인환 손녀의 감상문에 최고조로 흥분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절판된 책이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달아가 손에 넣었다. 그 책이 바로 '명동백작'이었다.
거리도 젊고 사람도 젊고 예술 또한 젊었던 1940년대 중반, 화가 사석원의 말처럼 '바람아, 사람아, 그냥 갈 수 없잖아' 라고 명동 거리로 꾸역꾸역 모여들던 이들이 있었다. 이 책 '명동백작'은 해방을 전후해 명동 일대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술집들이 70년대 들어 무교동으로 옮겨가기까지 작가, 연극인, 음악가 등 문화인이라 일컬어지던 사람들과 함께 술에 살고 사랑에 살았던 지난날의 이야기이다.
그 지난날 명동의 마지막 교두보였던 은성술집에서 있었던 저자 이봉구와 수주 변영로 선생의 일화를 잠깐 들어보자. '주량이 어느 급인가? 아직도 형편없습니다. 그러면 애주? 그 급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그러면 뭘 했어? 죄송합니다.'
'은성술집'이 '봉구술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술집에 살다시피 한 저자 이봉구는 그 시절 명동술집에 나와 시를 쓰고 사랑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현장 통신원처럼 현장음을 살려 생생하게 들려준다. 드라마에서는 김수영, 박인환, 김관식, 서정주, 전혜린이 주인공이었지만 이 책 속에서는 그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이 한 꼭지마다 돌아가며 주인공으로 불려나온다.
1945년 조국 광복 속에 명동 거리는 해방이 되었고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스산한 그 거리에 '봉선화'라는 이름의 다방이 첫 꽃을 피운 것을 계기로 하나 둘 떠났던 예술가들이 돌아온다. 1946년 봄부터 1949년 겨울까지 명동거리는 낭만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감격에 겨워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것도 잠시, 오장환을 비롯해 '오랑캐꽃'을 노래하던 이용악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어느새 우리는 이 책이 4,50년대 명동을 말하는 생생한 현장통신이 아니라 종군기자가 전하는 비극에 가깝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해방 이후 남과 북이 갈리는 순간부터 6.25 전쟁 발발까지 명동거리에서 수 많은 예술가들이 사라지고 행방불명이 되고 죽어가게 된다.
'이번 25일은 일요일이니까 토요일에 월급 봉투가 나올 것이고, 덥기 전에 이번 일요일을 한번 근사하게 놀아야 할 텐데...' 그러나 6월 25일 어떻게 즐길 것인가를 떠들던 명동 거리는 빼앗긴 일요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9월. 다시 명동이 손에 들어왔지만 김기림, 이시우, 최재덕, 남궁연 등이 사라지고 없었다. 단골술집 주인들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괘씸해하고 거리에서 꽃을 파는 아이들이 그 소식을 궁금해한다. 친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친구를 목놓아 찾아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폐허의 거리에도 꽃은 피고 다시 명동은 주객들로 불야성이다. 명동장, 무궁원, 돌체, 휘가로는 명동 순수파들로 매일밤 대성황. 공초선생 오상순, 서정주, 그리운 옛 이름들. '어디로 가세요. 모나리자 아니면 문예싸롱. 그러면 돌체-술 하시러- 그러면 명동장 아니면 무궁원 -아이 참, 새로 난 딱총이라는 술집. 길에서 만나면 이런 인사가 오고갔다.'
술집 모나리자는 밤이면 중태에 빠졌다가도 이튿날이면 용하게 깨어나고 예술가들의 주정을 지겨워하는 마담은 '오늘 밤 주정은 어느 정도 어떤 스타일로 하실 심산이세요?'라고 먼저 묻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젊음을 믿고 독주를 즐기던 사람들이 하나 둘 아깝게 쓰러진다. '노란 스웨터와 멋진 양복과 넥타이에다 캡을 쓰고 그 크고도 검은 눈동자를 두리번거리며 심각한 얼굴빛으로 혼자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무슨 탐정 소설의 주인공 같아 유심스레 두세 번 그를 힐끗힐끗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하는 시인 김수영.
알핀 바이올렛 전혜린도 빠질 수 없다. '선생님 저 색시 눈이 무서워요. 누구? 잘 아시는 대학생. 머리를 길게 늘이고 그 큰 눈을 두리번거리는 색시말이예요. 아, 저 색시. 법과대학을 다니고 있는 전혜린.' 시시한 유행가 따위나 틀어주는 모나리자 말고 순 명곡다방인 돌체에 가는 걸 좋아했던 천재소녀 전혜린, 어느날 은성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집으로 돌아간 이튿날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나 봐 맥주 좀 줘. 또 외상이야. 사랑만 있으면 되지. 빨리 가져와. 흥, 참, 내 별거 다 보겠네. 다짜고짜 정이 들게 하거든.'
그리고 여기, 사람들 사이에서 '명동백작'이란 불리며 사랑받았던 박인환의 죽음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위스키를 마신다. 한 잔은 과거를 위해, 두 잔은 오늘을 위해서. 내일을 위해서는, 그까짓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노래했던 명동의 신사, 박인환. '박인환의 '선시집' 출판 기념회는 명동 거리의 청춘과 낭만이 최고조로 꽃 피었던 두 번 다시 없는 밤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박인환은 서른 한 살을 일기로 술을 마시고 돌아간 다음날 갑자기 숨을 거두어 버렸다. 친구들은 그 좋아했던 조니 워커 한 병을 죽은 박인환의 입에다 부어주고 자기들도 마시며 그리워했다. '유행가를 짓는 사람이라고 경멸한다면 명동 거리의 인사가 아니야' 라고 누가 말했던가. '명동백작'이라는 이름답게 박인환은 불후의 명동샹송을 하나 남겼는데 바로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요, 명동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다.
'조병화 못 봤소? 이명온 여사는? 술이 거나해지면 친구들이 그리운 모양이다. 이래서 마담이 자주 갈리고 어딘지 쓸쓸해가는 동방싸롱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서로 찾는 게 아닐까? 그리고 금강산의 주인도 닫는다. 왠일이요, 갑자기? 골치가 아파서 쉬려구요. 골치 아픈 것은 마담뿐인가. 명동 거리에 사는 사람은 피차 일반이지. 정들고 떠나고 변하고, 병들고 죽어가고. 낼부터 딴 사람이 해요. 외상은? 그대로 깔린 채 포기할 수 밖에. 이게 명동 거리의 사랑이라면서요. 라무르란 뭐야? 사랑이라나. 사랑, 흥, 그 놈의 사랑 때문에 모두 이 꼴 이 모양이지.'
박인환이 술에 취해 쓰러지고 동방싸롱 설립자 김동근이 뱃놀이로 빠져 죽고 김인수 또한 술잔을 손에 든 채 쓰러진다. 함대정이 죽고 조각가 차근호가 자살한다. 천재화가 이중섭도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아는 얼굴들이 점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궁금하다. 어디로 가야 그래도 아는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은성에 가면 더러 만나볼 수 있지.'
명동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순정지대의 주막'같다는 은성으로 몰려들고 그 곳은 명동의 마지막 교두보가 된다. 예술가 아닌 손님들은 '개뿔도 없이 문화인들은 멋에만 산다'고 불평이고, 예술가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마음에 무슨 상처가 있는' 마음에 금이 간 사람들. 그러나 '금이 갔다고 버릴 수 있어요? 까닭이 있어 금이 간 것을'이라고 20년 은성술집 경영에 문화인이 다 된 마담이 쓸쓸히 대꾸한다.
'수주 가고, 또 공초가 가고!' 어느새 수주 변영로도 술병으로 세상을 뜨고 술은 못 마시는 대신 담배는 지독하게 피워대는 공초선생 오상순도 조계사에 늙고 병든 몸을 의탁했다 결국 세상을 뜨고 만다. 전혜린의 죽음 후 김흥수가, 그리고 윤용하가 여름날 굶주림에 허덕이다 산 밑 판잣집에서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박수근도 죽는다.
그런데 그 시절, 밥 사먹을 돈도 없었다는 가난한 그 시절, 왜 예술가라고 자처하던 이들은 그렇게 새벽같이 일어나 명동으로 몰려들어 하루종일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댔을까? 왜 하필이면 술을 마시고 죽어가야 했을까?
명동의 문화인이었던 연극인 이해랑이 수필 '애주'를 빌어 그 이유를 말한다. '친구도 술친구가 그 중 좋다. 술친구는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들 하지만 내 경우는 그와는 다르다. 우선 술친구는 서로 흉허물이 없어서 더 구수한 정이 간다. 시인 조병화 형은 그러한 우리를 계보없는 가족이라고 불렀다.'
그래, 그들은 너무도 가난한 나라에 그마저 예술가가 할 일도 별로 없던 시절에 태어난 것이다. 할 일을 찾아 예술인들이 많은 명동으로 몰려든 것은 당연했고, 그 곳에서 시를 쓰고 원고를 청탁받고 원고료를 받으러 돌아다닌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자존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데 있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택한 것이 바로 술이었다는 말이다.
전혜린의 얘기를 들어보자. '감옥, 자살, 알콜, 이 세 가지 길에서 독일의 레지스탕스는 싸워왔어요. 지조를 지키고 방위하기 위하여 감옥으로 잡혀갔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고 가장 약한 방법으로는 어두운 술집에 숨어 앉아 알콜에 몸을 담그고, 알콜처럼 고마운 건 없어요. 선생님, 알콜에 중독은 절대 안 되지만 지조를 지키는 덴 필요한 음료수예요.'
이제 다들 떠난 그 자리에 은성술집의 새로운 단골이 된 여대생이 이미 죽은 지 10년이 넘은 박인환의 명동 샹송 '세월이 가면'을 부른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그리고 화려했던 명동시대는 끝이 나 무교동 시대로 이어지고 저자 이봉구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내가 운명을 같이해온 명동 20년! 그리운 그 입술은 내 서늘한 가슴 속에 영원토록 있을 것이다. 잘 있거라 명동이여'라고.
'오늘같이 조용히 비 내리는 밤이면 그대들의 이름이 한 절(節)의 서정시. 한 방울 비 한 방울은 그대들의 이름을 먼 나라로 싣고 온 한 절의 노래' 어느날 명동 한복판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권투선수 시인 배인철이 흑인 친구를 그리워하며 읊은 시를 나지막히 따라 불러 본다.
이렇게 장맛비가 추적추적 오는 밤에도 혼자 거리를 방황하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노래를 들어왔던 나는 불러올만한 추억이 없다. 생각나는 사람도 없고 가슴아팠던 사랑도 없으며 되돌리고 싶은 안타까운 순간도 없다. 그 대신 나는 책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지난날 아련했던 추억을 불러와 곱씹어 본다. '간 사람은 갔고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살아야지요. 한 주전자 더 올릴까요?'라고 말하는 본 적도 없는 술집 마담을 그리워하면서. 그러면 나는 대꾸하리라. 일제 치하 만주로 떠나던 유치환을 슬피 배웅했던 한 여급의 말처럼 '저도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같은 여자예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