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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효, 세상에 감성을 입히다 - 옷 짓는 남자의 패션라이프 스토리
장광효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2월
평점 :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803102202406&sec_id=540101&pt=nv
심우찬의 '파리여자 서울여자' 를 군데군데 표절했다고 합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 런던에 가면 꼭 들러야 할 패션의 거리가 있다. 그 유명한 본드 스트리트가 아니다. 바로 '저민 스트리트'다. 피가딜리 서커스 남쪽에 자리잡은 저민 스트리트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신사의 거리로 신사복의 본고장답게 1~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맞춤양복집부터 17세기부터 내려오는 옥스포드화 판매점. 윈스턴 처칠 경이 즐겨찾았다는 시가 전문점은 물론이고 영국 신사의 상징인 값비싼 수제 우산 가게까지 모름지기 신사라면 갖추고 있어야 할 모든 용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난 한 신사복 판매점(역대 영국 수상들을 두루 배출한 명문 이튼 스쿨에 본점이 있는) 매니저의 말이 재미있었다. 영국 신사에게 정장은 '평생 우정을 쌓으며 입어야 하는 친구와도 같은 옷'으로 신사라면 유행을 좇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시대에 뒤떨어져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6개월은 기다리는 것이 신사라는 것이다.
본드 스트리트는 여성적이고 유행에 민감하다면 저민 스트리트는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이 아니라 한 시대를 반영하는 거리죠. 최신 유행을 찾으려면 이 곳에 오면 안 돼요. 본드 스트
리트로 가야 하죠. 우리는 6개월 정도 기다리다가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으면 받아 들여요.
(블랙웰/신사복 전문점 매니저)
보고 또 보고 그러나 돌아서면 마음이 변하고 4억 소녀 김예진의 책제목처럼 '밥은 굶어도 스타일은 굶지 않는다'는 게 여자의 스타일이라면, 유행이라고 호들갑 떨지 않고 6개월 정도 느긋하게 기다리다 그 때도 좋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이는 게 바로 남자, 진정한 신사의 스타일이 아닐까? 지금껏 남자친구에게 양복 한번 선물해 본 적 없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남성복은 바로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내 남자친구의 스타일도 그런 것이면 좋겠다고 기대를 품게 되었다.
장광효나 카루소를 모르는 분도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어눌한 말투의 디자이너 장샘은 기억할 것이다. 그때 나는 저녁이면 술 먹고 다니느라 바빠서 몇 번 보지는 못했지만 디자이너가 연기에 도전했다는 게 신선했다. 카루소?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사실 잘 모르겠지만 책까지 냈다니 호기심이 생겼고 너무 재미있어서 눈물을 닦기도 하면서 읽었다.
장광효는 남성복 '카루소'의 디자이너이다. 그런데 그의 프로필 앞에는 '최초'라는 말이 유독 많았다. 나는 앞서 간 '단독자'도 좋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아웃사이더'를 더 좋아하는 터라 시트콤에서 제법 웃기는 아저씨라고 생각한 그의 길과 인생이 궁금했다. <장광효, 세상에 감성을 입히다>는 그가 쓴 인생역전 스토리로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아주 재미있다.
젊은날 그는 미대에 진학해 '의상학을 전공하는 꼼수를 부려가며' 패션 디자인을 배웠고 남성 패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모지 한국에서 '경직된 남성복의 틀을 깨고' 싶어 남성복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러다 마음껏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 ('악마는 프리다를 입는다' 식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 남성복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회사의 수석 디자이너의 길을 박차고 나와 남성복 '카루소'를 시작하고 소방차의 승마바지(!)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남자 연예인 중 장광효의 옷을 입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박을 터트렸다.
그러던 중 '파리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남성복 컬렉션'에도 국내 최초로 진출. 그 후로 자신의 건물을 하나씩 팔아가며 여섯 번을 더 참가하면서 바야흐로 그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그런데 일류의 길만 가던 그도 이류로 전락하는 사건이 생긴다. 1994년 파리 남성복 컬렉션에 처음 진출한 후 외국병에 사로잡혀 그때부터 회사 경영은 지인에게 맡기고 어떻게 하면 파리로 갈 수 있을까만 생각하던 때, 마침 IMF가 터지면서 그도 우리나라의 많은 중소기업 사장님처럼 망하게 된 것이다.
백화점 입점 매장을 비롯해 30여개의 매장이 줄줄이 문을 닫고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압구정동 본점마저 넘어가게 된다. 결국 반지하에 작업실을 내고 월세가 하루라도 밀리는 날이면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촛불을 켜놓고(!) 옷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서운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팔지 못했던 엔티크 가구들이 보관중인 무허가 창고가 화재로 불타 반쯤 타다 만 호리병 하나만 가슴에 안고 돌아와야 했다.
도대체 얼마나 떨어져야 올라갈 수 있을까? 승승장구하던 고급 의상복 디자이너에게 그 같은 시련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화재로 마지막 남은 허영이 불타 없어진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다. 모 홈쇼핑 관계자들이 그의 지하 작업실로 찾아온 것이다. 장광효는 잘 나가던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200만원에 팔던 남성복을 20만원에 팔면서 1시간에 6억원. 2시간 방송으로 12억원이란 대박을 터트리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블라블라블라...
어쩌면 좋을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장샘이 너무 좋아져 버렸다. 옆에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당장 그의 옷을 사 입으러 가라고 닦달했을 것이다. 나는 3가지 점에서 그가 좋았다. 첫번째 자기 사업에 있어 일가(一家)를 이룬 잘난 사람이어서 좋았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시절을 겪으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던 때도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남성으로서는 가장 이루기 어려운 덕목인 '스타일'이란 게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장광효, 세상에 감성을 입히다>는 잘 나가는 디자이너 장샘의 인생역정 스토리로 읽어도 좋지만 사실 그건 좀 촌스런 독자라고 본다. 진짜 힙한 독자라면 카루소 디자이너 장광효의 스타일 정도는 읽어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있을지 모를 내 남자친구도 패션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그런 멋과 스타일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좀 더 바란다면 자기계발서만 읽지말고 이런 책도 읽을 줄 아는'스타일'이란 것도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데 스타일이라는 게 뭘까? 옷을 잘 입으면 스타일이 있는 걸까? 그럼 패셔니스타? 패션잡지에서 말하는 곧 죽어도 있어야 한다는 에티튜드가 있는 사람? 소위 잇 걸이나 훈남? 그 대답은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찾길 바란다. 그의 말처럼 멋이란 오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탄생하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이같은 시시한 리뷰에서 쉽게 찾으려고 하면 못쓴다. 쓰다 보니 의도했던 '잇 리뷰'는 되지 못했지만 생각해 보면 난 '잇 백' 하나 없는 사람인 걸.
클래식 슈트란 게 있다. 클래식 슈트는 근대사회의 정확성과 정신적 질서를 보존하면서 확립된, 정해진 스타일을 갖는 옷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이 완성한 이 클래식 스타일은 모든 슈트의 기본이 되고 자유 허용치가 그다지 크지 않다. 지나치게 완벽해서 손댈 만한 곳이 매우 적은...
클래식 슈트란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통적인 옷이란 의미도 아니다. 옷에서 전통적이란 말이 어울리는 건 전통의상 뿐이다.
사람도 시대와 함께 변해간다. 그 위대한 사람과 시간의 흐름 앞에서 의젓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도 그랬던 것처럼 클래식 슈트밖에 없다. 그것이 클래식 슈트의 영원성이다. 일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선 클래식 스타일을 마스터하라. 그것은 당신에게 변화와 변형의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다.
('디자이너들의 원점은 클래식 스타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