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에 살 때는 거의 난방을 하지 않았다. 내가 살던 곳은 복층 오피스텔이었고 침대가 있는 복층에는 전혀 온기가 없었다. 굳이 바닥난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대신 극세사 카펫을 깔고, 수면양말을 신고, 가끔씩 초를 피워두는 것으로 차가운 실내온기에 맞섰다.


집으로 이사온 후,  단열벽지를 구입해서 도배를 마쳤다. 

아직 그닥 따뜻한 줄은 모르겠다. 창 틈으로 무섭게 들어오는 저 바람을 어쩌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겠다 싶다. 열심히 짐에 쟁여두었던 천을 꺼내어 대충 창틈을 막아봐야겠다.


침대를 하나 장만하기로 했다. 아주 단순한 모양의 침대조차 너무 비싸다. 구입할까말까 이틀을 망설이다 우연히 들른 까페에 사이즈가 맞지 않아 막 구입한 침대를 판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사자마자 벽에 세워둔 침대를 처치할 수 있어 다행, 나는 새침대를 싸게 구입할 수 있어 다행. 이래저래 양자가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콜밴에 싣고서 집으로 씽씽~ 골목안으로 들어올 때는 모두다 낑낑~ 방 한 구석에 듬직하고 자리 잡은 침대.


방 수리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 것은 천장 도배. 어떻게 작업할까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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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주가 흘렀다. 

근 3년을 따로 나가 살다보니 '부모님집'이라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비록 전셋집이었으나 '내집'이란 느낌으로 살았는데...


집으로 이사오긴 했으나 내 거처는 1층 세입자가 떠난 방으로 정했다.

문제는 방 상태가 너무 엉망이라 도저히 수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수리업자를 부르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주머니에다 집 주인(=부모님)은 고쳐줄 용의가 없다는 것.

물론 집주인으로서는 그럴 만하다. "월세 안 받는 게 어딘데?". ㅡㅡ;;

결국 스스로 수리해서 살겠노라 말씀드리고 지난 2주 동안 천천히 하나하나 고치기 시작했다.


DIY 까페에 드나들다 보면 고질병이 하나 생긴다.

그건 바로 남들 하듯이 나도 스스로 뚝딱~ 해낼 것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다.

한번도 집수리를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떤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칼 헤라, 플라스틱 헤라, 곰팡이제거제, 방진마스크, 방진복, 붓, 바인딩, 핸디코트, 우레탄 폼, 단열본드, 단열벽지, 장판......

이번 집 수리에 구입한 물품 목록들.

물론 이전에 한 번도 구입해 본 적 없는 물건들이다.


다섯겹이나 되는 벽지를 뜯어냈을 때, 곰팡이로 뒤덮인 시멘트벽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쉬운 일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작업은 더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일단 방 하나 공사를 끝냈고, 2주 동안 주방과 창고로 쓰이는 다른 방 하나에 쌓였던 짐을 일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방 하나를 혼자 도배하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지만 뭔가 완성해냈다는 뿌듯함이 맘에 든다.

물론.. 평소에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들이 아프다며 저마다 난리를 피우는 통에 계단 하나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중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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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이 만료되기 한달 전.

집 주인이 전화했다, 월세로 바꾸고 싶다고.

나는 대답했다, 이사가겠노라고.

그리고 이번주에 나는 이사를 한다.

2년 사이 짐이 참 많이도 늘었다.

책장, 책상, 1인용 원형 소파, 전자레인지, 밥솥, 늘어난 책들,또 그 만큼 늘어난 원단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뭔가를 자꾸만 사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산다는 게 자꾸만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제, 오늘..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의 저자를 만났다.

'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젊었고, 끔찍하게 발랄했고,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그의 첫책을 들고가서 싸인을 받았다. 잘 읽었다는 인사에 그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좀 전에 다시 책을 펼쳐보고 웃음이 났다.

그는 싸인을 해주며 날짜를 2012년 4월 30일이라고 적어놓았다. April, October...  그냥 헷갈린 모양이다. 나는 10월 30일에 싸인을 요청했는데 4월 30일자 싸인을 받았다. 재미있다.

 

오랜만에 들린 알라딘 서재는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활기나 신랄함이 없다.

문득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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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31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야흐로 올림픽 시즌이다.

하루종일 TV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메달을 딴 한국선수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 속에는 오심 속에서 눈물짓는 이들이 있다.

편파판정은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이미 수영에서 박태환이, 유도에서 조정훈이 어처구니없는 판정에 피해를 입었다.
은메달이나 동메달도 소중한 메달이다. 하지만 부적절한 판정과 경기운용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페어 플레이' 운운하고 만다면 스포츠가 선수들의 땀이 아니라 '운' 혹은 국가의 '파워' 혹은 특정 지역 출신들의 '담함'에 좌우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인생이 한 방"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스포츠 아닌가?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금메달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거였다. 금메달은 선수들에게 명예와 금전적인 보상과 장래를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은메달을 수상한 이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목격한 것은 강초현에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은메달을 따고도 활짝 웃는 소녀가 있다니.

게다가 예쁘기까지 하다니!


신아람의 4강전을 보면서 '흐르지 않는 1초'가 우연한 실수인지, 의도된 실수인지 헷갈리는 거다.

지난 올림픽 챔피언을 아시아인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만의 리그에 아시아인이 선전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일까?

독일선수가 득점할 때까지 흐르지 않은 시간의 비밀, "Asian can't be in our club!"이 아니었을까?


의도된 '오심'을 경기의 일부로 내버려 둔다면, 차라리 올림픽을 보이콧 하는 것이 낫겠다.

최소한 경기장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선수의 '땀'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 "Asian can't be in our/their club"이란 제목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한 챕터 제목에서 응용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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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산업연수생제도는 현대판 노예제도로 악명높았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기 몸에 쇠사슬을 감고, 산업재해로 사망한 동료들의 십자가를 붙들고 '인권보장'을 요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용허가제가 도입되었을 때,(문제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최소한 노동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을 이주운동의 성과로, 이주노동자들과 관련단체들의 지난한 투쟁의 성과로 받아 안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은 회사를 옮기는 것이 어렵습니다.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거나 회사가 폐업하거나 임금체불이 있을 때만 회사 변경이 가능합니다. 그것도 계속 변경할 수 없습니다. 1년에 1회 정도, 3년간 합법적으로 머물 때 3회까지만 직장 변경이 가능합니다. 구타당한 노동자도 사장의 동의 없이 회사를 옮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인권 옹호 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청을 찾아가고 항의하고 회사사장과 싸우며 직장을 옮길 수 있도록 지원해 왔습니다. 

1년을 한 직장에 꼬박다녀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주노동자도 똑같습니다. 또 구직기간은 3개월 밖에 주어지지 않고, 3개월을 넘기는 그는 자동적으로 미등록이 됩니다. 이런 마당에 누가 회사를 계속 옮기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누군가는 옮길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동안 회사를 옮기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지원센터에서는 <구인업체 명단>을 제공해 왔습니다. 이주노동자는 직접 회사에 연락하여 근무조건과 임금 등을 확인하고 새로운 회사를 구하고 이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용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를 브로커를 통한 직장 변경 유혹으로부터 차단하겠다"며 구인업체 명단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해온 지원단체는 졸지에 '브로커'로 전락했습니다. 대신 구인중인 회사에 구직중인 이주노동자 명단을 주겠답니다. 이주노동자는 구인하겠다는 회사의 연락을 '이유없이 거부'할 경우, 2주 동안 구인중인 회사의 연락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3달간 6번의 전화를 받을 권리만 주어지고, 이를 모두 거부할 경우 그는 자동적으로 미등록자가 되고 맙니다.


모든 임노동자들은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 일자리를 구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제한적이었던 정보조차 이제는 접근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더 열악해질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회사를 바꾸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위험한 일을 하거나, 폭행, 월급이 밀리거나 등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회사를 바꿀 수 없으면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해야 돼요? 참아야 되나요? 만약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좋은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월급도 올리거나, 그리고 공장에서도 안전하게, 위험하지 않게 해주면 회사 바꾸고 싶은 노동자도 없을 거예요.”(버마이주노동자)


“나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로서 나는 이주노동자에게 좋거나 나쁘게 대하는 회사를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나는 노예가 아닙니다. 나는 노동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권리가 있습니다. 내 경우에 내 이전 회사는 휴식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고, 식사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법이 시행된다면 내가 어떻게 좋은 회사를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필리핀 이주노동자)


“아주 불공평합니다. 이 법을 듣고나서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이런 법이 앞으로 불법자 더 많이 생기겠다고, 만약에 사업자(사업주)들이 노동자들에게 잘 챙기주면(권리를 보장하면) 우리 노동자들이 회사를 바꾸고 싶지 않아요. (...) 제발 도와주십시오. 저희도 권리있는 법을 만들어 주세요.”(베트남 이주노동자)

 

우리가 과한 요구를 하고 있는 걸까요?

이 더운 날, 우리는 거리로 나섭니다.

오늘 오후 2시 부산고용센터 앞에서 항의집회를 갖고, 고용지원센터에 항의서와 질의서를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은, 이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이라고, 함께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전달할 질의서는 베트남공동체 약 50명이 작성한 것으로 이주단체들은 번역어를 따로 첨부하지 않고 고용노동부 부산고용센터와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에 발송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고용노동부는 베트남노동자들이 자국어로 작성한 의견서를 직접 번역하여 청취한 후 답변하여 주기를 요구할 계획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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