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입니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는 정말 굉장한 이벤트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방콕하고 있어요.


학원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폴란드를 다녀왔어요. 

남들은 독일보다 저렴한 물가와 아기자기한 도시 구경을 가는 모양인데 저는 봉기박물관, 유대인 게토지역, 오슈비엥침 등을 돌아보고 오는 조금 마음 아픈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여행자의 모드로 폴란드를 다녀온 여파가 좀 오래 갑니다. 

편한 길(= 비쌈) 놔두고 저렴한 교통편(한국에서 베를린 가는 것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을 이용한 덕분이지요. 아.. 저도 더 이상 젊지 않은가봐요. 10시간씩 버스 타는 거 암것도 아니었는데. 소처럼 씩씩대며 잘만 잤던 옛날이 그립습니다. 물론 이번엔 제가 좀 미친 짓을 했지만요. 크라쿠프에서 베를린 오는 버스 시간만 12시간, 대기시간 9시간을 더하면 총 21시간이었다는..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


친한 후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쁘리모 레비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릅니다. 그의 책을 내내 품고 돌아다녔습니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 토리노를 갈 생각입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삶을 마감했던 그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습니다.


한국은 이미 새해가 밝았지만, 아직 여기서는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새해에는 모쪼록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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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습니다.

밥도 잘 해 먹고,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내용이 점점 더 어려워져서 그 사이 흰머리가 더 늘어난 것 같다는.. ^^

다만 하나 아쉬운 건 책..이네요.

여기 한국문화원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없어요.

큰 가방 하나만 가지고 올 수 있어서 대부분의 책들을 놓고 왔고, 그게 지금 좀 아쉽습니다.

읽고 싶은 책들은 ebook으로도 나와 있지 않은 게 대부분이네요. 헹..

일단 좀 더 참아보고 도저히 안되겠으면..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이곳에 50년 가까이 사신 분이 말씀하시더군요.

 

독일 사람들에게 제일 큰 명절은 크리스마스다. 한국 사람들이 추석이나 설날에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두 고향으로, 큰집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이들도 크리스마스에는 모두 모여 함께 지낸다. 나도 이곳에서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트리를 장식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한 번도 크리스마스가 내 명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참 이상하지? 추석에는 송편을 사 먹고 설날에는 떡국을 끓여 먹어야 뭔가 하나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보다 이곳에서 훨씬 오래 살았는데도 어떤 점에선 이곳이 여전히 남의 나라 같다.

 

얼마전에 외국인청을 방문해서 비자를 받았습니다.

내년 5월까지는 독일에 체류할 수 있고, 그 동안에 다른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크리스마스 휴가에는 폴란드를 방문할 생각입니다. 바르샤바와 크라코프를 다녀올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렙니다. 오랜만에 남녀 공용으로 사용하는 10인용 도미토리에 묵을 생각을 하니 정신이 없네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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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걱정과는 달리 집주인은 대단히 따뜻하고 배려 많은 사람이다.

정말 바쁜 시기임에도(논문과 강의 준비 등) 나를 위해 집 근처 슈퍼와 유기농매장, 도서관, 아시안 마켓 등을 알려주고 심지어 함께 가 주었다. 또 지난 일요일에는 꼭 가고 싶은 곳을 함께 가겠다기에 베를린의 유명한 벼룩시장인 마우어 파크에 함께 가서 예쁜 화분을 사왔고, 멋진 식당에서 맛있는 샐려드와 깊은 맛이 우러나는 흑맥주도 마셨다.


어제는 한인마트, 중국인이 운영하는 아시안마트, 이곳에서도 저렴하다고 소문난 슈퍼인 ALDI까지 무려 3곳을 들러 쇼핑한 결과 거금 30유로를 지출했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먹을 각종 소스류(간장, 고추장, 된장, 식초 등)와 현미찹쌀(엄청 비싸다ㅡㅡ;;), 기타 식량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집주인은 몇 번 이나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 언젠가 초대해 주겠냐며 진지하게 물어왔다. 그건 내가 요리를 하고 초대해 주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말.)


그리고 어젯밤 위로가 필요한 두 여인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내가 준비한 음식은 월남쌈과 신라면. 변변한 도마도, 칼도 없어서 재료를 손질하기 까다로웠지만 어쨌거나 해냈고, 색깔은 아름다웠다. 음식은 눈으로 한번, 입으로 한번.. 이렇게 먹는 거라는 게 내 철칙.


우리 셋은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었고, 맛있는 요리 앞에서 행복해했다. 

어쩌면 일주일에 한번씩 나는 그녀들과 함께 할 저녁 식사를 위해 요리를 할지도 모른다.

요리하는 것보다 대충 한끼를 때우는 것이 특기인 집주인과 가족과 멀리 떨어져 이곳에서 유학중인 젊은 한국인 유학생을 위해 그 정도의 수고는 할 수 있을 듯. 식비가 다소 걱정이긴 하지만.. 흐흐..

둘의 먹성도 대단, 호기심은 더 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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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9-14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에 나가서 지내려면 우리 음식 몇 가지는 할 수 있어야 되겠어요.
그곳에서 반응 좋았던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도 나중에 알려주세요. 궁금해요.^^

rosa 2013-09-15 17:36   좋아요 0 | URL
너무 맵거나 짠 음식이 아니면 다 괜찮을 것 같은데요?
베를린에는 워낙 아시아 음식점들이 많고요, 특히 제가 사는 지역은 네팔 식당, 인도 식당, 베트남 식당, 태국 식당, 그리스 식당 등 도보로 10분 그냥 직선으로 쭉 걷기만 해도 10군데 이상 있는 것 같아요.
계속 이것저것 해 먹다가 반응 좋은 메뉴는 따로 적어두겠습니다. 근데 마노아님도 외국 가시나용?^^

마노아 2013-09-15 23:08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때 가정 선생님이, 제자가 외국에 나가서 각자 자기나라 음식을 만들어 오기로 했는데, 할줄 아는 게 없어서 김밥을 말아갔대요. 그래서 무척 안타까웠다는 얘기를 하신 게 떠올라서요. 외국 여행 가면 좋겠지만, 당장엔 계획이 없어요. ㅜ.ㅜ

rosa 2013-09-18 04:26   좋아요 0 | URL
스시가 아닌 한국김밥, 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집주인은 한국인과 함께 산 것도, 한국음식을 먹어본 것도 처음이지만 김치도 잘 먹고 된장찌개도 먹어보고 싶어합니다.--; 부담을 느낄 만큼 제가 요리한 음식을 좋아하고 또 다음을 기대합니다. 어쨌거나.. 제가 만드는 음식이나 사용하는 재료들도 이미 퓨전인 것 같아요. 이태리 음식에서 많이 사용하는 바질(건조해서 가루로 부셔셔 나온..)을 채소 볶음이나 김치 파스타를 만들 때도 사용하고, 베트남 고추를 총총 썰어 액젓에 띄워 먹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저야 뭐 솜씨 좋은 요리사는 아니지만 나름 제 손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들을 좋아합니다. 마노아님의 손맛이 묻은 음식은 무엇이든 특별한 향과 맛이 날 것 같습니다. ^^

잉크냄새 2013-09-1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말씀하신 1년의 휴가가 시작되는 건가요?
좋은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rosa 2013-09-15 17:37   좋아요 0 | URL
네. 제대로 된 휴가가 드디어 시작된 거죠. 빈둥거리기다가 버스 타고 시내 쭉 관광객 모드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여러 모로 재밌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베를린 집주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받았다.

그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도 함께.

그는 딸의 고양이를 돌보고 있고 집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많아서  함께 놀아줄 수는 없단다.

아놔~ 내가 그를 붙잡고 놀 일이 뭐가 있겠나?

일반적 홈스테이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니 그도 나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함께 살 만한 인간인지 서로 평가하게 되겠지. 물론 여기서 약자는 내가 될 테고. 


떠날 날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사야 할 물건들을 주문하고 짐가방을 들었다 놨다 하는 중.

이제 정말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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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9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9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