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주변 사람들은 힘이 들 때 마다 종종 내게 의지하곤 한다. 그들의 기댐이 가끔은 힘에 부치지만 나는 그들을 다독이는 데 내 마음을 종종 쓴다. 그러다보니 내 마음이 핍진하거나 뜻 모를 이유로 스스로가 서글퍼질 땐 스스로를 도닥이기도 힘들다. 그럴 땐 휴식 같은 지인들에게 종종 연락을 한다. 헌데 하나 둘 제 살길을 찾아 길을 떠나거나 혹은 그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이 많기에 난 그들의 어깨에 내 몸을 의탁하지 못하곤 한다. 혼자된 심사가 너무 섭섭할 때는 그냥 길을 걷는다. 북악산을 오르거나 동대문까지 걸어가선 이마트에 들려 평소에 좋아하는 떠먹는 요구르트와 우유를 3만원어치 정도 산다. 이런 사소한 채움이 공허한 마음을 눅이고선 나를 웃게 한다. 여간 좋지 아니한가.

 나. 어제 교수님을 비롯한 몇몇 지인과 밥을 먹었다. 교수님은 장광설로 유명하기에 아이들은 그와 지근거리에 있기 싫어했다. 나 또한 그분과 좀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친소대로 패를 나누어 한 테이블씩을 차지했고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줍음이 매력적인 친구 하나는 어제 내 옆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게 책을 추천해 달라며 휴대폰에 내가 말해 준 작가나 책 제목을 입력하고선 요즘은 무슨 음악을 듣느냐 물었다. 요즘 특별히 듣는 건 없고 첼로의 울림에 마음이 쏠린다며 내 말을 구획 지었다. 그는 다시 내게 자기 주위에도 그러한 음악을 듣는 이가 있다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예전에 했던 ‘쇼팽은 야하다’라는 말을 그 지인에게 전하니 내가 매우 예민한 사람이란 평을 내렸다 한다. 상글상글 웃으며 난 원래 예민하단 눙을 치곤 조금의 어색함을 벗어났다. 그리고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난 예민한가. 요즘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초딩’ 같다며 말 좀 어른스레 하라며 나를 걱정한다. 가끔은 내 어눌함이 일종의 의태(擬態) 행위임을 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 책과 음악에 관한 질문을 한 아이가 그러하다. 근자에 내가 저어하는 건 이러한 의태 행위가 하나의 습관이 되어 나를 옮아 매는 게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는데 이런 지인들의 질문은 이런 잗다란 고민을 가볍게 해준다. 친구는 내 주위 사람들이 대부분 싫어하는 ‘이랜드’라는 기업에 갈 거 같은 데 양심의 괴로움으로 아파하지 않았으면 한다. 충분히 좋은 사람인 그가 속한 집단 때문에 매도되는 일은 그리 온당치 않아 보인다. 물론 고종석과 강준만이 조선일보 기자에 대한 논쟁으로 집단과 개인의 구별짓기에 대한 그들의 섬세한 고찰을 피력한 바가 있기에 첨언할 건 없다. 다만 조직의 부도덕함이 개인의 비루함으로 환원되는 건 사회적 약자인 20대에겐 부당하면서 버거운 짐인 듯하다. 우석훈은 짱돌을 들라고 했지만 이 또한 닿지 않는 386의 진부한 처방이다. 2시간 동안 밥을 먹으며 많은 생각의 편린이 오갔다. 좀 더 스스로를 벼려야겠다. 생각은 길었는데 글은 짧다. 더 짧지 못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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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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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예전부터 읽고 싶었다. 인생의 제 맘대로 사는 친구에게 조르바라는 별명을 붙여주고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이름을 들먹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실 이 책을 읽지 않은 채 조르바를 이야기 했고 왠지 모를 죄스러움은 이 책을 언제가 갚아야 빚으로 남게 했다. 때마침 알라딘에서 서평 대회도 하니 이제 이 책을 읽을 때가 됐다고 여겼다. 헌데 이 책, 읽기가 만만찮았다.

 한 소설을 읽을 때 어느 정도 소설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얼마 전 타계한 레비스트로스의 이야기처럼 사회를 이해하는 덴 말로 드러나는 의식 보다 무의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헌데 그리스 문학은 호메로스의 이야기 외에 낯설기 마련이다. 또한 이 책은 카잔차키스에 대한 이해, 그리스 정교에 대한 이해, 그리스와 터키의 관계에 대한 이해, 무엇보다 그리스 문화에 대한 이해가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이윤기 씨가 이름난 번역가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무의식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대신 난 조르바의 언행에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이 책 속 조르바와 화자야 말로 니체가 이야기한 디오니스소와 아폴론적 인간의 전형적이며 절대적 사례다. 조르바는 제 자신에 충실하고 배가 터질 때까지 버찌를 먹으며 무중력인간처럼 춤을 추고선 제 자유의지를 중요시 한다. 이에 반해 작품 속 화자는 스스로의 정념을 잡으려 애쓰고 항상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하며 불교의 윤회사상에 심취해 있다. 조르바는 화자를 답답해하고 화자는 조르바에게 많은 걸 배운다. 니체가 말했듯 문명에 의해 억압되어 있던 디오니스소적 인간이 아폴론적 인간을 압도하는 광경이다. 화자는 조르바에게서 차라투스트라의 현현(顯現)을 보는 듯한 감동을 느끼고 그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카잔차키스가 니체의 사상에 심취했다는 걸 안다면 이러한 극적 구성은 지극히 그럴 듯하다.

 또한 조르바의 말은 거친 언어가 조합해 낸 생활 속 아포리즘이다. 책을 많이 읽었기에 말이 무겁고 행동이 굼뜬 화자를 탓하며 제멋대로 행동하고 말을 내뱉는 조르바다. 그는 화자보다 더 당당하고 씩씩하다. 화자는 제 불민함을 탓하며 반성하는 지식인으로 조르바를 아끼고 존중한다. 특히 화자를 ‘두목’으로 부르는 조르바는 사물에 이름을 제 멋대로 부르며 사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명명철학으로도 볼 수 있는 이러한 이름 짓기는 조르바의 깊음이 철학적 숭고함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조르바가 매력적인 이유다.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전부터 조르바처럼 살고 싶었고 허랑방탕한 삶을 꿈꿨다. 조르바와 같은 인물이 주위에 많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졌다. 다만 현 사회는 조르바와 같은 인간을 알아 줄 현인이 많지 않고 그를 실패자로 낙인찍을 것이 분명하다. 학문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학자간의 카르텔이 강해지는 현실은 조르바와 같은 인물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풍토를 말해 준다. 아마 니체가 현 사회에 살고 있었다면 역사적 발전에 수반되는 폭력에 대한 성토 대신 현실의 두터운 장벽을 증언하다 미쳐버렸을지 모른다. 점점 디오니소스적인 면을 억압하고 아폴론적인 면을 찬양하는 현 세태는 조르바식 자유분방함을 태생적으로 싫어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필요하다. 거짓 언어가 횡행하고 말이 넘치는 요즘 세상에서 조르바와 같은 사람이 많아지는 게 세상을 밝게 할 테다. 혹 이미 내 주위에 있는 조르바를 나 역시 홀대 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나는 항상 스스로를 낮추고 사람을 대하려 한다. 나는 ‘한국인 조르바’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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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11-22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바밤바님. 가끔 눈팅하다가 조르바가 반가워서, 오늘 즐겨찾기에도 등록하고 덧글도 처음으로 남겨요. 흐흐. 여기저기 건너서 이름은 몇번 들었었는데 말이죠. ^-^

저는 조르바가 두목 심부름 갔다가 한참동안 안와서 두목이 막 화를 내야지, 결심하는데 정작 조르바가 오니까 속으로는 너무 좋아서 화도 잘 못내던 (아, 이 표현력 하고는 -_-) 그 장면 정말 좋아해요. ^-^

바밤바 2009-11-22 21:14   좋아요 0 | URL
ㅎ 안녕하세요~ 저도 웬디양님 여기저기서 많이 뵈었습니다~ㅎ
두목이란 호칭이 참 좋았던거 같아요. 저도 사람들 호칭을 제 맘대로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생활의 조르바화'라 여기며 꾸준히 실행하고 있답니다^^

비로그인 2009-11-22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바뀌었나 보네요.

조르바.. 그를 생각하면 사람들 북적거리는 시장통이 먼저 생각납니다. 먹물냄새없는, 어떤 "그래야 할" 의무 같은 것도 없는 것 말이죠.

그의 얘기를 들으며 푸코의 책을 연상하는 것은 비약일까요? 저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감옥들을 거쳐온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어느 저녁에 해 봅니다..

바밤바 2009-11-23 15:42   좋아요 0 | URL
그 유명한 표지는 절판 된거 같더군요~ 조르바와 푸코라.. 어느정도 닿는 부분이 있네요^^ㅎ
 
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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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의 이름과 그들의 배경은 명쾌하다. 금과 은이란 동년배 친구는 말 그대로 씨줄과 날줄이 되어 이야기를 직조한다. 한 쪽에 치우치지 않던 얘기는 뒤로 갈수록 갸우뚱 한다. 성적 취향에 대한 고민이란 또 다른 더께가 얹어진 은 때문이다. 니체식 권력에 대한 의지와 히틀러식 힘에 대한 무한 추종이 느껴진다. 다만 그러한 추종을 드러내는 방식이 사뭇 자의적이고 폭력적이다. 즉 독자가 충분히 공감케 하기 힘든 성긴 구석이 보인다.

 우선 금과 은을 니체 식으로 분류하자면 금은 디오니소스에 가깝고 은은 아폴로에 가깝다. 금은 쾌락을 좇고 은은 절제와 배격의 자세를 보인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와도 견줄만 하다. 헌데 은의 과한 절제는 후에 성적 취향에 의한 자기혐오가 뒤엉킨 방어기제의 결과라는 게 드러난다. 이러한 절제와 쾌락의 이중주가 가정의 불화와 갖가지 이유로 인해 다른 양상을 띠면서 둘의 경계는 무뎌진다. 특히 둘이 몸을 섞으면서 권력 관계가 역전되고 사랑 앞에 약자가 된 금이 문학을 탐하고 은이 권력을 탐하는 건 다소 상투적이다. 물론 소설적 구성은 뛰어나다.

 이야기의 시작은 조금 도식적이다. 금은 태생적으로 한국 정치에 민감한 전라도 출신이고 은은 상대적으로 우파 프레임에 갇혀있는 부산 출신이다. 금의 아버지가 지역 정치에 뛰어든 배경 외에 그의 언어가 좀 더 공격적이고 정치지향적인 이유는 이러한 성장배경에 있다. 이에 반해 은은 부산이란 도시 덕에 문학이란 탈출구를 오롯이 탐닉할 수 있었다. 다만 문학의 열정이 권력에 대한 탐미로 전이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문학을 니체식의 ‘약자의 원한’이 점철된 패자의 변명 정도로 여기게 된 이유가 아비의 무능함 때문인지 타고난 본성 때문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섬세함과 예리함을 가지고 있던 한 지성이 순수 우파로 전향하는 과정에 대한 깊은 고찰이 아쉬웠다.

 다만 히틀러가 그림을 좋아하던 우수어린 청년에서 1차 대전 이후 권력의 맛을 알게 돼 변모하는 과정을 은이란 인물을 통해 드러낸 듯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은이 커서 무엇이 될지가 상당히 궁금하였는데 이 소설에선 단지 1년의 혼돈을 나타낼 뿐이라 다소 아쉬웠다. 또한 뒤로 갈수록 취재가 부족했다는 걸 느꼈다. 금과 은이 다니는 학교가 연세대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데 내가 알고 있는 현 학교의 모습과 충돌하는 장면이 몇몇 눈에 띄었다. 또한 성관계가 지극히 쉽게 일어나는 장정일 식 일탈은 소설적 장치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아쉬운 점이었다. 거북선생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읊조리며 우파의 사상적 빈곤을 토로할 땐 장정일 식 공격성이 다시 불거져 나오는 듯하여 다소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장정일 본인이 클래식 마니아이므로 자신의 부르주아적 취미에 대한 죄스러움을 거북선생을 통해 위악(僞惡)적으로 드러낸 듯 했다. 보수 언론과 뉴라이트에 대한 악감정을 드러내는 방식도 좀 더 세련됐으면 했다.

 장정일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은과 금’이 될 뻔 했던 책 제목이 류시화 시인을 만나 ‘구월의 이틀’로 정해졌다 말한다. 헌데 제목이 소설 속 은의 이야기처럼 모든 이야기를 다 아우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이야기는 1년 만에 일어나기엔 밀도가 높고 진폭이 크며 이틀 만에 일어나기엔 다소 헐겁다. 물론 삶을 반추해보았을 때 어떤 1년이 평소의 10년에 준하는 위용을 띨 때가 있다. 레닌 또한 혁명기의 1주일은 평소의 10년과 맞먹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만 한 개인의 삶에 헤르만 헤세가 묻어나고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몰아치며 온갖 정치적 함의와 성적 충돌이 뒤엉키는 1년은 너무나 소설적이다. 물론 그래서 사람은 소설을 읽을지 모른다. 또한 어느 구월의 이틀마냥 물리적 시간으로 재단하기에 그들의 삶은 꾸준히 현재 진행형이었고 이전 보다 이후의 삶이 더 치열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갖가지 통찰이 빛났던 경직돼 있는 후반부 때문에 빛이 바랬다. 마치 매력적인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선 뒤로 갈수록 다소 성긴 느낌을 주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같다. 이야기는 쉽게 읽히고 어느 정도 몽환적이지만 현실적 치열함은 다소 덜 해 보인다. 장정일은 글은 그의 ‘독서 일기’나 ‘공부’를 읽은 게 다다. 물론 이 소설에서도 그의 방대한 독서량이 문장 곳곳에 묻어난다. 다만 이야기가 이야기의 뒷부분도 앞부분만큼 재기발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구월의 이틀만큼 나의 하루가 치열했는지 되묻는 계기가 되어 좋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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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 - 소통의 기술, 세상을 향해 나를 여는 방법
유정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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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인 중 한 명이 위 필자에게 수업을 들었다 한다. 그녀는 자신감을 강조하며 ‘니들이 세상의 벽에 부딪혀 아파하는 건 제 자신을 믿지 못해서이다’ 라며 나르시시즘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러한 강조는 사뭇 현실과 괴리되어 보였고 제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평하는 잘난자의 오만까지 느꼈다고 지인은 전했다. 참고로 지인은 서울대가 아닌 타 학교에 다닌다. 즉 서울대 학벌도 아니고 그녀처럼 예쁘지도 않다. 이 책 서울대 말하기 강의는 ‘서울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학벌이란 공통 분모위에서 시작하여 외모에 자신이 있어야만 빛을 발하는 건지도 모른다.

 유정아는 서울대 출신에 아나운서도 했다. 그녀의 프로필을 보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그닥 어려움이 없는 듯하다. 삶의 표피만 보고 판단했기에, 심층에 깔린 그녀만의 역경을 간과했을지 모르나 그녀의 자신만만한 글은 내 심증을 더 강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타인과 소통을 하기 위해선 그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공감’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프로필은 공감을 자아내기는커녕 스스로의 부족함을 돌아보게끔 한다. 무엇보다 타인에게 해주는 충고란 많이 아파한 후 간절한 고백의 형태로 이뤄지는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여기기에 그녀의 이 딱딱한 글은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수업 텍스트와 같은 구성과 ‘밥 먹으면 배부르다’와 같은 뻔한 아포리즘의 나열은 필자가 책을 쉬이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1분 만에 수강신청이 완료된 인기 강의라는 홍보 문구 또한 어느 정도 괜찮은 교양 수업은 대부분 1분 만에 수강신청이 완료되는 현실에 비춰 볼 때 그닥 매력적이지도 않다. 무엇보다 서울대라는 브랜드 네임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은 판매 전략은 불편하기도 하다. 서울대라는 간판이 후광효과를 일으켜 왠지 거만한 그녀의 표지 사진을 한껏 추어올렸으니 책의 마케팅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다. 마치 최근 본 가장 최악의 영화인 ‘2012’처럼 먹을 거 없는 작품을 와이드 릴리스로 판매하려는 출판사의 지나친 마케팅으로도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지은 클래식 에세이 ‘마주침’은 꽤나 좋았더랬다. 이런 감성적이고 유한계급식 글쓰기가 그녀에겐 딱일 듯하다. 고백의 언어가 아닌 명령과 지시의 언어로 가득 찬 위의 책은 어떠한 공감도 이끌어 내지 못한다. 무엇보다 출판사의 홍보 전략에 넘어가 책을 구입한, 말 못하는 이들은 별것 없는 레토릭에 화만 치솟았을지 모른다. 나 또한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이 책을 끝까지 읽었지만 알맹이 없는 말의 향연에 괜히 시간만 아까웠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마리 앙트와네트 같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라 했던 그녀처럼 저자 또한 말하기가 힘들면 자신감을 가지세요란 말을 한다. 결국 자신이 갖춘 학벌과 미모가 아닌 제 자신감이 스스로를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끔 했다 여기는, 자기객관화가 덜 된 사람의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할 이들은 누구일까 싶다. 제 자신을 좀 더 반추하고선 반성의 글을 내는 것이 책을 구매한 사람에게 필자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애프터 서비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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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0-01-24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끔찍한 책이더군요.. 마켓팅에 완전히 당했다는 느낌밖에..

바밤바 2010-01-25 14: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렇게 책 쓰기도 쉽지 않은데~ ㅎ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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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책을 읽고 나서 좋다는 말을 하기는 쉽다. 듣는 이도 그 정도 표현이면 감내할만 하다. 헌데 좋다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고 일상적이라 가슴을 두드리진 못한다. 말이 가슴에 엉키고 영혼에 스며들려면 조금은 장황해야하고 세심해야 한다. 김연수의 소설에 대해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또한 좋다고 말할 것이다. 부질없을 정도의 짧은 대답이지만 그토록 명쾌하고 가벼운 말이 없다. 왜 좋냐고 하면 그때서야 끝을 알 수 없는 언어의 향연이 시작될 테다. 바지런 피우며 말을 직조하고 생각을 풀어낼 테다. 그 말과 짧은 생각의 단편이 지금 시작된다.

 책은 닿을 수 없는 말과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김연수는 종종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말에 대한 더듬이가 잘 발달 되어 있다. 이 예민한 더듬이가 느끼는 작은 세상을 말로 풀어내기 위해 비단을 뽑아내는 누에처럼 그는 온몸으로 글을 밀어낸다. 또 잗다라한 말의 차이에서 세계의 끝과 시작만큼의 이질감을 느끼고 파고든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나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엔 이러한 이질감이 잘 드러난다. 소통의 부재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일상의 흔적에서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더 많은 말로 그 공간을 메운다. 특히 언어가 다른 이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묘한 설렘과 조그마한 불신은 이야기를 직조하는 고갱이이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엔 섬이 있어서 애씀만으론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좁힐 수 없고 다리를 놓아 애써 이어 붙일 수도 없다. 섬을 섬으로 오롯이 인정할 때에야 서로 다른 자아는 하나의 해안이 되고 지구를 만든다. ‘기억할만한 지나침’에 나오는 소녀나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전 안기부 직원도 세상에 섭슬리지 못하는 하나의 섬으로 떠다닌다. 그렇게 부유(浮遊)하며 느껴지는 외로움을 누군가는 껴안고 누군가는 저버린다. 특별히 잡초가 무성한 섬엔 바다의 향취만 미만하다.

 무엇보다 추억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각 단편의 기저에 흐르고 있다. ‘달로 간 코미디언’에선 김득구의 죽음과 그에 얽힌 아버지의 부재가 가슴에 멍울진 한 여인이 나타난다. 아비의 부재가 낳은 짙은 생채기가 추억과 맞물리며 시나브로 옅어진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선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성찰이 드러난다. 어느 노파와 젊은이를 바투 이어주는 한 편의 시와 그에 대한 담론에서, 죽음은 삶의 대립항이 아닌 또 다른 무늬다. 흔적이다. 이러한 죽음의 애달픔과 죽은이에 대한 그리움은 길항작용을 하여 마음에 너울대고 삶의 빈틈에 켜켜이 쌓인다. 그 쌓임이 마음을 다독이고 벌어진 상처를 아물게 한다.

 글을 또 다른 글로 풀어내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사물을 활자화된 텍스트로 옮겨내는 데엔 어느 정도 상상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으나, 글은 글로써 엄연히 존재하기에 운신의 폭이 좁다. 그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선 더 벼려진 말을 써야 되고 한층 웅숭깊은 생각을 드러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분의 말은 찌꺼기이고 지나친 화장으로 메스꺼움을 주는 꽃 파는 노파의 지분거림이다. 김연수의 글은 쉬이 익히지 않아 집중을 요구하고 문장은 사유를 담기위해 조금은 늘어져 있다. 다만 자늑자늑 다가오는 사유와 치유의 힘은 ‘생활의 발견’과 같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준다. 낮은 가독성은 쉽게 읽히지 않는 세상에 대한 은유이고 늘어진 문장은 채워진 곳보다 비어있는 곳이 많은 세상에 대한 늘임표다. 글로 삶을 환원하는 방식이다.

 이 리뷰 또한 지나친 상징어의 남발로 ‘좋다’란 말 보다 못한 촌스러움으로 읽힐 수 있겠다. 어차피 김연수의 글 또한 삶보다 못한 지식인의 ‘스토리 텔링’이라고 보았을 때 이런 촌스러움이 마냥 부질없기만 한건 아니다. 오히려 말은 횡행하고 마음은 어둑해지는 세상에 조그마한 징검다리 중 하나의 짱돌 노릇 정도는 하지 않을까 한다.   

*책을 선물해주신 마음 예쁜 이에게 다시 한번 더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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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1-20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예요.
저도 참 좋았어요.
'김연수는 종종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말에 대한 더듬이가 잘 발달 되어 있다.'
는 의견에 특히 전적으로 동의. 묘하게 어떤 책은 번역된 책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언제 라님하고 같이 우리집에 초대할게요. 맛난 것도 먹고, 맘에 드는 책을 막 가져가삼 ㅎㅎㅎ

바밤바 2009-11-21 21:27   좋아요 0 | URL
오~ 기대할께요^^ 저도 음반 몇 개 가져갈테니 같이 듣도록하여요~ㅎ
민종 형님은 뭘 가지고 오시려나~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