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주변 사람들은 힘이 들 때 마다 종종 내게 의지하곤 한다. 그들의 기댐이 가끔은 힘에 부치지만 나는 그들을 다독이는 데 내 마음을 종종 쓴다. 그러다보니 내 마음이 핍진하거나 뜻 모를 이유로 스스로가 서글퍼질 땐 스스로를 도닥이기도 힘들다. 그럴 땐 휴식 같은 지인들에게 종종 연락을 한다. 헌데 하나 둘 제 살길을 찾아 길을 떠나거나 혹은 그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이 많기에 난 그들의 어깨에 내 몸을 의탁하지 못하곤 한다. 혼자된 심사가 너무 섭섭할 때는 그냥 길을 걷는다. 북악산을 오르거나 동대문까지 걸어가선 이마트에 들려 평소에 좋아하는 떠먹는 요구르트와 우유를 3만원어치 정도 산다. 이런 사소한 채움이 공허한 마음을 눅이고선 나를 웃게 한다. 여간 좋지 아니한가.
나. 어제 교수님을 비롯한 몇몇 지인과 밥을 먹었다. 교수님은 장광설로 유명하기에 아이들은 그와 지근거리에 있기 싫어했다. 나 또한 그분과 좀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친소대로 패를 나누어 한 테이블씩을 차지했고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줍음이 매력적인 친구 하나는 어제 내 옆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게 책을 추천해 달라며 휴대폰에 내가 말해 준 작가나 책 제목을 입력하고선 요즘은 무슨 음악을 듣느냐 물었다. 요즘 특별히 듣는 건 없고 첼로의 울림에 마음이 쏠린다며 내 말을 구획 지었다. 그는 다시 내게 자기 주위에도 그러한 음악을 듣는 이가 있다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예전에 했던 ‘쇼팽은 야하다’라는 말을 그 지인에게 전하니 내가 매우 예민한 사람이란 평을 내렸다 한다. 상글상글 웃으며 난 원래 예민하단 눙을 치곤 조금의 어색함을 벗어났다. 그리고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난 예민한가. 요즘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초딩’ 같다며 말 좀 어른스레 하라며 나를 걱정한다. 가끔은 내 어눌함이 일종의 의태(擬態) 행위임을 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 책과 음악에 관한 질문을 한 아이가 그러하다. 근자에 내가 저어하는 건 이러한 의태 행위가 하나의 습관이 되어 나를 옮아 매는 게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는데 이런 지인들의 질문은 이런 잗다란 고민을 가볍게 해준다. 친구는 내 주위 사람들이 대부분 싫어하는 ‘이랜드’라는 기업에 갈 거 같은 데 양심의 괴로움으로 아파하지 않았으면 한다. 충분히 좋은 사람인 그가 속한 집단 때문에 매도되는 일은 그리 온당치 않아 보인다. 물론 고종석과 강준만이 조선일보 기자에 대한 논쟁으로 집단과 개인의 구별짓기에 대한 그들의 섬세한 고찰을 피력한 바가 있기에 첨언할 건 없다. 다만 조직의 부도덕함이 개인의 비루함으로 환원되는 건 사회적 약자인 20대에겐 부당하면서 버거운 짐인 듯하다. 우석훈은 짱돌을 들라고 했지만 이 또한 닿지 않는 386의 진부한 처방이다. 2시간 동안 밥을 먹으며 많은 생각의 편린이 오갔다. 좀 더 스스로를 벼려야겠다. 생각은 길었는데 글은 짧다. 더 짧지 못해 안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