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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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의 이름과 그들의 배경은 명쾌하다. 금과 은이란 동년배 친구는 말 그대로 씨줄과 날줄이 되어 이야기를 직조한다. 한 쪽에 치우치지 않던 얘기는 뒤로 갈수록 갸우뚱 한다. 성적 취향에 대한 고민이란 또 다른 더께가 얹어진 은 때문이다. 니체식 권력에 대한 의지와 히틀러식 힘에 대한 무한 추종이 느껴진다. 다만 그러한 추종을 드러내는 방식이 사뭇 자의적이고 폭력적이다. 즉 독자가 충분히 공감케 하기 힘든 성긴 구석이 보인다.

 우선 금과 은을 니체 식으로 분류하자면 금은 디오니소스에 가깝고 은은 아폴로에 가깝다. 금은 쾌락을 좇고 은은 절제와 배격의 자세를 보인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와도 견줄만 하다. 헌데 은의 과한 절제는 후에 성적 취향에 의한 자기혐오가 뒤엉킨 방어기제의 결과라는 게 드러난다. 이러한 절제와 쾌락의 이중주가 가정의 불화와 갖가지 이유로 인해 다른 양상을 띠면서 둘의 경계는 무뎌진다. 특히 둘이 몸을 섞으면서 권력 관계가 역전되고 사랑 앞에 약자가 된 금이 문학을 탐하고 은이 권력을 탐하는 건 다소 상투적이다. 물론 소설적 구성은 뛰어나다.

 이야기의 시작은 조금 도식적이다. 금은 태생적으로 한국 정치에 민감한 전라도 출신이고 은은 상대적으로 우파 프레임에 갇혀있는 부산 출신이다. 금의 아버지가 지역 정치에 뛰어든 배경 외에 그의 언어가 좀 더 공격적이고 정치지향적인 이유는 이러한 성장배경에 있다. 이에 반해 은은 부산이란 도시 덕에 문학이란 탈출구를 오롯이 탐닉할 수 있었다. 다만 문학의 열정이 권력에 대한 탐미로 전이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문학을 니체식의 ‘약자의 원한’이 점철된 패자의 변명 정도로 여기게 된 이유가 아비의 무능함 때문인지 타고난 본성 때문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섬세함과 예리함을 가지고 있던 한 지성이 순수 우파로 전향하는 과정에 대한 깊은 고찰이 아쉬웠다.

 다만 히틀러가 그림을 좋아하던 우수어린 청년에서 1차 대전 이후 권력의 맛을 알게 돼 변모하는 과정을 은이란 인물을 통해 드러낸 듯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은이 커서 무엇이 될지가 상당히 궁금하였는데 이 소설에선 단지 1년의 혼돈을 나타낼 뿐이라 다소 아쉬웠다. 또한 뒤로 갈수록 취재가 부족했다는 걸 느꼈다. 금과 은이 다니는 학교가 연세대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데 내가 알고 있는 현 학교의 모습과 충돌하는 장면이 몇몇 눈에 띄었다. 또한 성관계가 지극히 쉽게 일어나는 장정일 식 일탈은 소설적 장치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아쉬운 점이었다. 거북선생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읊조리며 우파의 사상적 빈곤을 토로할 땐 장정일 식 공격성이 다시 불거져 나오는 듯하여 다소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장정일 본인이 클래식 마니아이므로 자신의 부르주아적 취미에 대한 죄스러움을 거북선생을 통해 위악(僞惡)적으로 드러낸 듯 했다. 보수 언론과 뉴라이트에 대한 악감정을 드러내는 방식도 좀 더 세련됐으면 했다.

 장정일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은과 금’이 될 뻔 했던 책 제목이 류시화 시인을 만나 ‘구월의 이틀’로 정해졌다 말한다. 헌데 제목이 소설 속 은의 이야기처럼 모든 이야기를 다 아우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이야기는 1년 만에 일어나기엔 밀도가 높고 진폭이 크며 이틀 만에 일어나기엔 다소 헐겁다. 물론 삶을 반추해보았을 때 어떤 1년이 평소의 10년에 준하는 위용을 띨 때가 있다. 레닌 또한 혁명기의 1주일은 평소의 10년과 맞먹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만 한 개인의 삶에 헤르만 헤세가 묻어나고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몰아치며 온갖 정치적 함의와 성적 충돌이 뒤엉키는 1년은 너무나 소설적이다. 물론 그래서 사람은 소설을 읽을지 모른다. 또한 어느 구월의 이틀마냥 물리적 시간으로 재단하기에 그들의 삶은 꾸준히 현재 진행형이었고 이전 보다 이후의 삶이 더 치열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갖가지 통찰이 빛났던 경직돼 있는 후반부 때문에 빛이 바랬다. 마치 매력적인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선 뒤로 갈수록 다소 성긴 느낌을 주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같다. 이야기는 쉽게 읽히고 어느 정도 몽환적이지만 현실적 치열함은 다소 덜 해 보인다. 장정일은 글은 그의 ‘독서 일기’나 ‘공부’를 읽은 게 다다. 물론 이 소설에서도 그의 방대한 독서량이 문장 곳곳에 묻어난다. 다만 이야기가 이야기의 뒷부분도 앞부분만큼 재기발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구월의 이틀만큼 나의 하루가 치열했는지 되묻는 계기가 되어 좋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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