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번역본 제목은 Pillow Book이라더군요. 베갯머리 침이라. 멋집니다. 침초자.
어젯밤 11시경 경비실에서 찾아와서 손 가는 대로 뒤적거리고 있는데, 정말 기대 이상입니다.
책이 예쁘기도 하고 부록도 충실해서 탐을 냈던 거였는데, 이만큼 재미있을 줄을 몰랐습니다. 대기 중인 추리 소설 대 여섯권을 뒤로 돌리고 읽고 있을 만큼 재미있네요.
아름다운 문장도 많고, 재치있는 문장도 많고, 번역도 잘 된 것 같고, (놀랍게도) 오,탈자도 없고! (숨은 아이님, 아직 하나도 못 찾았어요. ^-^ 대단하십니다 정말...)
제 18단 가장 멋진 저택 - 저택은
구슬로 지은 저택
제 25단 밉살스러움 - 얄미운 것 中
졸음이 쏟아져서 자려고 누웠는데 모기가 가느다랗게 윙 소리를 내며 얼굴 언저리를 날아다니는 것도 밉살스럽다. 그 몸만큼이나 작은 날개로 바람까지 보내니 정말이지 어떻게 해 주고 싶다.
집에서나 궁중에서나 될 수 있으면 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찾아와서 일부러 자는 척하는데, 시녀가 자꾸 와서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마구 흔들어 깨우는 것도 밉살스럽다.
(흐흐흐, 너무 귀엽다, 이 사람 세이쇼나곤. >ㅂ<)
제 30단 미남 설경 법사
설경(說經) 법사는 역시 미남이 좋다. 정신없이 법사의 얼굴을 마라보노라면 불법(佛法)의 고마움도 저절로 감득된다. 얼굴이 못생긴 법사가 설경을 하면 아무래도 집중이 안 되어서 금방 들은 얘기도 한쪽 귀에서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 꼭 죄받을 것만 같다. 참 이런 얘기는 쓰면 안 되는데 말이다.
(푸하하하하 >ㅁ< 언니라고 부르게 해 주세요! )
반면 마음에 안 드는 글도 꽤 나온다.
제 42단 부조화 - 어울리지 않는 것 中
천한 것들 집 지붕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것. 게다가 달까지 환하게 비치면 정말이지 달빛이 아깝기만 하다. (이봐 이봐... - _ -)
나이 든 여자가 임신해서 산만한 배를 안고 돌아다니는 것도 꼴불견이다. 젊은 남편 얻은 것만 해도 가관인데, 그 남편이 다른 여자네 집에 가서 자기 집에 안 온다고 화내는 것은 참으로 볼만하다.
지금까지 읽은 것 중 제일 우스웠던 글
제 60단 새벽에 헤어지는 법
새벽녘 여자네 집에서 돌아가는 남자는, 너무 복장을 단정히 하고 에보시 끈을 꽉 묶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올 떄도 일어나기 싫은 듯이 우물쭈물하다가 여자가 "날이 다 밝았어요. 다른 사람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하고 재촉하는 말을 하면 그제서야 겨우 후유 한숨을 내쉬면서 정말 헤어지기 싫다는 듯이 하는 것이 좋다. 그저 우두커니 않아서 사시누키 입을 생각도 않다가 입을 여자 귀에다 대고 밤에 한 얘기를 속삭이는 듯하면서 손으로는 속곳 끈을 묶고 일어나서는, 격자문을 밀어 올려 쪽문 있는 곳싸지 여자를 데리고 간 후 낮 동안 못 만나는 것이 얼마나 가슴아픈지 다시 한 번 여자 귀에 대고 속삭인다. 남자가 이런 식으로 해서 나가면 여자 쪽에서는 자연히 그 뒷모습을 쳐다보며 헤어지는 것을 슬퍼한다.
그런데 보통은 그렇지가 않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갑자기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잽싸게 사시누키 허리끈을 묶고, 노시나 포, 가리기누 소맷자락을 걷어 올리는 등 옷매무새를 매만진 다음, 허리띠를 꽉 매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에보시 끈을 꽉 묶어 안에 집어넣고 반듯하게 다시 쓴다. 그리고 어젯밤 베개 위에 놓아둔 부채나 종이를 더듬더듬 찾다가 어두워서 잘 안 보이면 "어디 있느냐 도대체 어디 있느냐니까" 하며 손으로 방바닥을 쳐서 겨우 찾아낸 다음 후유 간신히 찾았네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러고는 그 부채를 마구 부치며 품에 회지 (懷紙)를 집어넣고 "그럼 이만 실례하겠소이다" 라며 돌아가는 것이 보통 남자들의 태도다.
정말 책장 넘어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흐흐흐흐흐 >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