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좋아하나?
알바하다 알게 된 아저씨가 뜬금없이 묻는다. 아닌 걸 알면서 게요, 엄청 좋아하지요! 하고 썰렁한 수작을 걸어 보지만 이미 아저씨의 말문은 완전히 열렸다. 슈나우저. 9개월. 암컷. 덩치 좀 있음. 모든 접종 완료. 사상충약 먹임. 털 밀고 발톱 손질 끝냄. 자자, 데려갈텐가?
나는 아저씨의 말을 따라 슬금슬금 상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어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개 그림을 서둘러 지워버린다. 음... 음... 그게... 생각 좀 해볼게요...
3년 전 어느 날 저녁, 같이 살던 친구가 치와와 한 마리를 불쑥 안고 돌아왔다. 개는 달랑 몸만 온 것이 아니라 푹신한 쿠션이 깔린 알록달록 개 집이며 개 사료봉다리, 개 옷, 개 껌 등을 주렁주렁 달고 왔는데 그 꼴이 잠시 들러서 하룻밤만 자고 갈 모양새는 절대 아니었다. 같이 사는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이래도 되느냐! 나는 소리치지 않았다. 그저, 이게 웬 개냐! 달려들며 비쩍 마른 그 개를 덥석 안았다.
맞다. 나는 개를 정말로 좋아한다. 친구는 오죽하면 날더러 개에 환장했냐, 고 했다. 한 때 나는 지나가는 털 빠진 똥개만 봐도 따라가서 머리를 쓰다듬어 줄 만큼 정말로 개에 환장했었다. 그러니 그 치와와 녀석을 보고도 당연지사 홀랑 맛이 갔다.
그 녀석은 전 주인에게 다롱이 라고 불리던 한살박이 암컷이었다. 치와와랑 무슨 개랑 결혼해서 낳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순종은 아니었다. 그래서 순종에 비한다면 크기도 조금 크고, 다리도 길고, 털도 푸석했지만 나는 오히려 더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은 낯선 집에 와서도 전혀 짖거나 찡얼대지 않았고 전 주인이 알면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순식간에 착착 적응을 하며 우리를 볼 때마다 열광의 몸짓을 잊지 않았다.
사실 나보다는 친구를 더 좋아해서 잘 때도 친구의 품에서만 자고 외출했다 돌아와도 친구를 향해 더 높이 뛰어오르며 난리를 피웠지만 나는 다 이해했다. 친구는 항상 안고 쓰다듬어주며 귀찮아 하지 않고 이것저것 먹을 것을 잘 챙겨주었지만, 변태종족인 나는 귀여운 것을 보면 사족을 못 씀과 동시에 괴롭히고 싶다는 이상한 습성을 갖고 있으므로 사실 어떤 개든 나와 며칠만 지내면 분명히 속으로 그럴 것이다. 에휴, 내가 저걸 주인이라고 믿고 평생 살아야 하나... 귀여우면 귀엽다고 말로 할 것이지, 왜 자꾸 이불에 말고 책상에 올려 놓고... 꼬리는 왜 잡아 당겨!!
다롱이는 산책하는 걸 무지 좋아했다. 하지만 친구와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3,4일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겨우 한 번쯤 그 녀석과 같이 비디오를 빌리러 가거나 놀이터에 가곤 했을 뿐 항상 집 안에만 가두어 놓았다. 그래서 그 녀석이 죽은 거라고, 나는 한 때 생각했었다.
지독히 더웠던 그 여름, 나는 현관문을 열어놓은 채 나른한 기분으로 빨래를 개고 있었다. 내 옆에 드러누워서 알짱거리던 녀석이 안 보이는 걸 깨달은 순간 현관 앞 작은 마당에서 그 녀석의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 대문을 열어 놓았는데, 다롱이가 바깥으로 뛰쳐 나갈텐데, 얼른 잡아와야겠다... 생각하면서 나는 수건을 개고 있었다. 한 장, 두 장... 마지막 세 장 째, 그래 이것만 다 개고 나가서 잡아오자... 나는 느릿느릿 일어서서 대문 밖으로 나섰다. 순간 거짓말같은 고요함이 나를 짓눌렀다. 자동차 한 대 정도 지나갈 만한 그 길, 늘상 아이들이 재재거리고 소리를 내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아주머니들이 돗자리를 펴 놓고 왁자하게 떠들기도 하는 그 길이 그 날처럼 조용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작은 마당에서 괜히 바깥을 향해 왈왈 짖던 그 녀석, 아무데도 없다. 다롱아, 이름을 부르며 나는 다른 세상인 듯한 그 길을 몇 발짝 걸었다. 그리고 곧, 다롱이와 내 눈이 마주쳤다.
다롱이는 누워 있었다. 마치 인형이 옆으로 쓰러진 것처럼 네 다리를 모두 꼿꼿하게 들고 눈을 부릅뜬채로 조용히 누워 있었다. 배가, 빨갰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예전처럼 함부로 개에게 애정을 쏟지 않았다. 머리 속에 선명하게 저장되어 버린 그 한 장의 기억 때문에, 개를 그저 귀여워 할 뿐, 스스로 편한 순간에만 가지고 놀 듯 놀아주었을 뿐, 개의 마음 같은 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는, 결국 벌을 받고 있다 느꼈다. 그래서 나는 개가 환장할만큼 좋기도 하지만 무겁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내 몸하나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데 나의 애정을 갈구하고 간절하게 보살핌을 원하는 생명 하나를, 내가 과연 내 안에 잘 거둘 수 있을지 하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저씨가 개를 데려와서 보여 준다. 너라면 잘 키워줄테니 내가 안심하고 맡길텐데, 말하기도 한다. 까만 개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분홍 혓바닥을 내보이며 달려든다. 나는 어색하게 그 털복숭이를 안아보지만, 그 단추 같은 눈에 또다시 홀려버리지만, 무거운 추라도 매달린 듯 마음이 가라 앉는다. 나는 지금, 갈등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