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나는 열정의 고갈에 시달렸다. 무슨 일을 하든 바싹 말라버린 마음의 밑바닥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하루 이틀 시무룩해 하다가 불측스레 열정인지 애정이든지 할만 한 것들이 자작하게 바닥에 고이기 시작하면 나는 일단 한걸음 내디뎌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그것들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득득 퍼다 쓰기 바빴다. 종잡을 수 없기는 하나 이제 나는 아주 조금 샘의 원천을 찾은 기분이다. 마르지 않는 샘이 존재할 수 없다해도 조금 천천히 마르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한동안은 갈증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 항상 거북등짝처럼 쩍쩍 갈라져 있다 느꼈던 마음인지 가슴인지 하는 내 몸속 어딘가에 있는 그 통 안에서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가득 들어차서 통 밖으로 한 방울 두방울 물이 튀기 시작하고 이내 쿨렁쿨렁 넘쳐날지도 모른다고 물이 통의 내부와 입구를 두드리며 내게 신호를 보내왔다. 아무 짓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어디서도 스스로 여며둔 방점하나 찾을 수가 없는데, 그저 시간만 흘러가게 두면 그렇게 다시 솟고 고이고 흘러넘쳐 준다니,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조급하게 굴며 혼자 시름하고 있었나, 또 한번 피식 헛웃음이 났다.
상처에 새살이 돋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그저 그저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단, 내 뱃 속에 감정들이 출렁이며 손과 발, 머리와 다리속을 흐르게 하려면 매우 중요한 촉매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역시 사람...... 사람들이다.
* 잠시만 이라고 걸어둔 밤도망 흔적이 무색할만치 어느새 석달 열흘이 더 지나고서야
다시 이 곳에 왔다. 허나 머리채를 잡혀 끌려온 게 아니라 자수하여 광명찾은 것이라
본인이 우기고 있는 실정이므로 정상참작이 필요하다 사료된다.
뻔뻔하다고, 누가 말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나는 맨질맨질한 얼굴로 뻔뻔한 인사를 건넬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