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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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광인 일기>)의 주인공은 9급의 말단 관리인 뽀쁘리신이다. 그는 우리에게 20편의 일기를 보여준다. 일기는 10월 3일로부터 시작된다. 생각건대 일기의 날짜도 의미가 크다. 10월 3일로부터 12월 8일까지는 날짜의 순서가 정상적이다. 그러나 갑자기 2000년 4월 43일로 넘어가더니 이해하기 힘든 날짜의 조합들이 보인다. 소설은 일단 정상적인 날짜로 표기되는 앞부분과 이해의 상식을 넘어서는 뒷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날짜 표기만의 문제가 아닌 주인공의 정신 상태와 매우 관련이 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뽀쁘리신은 직속 상관인 과장을 싫어하나 내색은 저어한다. 과장은 말끝마다 그를 무시한다. 뽀쁘리신은 과장은 제쳐두고 국장의 눈에 들려 노력한다. 그는 국장의 집 서재에서 펜을 깎는 것을 아주 즐거워한다. 그는 또한 국장의 딸인 소피아를 짝사랑한다. 뽀쁘리신이 사랑하는 것은 결국 국장과 국장의 딸로 대변되는 상류층의 생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인공에게 겨우 7급 관리인 과장의 말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을 대단한 양 생각한다. “그래 내가 하찮은 평민 출신이란 말인가? 나는 재봉사 집 출신도 아니고 하사관의 자식도 아니다. 이래 뵈도 나는 어엿한 귀족이란 말이다!” 

  그러나 귀족인 자신을 불행케 하는 요인이 한 가지 있다. ‘재산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분제가 상당히 무너진 러시아에서 여전히 자본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시대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할 수 있다. 

  뽀쁘리신이 경모(敬慕)하는 국장의 행태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장은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된 책을 상당히 가지고 있다. 제목으로 보아 상당히 학술적인 책들이다. 주인공은 우선 이 책들로부터도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기호를 생활로 접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그는 신분 상승의 꿈을 갖는다. 소피아에 대한 사랑도 이와 연관된다. 허나 문화적 거리감에서 시작된 좌절은 소피아가 그를 사랑하지 않으며 오히려 조소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부터 급격히 심해진다. 그러나 만일 주인공이 광인(狂人)이 아니었다면 좌절로 끝이 났을 이 이야기는 물꼬를 생각지 못한 곳으로 튼다. 

  뽀쁘리신은 외려 신분 상승의 꿈을 더욱 과감히 갖게 되고 자신을 스페인 왕으로 착각한다. 일기의 후반부라 할 수 있는 2000년 4월 43일부터 바로 이 같은 내용이 전개된다. 그는 급기야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일기의 전반부에서 뽀쁘리신은 자신의 환경에 불만은 있지만 그것은 지나치지 않으며 자신의 처지도 인정하는 편이다. 허나 후반부 들어 그는 자신을 스페인 왕으로 선언하며 제 처지를 전면적으로 부인한다. 
  
  주인공은 과대망상증을 앓고 있다. 과대망상증은 다름 아닌 자신의 한계를 깊이 깨닫는 데서 온 것이다. 42살이 되도록 빈털터리이며 사랑하는 여자에게 뜻도 내비치지 못하던 그는 서서히 미쳐간다. 그는 현실의 무력한 자신을 벗어나 강한 힘을 가진 자를 연모하게 되는데 이 때 그는 스페인 왕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광인의 자기 인식과 사람들의 그에 대한 이해는 그가 정신병원에 갇힘으로 좀처럼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갖는 상태에서 일단락 된다. 
  
  고골의 소설은 1834년 작품이다. 이 무렵 러시아는 끊임없이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그 중심에는 짜르를 중심으로 한 관료사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관료들은 신분 상승의 욕망을 지녔으며 현실에서 이를 이룰 수 없을 때 도박이나 향락으로 울분을 삼키는 경우가 많았다. 뽀쁘리신은 관료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말단관리의 전형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사랑을 통해 울분을 삭이려 하나 이마저 이루지 못하고 끝내는 미쳐 정신병원에 갇힌다. 

  고골의 희곡인 <검찰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지방 도시에 검찰관이 온다는 소식에 부패한 관리들이 뇌물과 연회를 준비한다. 그런데 도착한 이는 검찰관이 아닌 건달이었다. 건달을 성대히 대접한 후 자축하는 사이에 진짜 검찰관이 도착하여 관리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이 작품 역시 <광인 일기>에서와 같이 관리들의 실태를 고발하고 풍자하고 있다.   

  루쉰의 <광인 일기>는 물론 고골의 소설에 대한 패러디이지만 그 과녁이 관리가 아닌 중국인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차이다.  

 

    Nikolai Vasilievich Gogol(1809-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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