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오스트리아 출신의 예술사가 아르놀트 하우저의 영화 이야기를 들어보자. 영화는 '협동작업에 의한 예술활동'이다.(<문학과 예술의 사회사4>, 창작과비평사, 1999, 310면.) 여타의 예술 장르, 예컨대 시나 소설 등은 개인적인 고투에 의해 창작이 이루어지지만 영화는 작가, 감독, 각색가, 카메라맨, 미술감독, 각종 기술자 등의 공동작업에 의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 영화를 이야기할 때 관중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유럽의 근대 문명이 그 개인주의적 도정에 오른 이래 불특정의 집단적 군중으로서의 관중을 위해 예술을 생산하려한 최초의 기도이다.(같은 책, 314면.) 종합하자면 창작 주체 안에서의 호환(互換), 창작 주체와 관중간의 호환을 통해 영화는 예술의 민주화에 기여한 것이다.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는 내겐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그의 인생이 시작된 영화관에서 본 영화들을 기실 난 잘 모른다. 그저 제목만, 그저 배우 이름만 얼핏 들었을 뿐이다. 딴에는 영화를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하지만 자괴감을 뒤로하고,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이름만 그저 알았던 그들이 대화를 건네 와 즐겁다. 전혀 면식도 없던 그들이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친절한 소개로 금새 친해진 듯 싶다. 

  사실 난 외국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인생이 저런 건 아닐텐데'란 씁쓸한 생각이 자꾸 든다. 앞서 아르놀트 하우저를 인용했지만 영화가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 작업에 의해 만들어지듯이 영화란 당대인들의 삶을 충실히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있자면 지금의 내 삶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비감이 든다. 그리고 난 좋은 영화란 관중을 괴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냥 재미있게만 한다거나, 헛웃음만 짓게 하는 영화는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함으로써 인생의 아픔에 함께 괴로워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일 테다. 
 

  서양 영화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게 몇 있다.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아스테릭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독일 작가 막스 프리쉬 원작의 <사랑과 슬픔의 여로>(원제: Homer Faber)등이 여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로베르토 베니니의 의뭉스런 표정과 몸짓, 줄리 델피의 귀여운 모습은 기억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에서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만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을 읽어가며 적어도 시오노 나나미가 젊은 시절을 함께 한 영화는 지금 내가 보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많이 다르단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아울러 내게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편견이라 이름할 것도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책을 읽어가며 영화를 통해 인생을 배워갔던 시오노 나나미가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은 '영화 세대'는 아니다. 요즘은 영화를 보러 구태여 영화관을 찾을 필요가 없다. 집에서도 PC 앞에 앉아 얼마든지 편하게 영화를 본다. 좋아하던 배우가 나오는 신작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 앞에서 줄서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 책을 덮고 나니 꼭 봐야 할 영화 목록이 수두룩히 쌓였다. 이젠 구하기도 쉽지 않을 영화들일텐데. 한 편, 한 편 영화를 보고 나서 그의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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