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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의 나라 중국 - 강효백의 중국역사인물기행 ㅣ 한길 헤르메스 8
강효백 지음 / 한길사 / 2002년 7월
평점 :
<논어(論語)>를 읽은 적이 있다. 내게 <논어>는 유교 경전이라기보다 공자(孔子)와 그의 천 여명의 제자가 얼키설키 가르치고 배우는 재미난 이야기로 다가온다. 한 때 난 동양의 고전들을 무시한 적이 있었다. 어떤 유명한 논객이 이런 말을 했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하자면 '서양의 고전 대화록들은 스승과 제자가 자유로이 그리고 민주적으로 이야기하는 반면 우리의 고전들은 권위적이고 반민주적이'라는 것이다.
동양의 고전들은 미리부터 접어두고 서양의 고전 대화록들만 읽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파이돈>,<향연> 등을 읽어가며 서구 민주 사회의 전범(典範)이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인의 사유와 생활 방식을 알 수 있었다. 그 논객의 말대로 그들의 사제(師弟) 관계는 꽤나 민주적이었다. 이는 플라톤의 철학이 소크라테스와 사뭇 다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플라톤과 판이하다는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판이하다. 플라톤이 이상주의적이며 영감(靈感)을 중시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영감보다는 구성(짜임)을 중시한다.
그러나 동양의 대화록인 <논어>와 <맹자(孟子)>를 읽어 가는데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들의 대화는 논객의 말처럼 그리 권위적이지도, 반민주적이지도 않았다. 특히 <논어>속의 공자와 그의 제자 자로(子路)와의 대화는 요즘에 와서 실제 일어난다 해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꽤나 불경(不敬)하다. 강효백은 이 불경한 제자 자로를 협객이라 부른다. 내가 생각할 때 자로에서 보여지는 협객의 특징은 바로 단순함이다. <논어>의 자한편(子罕篇)을 보자.
공자께서 '해어진 솜옷을 입고 여우나 오소리의 모피로 만든 옷을 입은 사람과 함께 서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유이리라! <시경(詩經)>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야말로 '남을 해치지 않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아니하니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라고 하시자 자로가 늘 이 구절만 암송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 도리가 어찌 그다지도 훌륭하다고 할 만하냐"
유(由)는 자로의 이름이다. 공자의 칭찬에 자로는 신나하며 늘 공자의 칭찬 말씀만 외운다. 그런데 공자는 매정하게도 이내 자로를 타박한다. 자로의 단순함이 눈에 선히 그려지는 장면이다.
강효백은 이 책에서 다양한 계층, 성별을 넘나드며 협객을 논한다. 이 협객은 무엇보다 의(義)에 충실하다. 의리(義理)라는 말이 구태의연히 느껴지기도 한다. 한 때 유행했던 조폭 영화에서 심심찮게 들먹여지는 말이기도 하고, 책에서처럼 협객들이 죽고 사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대도 의리는 필요하다. 무엇을 위해선 지는 각기 다르겠지만 너무도 쉽게 자신의 이념, 신념을 저버린다.
<논어>를 한 번 더 인용하자. 자한편, "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중에 시듦을 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중국엔 참 소나무와 잣나무가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닮은 협객들. 날씨도 춥고, 그들의 단순함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