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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상고마
장용규 지음 / 한길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아모스 투투올라라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소설가가 있다. <야자열매술꾼Palm Wine Drinkard>이라는 재미난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내가 만나 본 첫 아프리카 문학이었다. 첫 대면으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한다는 게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기존의 내가 만나 본 문학과는 분명히 많은 부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내가 만나 본 소설들'은 분명 유럽 문학일텐데 여기에 내 부족함이 있다는 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다. 언제나 내 사고의 기준점은 보통 서양(the West)이라 막무가내로 불려지는 유럽이다. 유럽적 사고와 다르면 낯설고, 불안하고, 미심쩍다. 뭔가 못마땅하다. 오리엔탈리즘이 내 몸과 마음 깊이 깊이 스며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원시, 미개, 야만......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슬픈 대륙 아프리카는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자신이 독자적으로 서 있지 못하다. 그들은 서양이라는 타자에 의해 규정되어진다. 동아시아의 우리 역시 햐얗고, 단정한 서양이라는 매개항을 통해 아프리카를 바라본다. 따라서 그들은 늘 까맣고, 지저분하다. 서양과 나머지 지역(the Rest)만이 있을 뿐이다. 나머지 지역에 속한 문명 혹은 국가는 그 자신이 존립을 결정하기가 힘들다. 일반적, 보편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보편적 기준(Global Standards)이란 게 전혀 보편적이지 않다. 이 기준이란 다름아닌 유럽적 가치, 미국적 가치이다.
보편적 가치에도 이상이 온 걸까? 근래 유럽의 서점가에는 제3세계 문학이 홍수를 이룬다고 한다. 노벨 문학상에도 제3세계 출신의 작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올해의 수상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인 존 쿳시이다. 그런데 이들 제3세계 출신의 작가들이 그들의 고국을 제대로 작품 속에 담아내는지는 의문이다. 1986년에 수상한 나이지리아 출신의 월레 소잉카가 자신의 전통 문화를 등한히 여긴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아는 사실이다. 서인도 제도 출신의 2001년 수상자인 V. S. 나이폴은 인도 소설은 서양 소설의 모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춤추는 상고마>는 나머지 지역의 아시아와 아프리카간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제국주의의 첨병이었던 인류학이다. 요사이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이 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식민지 경험을 한 두 국가가 만났다. 이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지만, 저자의 다음 말은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다. 아프리카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이미 화석화되었기 때문이다." 화석화된 시각은 종시 가치가 없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단단한 화석의 균열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그것은 대상 국가, 국민, 문명권을 바로 볼 만한 뚜렷한 이론이 저자에게는 아직 없지 않나하는 생각 때문이리라.
나는 이 책을 통해 물신(物神)의 무서움을 또 한 번 느꼈다. 아프리카 사회의 전통을 가장 아낀다고 자부하는 상고마들조차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에는 기를 꺾는다.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기막힌 장면들이 여기에서 보인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아프리카가 왜 그리워지는 것일까? 그 곳에 무엇이 있길래 말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자살로 생을 마치기 전 유난히 아프리카 여행에 집착했다고 한다. 그의 유고작이 <여명의 진실True at First Light>인데 이 소설의 배경은 아프리카이다. 헤밍웨이를 무척 닮은 주인공은 모든 것을 내팽개쳐 두고 아프리카로 돌아온다. '돌아온다'. 아프리카에 대한 그리움, 사라지는 자연에 대한 아쉬움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한다. 주인공에겐 아프리카가 심정적인 고향인 것이다. 고향을 이미 찾은 헤밍웨이에겐 이제 삶은 싱거운 것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살하기 전 친구에게 울먹이며 건넨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어"란 고백은 이미 그의 모든 것이 나와 버렸다는 말에 다름아닐 것이다. 난 그의 죽음을 이렇게 해석한다.
'나머지들의 만남'이라 이름을 붙였지만, 우리들 안에 더욱 근원적인 그 무엇이 존재하는 데 나머지들이란 말은 이제 더 이상 온당치 않다. 그럼 이제 이름을 무엇이라 붙여야 할까? 고민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