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963년 미국.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길렌할)이 로키산맥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곳으로 흘러든다. 지금은 비록 세상의 주변부에 있지만, 한 철 양치기를 해서 목돈을 쥐면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아버지’가 될 꿈에 부푼 20대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예기치 않게 ‘사랑’에 빠진다. 산 속이라는 유폐된 공간에서 밤낮 고락을 나누던 두 남자는 서로 영혼의 상처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보듬는다. 그런 게 ‘사랑’인지도 몰랐다. 아니, 사랑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밤, 피 끓는 욕정에 못 이겨 서로의 몸을 탐했을지라도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넘어서는 안 되는 금기를 하루아침에 허물어 버릴 정도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6개월 뒤, 두 사람은 ‘쿨’하게 이별했고 세상 아래로 내려와 각자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으며 가장이 되었다. 그러나 4년 뒤 다시 만나고야 만다. ‘너무 보고 싶어서’였다.
동성애를 코드로 우리 시대의 특별한 러브스토리를 그린 ‘브로크백 마운틴’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리거나, 가정을 깨는 흔한 정형을 거부한다. ‘와호장룡’의 이안 감독은 이 영화에서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과정’에 무게중심을 둠으로써 사랑이 삶을 성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표현했다. 삶은 복잡하며, 인생이란 기대와 예측을 번번이 빗나가며, ‘제도’는 아무리 억압적이라도 마음대로 뚫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위선과 허위와 이기와 배신이 판치는 ‘나’의 시대에 나를 버리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만난 에니스와 잭이 무려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비밀스럽게 이어간 만남의 힘은 이해와 배려였다. 때로 잭은 에니스에게 ‘같이 이혼하고 함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살자’고 떼를 썼지만 가장의 책임 때문에 괴로워하는 에니스를 아프게 바라본다. 따라서, 이 영화는 ‘아버지’를 거부한 게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양이라는 천형을 지고 살아가는 ‘아버지’를 위한 비가다.
금기를 넘어선 두 사람의 사랑은 더 강했고 더 고통스러웠다. 어느 날 날아든 돌연한 잭의 사망 소식은 의무와 열정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에니스의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잭의 아내로부터 ‘죽으면 브로크백 마운틴에 묻어 달라 했는데 그게 어딘지를 알아야지요’라는 말을 듣고 잭의 유골이 있는 고향집을 찾은 에니스는 그의 부모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에니스는 마침내 잭의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으며 그가 세속의 잣대를 뛰어넘어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는다. 잭의 유해를 브로크백 마운틴에 뿌리고 근처 오두막에서 무소유의 수행자처럼 살아가는 에니스는 이제, 보이지는 않지만 온 세상에 존재하는 잭의 영혼과 만난다.
대자연 ‘브로크백 마운틴’은 단순한 가시적 공간이 아니라 세속의 굴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 ‘정신적 해방구’에 대한 은유다. 희망 없이 살아가던 에니스와 잭이 이곳에서 꿈을 꾸며 욕망에 자유스러웠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 한 번도 ‘사랑한다’는 대사는 없지만 가슴 찡하도록 여러 대목에서 눈물샘을 자극한다. 휴대전화도 없고 e메일도 없던 그 시절, 우체국에서 서로의 편지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던 시절의 두 사람의 연애 그대로 이 영화는 내지르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던진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에 이어 올 아카데미상에서도 무려 8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3월 1일 개봉. 15세 이상.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