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직장인이 아침에 출근해 마시는 진한 커피 한잔. 뇌를 각성시켜 잠을 깨우고 정신을 집중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면서 새로운 정보가 뇌에 입력됐을 때는 우리가 평소 잘 알던 단어를 떠올리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예를 들어 조찬모임에서 새로운 사람 여러 명을 만난 후 갑자기 자신의 친구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탈리아 국제고등과학원의 스티브 움블 박사팀은 미국심리학회가 발행하는 ‘행동신경과학’ 최근호에서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대학생 32명을 카페인 투여 집단(커피 두 잔 분량)과 투여하지 않은 집단으로 나눈 후 상식적인 질문 100개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 문자는?’에 대해 ‘상형문자’라는 답을 기대하는 식. 학생들에게 응답 전 10개의 단어를 제시해 ‘힌트’를 줬다. ‘상형문자’와 첫 발음이 비슷한 단어 2∼8개와 전혀 발음이 다른 단어로 구성돼 있었다.
조사 결과 카페인 투여 그룹은 발음이 비슷한 힌트를 제시했을 때 ‘혀끝에서만 맴돌고 생각나지 않는 현상(TOT)’이 정상 집단에 비해 적게 나타났다. 하지만 발음이 다른 힌트를 제시한 경우에는 이 현상이 훨씬 많이 나타났다.
성균관대 심리학과 이정모 교수는 “관련성이 깊은 단어(자극)를 통해 기억해내는 것은 커피를 마신 경우가 더 유리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히려 커피가 해가 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연구”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시험치는 중간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 인기 TV 드라마 얘기를 나누는 것보다 시험과 관련된 주제를 떠올리는 것이 전날 밤새 외운 것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