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주 한 잔 합시다
유용주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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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자가 12년만에 전화를 했다. 열심히 두레일기를 썼던 종화. 동그란 눈과 웃는 입매가 귀여웠던 '쫑아'.

아이들이 오랜만에 전화를 걸면 첫마디가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이다. 나라도 그런 말을 할 것이다. 사실 기억력 특히 사람 이름 기억하기에 취약한 나는 예고없이 제자의 방문이나 전화를 받으면 당황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화를 받고 약속을 하고 만나면 앨범을 보며 그 아이와의 추억을 복습하기도 한다. 물론 99% 예외없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 얼굴과 표정, 입성까지도 다 기억이 난다. 내가 가르친 아이 모두를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나를 다시 찾는 아이들은 기억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인연이 있는가 보다.

쫑아를 모를 리가 없다. 스물 여덟 살이 된 청년 쫑아는 어린 시절과 많이 달라졌지만 입매가 여전하고 눈동자가 여전하다. 쫑아는 내게 유용주의 산문집을 보냈다.

국문과를 나왔지만, 대학 시절 시집을 손에 들고 다녔지만 내게 그 회색의 시절 감성을 울리는 시는 단 한 편도 없었다. 읽기가 그랬거늘 한 편 시를 썼을 리 만무했다. 그런 내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삼척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교편을 잡던 스물 네 살 때였다. 딱히 외롭고 힘겹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살아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돌아온 자취방, 라디오도 TV도 없던 작은 방에서 처음 읽었던 시는 도종환이었던 것 같다. 저녁 7시면 가로등도 희미해 거리에도 못 나가던  그 즈음의 내 시에서는 그래서 도종환 냄새가 난다.

문학이 밥이 되던가? 미술이나 음악, 네가 좋아하는 어떤 길도 좋다고 아들에게 말한다 하면 사람들은 예술이 돈이 되기에 아들에게 권하느냐고 묻는다. 돈이 되기도 하고 전혀 아니 되기도 한다만 과연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고 나 스스로에게 물을 때 답은 돈이 아니다. 물론 찬 바람에 그냥 내놓아져 살아야 한다면, 세 끼중 한두 끼는 굶어야 한다면 이런 말 하지도 못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돈을 벌고 삶을 살 때 과연 단지 그것만으로 내가 산다 할 수는 없다. 끊임없는 나의 영혼의 궁핍을 채워줄 그 무엇은 통장이나 부동산은 아니다. 과연 문학이 없고 예술이 없다면, 아낀 돈으로 품에 안고 돌아오는 한 권의 시집, 소극장 구석에서 만나는 연극, 전시회장에서 만나는 나의 그림자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이 엄혹한 '생활'을 견디고 '시대'를 버텨 과연 나 '산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삼척의 연탄불 꺼진 자취방의 아린 겨울을 이겨낸 그 시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유용주 이야기를 하자. 쫑아는 12년만에 연락이 닿은 내게 유용주의 "쏘주 한 잔 합시다"를 보내왔다. 제자들을 만나면 책을 사서 들려보곤 하던 내게 거꾸로 책을 보내온 드문 제자가 그이다. 유용주는 한겨레 신문을 통해 자주 만났지만 특별히 나와의 접점을 찾은 기억은 없던 작가이다. 쫑아가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한참은 그랬을지 모른다. 그의 글을 곱새겨 읽자니 어쩌면 내가 아이들 앞에서 민중을 이야기해도 날바람에 표피 한꺼풀 벗겨낸 상처가 아프듯 적당히 당의정이 입혀지지 않은 삶의 날피부는 아직 두려운 무엇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친 듯이 땀을 흘려 돈을 벌어들이고 새벽까지 자기 영혼을 치열하게 만나는 유용주, 성질이 나면 누구든 붙들고 주먹다짐이라고 하고 싶어지는 펄펄 살아있는 유용주, 그런 삶에 비해 그의 글발은 참으로 많이 다듬어져 있다. 결코 겉멋이 들었을 사람이 아니지만 얼마나 새벽책상 앞에서 벼렸는지 그의 글발은 생생하면서도 유려하다.  바로 그라면, 문학이 왜 단지 밥이 아니고 영혼의 치유를 위한 불가피한 처방인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삶이 아픈 사람이어야 그 고달프고 바쁜 삶 끝에, 이렇게만 살 수 없는 그 힘겨움을 덜어줄 진정하고 유일한 것이 돈도 아니요 명예도 아닌 문학이고 예술인지를 알 것이다,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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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03-0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등학교때 선생님과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로 시작했는데요... 거진 20년이 되어 오는데 절 기억해주는 선생님때문에 눈물 난 적 있어요..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 - 240박 241일 터키 체류기
미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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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조만간 그리스 터키 쪽을 여행할 마음이 있기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여행하다가 터키 남자의 사랑을 받았고 결국 거기 7개월 이상 머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았고 단순한 여행 안내문과는 다른 구성도 마음이 끌렸다. 책 속 터키 사람들은 막연하게 알았던 이 나라의 매력에 더욱 마음을 빼앗기게 만든다. 사진 속 파묵칼레의 온천 풍경은 내가 가 보고 싶은 사막이나 설원의 나라처럼 이 지구의 것이 아닌 듯이 보인다. 게다가 유적지가 아니라 시장 주변의 사람 냄새가 풍겨오는 듯해서 더 좋았다. 된장을 공수해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된장찌개를 팔았다는 이야기도 재밌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이 든 것은,

글쓴이의 얼굴은 사진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쓴이를 순수하게 사랑했다는 그 터키 남자는 이름도(실명이겠지?) 얼굴도 여기저기 보이는데 작가는 자기 이름도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다. 킥킥거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거의 다 읽다가, 읽으면서 이 국경을 넘은 사랑을 어떻게 마무리했을까 궁금해 하다가, 갑작스레 그 남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결말에서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어쩌면 이것은 소설이 아닐까? 난 여행기 혹은 여행 안내문이 아닌 한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멋진 여자의 상상으로 쓰여진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녀는, 전혀 소설이 아닌 척 꾸며 쓴 완벽한 소설의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나가던 이국의 여행객에게 드닷없이 사랑공세를 폈다는 터키남자나 그랬다고 마냥 240일을 거기 눌러붙어 살았다는 여자나, 된장찌개를 팔았다는 이야기나 황당하기 짝이 없다.

 

황당해서 거짓말이란 뜻은 아니다. 그건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내용도 아니다. 거짓말 같아서 더더욱 재밌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국의 연인을 그리워하다 비명횡사했을 그 터키 남자의 사진 속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보고 또 봤다. 작가는 이 남자의 사랑을 즐겼을지언정 그 자신도 이 남자를 사랑한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글 군데군데 그런 가벼운 필치가 느껴졌기에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라면, 내가 이 작가였고 나 역시 이 남자를 사랑했다면 그렇게 이루지 못하고 떠난 남자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난 책으로 쓰진 못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나라면, 그의 사진은 아파서라도  이렇게 책에 버젓이 싣지 못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 그 책의 무게와 기대치를 미리 가늠하고 읽지 않는가. 재밌게, 정보를 얻으며, 터키 여행에 대한 즐거움의 애피타이저로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 했던 내게 마지막에 던져준 무거움은 약간의 배신감마저 준다.

 

그렇다고 이 책을 혹평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조만간 터키를 갈 것이다. 멋진 여행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꼭, 파묵칼레에 가 볼 것이다. 여기서 누군가가 사랑했었다는, 책 속에서 읽은 이야기는 그 여행에서 기억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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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03-0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전 아마도 선생님의 뒷길만 따르겠는걸요.. 제가 목표 하는 도시가 융프라우고 다음이 터키의 이스탄불인데요.. 전 터키하면 이스탄불만 떠올리다 이 책을 보면서 새로운 도시에 대한 흥미가 많아 졌어요.. 선생님.. 사랑은 의심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흐흐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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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베스트 셀러라면 우리 사회의 독서문화의 전망이 그렇게 어두운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서점에서 '체 게바라 평전'과 '강의'가 베스트 셀러라는 것을 볼 때마다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대중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체 게바라의 일생이 정말 드라마틱하고 그이의 인성이 아무리 매력적일지라도 어쨌든 보수주의적이고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이 사회 주류를 이루는 이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자이자 무장혁명을 주장하고 실천했던 게바라를 읽는 것은 맘 편한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아무리 쉬운 말로 편한 어조로 강의하듯 풀어썼다고는 하나 중국고전에 대한 책을 그렇게 덥썩덥썩 집어들 분위기는 아니지 않나 싶다는 뜻이다.

이 현상을 누구 표현대로 '지적 허영심'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지 (사 놓고 끝까지 읽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들고 다니면 폼 나는 책이다 등등)  아니면 역으로 그 만큼 우리의 독서인구는 적고 그 얼마 안 되는 독서 인구들은 거의 매니아 급으로서 일반인보다 높은 독서 수준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책들에 집약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곰실곰실 천천히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독서수준이 일천한 것인지도 모른다. 맹자 원본도 소그룹으로 공부해 보았고 도덕경도 여러 번역본으로 서너 번 읽고 대학 시절 전공은 아니나 교양으로 한문학과와 동양철학과의 강의를 통해 중국고전을 조금이나마 맛보았던 나에게 그리 빨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닌 이 책이 베스트 셀러로 다른 이에게 쑥쑥 읽히고 있다면 (나야말로 나 자신에 대해 다시 돌아볼 시간이 온 것이 아닐까...)

하긴 남들의 반응과 수준에 연연할 필요는 없겠지. 시간이 없어서 주로 잠자리에 누워 조금씩 조금씩 (야학에 다니는 학생처럼) 아쉽게 이 책을 읽어온 나는 신영복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감사했다. 그분이 여러 수필에서 보여주신 인격의 향기와 고전에 대한 오만하지 않은 해석의 자세에 사회문제와 모든 사물, 현상을 자연스레 엮어 생각하게 하는 역량이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특히 '묵가'를 읽으면서 무지 쾌감을 느꼈다. 이 해석이 신영복 선생의 매우 독특한 해석은 아닌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다.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더 신선하고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검은 얼굴을 한 노동계급의 사상. 혁명적이고 '共'을 중시한 사상과 비폭력 평화주의의 결합은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적 사고방식 혹은 진보된 사회주의로 해석된다. 그러고 보면 사회와 사상, 체체도 직선으로 발전, 진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나 자본 중심의 사고와 노동 중심의 사고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했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책은 빨리 읽어치우지 않는 내게  오래 걸려 읽은 이 책은 참 소중하다. 많은 밑줄과 많은 접힌 자욱과 메모들. 원전에 대한 풀이보다 신영복 선생의 해석과 사념에 밑줄이 더 많기도 하고 더러 내가 잘못 알고 있었거나 일반적인 해석과는 다른 풀이 들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밑줄을 그었던 기억도 많다. 이제 나는 어느 주말 저녁 시간을 내서 일기장에 그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할 것이다. 누구는 이 정도로는 고전에 대한 학습이 되진 않는다 할 것이다. 내 인생에 기회가 오면 도덕경 원전도 읽고 해석해 보고 뭐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게는 이 정도 '말씀'을 접한 것이 가장 적절하고 영양가 있었다. 어느 하나 맛없는 반찬 없는 정갈하고 푸짐하면서도 품위있는 밥상을 만난 기쁨.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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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12-0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선생님의 삶과 마음을 그동안 쭈욱 보아왔던 한 사람으로서 역시 저도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것만으로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풀꽃 선생님은 텍스트 위에 최대한 마음을 밀착하여 읽어내셨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잘 읽고 갑니다.

비연 2005-12-0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면서 내내 신영복 선생님이 계심에 감사했습니다...^^
그 분이 어려운 시절을 겪어내셨고 그 시절 속에서 이런 작품들의 토대가 갖추어졌으리라는 생각에,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참 마음이 아프지만요..잘 읽고 갑니다^^

글샘 2005-12-0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저 책 읽으면서, 제가 이 책을 10년만 일찍 읽어더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이런 책이 나온 것에 감사드릴일이 아닐는지요.

인터라겐 2005-12-02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꽃선생님... 안녕하셨지요.. 저도 이 책 보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책읽는나무 2006-12-05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계속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다시 뺐다가 수십 번을 반복한 책입니다.구입해서 쉽게 읽히지 않을 책이란 생각에 다른책을 먼저 구입하기 바빴습니다. 그래도 자꾸만 이책에는 눈길이 가는군요. 님의 진중한 리뷰를 읽고보니 또 과연 이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 두렵기까지 하네요.
하지만 시간을 더 늦출 수가 없군요.
얼른 구입하라고 저를 채찍질해 주시는 리뷰였습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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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사람은 세상을 만만하게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자신감이 생기는 거겠지. 게다가 칭찬을 많이 받으며 소위 성공했다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처음 마음을 잃고 대개는 오만해진다.

나는 어느 토요일, 교보문고에 갔다가 길게 늘어선 줄의 행렬을 보았다. 그 전에 이미 알라딘에서 이 책의 대대적인 광고를 보고 살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한 적이 있었지만 그 날 사람들이 가슴가슴마다 이 책을 품고 줄을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이 책을 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줄은 한비야씨 사인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었다. 한비야는 이제 너무 유명해졌어(이제 오만해질 때가 되었어.)...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 줄을 거슬러 올라왔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책을 사게 되었는고? 이 책 이전의 어떤 책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지 않았던가 하는 기억과 이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에 대한 묘한 믿음은 호들갑스런 광고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돌아보게 했나보다. 책을 다 읽고는, 그녀가 요란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김혜자씨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그 분의 반응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해서라도 이 책이 팔리고, 많은 이들이 긴급구호에 대한 공감을 얻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이름이 팔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리라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의 재주는 무엇일까. 심각하고 험난한 이야기도 재미나게 만드는 재주는. 힘이 들면 들수록 힘이 나는 그 에너지의 원천은. 그것이 내게는 없는 종교의 힘일 수도 근본적인 체력이나 건강함, 삶의 자세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 그 답이 무엇이든 그녀는 참 순수한 사람이다. 순수하고 착한데 똑똑하기까지 한 사람이 세상에는 거의 없다고들 생각하지만 한비야는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믿는다.

여전히 그녀는 감동적이다. 그토록 세상의 이목과 칭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왔건만 여전히 그녀는 오만해지지 않았다. 이전에 내가 남에게 가난한 아이들 돕기를 함께 하자고 권하는 것은 혹 오만한 게 아닐까 고민하던 일은 그 자체가 사치스런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랑은 능하고 적극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박노해 이후 다시 그녀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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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11-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글올리시는군요..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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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미있게 읽었다.  상금이나 수상이나 평론이 없이 읽었다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고 싶어졌을 것 같다.  어쩌면 김별아에게 미실의 혼이 씌였나보다. 미실,그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지만, 죽을 때는 마치 신녀처럼 맑고 신비로이 갔다지만 어쩐지 그녀의 살아 생전 삶이 너무나 욕망으로 그득하여 차마 떨치고 갈 수 없었던 그 무엇을 천여 년 지나 한 여인의 가슴으로 다시 쓰게 하지 않았나 싶게 김별아의 미실은 참으로 미실의 자기애로 가득차 있다.

사랑하고도 몸은 가지지 못하는 숱한 사람들은 단지 어떤 도덕률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몸으로 할 때 참으로 가열차게 소진하는 아름다움이 있겠지만 또한 사랑은, 단지 그것만이 아닌 또 무엇이 더 있기에 간절함에도 고요히 기도로 바라보기도 하는 것이다. 미실이 모든 사랑 앞에 다 진실이었노라고 선언하는 모습은 돈 주앙인지 카사노바인지, 새로 만난 여인 앞에서 당신을 사랑해, 오늘 밤만은... 이라고 말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한, 그녀가 주체적일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똑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똑똑함이란 것이 세상을 이롭게 했는지 어떤지는 결코 다른 시선으로 볼 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말하자면, 똑똑하고 아름다우면 주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묻고 싶다. 나라면 천하 절색이었든 박색이었든 진정으로 사랑했던(미실을 사랑했던, 이 아니라 미실이 사랑했던) 처음으로 유일했던 사다함을 두고는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 절대로...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은 남과 다른, 이 세상 단 하나 뿐인 미실이라고 자기에게 말하지만 그것도 영악한 마인드 콘트롤일 뿐이다. 누구나 자신은 이 세상 단 하나 뿐, 누구에게나 자아는 그토록 특별하다. 어떤 외모를 지녔더라도 그것을 드러내고 강조할 재능이든 그 어떤 특장점을 지녔음에도 그렇게 내세우지 않으며 한 생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지탱해 가고 장점이랄 것 없이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를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간다.

미실을 객관적으로 찬양하든 미워하든, 그를 살려낸 김별아의 혼, 이 글을 쓰면서 느꼈을 그녀 혼의 오르가즘에 공감한다. 무척 행복했을 것 같다. 상금을 받지 않았더라도 글을 쓰는 순간순간 몹시 행복했을 것 같다. 그녀 안에 되살아나는 혼의 존재로, 마치 간절한 연애를 하듯 한 순간 한 생애를 겪었을 듯 하다.

그래서, 어쨌든, 재밌게 읽었고, 쓰면서 행복했을 작가를 생각하면서 괜히 덩달아 행복했는데, 오늘 영풍문고에서 푸른역사의 '색공지신 미실'이란 책을 발견했다. 우연히, '화랑세기'를 열심히 연구했던 한 학자와, '화랑세기'에 매혹되었던 한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책을 발간함으로써 그 농염한 미실의 혼이 21세기에 부활했나 보다. 누군가 반드시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겠구나, 내가 아는 여배우 중 미실을 연기할 만한 이 누구이겠는가, 역사서를 들추며 그런 생각이 스쳤는데, ... 맙소사, 김별아의 미실은 화랑세기 속 미실 그대로이다.

작가는, 역사서를 그대로 옮기면서도 이토록 사람을 생생하게 살려내었다. 그래서 칭찬해야 하는가, 혹은

혹은....

푸른역사 출간 '색공지신 미실'의 출판연월일은 '2005-01-10 '이었다. 같은 사람을 다루고, 한 책은 농염한 사랑과 시기를 받았으나 한 책은 인문학 코너 구석에 깔꼬롬히 앉아 있다. 이것은 김별아의 힘인가 자본의 힘인가. 어쨌든, 소설 '미실'이 몹시 사무쳤던 사람들은 이종욱의 '색공지신 미실'을 보충서적으로 읽으면 더더욱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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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5-08-0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꽃선생님은 이책을 재밌게 읽으셨군요.. 전 보면서 화가 나던걸요...
아 이주의 마이리뷰에 뽑히신걸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