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금닷컴 제프님의 손금의 정석 1
유종오 지음 / 여산서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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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선생님 중에 아주 영민하다고 학생들의 선망을 받던 잘생긴 총각선생님이 있었다. 스물 일곱밖에 안 된 나이에 철학적인 그의 언변과 태도와 행동과 더불어 이미 주역을 읽었다더라는 소문이 그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그는, 그저 여고생들의 마음을 울리는 우수어린 총각이기만 한 이는 아니었고 그의 지성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음을 그가 전교조 사태로 해직될 때도, 그 이후의 변함없는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조금 냉소적이었던 나에게조차 그가 주역을 읽었다더라는 말이 깊이 새겨져 남아있다. 

그 어렵다는 주역을, 단지 누군가의 사주를 보는 책이 아니라 우주를 담은 철학책이라는 그 주역을... 나도 언젠가 읽어보리라, 기왕이면 그 선생님처럼 20대가 가기 전에...라는 결심은 바쁜 삶에서 잊혀졌고 30대 어느 즈음에 한번 펼쳐보았다가 도대체 왜 내가 이걸 읽고싶어 하는 걸까, 집착 혹은 지적 허영이 아니라면.. 하면서 덮었던 기억이 난다. 

혹시 철학책이라더라, 라고는 했지만 그 안에 담겼다는 남의 운명을 볼 수 있는 열쇠가 10대의 나와 우리들을 흔들었던 건 아닐까, 내가 데미안이 했다는 독심술은 언젠가 나도 해 보리라 결심했던 것에서 한치도 더 나아가지 못했던 욕심일 뿐인 것 아닐까. 

손금은 왜 알고 싶어졌나 모르겠다. 정말 손금이 운명을 말해준다는 확신은 없다. 오히려 관상은 과학적으로 그 사람의 삶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손금에 그런 과학성을 찾아볼 근거는 없다. 그런데 왜 그게 궁금했을까. 

몇 가지 사례들에 혹할 수는 있다.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들이 주변에 좀 있으니까. 그래서 처음엔 재미삼아 들여다 보았다. 당연히 내 손금을 모델로. 적어도 내 인생에 대해 어쩌구저쩍구하는 건 부담없는 일이니까. 그러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손바닥을 들여다 보았다. 많이 들여다보고 싶지만 손금을 보고 있으면 영락없이 자기 운명은 어떤지 말을 해달라고 한다. 내 눈에는 아주 단순한 것 정도밖에 안 보인다. 나쁜 것이 보인들 말을 할 수도 없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을 어찌 믿고 말을 해주겠는가. 

이 책의 저자는 손금은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타고난 무엇이 있다 해도 본인이 그 길을 가지 않고 갈고닦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나의 손금에는 내가 결혼을 늦게 하고 독립적으로 살 것이라고 (배운 대로라면) 써있으나 나는 다른 사람보다 일찍 결혼한 편인데 그것은 남편의 강력한 기운이 나의 고집을 감싸 안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나는 권력운도 있고 지향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치관이 바뀌면서 내 인생은  '권력''자리'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후회도 없다. 그렇게 본다면 손금은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운명만은 아닌 것이다. 또한 운명이란 게 있다고 해도 본인의 운명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배우자 등 주변 사람들의 갖고 있는 운명과의 조화와 상충이 또다른 운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식이 설령 나쁜 손금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부모의 좋은 기운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도 있고 좋은 운명도 나쁜 배우자를 만나면서 다 까먹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윤동주의 '소년'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이 귀절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작은 손바닥 안에 아름답고 슬픈 세상이 펼쳐진다. 그 강물 안에 그리운 이의 얼굴도 있고 세월도 흐른다. 그런 의미에서 손금은 한 사람의 인생이 흘러가는 강물일 수도 있겠다. 어떤 운명이 흘러가고 있는지 가끔 들여다본다. 재물복이 있네 결혼운이 있네, 가 아니라 내 인생이 여기만큼 왔다,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앞으로도 흘러간다, 여기 파란 강물을 따라.. 열심히 살면서 운명을 만나리라. 피해갈 수 없는 것도 있겠으나 슬픔 없다 할 수 없겠으나 좋은 인연들을 만나며 아름답게 살겠노라, 주로 내 손금을 바라보며 ,손금 공부는 일종의 명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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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꼬야 2013-05-3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가 너무좋아서 가져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