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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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내 청춘 시절에 지겹도록 들었던 대한민국 빨갱이 역사가 이렇게 다시 쓰여지는구나 싶었다. 이 책을 감동으로 집어 드는 이들은 모두 나처럼 반쪽난 이념의 대한민국이 통탄스러운 구세대들일까? 이루지 못한 꿈, 혹은 몰락한 이상주의자들에 대한 연민이 이 책을 돌아보게 만드는 걸까? 젊은이들도 즐겨 읽는다는 말을 들어보고 싶다. 물론 나는, 존경심과 회한의 마음으로, 즉 사감을 가지고 감동적으로 읽었지만 이념이나 경험에서 다른 길에 서 있는 이들도 이렇게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을 들어보고 싶다.

 

(실패한)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며칠 동안의 이야기만으로도 이토록 소설이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은 소소하게 박힌 사건들이 가지고 있는 드라마틱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관된 아버지의 삶의 궤적은 우리에게 삶의 철학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 것인가. 00주의자라 불리려면 꼬질꼬질한 생활 하나하나와 작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떤 이는 정치적으로 진보라지만 이성을 대할 때 몹시도 보수적이기도 하고 자유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자신이 근본주의자인 줄도 모르고 살기도 하니까. 진보를 자처하지만 생활에서 한없이 자본주의적으로 사는 사람도 많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그런 면모는 없을지 돌아보았다. 그리고 돌아본 지점 하나 더. 소설 속 빨치산 출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엄숙근엄진지하기만 하지 않았다는 것. 작가의 필치 덕이기도 하겠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여유와 유머와 품 넓음을 보며 나는 나의 세계관 밖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 왔는가 돌아보게 된다.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 본다. 나의 장례식에 누구는 오고 누구는 오지 않을 것인가 헤아려 보기도 한다. 나 역시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과학적 믿음을 갖고 있지만 만에 하나 내가 모르는 질서가 작동하는 세계관이 있다면, 그래서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죽은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 자리를 혼으로 지킨다면 나는 어쩌면 내 장례식에 온 이들 얼굴을 바라보면서 추억에 잠김으로써 이승의 생을 정리해볼 수도 있겠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의 죽음을 잠시나마 애통해해줄까 하는 상상은 지금의 내 삶을 벼리게 만들기도 한다.

 

아버지의 오지랖은 넓었다. 장례식장에 다녀간 사람들은 아버지의 그늘에 어떤 식으로든 덕을 보았던 이들이다. 빨치산을 마감한 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사회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은 그런 것이었다. 아프고 힘들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 옆에서 같이 담배를 피는, 시신을 수습하는, 술을 같이 기울이는, 그런 방식. 한 사람의 일생에 한 나라의 역사가 담겼을 뿐 아니라 한 마을의 희로애락이 같이 걸어갔던 것이다. 물론 아무나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 아버지, 실패한 빨치산의 소소한 생이 존경스럽다는 거다.

 

얼마나 많은 활동가, 운동가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졌을까. 그들을 진정으로 애도하고 기억하는 것이 남은 이들의 일일 것이기에 이런 기록은 감사하다. 정지아는 자신의 부모 이야기라서 썼다 하고, 마침 그이는 소설가이기도 했기에 이렇게 기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고 고맙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다른, 잊혀져 간, 이미 잊혀진 어떤 이들의 삶을 찾아 되살려보자. 연구도 하고 글로도 쓰고, 자꾸 언급하고 하다못해 그들의 자리에 작은 돌 하나라도 새겨보고, 할 수 있는 것은 다해 보자. 큰 자리에 앉은 이들은 자신의 권한을 다해 그리 하고 우리처럼 작은 삶을 사는 이들은 자신의 역량을 모아 기억하고 추억하고 기리고 흉내내며 모여서 이룬 역사를 잊지 않으려 애써 보자. 돈도 없고 권력도 없더라도 우리는 이런 작은 힘들이 모여 이루어 내는 것들을 믿는 사람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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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 2023-05-2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임승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쓴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썼지만 딱히 홍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저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책 여러 권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승객분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래서는 안 되겠지만요). 갑작스러운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시겠지만 1분 정도만 시간을 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문득 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내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21세기 실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오면서 생긴 독특한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있듯이, 두 딸의 아빠이자 반백살의 남성인 저도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삶을 견지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인생이라는 여행의 경로가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갈림길에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글치였던 공대생 출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선거 날 투표할 때면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후보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뜬금없이 와인에 홀딱 빠져서는 대한민국 검사뿐만 아니라 노동 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 경로는 명승지 투어 같이 잘 차려진 패키지 여행과는 결이 달라서, 오지 탐험에서나 맞닥뜨릴 돌발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졌습니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는 제가 사회주의자라는 여행 경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풍경, 경험할 수 있는 사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전히 이 여행이 제법 맘에 들어서 설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기대한다면 과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 탐험 여행서 같은 흥미진진함을 제공하리라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책도 ‘실사판’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권의 여행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아래에는 출판사의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서 옮깁니다. 귀중한 시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서점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9181643

”우리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사회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전 세계가 주목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처 방식도 지극히 사회주의식이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 재원과 행정력을 동원해 감염병에 대처했으며 코로나 진단 검사와 치료를 누구나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건 의료 정책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공립학교, 국공립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부자 증세 등등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런데 복지를 확대하길 원하면서도 왜 사회주의에는 유독 반감을 가질까?

저자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가 대세이면서 동시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30년 차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본주의의 은폐된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설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태생과 최후를 통찰한다.

사회주의로의 강요는 없다. 다만 질문이 시작될 뿐이다.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갈 것인지. 증오와 배척, 불평등와 불공정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 삶의 지표에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