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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평점 :
세월이 가면 사람은 세상을 만만하게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자신감이 생기는 거겠지. 게다가 칭찬을 많이 받으며 소위 성공했다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처음 마음을 잃고 대개는 오만해진다.
나는 어느 토요일, 교보문고에 갔다가 길게 늘어선 줄의 행렬을 보았다. 그 전에 이미 알라딘에서 이 책의 대대적인 광고를 보고 살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한 적이 있었지만 그 날 사람들이 가슴가슴마다 이 책을 품고 줄을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이 책을 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줄은 한비야씨 사인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었다. 한비야는 이제 너무 유명해졌어(이제 오만해질 때가 되었어.)...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 줄을 거슬러 올라왔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책을 사게 되었는고? 이 책 이전의 어떤 책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지 않았던가 하는 기억과 이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에 대한 묘한 믿음은 호들갑스런 광고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돌아보게 했나보다. 책을 다 읽고는, 그녀가 요란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김혜자씨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그 분의 반응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해서라도 이 책이 팔리고, 많은 이들이 긴급구호에 대한 공감을 얻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이름이 팔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리라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의 재주는 무엇일까. 심각하고 험난한 이야기도 재미나게 만드는 재주는. 힘이 들면 들수록 힘이 나는 그 에너지의 원천은. 그것이 내게는 없는 종교의 힘일 수도 근본적인 체력이나 건강함, 삶의 자세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 그 답이 무엇이든 그녀는 참 순수한 사람이다. 순수하고 착한데 똑똑하기까지 한 사람이 세상에는 거의 없다고들 생각하지만 한비야는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믿는다.
여전히 그녀는 감동적이다. 그토록 세상의 이목과 칭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왔건만 여전히 그녀는 오만해지지 않았다. 이전에 내가 남에게 가난한 아이들 돕기를 함께 하자고 권하는 것은 혹 오만한 게 아닐까 고민하던 일은 그 자체가 사치스런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랑은 능하고 적극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박노해 이후 다시 그녀에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