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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평점 :
이 책이 베스트 셀러라면 우리 사회의 독서문화의 전망이 그렇게 어두운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서점에서 '체 게바라 평전'과 '강의'가 베스트 셀러라는 것을 볼 때마다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대중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체 게바라의 일생이 정말 드라마틱하고 그이의 인성이 아무리 매력적일지라도 어쨌든 보수주의적이고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이 사회 주류를 이루는 이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자이자 무장혁명을 주장하고 실천했던 게바라를 읽는 것은 맘 편한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아무리 쉬운 말로 편한 어조로 강의하듯 풀어썼다고는 하나 중국고전에 대한 책을 그렇게 덥썩덥썩 집어들 분위기는 아니지 않나 싶다는 뜻이다.
이 현상을 누구 표현대로 '지적 허영심'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지 (사 놓고 끝까지 읽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들고 다니면 폼 나는 책이다 등등) 아니면 역으로 그 만큼 우리의 독서인구는 적고 그 얼마 안 되는 독서 인구들은 거의 매니아 급으로서 일반인보다 높은 독서 수준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책들에 집약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곰실곰실 천천히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독서수준이 일천한 것인지도 모른다. 맹자 원본도 소그룹으로 공부해 보았고 도덕경도 여러 번역본으로 서너 번 읽고 대학 시절 전공은 아니나 교양으로 한문학과와 동양철학과의 강의를 통해 중국고전을 조금이나마 맛보았던 나에게 그리 빨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닌 이 책이 베스트 셀러로 다른 이에게 쑥쑥 읽히고 있다면 (나야말로 나 자신에 대해 다시 돌아볼 시간이 온 것이 아닐까...)
하긴 남들의 반응과 수준에 연연할 필요는 없겠지. 시간이 없어서 주로 잠자리에 누워 조금씩 조금씩 (야학에 다니는 학생처럼) 아쉽게 이 책을 읽어온 나는 신영복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감사했다. 그분이 여러 수필에서 보여주신 인격의 향기와 고전에 대한 오만하지 않은 해석의 자세에 사회문제와 모든 사물, 현상을 자연스레 엮어 생각하게 하는 역량이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특히 '묵가'를 읽으면서 무지 쾌감을 느꼈다. 이 해석이 신영복 선생의 매우 독특한 해석은 아닌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다.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더 신선하고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검은 얼굴을 한 노동계급의 사상. 혁명적이고 '共'을 중시한 사상과 비폭력 평화주의의 결합은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적 사고방식 혹은 진보된 사회주의로 해석된다. 그러고 보면 사회와 사상, 체체도 직선으로 발전, 진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나 자본 중심의 사고와 노동 중심의 사고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했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책은 빨리 읽어치우지 않는 내게 오래 걸려 읽은 이 책은 참 소중하다. 많은 밑줄과 많은 접힌 자욱과 메모들. 원전에 대한 풀이보다 신영복 선생의 해석과 사념에 밑줄이 더 많기도 하고 더러 내가 잘못 알고 있었거나 일반적인 해석과는 다른 풀이 들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밑줄을 그었던 기억도 많다. 이제 나는 어느 주말 저녁 시간을 내서 일기장에 그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할 것이다. 누구는 이 정도로는 고전에 대한 학습이 되진 않는다 할 것이다. 내 인생에 기회가 오면 도덕경 원전도 읽고 해석해 보고 뭐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게는 이 정도 '말씀'을 접한 것이 가장 적절하고 영양가 있었다. 어느 하나 맛없는 반찬 없는 정갈하고 푸짐하면서도 품위있는 밥상을 만난 기쁨.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