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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천재 - 루소부터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4년 1월
평점 :
슈테판 츠바이크 <천재와 광기>에서 이 책 제목을 따왔다 한다. 광기가 있다 해도 천재가 되면 일반인과 달리 그 광기가 ‘에너지’로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천재라 해서 도덕적으로도 옳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언급하는 두 단어 천재, 광기,는 가치를 담은 단어는 아니다. 다만 천재는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존재라서 탐구할 가치가 있다. 그렇게 접근했을 것이다. 제목을 따왔다는 그 책은 언젠가 읽어보리라.
루소
나는 다른 세계를 보았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
루소의 이 말, 나에게도 간절하다. 나에게는 언제 이런 격변이 있었나. 때로는 밀려오는 대박이 내겐 왜 없는가 생각할 때가 있다. 물론 나는 밀려오는 행운보다는 안정된 행복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별일이 없이 산다는 일이 지루하지 않고 이렇게 계속 별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발전을 바랄 때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나는그저 곰실곰실 나아가는 사람일 뿐 나는 다른 세계를 보았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
카프카
고등학교 때 <변신>을 읽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성> 등등 다른 작품은 끝까지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얼마전 다시 카프카를 읽었다. 이 음울한 영혼이 가엾다고 느껴졌지만 막연하게 기괴하게면 여겨졌던 그의 작품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변신>이 말하는 ‘벌레로의 변신은 단순한 환유가 아니라 느껴진다. 살면서 자기가 그저 돈만 버는 어떤 존재, 그러다 병들거나 망가지면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여겨지는 순간이 온다. 본인이 그렇게 느끼든 가족이 그렇게 여기든.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나, 감탄한다.
하지만 고명섭을 통해 본 카프카는 또 다른 놀라운 존재였다. 그는 2차대전 후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군인들을 위한 호소문 덕에 새 정신병원이 설립되게 한 사람이었단다. 정치적 행동을 하지는 않은 극히 개인적인 이념이었다지만 그의 사회주의는 따뜻한 공동체를 향한 열망, 윤리적으로 올바른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이었단다.
어떤 이는 ’행동하지 못하는‘ 지성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그릇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만큼 각자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 그걸조차 하지 않는 게 문제이지 작은 일을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카프카의 새로운 발견.
비트겐슈타인
문제적 인간들이 많지만 궁금한 사람 중 하나가 비트겐슈타인이다. 그 삶에 매혹되었다가 냉정한 인간성에 정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부유한 토대를 벗어나 스스로를 황야로 내모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렇게 깊게 생각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기질이나 유전의 문제일까. 원인이 없이 불행감을 느끼는 이는 드문데 무엇이 비트겐슈타인의 형제들을 자살로 내몰았을까. 부를 누리고 인생을 희희낙락하지 않은 근본은 무엇일까. 교사로 군인으로 살아본 그의 삶의 궤적은 궁극적으로 교수로, 유명한 철학가로 살았던 삶과 비교해 행복하긴 했을까.
정작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이해하기 어렵다. 교육적으로 그의 철학을 접근하는 책도 읽어 보았지만 본질에 다가가긴 어렵다. ‘나의 말이 나의 세계’라는 선언은 너무나 자기 멋대로의 해석을 낳기에 처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수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행보는 어디까지 사람들을 흔들었는지, 그 흔듦은 그저 철학자들끼리의 것인지, 일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끼쳐진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톨스토이를 존경했다 하고 마음으로는 공산주의를 추구했다 하니 그에게도 인간 보편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이루고 싶은 유토피아의 꿈은 있었을 것이다. 무엇을 읽어도 우리가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고민하는 이에게 마음이 가는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