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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극장 -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고명섭 지음 / 김영사 / 2012년 6월
평점 :
책 제목에 매우 공감한다(물론 저자의 이후 작품인 하이데거론도 ‘극장’이라 붙이긴 했지만) 나라는 독자야말로 아주 드라마틱한 한 인간론을 극장에서 본 것 같은 느낌으로, 니체의 모든 삶과 말을 하나의 무대에서 다채롭게 보여주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으니까. 고명섭은 니체 작품들은 하나의 독특한 공간을 구성한다며 ‘극장’이라 이름 붙일 만한 공간이라고 했지만 나는 다른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이 매우 잘 지어졌다 생각하고 책을 즐겼다.
세 번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기 시작했지만 끝을 맺은 적 없다. 난해해서일까? 난해하기로라면 <파우스트>도 만만찮은데, 맥락이 없더라도 아름답고 강렬한 문장만으로도 나는 그 책을 좋아했을 법한데 왜 끝까지 읽지 않았을까? 아마도 니체가 주창하려는 것과 나의 가치관은 번번이 삐걱거렸을 것이다. 그렇게 단 하나의 원전도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칼 융의 <차라투스트라를 분석하다>를 읽으며 니체가 궁금해졌다. 융이 니체를 일컬어 ‘자아팽창’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래, 내가 그의 책을 읽기 싫었던 이유는 융이 지적한 대로 과잉된 자아(속세의 말로 하면 허세 쩌는 자의식이다)가 불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 또 좋아하는 작가들이 니체를 언급할 때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니체를 말할 때마다 도대체 내가 보기에는 맥락이 합리적이지 않은 말들을 해댄 니체가 어떤 사람이길래 수많은 이들이 그토록 자기 삶에 영향을 주었다고 그를 언급하는 건지 궁금했다.
그런데 고명섭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 고명섭이 니체 이야기를 한단다. 그래, 평론을 읽고 나중에 원전을 읽을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 삶이란 게 원래 수많은 파생상품에 둘러싸여, 아니 더 멋진 파생상품에 둘러싸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하는,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이참에 어쩌면 나는 이상하게 마음에 껄끄러웠던 니체에 대한 오해를 풀고 정식으로 그의 작품을 읽고 싶어질지도 모르지 않을까?
그리고 내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이 두껍디두꺼운 책은 너무나도 재미있다. 니체의 모든 작품을 다 해설해 주었고 얼마나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끼쳤는지 자세히 말해주었으며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니체를 껄끄러워하는지도 설명해 준다. 그렇다고 그에 매몰되어 편을 들기만 하지도 않는다. 또 그렇다고 사실만을 나열하지도 않는다. 고명섭은 마치 아주 잘 소화된 이야기를 관객들 눈높이에 맞춰 들려주는 친절한 해설사 같다. 그런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왜곡이나 편파의 오류를 범하지도 않는다. 잠이 안 올 때 <니체 극장>을 읽으며 긴 시간을 보낸 날이 많다. 머리맡에 철학, 과학, 소설, 만화 등 다양한 책들을 쌓아 두고 이책 저책 섭렵하다 잠이 들곤 하는데, 이 <니체 극장>은 다른 책으로 갈아타지 않아도 될 만큼 재미있었다. 하긴, 철학책이라기보다 인물사라고 보는 게 맞을 테니. 니체의 사상을 훑는 중간중간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보통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이토록 긴 시간 읽고 나면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생겨 책을 덮을 때 서운할 법도 한데 니체는 조금도 정이 가지 않았다는 것만 좀 특이하긴 하다.
나는 니체가 숭앙받는 현상을 두고 ‘꿈보다 해몽’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보다 더 많은 해석들, 그리고 해석의 해석으로 나아가는 무수한 니체 파생상품들이 거대한 문화권력이 되는 현상.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천재이나 누구에게는 미친 자로 느껴지는 사람.자의식 과잉에 현대적 관점으로 볼 때 부조화와 불균형의 ‘이상한 사람’, 헛소리를 정성껏 아름답게 써놓은 자. 다만 그 표현력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친 천재를 숭앙하는 이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설득해주면 좋겠다. 왜 니체를 꼭 읽어야 하는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인 고명섭조차 해내지 못한 그 일을.
작가의 시대성이란 게 있다. 도덕의 잣대도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다르다. 과거의 철학자를 현대의 도덕 관념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니체의 민주주의 혐오, 여성 혐오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게 너무 불편해서, 아무리 니체가 천재라 해도 그 예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다만 라캉의 ‘승화’ 개념대로 니체가 뛰어난 필력과 사고력으로 이와 같은 저서를 쓰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더 불행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안에 들끓던 상념들이 사람들의 사고를 촉발하고 상상력을 북돋운 것, 비록 그의 가치관에는 문제가 많았을지라도 그로 인해 (반면교사로 삼으면서) 다른 세계로 나아갈 상념들을 체계로 구축한, 그러니까 니체에 빚진 많은 문학가와 사상가들을 생각한다면 그의 승화는 고마운 일이긴 하다.
그래도 단지 재미만을 위해서 읽은 책도 아닌데 주인공인 니체에 대한 칭찬으로 끝을 맺고 싶다. 그가 던진 질문 중 가슴을 치는 것이 있었다(아마도 니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문장들을 붙잡고 자기 인생을 경작하면서 니체에게 감사함을 느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너는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했는가? 무엇이 너의 영혼을 높이 끌어올렸는가?”
한때는 높고 고결한 가치가 인생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개인의 욕망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웠던 시절이 지나 점점 내 가족의 안위와 나의 평안을 꿈꾼다. 그런 시점에서 저 질문은 다시 한 번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