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5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이 책을 읽기 직전 마침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 21>을 막 끝냈다. 그리고 동시에 대여섯 권의 책을 읽는 습관 탓에 엄기호의 <단속사회>를 함께 읽고 있기도 했다. 어떤 책을 읽은 후 관련된 다른 책이나 자료, 영화, 공연물로 승화된 작품을 찾아보면 책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책에서 받은 감명도 길고 깊어지지만 이렇게 우연히도 같은 주제로 관통하는 책을 보게 되는 일도 드물다.

<윤리21>는 칸트 철학을 바탕으로 일본의 근대를 돌아본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서구의 근대화에 나타난 심리적 문제를 조망한다. 엄기호는 21세기 대한민국을 다루고 있지만 서구적 의미의 근대화가 아직 진행중인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세 책은 모두 진정한 근대는 무엇이고 근대를 맞으며 인간들이 잃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사회학적, 심리학적 관점에서 던지고 있다. 궤를 같이 하는 주장들을 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세 사람 모두 비교적 진보적인 학자들로서 근대화라는 이름의 자본주의화에 경계심을 표하고 있는 바도 비슷하다.

 

물론 에리히 프롬은 근대의 가장 큰 문제점을 과연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졌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얼핏 보면 민중은 들은 중세의 농노적 상태에서는 벗어나 자유의지로 직업과 거주와 정치적 입장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 아니라 나아갈 길이라고는 오직 자본주의하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들은 자유라는 이름의 강요를 당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자유와 복종에 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경험으로서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에 대한 갈망은 인간 본성에 고유한 것인가?

그 갈망은 문화와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이 경험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와 개인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자유란 외부의 압박이 없는 것만을 의미하는가? 또는 무언가의 존재도 의미하는가? 그 존재는 무엇인가?

사회에서 자유를 갈망하게 만드는 사회, 경제적 요인들은 무엇인가?

자유가 인간에게 견디기 어려울 만큼, 그래서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애쓸 만큼 무거운 부담이 될 수 있는가?

자유는 많은 사람들이 염원하는 목표인 동시에 또 다른 사람에게는 무서운 위협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자유에 대한 타고난 갈망 외에 복종에 대한 본능적인 원망(願望)도 존재하지 않을까?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데 그렇게 강력한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복종은 항상 겉으로 명백하게 드러나 권위에 대한 복종인가, 아니면 의무나 양심 같은 내면화한 권위와 내적 강요 또는 여론 같은 익명적 권위에 대한 복종도 의미하는가?

복종에는 숨겨진 만족감이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 속에 지칠 줄 모르는 권력욕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에너지의 힘인가 또는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삶을 경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나약함이 그런 권력욕을 낳는 것인가?

권력을 추구하는 이 같은 노력을 강화하는 심리적 조건은 무엇인가? 이런 심리적 조건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가?

복종에 대한 원망(願望)도 존재하지 않을까? 복종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권위에 대한 것뿐 아닌 의무나 양심 같은 내면화한 권위와 내적 강요 또는 여론 같은 익명적 권위에 대한 복종도 의미하는가? 복종에는 숨겨진 만족감이 존재하는가? 권력욕에 얽힌 심리는?

 

에리히 프롬은 심리학자로서 사회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심리 변화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조명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사랑의 기술>과 <소유냐 삶이냐>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비교적 쉬운(에리히 프롬의 문체는 대체로 쉽고 편안하지만) 책이라 선생님들이 권했는지도 모르겠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상호관계와 진정한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을 주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꽤 진보적인 주장들을 담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파시즘에 관한 규정이다. 파시즘 탄생의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파시즘이 합리주의 탄생 이후발전했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무지에 의한 것도 이기심에 의한 악마성도 아닌 듯 보이는데 과연 정체가 무엇인가?’ 이와 같은 문제를 인간이나 권력의 구조적인 심리로 해설을 하게 되면 우리는 영원한 나락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좀더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이 글이 쓰여진 1940년대가 아니더라도 21세기 초반에도 세계 곳곳에는 우경화와 파시즘의 부활 조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프롬은 근대적 합리주의의의 근거 없는 낙관을 흔든 사람으로 막스와 프로이트를 평가한다. 프로이트에 대한 오해와 편견 혹은 몰이해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프롬의 말대로 프로이트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이라고 생각, 사회가 개인을 억합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이 심리학의 중요한 줄기를 잡고 있었던 데에 대한 건강한 대안으로 프롬은 사람의 좋은 성향이 사회적 과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 답정너인지는 모르겠으나 리처드 도킨스의 에서도 그러했듯이 개개인의 고민과 국지적인 문제들이 결국은 사회적인 문제에 기인할 뿐 아니라 해결점도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관점을 만나면 안도하게 된다. 프롬 역시 문화적 샘줄은 역사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심리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에리히 프롬을 평가할 때, 심리학에서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지금에야 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개개인들의 심리적 영향을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전에는 그저 개인의 병증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한 관점의 전환도 대단하지만 근대적 인간들이 겪을 사회심리적인 고독과 비인간화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프롬은 동료연대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흔히 근대는 중세의 무지와 어둠으로부터 탈출한 시기로 여기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근대화자본주의화’, ‘산업화를 의미하며, 다른 대안 없이 그렇게 근대를 맞이해 버린 사회의 문제를 공동체의 파괴’, ‘인간이 가져야할 본질적 세계의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화라는 것이 식민주의와 함께 왔고 숙고의 과정도 없이 바로 가장 집약적인 형태의 자본주의화가 이루어졌기에 문제들 역시 급격하게 나타났지만 프롬의 지적대로 이것은 우리와 같은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근대에는) 타인들의 기대에 순응하고 남들과 다르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에 대한 이 회의는 잠잠해지고, 어느 정도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대신 대가는 비싸다. 자발성과 개성을 포기하고 삶을 방해하게 된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죽은 존재다... 익명의 권위에 순응하고 자신의 자아가 아닌 자아를 받아들인다. 그럴수록 무력감은 더욱 심해지고 더욱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근대인은 겉보기에는 낙관적이고 창의적이지만 실제로는 깊은 무력감에 압도되어 있다....

 

이것이 프롬이 보기에 현대인들이 고독한 이유이다. 그런 고독으로부터 도망치는 길은 자본주의 사회에 깊숙이 동화되는 것이다. 엄기호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여기 나온다.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들이 스스로 나만의 감정과 판단을 버리고 전체가 같이 선택한 데에 동의하는 삶을 선택한다. 에리히 프롬은 그것을 자발적 복종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공동체나 유대의 문제가 아니다. 나만의 영혼을 버리고 기계적인 자동인형과 같은 삶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기계화, 몰영혼화되는 인간 존재는 가라타니 고진도 똑같이 지적한다. 물론 봉건시대까지의 삶도 정말 한 개인으로서 충만한 삶이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류의 역사 중에 과연 그런 시대가 있기는 했는지, 앞으로 오기는 하려는지도 부정적이긴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나 아니게살아가야만 하는 삶이 바로 자본주의적 삶이 아닌가 싶다. 문제를 지적하는 철학자들은 많은데 대안은 없다는 게 더 큰 비극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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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8-0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꽃선생님 오랜만에 진지하고 깊이있는 리뷰 반갑습니다. 담아갑니다. 무더위에 의미있는 독서로 더위도 잊으실 듯해요.

풀꽃선생 2015-08-10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안녕하세요. 알라딘에 자주 못 오지만 가끔 들어오면 늘 프레이야님은 잘 계시는지 궁금하답니다. 사실은 어떤 분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저 자신도 저의 서평을 올려놓고도 잊은 듯이 사는데, 늘 관심 가져 주심에 감사드려요.
위 서평은 급히 올려 오타와 비문이 많아서 수정했는데 담아갔다 하시니 부끄럽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