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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평점 :
술꾼들의 모국어 – 권여선
권여선의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90년대 이후 한국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읽은 소설이라고는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한강의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정도가 생각난다. 아이들 한창 성장기라 바빴고, 다른 책 읽느라 바빴던 이유도 있지만 90년대부터 소설이 ‘나, 나, 나’ 자신의 세계에 침잠하는 걸 보는 게 괴로웠던 것 같다. 물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읽혀야 하기에 주로 청소년 소설 등 관련 작픔을 많이 읽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한국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는 말은 틀린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여간 청소년 소설가가 아닌 이상, 그리고 신문, 주간지 책 소개 리뷰를 통해서가 아니면 한국 소설가 이름을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노라고 고백하는 바이다.
그러다가 어느 기사인지 리뷰인지에서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소설가, 필사하고 싶은 소설 등등에서 중 권여선 이름을 보았다. 이전에도 권여선의 ‘이름’은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잘 쓰기에 ‘소설가들이 뽑은 소설가’에 그 이름이 올랐을까, 언젠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궁금함을 일단 그이의 소설 대신 <술꾼들의 모국어>로 해소한 점, 소설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씀 전한다.
농담 삼아 나도 언젠가 술 이야기 좀 써보련다 호언장담했던지라 유명한 소설가가 쓴 술 이야기가 안 ‘땡길’ 리 없다. 읽어 보니 사실은 술 이야기가 아니고 술안주 이야기에 가깝긴 하다. 안 그래도 한국 사회의 먹방 문화에 넌더리를 내는 입장에서 어, 이게 아닌데 싶었다. 하지만 술안주 없는 술 이야기가 가능하겠나. 내가 모르는 남도 음식 혹은 권여선 가문의 독특한 음식도 등장하지만 음식 이야기를 떠나서 적어도 그의 맛깔스러운 문장에 입문하는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술꾼들의 모국어>는 술이나 음식에 대한 공감보다는 세사에 시달려 잠 못 드는 밤에 마음을 달래는 마지막 책(잠자리에서 여러 권의 책을 읽다가 겨우 잠드를 스타일인지라) 읽기 의식으로 쓰였음을 고백한다. 편안하고, 푸근했다. 그런 위안의 책 한 권은 꼭 있어야 한다. 가만히 보면 어쨌거나 그런 책은 꼭 문학작품-주로 수필-이었던 것 같다. 페르난두 페소아, 메리 올리버, 류이치 사카모토, 에마 미첼, 강맑 실...
하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술과 음식 이야기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것 같다. 같은 음식, 평범한 음식도 실감을 느끼게 하고 공감하여 그 술을, 음식을 차리고 맛보고 맛 보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기에.
책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장면으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어느 날인가도 어묵을 먹으면서 채소를 주문했다. 어묵 국물을 충분히 섭취하고 채소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데 뭔가 기분이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집에 가서야 내가 어묵만 먹고 채소만 받고 아무에게도 돈을 내지 않고 왔다는 걸 알았다. 곧바로 돈을 치르러 갔더니, 분식집 여자는 “그냥 서비스로 드셔도 되는데” 하면서 웃고, 채소가게 알바 여자는 “어머, 난 받은 거 같은데” 해서 주인 여자의 어김없는 눈 흘김을 받고, 나는 내 정신머리가 그나마 붙어 있는지 나가는 중인지 모르겠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