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평등 -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
토마 피케티.마이클 샌델 지음, 장경덕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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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가 한참 부상할 때 <21세기 자본>을 구입했지만 앞부분만 읽고 미뤄두었다. 책의 방대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자료와 통계로 글을 이어가는 방식이 낯설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화제가 된 신간은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읽어야 할 것 같다. 급변하는 세상에 그때의 통계자료는 벌써 낡은 것이 되어 있을 텐데 말이다. 하여간 그렇게 진정한 독서가 아닌 남이 쓴 리뷰나 기사로만 접한 피케티, 이번에 <기울어진 평등>을 통해 알고 보니 이렇게까지 진보적일 줄이야. 그는 스스로를 민주 사회주의와 연방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사회주의를 옹호한다고 소개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재미있게 읽어 이미 알고 있던 마이클 샌델보다 토마 피케티의 발견이 즐거웠던 책이다.

 

이 책은 마이클 샌델과 토마 피케티의 경제학 대담집이다. 짧고 간결하지만 공정한 경제의 방향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두 학자는 유럽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1/3 이상을 소유(미국은 더 함)하는 등 지금 전세계적으로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고 분석하면서도 과거의 역사와 비교해 본다면 세계는 더 평등한 쪽으로 움직여 왔다고 본다. 유발 하라리가 20세기 이후 세상은 전에 비해 더 안전해졌다고 주장했던 것이 떠오르면서, 어쨌거나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보다는 그나마 세상은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희망을 가져본다(물론 트럼프가 전횡하는 지금 시점에서는 어떤 식으로 희망을 이야기할지 궁금하긴 하지만 말이다).

 

두 학자는 불평등의 세 가지 문제점(이슈)을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접근권(교육, 의료 등), 정치적 평등, 인간적 존엄성으로 본다. 그러면서 이런 기본적인 평등권에 대해 탈상품화냐 급진적 재분배냐에 대해 논의한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모든 기본권들이 상품화되어 있는 현실을 벗어나는 게 중요한데, 아예 근본적으로 이것은 상품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고 선언하고 주장하고 쟁취하는 것이 탈상품화인 듯하다. 의료보험을 민간자본이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도록 하는 것, 교육을 공적 영역으로 두는 것 같은 것이리라. 급진적 재분배는 조세 정책을 통해 더 많은 세금을 걷고 더 많은 복지를 행하는 것이겠다. 뭐 이게 딱 이분화될 수 있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정치는 섬세하게 탈상품화와 재분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으니까. 물론 두 사람은 학자들이니까 좀 더 이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리라. 그들의 책이 많이 팔리고 강연이나 주장이 널리 퍼지고 영향력을 가질수록 세상이 달라질 테니까.

 

피케티는 말한다, ‘평등이야말로 현대사회가 더 높은 번영을 이룬 핵심이라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새로운 지구적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샌델은 전체 경제의 25% 가까이 되는 교육과 의료에서의 평등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사회적 국가 - 스웨덴, 독일, 프랑스, 영국 - 에서뿐 아니라 20세기 몇십 년 동안 소득세 최고세율이 8, 90%까지 올랐던 한때의 미국에서도 이때 노동 시간당 국민소득이 높았었다고 입증한다. 지금의 미국이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된 이유는 보수정권의 반평등 정책 때문도 있겠지만 민주당의 탈노동자화, 친자본주의화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한다.

 

지금 세상의 불평등을 부추기는 능력주의는 이제 미국 공화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당은 진보라기보다 중도 보수에 가깝다고 말하는데(진보/보수를 선악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당이 미국 민주당(미국 민주당, 유럽 사민당, 영국 노동당 등 원래는 노동 계급과 중하위 계층을 옹호하는 정당. 미국 민주당 집권 시 레이건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정당화함(클린턴, 오바마 등) 금융위기 때 오바마는 금융과 자본의 관계를 개조할지 복원할지 선택해야 했는데 그는 후자를 택했음.)처럼 보수화하지 않으면서 건강한 진보 정당이 출현하기를 기대해 봐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 샌더스가 열풍을 일으킬 때 응원하는 마음을 가져보았지만 결국 세력이 흐지부지돼 버리는 것을 보면서 1930년대에 불같이 일어났다가 억압 속에 사그라들었던 미국의 진보적 노동운동이 떠올랐다. 급진적인 진보는 늘 기득권 세력의 억압에 취약하지만 어떻게 시민들 속에 스며들어 함께 하느냐에 따라 소수의 한계를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미국에서는 실패한 이유가 뭘까? 아니, 그게 성공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지 않은 걸까? 그러고 보면 시민과 함께 민주와 진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경우가 흔치 않구나.

한때는 왜 우리에게는 프랑스와 같은 혁명의 역사가 없는가, 우리는 왜 늘 실패하는 민중의 역사만을 가져왔는가 안타까워했던 적이 있다. 조선 시대의 모든 민란이 그랬고 동학혁명이 그랬고 일제 강점기의 투쟁, 해방공간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 투쟁들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실패들이 밑거름이 되어 현대사에서 비민주, 반민주의 현장마다 시민들이 온 힘을 다해 맞서는 경험으로 계속 업그레이드되었다. 심지어 1987년 이후에는 그런 민중의 봉기(시민의 저항)이 성취감을 맛본다. 직선제를 쟁취하고 소고기 수입을 막아내고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탄핵시켰다. 지구상에는 그런 역사를 경험한 나라들이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실패의 역사를 가졌다고 슬퍼했던 내가 틀렸던 거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샌델이 대입에서 추첨제를 주장하는 장면이다.

스탠포드 등에서는 한 해 소득이 9, 10만 달러 못 미치는 가정 학생들이 수업료나 기숙사비, 식비, 책값 등을 내지 않게 하고 있지만 문제는 소득 하위 50% 가정 출신 학생들 다 합친 것보다 상위 1% 가정 학생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계급 계층이 교육적으로 대물림되는 것은 전세계적 현상이겠지만 미국이나 우리나라는 더 심하다.

이런 미국 대학에서 저소득층에 대해 특례 입학 등 공개적 압력과 도덕적 압력이 필요하다면서 센델은 대입 추첨제를 제안한다. 하버드나 스탠퍼드 대학의 한 해 응시자가 6만 정도이고 입학 정원은 2천 명 정도인데 응시자 모두를 대상으로 입학사정위원회가 3만 명 정도를 추리고 그들 중 2천 명을 추첨해서 뽑자는 것이다.

예일대 대니얼 마코비츠 역시 대학들이 입학 설계할 때 저소득층 자녀가 전체 정원 2/3가 되도록 설계하라고 주장한다. 이 제한을 지키지 않으면 제재를 받는 것으로 하자면서.

 

얼핏 허황돼 보이는 이 제도의 장점은 당신의 입학에 많은 행운이 따랐다는 사실을 일깨울 것이고 떨어진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란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경쟁이 과열되는 것은 아마도 인재들이 많이 입학하고, 졸업하면 좋은 곳에 취업이 잘 되고, 뭐 이런 것들이 계속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입학의 높이를 낮추면 경쟁도 낮아질 것이다. 이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는 제도가 추첨제라는 것이다. 물론 극강의 경쟁과 성취로 자본주의 세상의 성장을 최고조로 올려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반대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는 늘 그랬다. 이게 옳지 않겠냐고 설득하는 과정은 필요하지만 그런 주장에 설득되어 가만히 앉아서 기득권을 내주는 왕, 귀족, 부르부아, 부자들은 없었다. 그걸 얻어내는 과정에는 설득, 여론의 형성, 개혁뿐 아니라 부단한 투쟁, 때로는 혁명이 필요했다. 자본주의의 긴장을 낮출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대입 추첨제가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신박한 주장이긴 하다. 우리나라도 오직 시험 성적만이 대입이든 취업이든 입문의 기준이 되고 있는데 성적(능력)은 부족할지라도 인성이나 적응력에서 아쉬운 인재들 그들은 또한 출발선부터 불공평하게 경제적으로 뒤처진 집안 자식일 가능성이 높다 을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무엇보다 센델의 말처럼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그것을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의 문제로 여기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만약 그의 주장대로 입구를 넓히고, 그러니까 기준점을 하향하여 성적이 좀 낮더라도 다른 장점을 가진 젊은이들이 아예 좁은 경쟁률에 희생되지 않도록 다음 단계에서는 추첨을 통해 대입을 결정한다면, 대학의 몸값 자체가 그렇게 높을 이유도 없다. 과장된 긴장을(말하자면 어깨뽕) 빼는 데 유용한 제도가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렇게 우수한 대학의 희소성을 희석하면서 서로 다른 계층이 무심코 어울리게 하는 것은 공유성을 되새기게 하는 효과도 따라온단다. 최상위층 자녀들과 빈곤층 자녀까지, 빈부격차를 넘어 젊은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는 학교가 최적의 장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공간의 차별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적어도 군대와 학교만큼은 겉으로라도 공평하고 공정해야 하고 모든 계급 계층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또한 이 공간에서의 경험이 공정과 공평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확고히 하는 데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퇴행을 말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진보적인 목소리의 학자들이 중심을 잡고 있는 서구 세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의 학계와 대학가는, 가장 가난하고 허약하던 80, 90년대야말로 가장 진보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어떨지라도 적어도 학계에서는 정치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평등을 논할 수 있던 그 시절은 어떻게 몰락했는가. 군부독재에 의한 탄압으로 진보적 목소리가 소멸한 것이 아니다. 취업과 돈과 연구비 경쟁,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 경쟁적 취업에 젊음의 열정도 학구열도 말라 죽어버린 젊은 대학생들의 무관심 속에 대학은 더 이상 이상을 논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여러 논의들은 허공에 둥둥 뜬 이야기,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우리나라야 말로 불평등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곳 중 하나일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다는 건 아니다. 정치적 현실은 불안하긴 해도 지금 2026년 대한민국 정치의 방향이 아주 불길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한계가 있을지라도 평등과 공정의 길로 나아가려는 노력들이 있으리라. 그걸 막으려는 세력들이 아직 준동하지만 이제는 그 세력들에 그저 굴복만 하지 않는 시민의 힘이 수십 년 축적되어 대한민국을 지탱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진보적인 목소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러니까 진보적인 학자들이여,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아도 용서할 테니, 조금은 땅에서 너무 발이 동동 떠 있는 것 같아도 들어줄 테니 힘을 내서 더 나은 세상, 더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희망을 잃지 말라고, 통계든 역사든 경험이든 주장이든 모아서 이론으로 만들고 책으로 쓰고 강연을 하고 대담을 하며 학자의 역할을 다해 달라. 우리 세대는 이제 늙고 있지만 내 자식 세대, 더 어린 제자들의 세대,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더 어린 세대의 아이들이 아직 누리고 살아야 할 시대는 제발 덜 아프고 덜 불공정하기를, 자괴감과 열패감의 상처를 덜 받는 세상이기를 간절히 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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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순간이 화학으로 빛난다면 - 원자 단위로 보는 과학과 예술의 결
데보라 가르시아 베요 지음, 강민지 옮김 / 미래의창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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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자연/천연의 것은 좋은 것인데 현대인의 삶은 화학물질과 화공약품에 뒤덮여 사느라 비참한 것처럼 말한다. 나 역시 욕실과 화장대에 가득한 좋은 물건들을 열심히 사용하면서 그런데 저것들은 모두 화학물질 범벅이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화학에 대해 그렇게 일천한 생각을 가진 게 고작인 내가 화학자가 쓴 에세이를 읽었다. 요즘엔 왜 이렇게 장르를 합종하는 멋진 에세이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다루는 분야는 전문적인데 얼마나 문학적인 필치로 그것들을 옮겨 담는지, 게다가 그 안에는 얼마나 인간적인 서사들이 담기는지, 세월이 가면 읽을 만한 책(고전)들은 줄어들 줄 알았건만 어디서 이렇게 새롭게 멋진 글을 쓰는 작가들은 계속 태어나는지 모를 일이다. 미술, 과학, 건축, 환경, 음악, 농사... 그 모든 분야에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 데보라 가르시아 베요는 화학자이지만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근무한단다. 그러고 보니 미술은 예술이기도 하지만 화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걸 새삼 깨닫는 게 우습고 재미있다. 안료들, 그림의 변화, 이런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기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별로 없는 영역일 수 있으니까. 그래, 인생은 늘 그렇다. 대개는 자기 입장에서만,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고 듣고 인식한다. 그 한꺼풀 아래 숨겨 있는 많은 사실과 진실을 접할 때 우리는 내가, 우리가, 인간이 얼마나 얕은 존재인지 새삼 깨닫는다.

 

저자가 소개하는 미술 작품들은 책 속에 삽화로만 소개가 되어 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도 그랬다. 저작권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게 좀 답답하기도 했지만 거꾸로, 책을 읽으면서 계속 검색해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떤 작품은 내 취향이 아니고 어떤 작품은 검색조차 되지 않았으며 어떤 작품은 매우 생경하다. 그래서 더더욱, 세상은 넓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이미 십수 년 전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적 있어서 다시 또 갈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동생이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빌바오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들으니 나 역시 한 번 더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설렌다. 우울감을 달래려 재미 삼아 공부하고 있는 스페인어, 빌바오에 가서 몇 마디라도 써 보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건축학적으로도 아름답다는 그 미술관에 가서 여기 근무한다는 저자의 책을 읽었노라 회상도 좀 하면서. 그리고 책 속에 소개된 사르가델로스도자기도 꼭 보고 싶다.

 

저자는 화학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말한다.

화학 덕분에 단열성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농업, 비누, 물 염소 처리 등 질병에 맞설 수 있는 물질들을 이용할 수 있다면서. 화장대 위에 놓여 나의 극건성 피부를 촉촉하게 달래주는 화장품들에 품었던 미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인공이 아니어도 자연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화학적 작용들이 있을뿐더러, 인공의 삶을 더 낫게,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고맙고 다정한 화학의 손길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저자는 과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세상은 아름다우면서도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재미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치거나 죽어 없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다. 나는 무엇으로 미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었던가. 가끔씩 쓴 글들, 밤마다 조금씩 읽던 문학작품들, 어쩌면 돈이나 성취와 별로 관계가 없었을지도 모를 순정한 세계가 사실은 사람들을 살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 진리, 영적인 것 등등.

 

색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마침 그 대목을 읽고 있을 때 팟캐스트에서 색상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학생 때 아버지가 어디서 색상표를 얻어다 주신 적이 있었다. 어떤 용도인지 알 수 없지만 붓에 물을 묻혀 색상표를 문지르면 물감이 묻어나와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아들이 시각미술과 학생일 때도 그런 색상환을 가져온 적이 있다. 그건 물감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아마도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팬톤 색상표 같은 거였나 싶다. 엄청나게 많은 물감 색을 다 외우던 미술학도는 지금 전공과 정반대의 삶을 꿈꾸고 있지만 나는 정교하게 조금씩 다른, 많은 초록들의 이름이 적혀 있던 아들의 스케치북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며 미술 공부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십수 년 전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책 속에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오래된 책 냄새 이야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래된 책 냄새나 변색, 혹은 그 물성에 특별한 감회를 가질 것이다. 저자는 그게 사실 종이 성분 중 하나인 리그닌때문에 일어나는 화학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를 나는 먼지 냄새가 섞인 볏짚 혹은 소쿠리 냄새랑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서구의 그는 그걸 아몬드 향 혹은 바닐린 향이라고 한다. 우리 집에도 그런 냄새를 풍기는, 바스라질 것처럼 누렇게 바랜 오래된 책들이 있다. 1982년에 출판된 <데미안> 같은 것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한 화학의 세계를 사랑하는가 보다. 곳곳에서 그런 흔적들을 보았다. ‘모든 것은 100개 남짓의 화학 원소로 설명이 가능하다.’ 화학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도 한다. 질서를 사랑하는 바 과학자다운 시선이지만 그렇게 자신의 공부를 사랑하는 마음의 진정성에 깊은 경의를 느낀다. 자기 삶에 진심인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어쩌다 보니 이 길로 흘러들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살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든, 타고나기를 그 길 아니면 안 되게끔 태어나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살고 있든, 자기가 하는 일에 진심으로 열정을 느끼고 자부심을 가지고 미칠 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저자는 혹시 예술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면서 파사로의 말을 빌려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평범한 곳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한다. 그런 안목을 지니고 살면 행복할 것 같다.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그걸 멋진 글로 풀어내 우리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는 작가는 행복할 것 같다. 그의 문장력은 탁월하지만 특히 자신의 조부모님에 대한 감회를 담아 그분들은 나에게 흑백의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그분들이 있는 묘지에 가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라고 쓴 문장을 읽으면서 아련해졌다. 나이 듦, 삶의 허망함, 죽음에 대한 준비에 대해 점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점에서, 나이 든 존재, 사라진 존재에 대해 저렇게 통찰할 수 있는 후손이 있다면 늙거나 죽는 일도 아주 쓸쓸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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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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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현실이어서 얼얼하기 짝이 없던 2024년 12월의 계엄은 아직 예술로 승화되기엔 너무 이른 이야기일까. 그런데 계엄 직후 재빠르게 바로 이 이야기를 쓴 소설가가 있다. 그는 기성 소설가였고 심지어 고작 2025년 5월에 발표된 한겨레 문학상을 받기까지 했다. 죽은 이들이 나무말뚝처럼 말뚝이 되어 돌아온다는, 비현실적이어도 너무 비현실적인, 요즘 그 흔한 판타지라하기에도 너무 어처구니 없는 설정의 그 이야기가 계엄을 담아냈단다. 궁금할 수밖에. 심지어 웃기고 재미있다고?

 

한 평범한 직장인이 어느 날 갑자기 납치를 당하고 서울 시내 곳곳에 죽은 이들이 시화된 말뚝들이 나타난다. 그걸 빌미로 정부가 계엄을 때린다. 이런 황당한 설정 사이에 알알이, 그때 죽은 이들은 도저히 사람들 마음 속에서 지워질 수 없는 억울한 죽음들이고 그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계엄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계엄의 부당성과 더불어 선량하고 가난하고 무해하고 억울한 사회적 죽음까지 다루고 있는 것이다. 무거운 주제는 유머러스한 설정과 말투를 입고 있다.

 

너무나 황당해서 어떤 황당한 구성으로 이야기를 써도 이상할 것 없었던 2024123일의 계엄, 많은 이들이 이걸 소설로, 영화로 만들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창작의 세상은 아직 조용하다. 계엄이, 내란이 어떻게 단죄되는지 지켜보아야 할 거다. 물론 이미 많은 창작자들이 이 이야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현실과 판타지, 합리와 황당무계가 결합된 대환장의 한국문학, 한국 영화, 창작의 시대가 열릴 것 같다. 이제 계엄 이야기라면 지겹다 할 만큼 많은 이야기를 만나게 되리라 기대한다. 그 첫발을 먼저 내딛은 김 홍 작가의 상상력에 칭찬을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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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뇌과학 - 치매, 암, 우울증, 비만을 예방하고 지친 뇌를 회복하는 9가지 수면 솔루션 쓸모 많은 뇌과학 11
크리스 윈터 지음, 이한음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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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우연이 아니다>를 읽다가 여기까지 왔다. 말 그대로 수면의학에 대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왜 읽는가, 생각해 본다. 가끔 잠을 설치고 평시에도 자주 깨는 편이긴 하지만 불면증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는데, 또 이런 책을 읽는다 한들 나의 불면에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을 텐데(왜냐하면 근원이 사라지면 사라질 불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책을 자꾸 집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식이 전부는 아니지만 때로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한다. 가령, 혈압약을 먹기 시작한 두 해 전, 이 약이 불안을 누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던 일처럼(그 약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는 약간의 알러지 때문에 비염약을 조금 복용하고 있는데 마침 이 책에도 그런 항히스타민제가 잠을 잘 오게 한다는 사실이 나온다. 어쩐지 최근에 중간에 깨는 일이 별로 없더라니. 하지만 저자는 내내 수면제에 의존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쩌면 저자는 내가 잘 못 잔다는 생각은 말 그대로 생각, 즉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여유 있게, 너무 많이 못 자도 괜찮다, 어쩌면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잘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그 내용이 내게도 조금 위안이 되긴 했다. 새벽에 일어나 뒤척이다 수면량이 모자란 날은 다음 날 직장에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럴까 봐 두려워 어떻게든 자려 애를 쓰면 더욱 괴롭고 억울하다. 하지만 크리스 윈터의 말처럼 다음 날 낮에 약간의 휴식으로도 극복할 수 있는 일일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하다. 대안을 갖고만 있다면.

 

각종 신경전달물질의 역할을 알게 된 일, 약물들에 대한 상식 수준의 정보도 좋다.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것이다. 잠에 대해 부채 의식을 가질 필요도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푹 자고 쌩쌩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좋지만 정 안 되면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겐 책이 있어서 혹시 깨어나는 새벽이 있더라도 그걸 견뎌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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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최강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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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유튜브에서 보긴 했지만 최강욱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랐다. 그가 사면되기 직전에 이 책을 냈다 할 때도 유명세에 올라타 책을 내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낸 사람이 쓴 책을 보수 진영의 사람들이 선택해 줄까 싶기도 했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지 못 하는 책의 한계에 회의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학교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을 읽고는 눈이 번쩍 뜨인다. 이건 중학생에게 읽혀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쉽고 재미나게 쓴, 그러면서도 알찬 지식으로 꽉 찬 교양서라니, 역사와 정치와 철학, 많은 예시들까지.

 

20대뿐 아니라 10, 특히 남학생들이 우경화 아니 극우화되고 있다. 이건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현장에서 내가 매일같이 보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지난 번 독서 시간엔 소년 정치하라라는 책을 들고 내게 항의한 학생도 있었다. 편향된 거 아니냐고. 언론의 진실성과 보도윤리에 대해 가르칠 땐 딱히 어느 매체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언론도 정치 편향이 있지 않냐고 질문한 학생이 있다. 그런 질문의 의도는 대개 반진보, 그들 말로 좌빨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광주항쟁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간첩 운운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다.

 

그런 학생들에게 이 책을 건네며 읽어 보라고 한다면 엄청난 모험이 되겠지? 나는 낙인 찍힌 교사가 될 것이다. 아니, 생전 학생들과 대립각을 세워본 적이 없었던 내가 요즘 가끔 나를 싫어하는 학생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단지 내가 늙은 교사라서만은 아닌 것 같다. 광주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 나와 경계를 세우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들에게 이 책을 건넬 용기는 솔직히 없지만 마음은 간절하다. 아마 현실적으로 나는 윤어게인을 주장하는 친구에게 윤옥에in’이라고 농담으로나마 맞설 수 있었던 태성이 같은 학생에게 이 책을 권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 난 좀 비겁한 교사다. 군부독재 시절에도 두려움 없이 광주를 가르쳤던 내가, 이제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은 10대의 극우 혐오 발언을 일삼는 제자들이 되었다.

 

그런 현상을 두고 이 책에서는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인용으로 대신했다. 나는 신념이라 생각하고 상대방은 자는 척하는 사람이라고 서로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면서도 어느새 가족도 스승과 제자 사이도 가르고 있는 한국의 진영논리에 절망한다.

 

그리고 ‘10분 정도 차근차근 자기가 진보(보수)인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질문을 만났을 땐 나 스스로 각 분야에 대한 나의 사고, 그 근거들을 한 번 정리해 보았다. 적어도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근거를 대 상대를 설득/제어할 수 있어야 토론이라고 가르쳤던 것은 바로 나이니까.

 

일단 이 책은 진보 /보수의 개념 정의를 먼저 내린다. 그러기 위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한 번 쭉 훑어주는데 그 부분이 매우 유용하다. 그 부분만 청소년에게 읽혀도 좋을 정도이다.

어른들은 아마도 자신이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할 이 민주주의의 역사’, 저자의 말대로 안다고 생각하는 대로 어린 사람들에게 술술 말해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계몽주의는 진보주의의 이념적 기반이 된다는 대목에서는 새삼스러움을 느꼈다. 계몽이라는 말은 이미 굳어진 말이고 때로는 조롱의 언어가 되었지만 사실은 근대로 넘어오는 데서 매우 중요한 단계의 철학적 혁신이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이성주의, 합리주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 존중, 모든 인간의 평등, 인류의 진보를 믿음, 이런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개념들이 거기 담겨 잇었다. 오래 전 책을 읽다가 계몽주의가 대두되면서 여자와 어린이를 때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창한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 대혁신이었던 시절이 있다. 우리도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거겠지만.

 

진보/보수의 기준은 필요한 사회 변화에 대해 천천히 신중하게 최소한으로(The conservative)/빠르고 과감하게 전면적으로 (The progressive)’로 나눈단다. 동료들과 농담삼아 나는 정치적으로 진보이나 생활에서 보수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본 적이 있다. 삶과 정치적 지향이 달라서는 안 되겠으나 자본주의 극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머리로는 비록 나눔과 평등의 가치를 지녔다 해도 내 한 몸 내 가족의 안위와 안정을 위해 돈을 모으고 부를 축적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 책에서 언급하는 진보도,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진보도,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그 무엇은 아닌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이제 진영을 나누어 싸우기도 머쓱할 만큼 섞였다.

 

그 개념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의 민주당을 진보진영이라 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우리나라 민주당은 중도 보수에 가깝다. 본인들도 알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지향은, 지금은 소멸하다시피한 전보정당들에 더 가깝다. 그러나 생활 보수에 가까운 나는(세금을 내는 데에 너그럽고 재산 축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할 뿐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거부하지 않으니) 대부분의 선거에서 중도 보수 정당에 투표한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진보의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기련다. 저자가 의도를 담아 단 제목 그대로 이로움을 좇기보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알량한 이로움에 연연하거나, 그것을 내 능력으로 얻었다고 믿는 오만을 부리기보다 멀리 보아 무엇이 의로운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려 한다. 그런 성찰 때문에 때로 비교적 안락한 삶에 대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가장 치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의 할 일은 무엇인지 찾아 그걸 해내려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어떤 이는 총으로, 어떤 이는 펜으로 어떤 이는 꽃으로도 제국주의와 맞섰다, 내가 갖고 있는 세상의 희망을 일굴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계엄 날 일찍 잠든 탓에 국회에 달려가지 못했던 우리 부부는 뒤늦게 그때 우리가 잠들지 않았다면 국회로 달려갔을까라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게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늘 우리는 그런 고민을 하고 산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을 현재에 기대도록 만들지만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사람은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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