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하도 셜록홈즈에 빠져있다보니까.. 내가 대체 왜 백년도 더 된, 약간은 쉰내나는 할배랑 같이 한달넘게 보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셜록홈즈 영화는 나오자마자, 크리스마스 이브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보여주겠다고 꼬드겨서 아무 사심도 없는 남정네 둘을 이끌고 영화관으로 향해더랬다. 셜록홈즈, 매체가 무엇이건간에 보지 않고는 못배기는 중독같은 캐릭터....
솔직히 시발점은 영화였다. 영화에서 셜록홈즈는 안하무인에 왓슨에게 거의 동성애적 집착을 보여주고 격투기에도 능한, 지금까지 머리속에서 아로새겨져있던 셜록홈즈와는 너무 달라서 원작을 확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경성탐정록>과 이제 읽으려고 하는 <셜록홈즈의 7퍼센트 용액>, 이거 다 읽고 나면 어떤 패스티시 작품을 찾아 읽어볼까.. 올해는 셜록홈즈 완전정복의 해로 만들어야겠다.. 등등 여러 홈즈 관련 생각이 머리속에 꽉 차있다.
수 많은 셜로키언과 수 많은 패스티시 작품들, 혹은 셜록홈즈와 왓슨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 담긴 작품들까지.. 대체 백년이 넘도록 어마어마하게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게 된다.
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난 서술 형태에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셜록홈즈 시리즈는 대부분 왓슨의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서술된다. 왓슨이 셜록홈즈와 같이 살면서 그를 방문하는 손님을 맞는것부터 시작해서 홈즈의 고민, 홈즈의 추적까지 사건 해결의 전반적인 모습을 바로 곁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물론 가끔 범죄자의 인생을 사건의 시작점부터 재구성하는 연대기적 서술도 있긴 하지만...)
시리즈를 읽다보면 내가 왓슨이 되어 작품에 몰입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왓슨이 '나'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독자에게 왓슨과의 일체감을 부여한다. 한마디로, 작품 밖의 독자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왓슨의 '나'와 서서히 동화되면서 셜록홈즈와 함께 사건을 뒤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해지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셜록홈즈 바로 옆에서 왓슨이 된 것처럼 셜록홈즈에게 사건에 대해 묻기도 하고, 셜록홈즈가 트릭에 대해 왓슨에게 질문을 던지면 꼭 독자인 나에게 던지는 것 같이 머리를 굴리게 되는 경험!!! 내가 베이커가 221B번지에 셜록홈즈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은 환시적인 체험, 그것이 셜록홈즈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이 아닌가 싶다.
내가 왓슨이 되어 셜록홈즈에게 애증의 눈길을 보내게 되면서 홈즈가 코카인에 절어살아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셜로키언으로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싶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