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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사각 - 201호실의 여자 ㅣ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집착과 도착의 차이는 무엇일까. 집착의 다음 단계가 도착일까, 아니면 집착은 어느정도 긍정적인 뉘앙스가 있다고 보아야할까. 종이한장 차이가 아닐까. 게다가 집착이나 도착은 전염되는 성질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좋아하는 분위기가 날로 농후해지고 있으니.... 도청, 몰래카메라, 도촬 등등...
근래에 본 캐릭터 중에서 최고로 찌질한 남자 오사와 요시오가 등장한다. 뭐가 이렇게 찌질한지 오사와가 살고 있는 건너편 연립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몇개월을 못버티고 오사와의 눈길을 피해 이사가기 일쑤라 방값은 다른 방에 비해 턱없이 싸다. 한명은 버티다 못해 자살까지 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기지도 못할 알코올에 빠져 알코올 중독 전문 정신병원으로 실려가기까지 한다.
어느날 시미즈 마유미라는 여자가 건너편 연립주택에 이사오고부터 오사와는 모든 것을 마유미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시체를 마당에 묻게 된것도 마유미의 도발 행위 때문에 그런 것이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주먹질을 하게 된 것도 지금까지 도발하던 마유미가 창문을 꼭 닫아걸었기 때문이요, 번역일이 잘 안되는 것도 마유미가 벌거벗고 자신의 방에서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것참... 다락방에 기어올라가서 건너편 집을 8배율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주제에, 그러다가 우연히 술을 마시게되어 다시 알코올 중독이 되는 주제에 모든 것은 마유미 때문이라니... 씁쓸하다. 오사와는 묻지마 범죄에 희생되는 젊은 여성들마저 그 여성들이 원인을 어느정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남성이다.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은 아닐지라도 지금도 성폭력 사건을 여성에게 일정부분 책임을 전가하는 남성들의 의견이 존재하고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에는 정삼참작을 해주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판사도 있다. 물론 모두 남성이다. 젠장. 한 인간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성폭력을 피해자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이해해주는 사회가 대체 어디있단 말인가.
오사와는 여전히 훔쳐보는 행위에 집착하고 있는 찌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마유미의 불륜도 임신으로 그 대단원의 막이 내릴듯이 보이고, 소네는 여전히 마유미의 방을 들락거리면서 그녀의 일기를 훔쳐보면서 자기는 정의의 사도인양 굴고 있고 마유미의 불륜 상대의 부인은 실종상태고 오사와에게 마유미의 누드 사진으로 협박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음... 서술트릭의 매력을 한껏 살리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비밀도 조금 평범했고.... 마유미의 일기가 현재진행형처럼 보이지만 어떤 트릭이 있으리라는 것은 예측가능했고, 잘 설명할 순 없지만 전작 <도착의 론도>와 같은 쫓고 쫓기는 자 사이의 신나는 엎치락뒤치락도 없고, 그저 무난하게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만한 일, 조금은 단순한 치정 관계와 어머니의 복수와 관음증을 가진 사내가 한데 뒤엉키면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서술이 조금 평이했다.
뒤돌아서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어머니가 있었고 그것이 야기한 일련의 사건들은 모공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용의자들의 도착증을 이용한 계획은 좋았으나 그 도착의 사각에 빠진 것은 그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이 책은 오탈자가 너무 심하다. 눈에 매우 거슬린 것만 20개가 넘고 마유미라는 이름을 한번은 미유키라고 써있기도 하고... <도착의 론도>때는 안그러더니, 출판을 너무 서둘렀나? 이렇게 오탈자가 심한 책은 최근들어 찾아보기 힘든데... 출판사가 너무 성의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반전이랍시고 뒷부분을 봉인해두었는데 굳이 그럴필요까지 있나 싶다. 별 한개를 여기에서 깎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