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 기념으로 보게된 셜록홈즈. 

마돈나의 전남편인 영국인 가이 리치가 감독하고, 아이언맨의 히어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셜록홈즈, 이름마저 달콤한 주드 로가 왓슨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셜록홈즈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하는 영화인데, 감독이나 배우들이 출중해서 개봉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셜록 홈즈 원작을 본지 좀 오래 되어서 셜록홈즈나 왓슨의 캐릭터가 안개에 싸인 것처럼 머리 속에 그 이름만 맴돌지만 확실히 격투기에 능숙한 셜록홈즈는 좀 의외였다. 왓슨은 결혼을 선언하고 셜록홈즈에게 이별을 고하지만 홈즈는 그 결혼을 어떻게 해서든 망치게 해서 자신의 곁에 계속 왓슨을 두려고 하는 철없는 떼쟁이에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추리에는 능하지만 현실감각은 거의 없는 나사 많이 빠진 천재 탐정에, 격투 실력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지만 자신을 번번히 물먹이는 예쁘고 섹시한 여성범죄자에겐 한없이 약하다. 그에 반해 왓슨의 캐릭터가 홈즈의 보조자에 보호자처럼 보인 것도 원작에는 없는 것 역시 확실해 보인다.  

원작에 대한 기억이 너무도 오래 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셜록홈즈라는 고유명사에 대한 사견은 접어둘 수 밖에 없었고, 스토리 자체도 원작에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사실상 주인공이 영국 베이커가에 사는 천재 탐정이라는 점만 빼면 홈즈가 아니더라도 영화 관람에는 큰 문제가 없긴 하지만.....

영화가 클라이막스로 치달으면서 홈즈가 풀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사건을 해결하고 악인이 정의의 심판 앞에 서게 되는 결말을 보면서, 홈즈가 이 영화의 타이틀롤이 아니었다면 눈이 높아진 관객들에게 엄청난 욕만 먹었을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감독이 의도한 바라고 난 믿고 있는데, 셜록홈즈라는 원작의 분위기, 홈즈가 사건을 풀어가는 그 올드한 추리의 서술의 결과로 인해 영화의 결론도 원작의 올드함, 홈즈 특유의 이야기 진행방식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아닐수도 있다. 감독의 역량부족이 가져온 대참사일지도.. 난.. 의도한 바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쨌든간에! 재해석한 홈즈는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그만큼 홈즈라는 옷을 자신의 몸에 맞게 재단해 낸 것 같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왓슨에게 징징거리거나 냉철한 표정으로 추리를 하는 그 모습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만의 홈즈였다. 게다가 시종일관 유쾌한 영화였다. 홈즈와 왓슨이 티격태격하고 홈즈의 어처구니없는 실험 등을 보면서 관객들은 군데군데 웃어재낄 수가 있었다. 개그콤비랄까...ㅎㅎㅎ 

뭐.. 원작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격투기에 능한 홈즈, 개그콤비 홈즈와 왓슨, 사랑에 빠진 홈즈 등등이 불쾌하고 견디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뭐 다 그런것 아니겠는가. 원작에 대한 애정이 높으면 높을수록 원작의 변용은 참기 힘든 것이니까.

난 재미있게 봤으니 그걸로 족하다. 두시간 금방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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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2009-12-2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편에서 모리아티 교수로는 브래드피트가 거의 확정적! 이게 무슨 호사란 말이냐~~ㅎㅎ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
박태원 지음, 천정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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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
"사람이 제 몸을 애끼구 오래 살구 싶어하구 하는 것이 그게 모두 희망이라는 게 있기 때문인데...... 내게 무슨 희망이 있단 말씀이유?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모렌데 무슨 여망이 있단 말씀이유? 약이나 좀 팔리면 막걸리나 사 먹구 담배나 좀 사 먹구 그럴 뿐인걸...... 흥!"-25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음료 칼피스를, 구보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설한 색채를 갖는다. 또, 그 맛은 결코 그의 미각에 맞지 않았다. 구보는 차를 마시며, 문득, 끽다점(喫茶店)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음료를 가져, 그들의 성격, 교양, 취미를 어느 정도까지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본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그네들의 그때, 그때의 기분조차 표현하고 있을 게다.-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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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2009-12-2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민지 시대에도 다방에서의 차라는 것이, 욕망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그랬던 것이다. 근데 난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안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못 마시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
박태원 지음, 천정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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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원 단편선의 첫 작품 <수염>에서 주인공은 한국인 특유의 내시같이 듬성듬성한 콧수염을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핀잔을 들어가며 길러보겠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면도해 주는 이발사가 '이거.. 기를 생각이십니까?'라고 대놓고 물어보진 않지만 창피함을 무릅쓰고 콧수염을 지켜내다가 결국 멋들어진 수염이 자리잡은 것을 보고 희열을 느끼면서 단편은 마무리된다.  

  초창기 단편이라 그런지 그 이후의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일관성과는 조금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은 <수염>이다. 하지만 이 단편소설을 맨 처음 배치된 것 역시 이해가 된다. 박태원은 약국을 경영하던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라난다. 이광수에게 문학을 사사받을 정도로 엘리트로 성장하고 작가가 된다. 그런 그가 사조가 아닌 유행이라는 측면에서의 모더니즘의 광풍 속에서 콧수염과 지팡이와 양복을 추구하면서 패션의 선두에 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리고 박태원과 거의 동일선상에 있는 화자가 수염을 기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이 단편선의 시작점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이후 박태원의 행보로 선택된 나머지 단편들은, 작가가 되었고 그래서 모더니스트라고 자칭하고 다녀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소설가가 되었지만 식민지인이라는 현실 속에서 모더니즘의 키워드라 할만한 욕망은 억압을 받게되고 점점 소설 속 화자들은 이중성을 겪으면서 번민하다가 결국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체념하거나 길들여진 것에 순응하고 마는 식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는 세속적 욕망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가족과의 행복, 돈, 여인의 사랑등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 허전함을 벗을 통해 찾으려 다방을 하루에 4번이나 들락거리는 인물의 하루가 그려져있다. <애욕>에서는 구보의 친구 하웅에게 여자가 생겼는데 좁은 종로바닥에서 그 여자에 대한 소문이 많이 안좋다.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면서 하웅은 그저 심심풀이 땅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웅은 고향으로 내려가 어머니께서 점찍어둔 처녀와 결혼하여 정착하려고 하는데 결국 그 여자가 찾아오자 다 내팽겨치고 그 여자를 만나러 뛰쳐나가면서 끝이 난다. <길은 어둡고>에서는 카페 여급일을 하는 여자가 같이 사는 샌님같은 남자가 지긋지긋해서 군산으로 떠나려고 하지만 결국 군산행 기차에서 내려 다시 그 남자가 있는 집으로 되돌아가고, <비량>에서는 <길은 어둡고>와는 반대로 남자가 동거하는 카페여급이 지긋지긋해서 동거를 그만두려다 결국 현실에 순응하고 만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현실에 대해 지쳐가지만 결국 한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생활인들의 이야기가 이 단편선의 주를 이루고 있다. 주변인물들은 하나 같이 세속적이어서 아버지는 매춘하는 딸을 모른척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다 식민지 시대라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려도 될까. 자본주의 사회라면 그곳이 식민지 상태든 아니든 가난한 예술가가 있고, 그 주변에 성을 파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사람 때문에 한끼 겨우 먹어 삶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예술가랍시고 자본주의의 총아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 단편선에서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 법한 사람들을 서술하고 있다. 현실이 마음에 안들어 벗어나보려하다가 벗어나게 되더라도 다시 돌아가고 마는 소시민이 내가 아니라고 하지 못한다. 욕망은 있지만 그 욕망을 실현시킬 수 없게끔 사회는 제기능을 못하는 것부터가 현재와 식민지 시대와 다를바가 없다.

  식민지라는 상황이 욕망과 현실이라는 이중성을 더욱 비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막 자본주의와 모더니즘이 흘러들어온 식민지 한국 사회에서 억압받고 강제된 자본주의와 모더니즘은 더욱 비틀어진 모습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식민지 한국이 아니라고 해도 비루하다고 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다. 돈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은...... 

  특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광장>을 쓴 최인훈 뿐만 아니라 여러 작가들에 의해 패러디된 작품이다. 왜 그렇게 재해석되고 재창조되는지 이 단편선을 읽어본다면 알 수 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그것을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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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도서관 2010-07-2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동대문도서관 입니다^^
『근대의 책 읽기』 저자 천정환 교수님의 강좌 <독자, 그들의 대한민국 - 근현대 문학과 독자의 문화사>가 9월 7일부터 매주 화요일 7시에 동대문도서관에서 열립니다.

강의에 관한 더욱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blog.daum.net/ddmlib/63
 
도착의 사각 - 201호실의 여자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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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집착과 도착의 차이는 무엇일까. 집착의 다음 단계가 도착일까, 아니면 집착은 어느정도 긍정적인 뉘앙스가 있다고 보아야할까. 종이한장 차이가 아닐까. 게다가 집착이나 도착은 전염되는 성질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좋아하는 분위기가 날로 농후해지고 있으니.... 도청, 몰래카메라, 도촬 등등...

  근래에 본 캐릭터 중에서 최고로 찌질한 남자 오사와 요시오가 등장한다. 뭐가 이렇게 찌질한지 오사와가 살고 있는 건너편 연립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몇개월을 못버티고 오사와의 눈길을 피해 이사가기 일쑤라 방값은 다른 방에 비해 턱없이 싸다. 한명은 버티다 못해 자살까지 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기지도 못할 알코올에 빠져 알코올 중독 전문 정신병원으로 실려가기까지 한다.  

  어느날 시미즈 마유미라는 여자가 건너편 연립주택에 이사오고부터 오사와는 모든 것을 마유미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시체를 마당에 묻게 된것도 마유미의 도발 행위 때문에 그런 것이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주먹질을 하게 된 것도 지금까지 도발하던 마유미가 창문을 꼭 닫아걸었기 때문이요, 번역일이 잘 안되는 것도 마유미가 벌거벗고 자신의 방에서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것참... 다락방에 기어올라가서 건너편 집을 8배율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주제에, 그러다가 우연히 술을 마시게되어 다시 알코올 중독이 되는 주제에 모든 것은 마유미 때문이라니... 씁쓸하다. 오사와는 묻지마 범죄에 희생되는 젊은 여성들마저 그 여성들이 원인을 어느정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남성이다.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은 아닐지라도 지금도 성폭력 사건을 여성에게 일정부분 책임을 전가하는 남성들의 의견이 존재하고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에는 정삼참작을 해주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판사도 있다. 물론 모두 남성이다. 젠장. 한 인간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성폭력을 피해자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이해해주는 사회가 대체 어디있단 말인가.  

  오사와는 여전히 훔쳐보는 행위에 집착하고 있는 찌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마유미의 불륜도 임신으로 그 대단원의 막이 내릴듯이 보이고, 소네는 여전히 마유미의 방을 들락거리면서 그녀의 일기를 훔쳐보면서 자기는 정의의 사도인양 굴고 있고 마유미의 불륜 상대의 부인은 실종상태고 오사와에게 마유미의 누드 사진으로 협박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음... 서술트릭의 매력을 한껏 살리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비밀도 조금 평범했고.... 마유미의 일기가 현재진행형처럼 보이지만 어떤 트릭이 있으리라는 것은 예측가능했고, 잘 설명할 순 없지만 전작 <도착의 론도>와 같은 쫓고 쫓기는 자 사이의 신나는 엎치락뒤치락도 없고, 그저 무난하게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만한 일, 조금은 단순한 치정 관계와 어머니의 복수와 관음증을 가진 사내가 한데 뒤엉키면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서술이 조금 평이했다.  

  뒤돌아서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어머니가 있었고 그것이 야기한 일련의 사건들은 모공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용의자들의 도착증을 이용한 계획은 좋았으나 그 도착의 사각에 빠진 것은 그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이 책은 오탈자가 너무 심하다. 눈에 매우 거슬린 것만 20개가 넘고 마유미라는 이름을 한번은 미유키라고 써있기도 하고... <도착의 론도>때는 안그러더니, 출판을 너무 서둘렀나? 이렇게 오탈자가 심한 책은 최근들어 찾아보기 힘든데... 출판사가 너무 성의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반전이랍시고 뒷부분을 봉인해두었는데 굳이 그럴필요까지 있나 싶다. 별 한개를 여기에서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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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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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 선준, 재신, 용하는 대과에 급제해 규장각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엉뚱발랄한 정조와 함께 좌충우돌 대소동이 펼쳐지는데 이들은 그 이름을 드높여 잘금4인방이라는 칭호를 듣기에 이른다. 잘금이라... 너무 적나라한걸..ㅎㅎ

  윤희는 남동생과 자리를 바꾸려면 지방 한직으로 발령받아야되는데 덜컥 왕의 눈에 들어 규장각으로 끌려들어가고, 게다가 용감하게도 선준의 아버지를 제발로 찾아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에 이른다. 당연히 선준의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하지만 이 둘은 그 산을 넘어 결국 해피엔딩이 될 것이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의 핵심 내용인데.... 문제는 홍벽서에다가 이제는 청벽서까지 등장하고 규장각을 둘러싼 암투가 끊이지 않는 과정에서 많은 일을 벌여놓은 와중에 윤희를 둘러싼 4인방의 애정은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버지가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둘은 더 불타오르든지 더 애절해지던지 해야할텐데, 작가는 선준과 윤희는 염두에 없다는 듯이 이 사건 저 사건 벌이고 수습하기에 바쁘다. 남동생 윤식도 장가보내랴, 재신도 장가보내랴, 청벽서도 처리하랴 윤희와 윤식의 자리바꿈도 해야지..4인방 모두 바빠서인지 재신의 애닮픔과 선준의 과감한 애정 공세, 윤희의 고뇌는 영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편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는 아기자기했지만 4인방의 심리와 코믹한 대사들이 심금을 울렸는데 그런 점들이 많이 사라져서 너무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선준과 윤희의 사랑에 애절함을 더해주기를 바랬건만....  읽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끔 해주는 것이 로맨스 소설의 바람직한 모습 아닌가 싶다.

  용하의 베일에 싸인 능력과 과거와 재신의 알콩달콩 꼬맹이와의 신혼생활은 다음 편에서나 다루어질까... 전편에 이어 재신에게 더욱 빠져들고 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반토막과의 오글거리는 애정신도 기대된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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