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관의 살인사건
YUKITO AYATSUJI / 학산문화사(만화) / 1997년 7월
평점 :
절판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건물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다룬, 아야츠지 유키토 <관 시리즈>. 97년에 학산문화사에서 1.십각관 2.수차관, 3.미로관, 4.인형관, 5시계관, 6.흑묘관 까지 출판되었는데 지금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관시리즈는 십각관과 시계관, 그리고 흑묘관 다음 시리즈인 암흑관이다. 그래서 미스터리 매니아 사이에서는 소장하기 어려운 시리즈가 바로 관 시리즈. 어느 헌책방 사이트에서 절판된 관 시리즈가 2만원에 거래되는 것을 보고 깜놀! 아야츠지 유키토의 최고의 작품은 <시계관의 살인>이라고들 하는데, 그래도 시리즈인데다가 각 시리즈마다 시마다라는 인물이 탐정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단 시리즈를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다 싶었다. 다행히 동네 도서관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십각관에 이어 <수차관의 살인>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카무리 세이지가 만든 수차관. 수차는 물레방아를 뜻한다. 그 곳에서 1년전에 가정부와 집주인의 친구 마사키 신고가 살해당하고 후루가와가 밀실에서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꼭 1년 뒤 당시 사건의 멤버와 시마다라는 불청객이 수차관에서 하루 묶게 된다.  

  어디서 많이 본 설정들이다. 수차관의 주인은 교통사고 때문에 입은 화상 때문에 얼굴은 가면으로 가리고 손에는 흰 장갑을 끼고 휠체어에 앉아있다. 그리고 흉측한 얼굴 때문에 깊은 산 속에 독특한 건물을 지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긴 미술품을 1년에 딱 하루 아버지의 기일에만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4명의 손님이 수차관을 방문한다. 그런데 1년 전에 가정부와 집 주인의 친구가 살해당하고 4명의 손님 중 한 사람이 밀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1년 후에 사라진 한 사람을 제외하고 3명의 손님과, 시마다가 수차관을 방문하는데 또 가정부와 손님 중 한사람이 살해당하는 패턴이 발생한다. 그리고 시마다는 탐정 놀이를 한다.  

  트릭은 별로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에 1년 전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는지도 대강 짐작이 되었다. 하지만 사라졌으리라고 생각된 한 사람의 서술이 신선했다. 이야기를 시간대별로 1년 전과 1년 후를 계속 교차하고 1년 전 사건은 3인칭, 1년 후 사건은 집주인의 입장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트릭을 전부 알아챌 수가 없었다.ㅎㅎ 약간의 서술트릭이 있다고 해야할까.... 게다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건축가의 특징을 생각못했기 때문에 작가에게 살짝 속기도 했다. 근데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나머지 집에서는 밀실이 이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걱정도 든다.

  올드하기 때문에 반전에 대한 충격은 없었지만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읽을만 했다. 하지만 아야츠지 유키토의 단점이라고 할, 캐릭터에 대한 구체성이나 역동성이 없기 때문에 그 점은 아마도 관 시리즈 끝까지 아쉬울 것 같다. 시리즈가 진행될 수록 나아지려나 싶기도 하고... 

  난 작가와 독자의 대결 구도가 좋다. 사회적인 의미 보다 미스터리는 역시 지적유희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금 서툴러도 이 <관 시리즈>는 애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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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6월
구판절판


"이 세계에서는 말이에요... 니시노소노씨. 알고 싶은 건 금방 눈앞에서 볼 수 있어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눈앞에 있어요.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게 당연한 일인 거죠. 안 그래요? 원래 세상은 이랬어요. 그런데 지금 당신의 세계가 얼마나 어중간하고 부자유스러운지 생각해 봐요. 멀리 있는 목소리가 들리고, 멀리 있는 것이 보이기는 하지만 만질 수는 없어요. 산더미 같은 정보가 주어지는데도 모두 잊혀지고 잃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정보가 많아서 옆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게 되는 거예요.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어요. 왜 그렇게 떨어지고, 멀어지려고 하는 걸까요? 권총의 총알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일까요? 니시노소노씨, 신이란 것도 왜 그렇게 멀리 있는 거죠? 정말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거라면 왜 우리 눈앞에 계시지 않는 걸까요?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모에는 무어라 말하고 싶었다.
"안녕히.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여자의 목소리만 들렸다.
"어디 있는가는 문제가 아니에요. 만나고 싶은지 만나고 싶지 않은지, 바로 그게 거리를 결정하는 거예요."-248-249쪽

"추억과 기억이란 게 어떻게 다른지 알아?" 사이카와는 담배를 끄면서 말했다.
"추억은 즐거웠던 일, 기억은 나빴던 일투성이죠."
"그렇지 않아. 나쁜 추억도 있고 즐거운 기억도 있어."
"그럼 뭐가 다르죠?"
"추억은 전부 기억할 수 있지만, 기억은 전부 추억할 수 없다는 거야."-257-258쪽

" 왜 몸에 나쁜 걸 피우는 거죠?"
"글쎄요, 왜 그럴까요..." 사이카와는 미소 지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맛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냥 그뿐입니다. 생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까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삶을 두려워하는 거죠." 시키는 말했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다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테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사이카와는 끄덕였다. 그도 그 말에 동감하고 있었다.
"애초에 살아 있는 쪽이 이상한 상태죠." 시키는 미소 지었다.
"죽어 있는 게 본래 상태이고, 살아 있는 건, 뭐라고 할까요....., 기계가 고장난 상태라고나 할까, 생명이란 버그인 거죠."
"버그? 컴퓨터의 버그 말입니까?" 사이카와는 한 순간의 공백을 둔 다음에야 그녀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 숨어 있는 실수......, 그렇다, 버그일지도 모른다. 신이 만든 프로그램의 버그, 그것이야말로 인류라고 할 수 있다.-442-443쪽

"여드름 같은.... 병인거죠. 살아있다는 건 그 자체가 병이에요. 병이 나았을 때, 생명도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요, 예를 들자면, 교수님, 자고 싶을 때가 있죠? 잠잘 때의 편안함이란, 참 신기하지요. 왜 우리의 의식은 의식을 잃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자고 있는 걸 누가 꺠우면 불쾌하지 않던가요? 각성(覺醒)은 본능적으로 불쾌한 거죠. 탄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태어나는 아기들도, 그래서 모두 우는 거겠지요......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4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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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2010-01-08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늘 이상했어. 생명체를 왜 잠을 자는지, 인간은 왜 몸에 나쁜지 알면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하는지. 생명이라는 것이 버그라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5살에 양친을 살해한, 천재 프로그래머 마가타 시키 여사가 팔다리 모두 절단당한채 살해당했다. 그런데 살인이 일어난 장소는 완벽한 3중밀실이다. 누가 범인인가? 그리고 어떻게 범행이 가능했던가?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명문가 부잣집 철없는 아가씨 니시노소노 모에와 그녀의 담당교수인 건축공학과 조교수 사이카와 쿄스케다. 그리고 마가타 시키라는 사람은 15살에 양친을 칼로 찔러 죽였지만 심신상실을 인정받아 정신병원 대신에 작은 섬에 연구소를 세우고 15년 이상 자신의 방에서 누구도 만나지 않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천재공학자다. 어찌어찌해서 연구소가 있는 섬으로 캠핑을 떠나게 된 니시노소노와 사이카와 앞에 마가타 시키가 팔다리가 절단된 채 웨딩드레스를 입고 운반로봇에 얹혀져서 15년이 넘는 동안 한번도 나온적이 없는 문에서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시작된다.

  그런데 살인이 일어난 방은 3중완전밀실이다. 시키 여사는 오랫동안 삼엄한 감시를 받으며 자신의 방에서 한발자국도 나올 수 없었고 게다가 24시간 감시카메라와 보안요원 두명이 방 앞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들어간 사람도 나온 사람도 없는데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시체가 그 방에서 튀어나온다. 두번째로 어찌어찌 여사의 방을 누군가가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해도 연구소는 출입기록이 완벽하게 기록되고 창문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세번째로 연구소는 배도 다니지 않는 아주 외딴섬에 있다. 하필이면 그 때 연구소 시스템에 에러가 생겨 전화나 통신은 모두 두절되어 외부로의 연락이나 교통편은 있을 수도 없다. 범인은 아직 연구소에 있는데 감시카메라에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아서 이 트릭을 깨지 않는한 범인을 잡을 수가 없게 된다.  

  먼저 저자의 직업이 나고야 대학 건축공학부 교수라는 것이 시사해주듯이 사이카와는 저자의 분신이다. 그래서 그의 입을 통해서 천재가 만들어내는 미래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학적인 용어들이 조금 등장한다. 초보적인 비트, 바이트 개념부터 가상현실, 네트워크, 건물 전체를 관리하는 시스템, 원격회의 같은 개념들이 등장한다. 뭐, 지금의 시선으로 봐서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을 뿐 책 속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카트에 앉아 3D 입체게임을 즐기는 것도 머지 않았다. 하지만 출판된 96년도에는 집집마다 PC가 있지도 않았고 인터넷이라는 것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시대적으로 뒤쳐진 느낌이 드는 개념들이지만 이미 실현화된 사회라고 보면서 책을 읽어도 무방하다. 96년 당시의 최첨단 연구소는 이제는 어디에나 있는 연구소로 이미지가 바뀌고 어떤 이미지의 연구소라도 사건의 무대로써는 충분하니까. 전통적으로 창문과 방문이 모두 잠겨져 있는 밀실 트릭이 아닌, 당시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공학시스템이 만들어낸 밀실살인에도 어차피 누군가가 출입할 수 있었으니 살인이 일어난 것 아니겠는가.

  천재 연구자가 3중밀실에서 살해되고 연구소 전체가 시스템 에러로 뒤죽박죽, 하지만 시키 여사를 감시하던 곳의 시스템은 별개의 것이라 카메라 조작은 있을 수도 없는일. 트릭을 풀기 위해 사이카와는 가설을 세워보지만 어떤 것도 들어맞지 않다가 우연히 시계를 보다가 영감이 떠오른다. 1분의 차이, 1분의 오차, 그것이 수년동안 쌓여왔을 때를 기다린 인내의 범죄다.  

  범인은 가상 현실에 등장해서 사건 관계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자신의 범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섬 내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범인은 섬 내에 있지 않다!!! 그리고 사이카와는 추리를 통해서 셜록홈즈처럼 사건관계자들의 의문을 풀어주는 탐정이 되어 이번 사건의 전모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준다.  

  256*256=65536. 65536시간 동안 모래가 조금씩 내려가는 모래시계가 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모든 시스템은 멈추고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유가 주어질 것이다. 사이카와와 니시노소노라는 예상치 못한 손님 때문에 계획은 조금 어긋나지만 천재에게 그것 역시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의 머리로는 살인하지 않아도 탈출할 방법이 있었을텐데 세명씩이나 죽이고 15년만의 탈출을 이룬다는 것은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공감은 할 수 없는가보다. 천재라서 그런지 죽음에 대해서도 일반인과는 관점이 다르다. 죽음, 그것이 세계의 원칙이며 생명이라는 것이 신이 만든 프로그램의 버그라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전혀 억울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죄책감도 없이 시키 여사는 자신의 딸을 포함해 3명을 연구소 내에서 살해하고 탈출에 성공한다. 

  3중살인사건의 트릭이 참 신선했다. 그리고 그 트릭은 수년에 걸쳐 완성되었기에 더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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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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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추리소설이란 단지 지적인 놀이의 하나일 뿐이야. 소설이라는 형식을 사용한 독자 대 명탐정, 독자 대 작가의 자극적인 논리 게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러므로 한때 일본을 풍미했던 '사회파'식의 리얼리즘은 이젠 고리타분해. 원룸 아파트에서 아가씨가 살해된다, 형사는 발이 닳도록 용의자를 추적한다, 드디어 형사는 아가씨의 회사 상사를 체포한다, 이런 이야기는 좀 그만두었으면 좋겠어. 뇌물과 정계의 내막과 현대사회의 왜곡이 낳은 비극 따위는 이제 보기도 싫어. 시대 착오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역시 미스터리에 걸맞는 것은 명탐정, 대저택, 괴이한 사람들, 피비린내나는 참극, 불가능 범죄의 실현, 깜짝 놀랄 트릭......, 이런 가공의 이야기가 좋아. 요컨대 그 세계 속에서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거지. 단, 지적으로 말씀이야."-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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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2010-01-05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사회파 리얼리즘은 좀.... 미야베 미유키보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一人
 
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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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노시마 섬에서 천재적이지만 기묘한 건축물을 짓는 것으로 유명한 나카무라 세이지 부부와 고용인 부부가 살해당하고 정원사는 행방불명, 게다가 그들이 살고 있던, 온통 청색으로 칠해져 있다고 해서 '청옥부'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은 방화로 인해 전소된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나고 츠노시마 섬을 무대로 한 사람이 복수의 칼날을 간다.  

  모 대학 미스터리 연구회원 7인은 기묘한 살인사건이 벌어진 청옥부의 별관에 해당하는 '십각관'에 일주일 동안 머물 예정으로 3월 26일 수요일에 보트를 타고 섬으로 들어오면서 이 작품은 시작된다. 이들 7인은 모두 실명이 아니라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데 그 호칭이 참 재미있다. 엘러리, 카, 포, 반, 아가사, 올치, 르루. <X의 비극>,<Y의 비극>의 엘러리 퀸, <황제의 코담배 상자>의 존 딕슨 카,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의 에드거 앨런 포, <딱정벌레 살인사건>의 반 다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아가사 크리스티, <구석의 노인>의 엠마 오르치(에무스카 바로네스 올치), <노란방의 비밀>의 가르통 르루가 7인의 별명이다. 

  작가가 <십각관의 살인>은 추리소설 대가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팬레터라는 것을 작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작품은 미스터리 연구회 7인에게 전설적인 추리소설가의 이름을 붙이고, 기본 틀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따르는 등 대가들을 향해 무한한 존경심과 애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리고 추측이긴 하지만 미스터리 연구회원들의 외모나 성격도 대가들의 외모와 성격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스터리에 빠져든지 20여 년이지만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은 별로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추리소설을 창시하고 그것을 발전시킨 이 전설적인 대가들의 소설전개방식이나 트릭들을 어느정도 차용한 것 같다는 생각 또한 든다. 

  어쨌든, 이 대학생들은 하루에 한사람씩은 아니지만 차례차례 살해당하고, 마지막에는 십각관이 방화에 의해 전소되는 마는, 청옥부 사건이 되풀이되는 듯한 비극으로 츠노시마 섬의 사건은 마무리된다. 

  3월 26일 수요일부터 츠노시마 섬의 하루에 대응되는 육지의 하루가 넷째날까지 지속되고 다섯째되는 3월 30일 일요일에 모두 살해당하고 겉으로 보기에 엘러리의 분신자살로 십각관이 전소되면서 이제 복수는 끝나고 다음날 31일에 7인의 연구회 이외의 나머지 두 멤버가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섬으로 향한다. 육지에서의 내용은 나머지 두 멤버인 가와미나미와 모리스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편지를 받게 되면서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 참극의 진상을 파악해 가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7년에 출판된 이 작품을 읽으면서 김전일이나 여타 추리소설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과 트릭이 계속 스쳐지나가는 것은, 이 작품이 그만큼 대가들의 영향을 드러내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이 일본 추리소설에 미친 영향도 그만큼 큰 것이리라. 무인도에 완전히 고립된 대학생들은 과거에 누군가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게 되었고 복수의 칼날을 품은 내부의 멤버에 의해 모두 살해당한다는 이야기는 김전일에서 숱하게 보아온 그림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섬 내부에 있는 모두가 탐정놀이에 소질이 있지만 또한 모두가 복수의 대상이므로 사건과 무관한 김전일 같은 탐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탐정은 섬 밖에서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 살인사건을 뒤쫓는데 결국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 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동기가 무엇인지 그 진상을 모두 밝혀내는 성과를 거둔다.  

  섬 밖에서의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 살인사건과  섬 안에서의 대학생 살해사건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하나의 사건은 밝혀지지만 대체 대학생 7명 중에 누가 범인인지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갈때까지도 알쏭달쏭하다. 마지막에 엘러리와 반이 남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생각해보면 중간에 죽었다고 해서 범인에서 제외하기는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리고 범인이 밝혀진다. 전설적인 대가의 이름을 차용하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틀을 가져오면서 마지막으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두명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은 작가가 범인을 밝힐 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중간중간에 잘 읽어보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대목도 있고 전체적인 틀을 보면 범인이 확실해지는 장치도 있는데, 작가의 위와 같은 트릭 때문에 범인이 누구인지 잡아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추리소설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쓸 수 없는, 작가가 사랑했던 모든 미스터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오마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훌륭한 미스터리 작품을 써냈다는 것이 무엇보다 독특하고 (김전일을 머리에서 지운다면) 신선했다.   

  하지만 작가의 데뷔작이라 그런지 신선함은 있지만 복수를 하는 자나 살인을 당하는 입장의 인물이나 너무 평면적이다 못해 밋밋하다. 살아있는 인간의 반응이라고 보기에 양쪽 다 뭔가 어설프다. 인물을 다루는 데 작가는 능숙하지 못해서 미스터리가 빛을 더 볼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출판사에 한마디 하자면, p.222 하단에 '기어이 치오리가 코지로의 딸이 아니라는 데까지 상상력의 날개를 펴고 만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내용 전개상으로는 '기어이 치오리가 코지로의 딸이라는 데까지'가 맞는 건데 이런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두번째로 p.307 신문기사에 3월 26일인데 3월 16일이라고 되어 있는것, 세번째로 p.290 별표 바로 밑에 3월 31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26일이 수요일이면 31일은 월요일이 맞는데도 31일 일요일이라고 인쇄되어 있는 말도 안되는 출판사 측의 실수가 눈에 많이 거슬린다.   

  위에서 지적한 것과는 조금 다르게 '넷째날 육지' 챕터가 시작되는 p.213에 '역시 어제 모리스 쿄이치의 충고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가와미나미가 모리스를 만난 것은 어제가 아니라 그저께가 맞는 것 같은데, 어제라고 되어 있는건, 아직 내가 이 소설의 시간적 진행상황을 잘 몰라서일까...... 아니면 다시 출판사의 실수일까. 가와미나미 입장에서 모리스가 충고한 것은 '둘째날 육지' 부분이었고 범인이 나중에 트릭을 밝힐 때와 비교해보아도 p.213 문장에서는 '어제'가 아니라 '그저께'라고 하는게 맞는게 아닌가 싶다. 아닐 수도 있는데, 이부분을 면밀하게 따져보기는.. 좀 귀찮다.

  출판사의 말도 안되는 실수 때문에 별 하나 감점.  

  관 시리지는 1.십각관 2.수차관, 3.미로관, 4.인형관, 5시계관, 6.흑묘관, 7.암흑관 등등.. 대충 파악된 것이 이 정도인데(암흑관 이후에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관 시리즈 전부 97년에 학산출판사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절판. 슬프다.. 십각관, 시계관과 암흑관은 출판하면서 왜 나머지는 출판 안해주는걸까. 내일 당장 동네 도서관가서 수차관부터 빌려봐야겠다. 시리즈를 중간에 건너뛰는건 너무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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