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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츠노시마 섬에서 천재적이지만 기묘한 건축물을 짓는 것으로 유명한 나카무라 세이지 부부와 고용인 부부가 살해당하고 정원사는 행방불명, 게다가 그들이 살고 있던, 온통 청색으로 칠해져 있다고 해서 '청옥부'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은 방화로 인해 전소된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나고 츠노시마 섬을 무대로 한 사람이 복수의 칼날을 간다.
모 대학 미스터리 연구회원 7인은 기묘한 살인사건이 벌어진 청옥부의 별관에 해당하는 '십각관'에 일주일 동안 머물 예정으로 3월 26일 수요일에 보트를 타고 섬으로 들어오면서 이 작품은 시작된다. 이들 7인은 모두 실명이 아니라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데 그 호칭이 참 재미있다. 엘러리, 카, 포, 반, 아가사, 올치, 르루. <X의 비극>,<Y의 비극>의 엘러리 퀸, <황제의 코담배 상자>의 존 딕슨 카,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의 에드거 앨런 포, <딱정벌레 살인사건>의 반 다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아가사 크리스티, <구석의 노인>의 엠마 오르치(에무스카 바로네스 올치), <노란방의 비밀>의 가르통 르루가 7인의 별명이다.
작가가 <십각관의 살인>은 추리소설 대가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팬레터라는 것을 작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작품은 미스터리 연구회 7인에게 전설적인 추리소설가의 이름을 붙이고, 기본 틀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따르는 등 대가들을 향해 무한한 존경심과 애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리고 추측이긴 하지만 미스터리 연구회원들의 외모나 성격도 대가들의 외모와 성격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스터리에 빠져든지 20여 년이지만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은 별로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추리소설을 창시하고 그것을 발전시킨 이 전설적인 대가들의 소설전개방식이나 트릭들을 어느정도 차용한 것 같다는 생각 또한 든다.
어쨌든, 이 대학생들은 하루에 한사람씩은 아니지만 차례차례 살해당하고, 마지막에는 십각관이 방화에 의해 전소되는 마는, 청옥부 사건이 되풀이되는 듯한 비극으로 츠노시마 섬의 사건은 마무리된다.
3월 26일 수요일부터 츠노시마 섬의 하루에 대응되는 육지의 하루가 넷째날까지 지속되고 다섯째되는 3월 30일 일요일에 모두 살해당하고 겉으로 보기에 엘러리의 분신자살로 십각관이 전소되면서 이제 복수는 끝나고 다음날 31일에 7인의 연구회 이외의 나머지 두 멤버가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섬으로 향한다. 육지에서의 내용은 나머지 두 멤버인 가와미나미와 모리스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편지를 받게 되면서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 참극의 진상을 파악해 가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7년에 출판된 이 작품을 읽으면서 김전일이나 여타 추리소설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과 트릭이 계속 스쳐지나가는 것은, 이 작품이 그만큼 대가들의 영향을 드러내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이 일본 추리소설에 미친 영향도 그만큼 큰 것이리라. 무인도에 완전히 고립된 대학생들은 과거에 누군가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게 되었고 복수의 칼날을 품은 내부의 멤버에 의해 모두 살해당한다는 이야기는 김전일에서 숱하게 보아온 그림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섬 내부에 있는 모두가 탐정놀이에 소질이 있지만 또한 모두가 복수의 대상이므로 사건과 무관한 김전일 같은 탐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탐정은 섬 밖에서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 살인사건을 뒤쫓는데 결국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 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동기가 무엇인지 그 진상을 모두 밝혀내는 성과를 거둔다.
섬 밖에서의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 살인사건과 섬 안에서의 대학생 살해사건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하나의 사건은 밝혀지지만 대체 대학생 7명 중에 누가 범인인지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갈때까지도 알쏭달쏭하다. 마지막에 엘러리와 반이 남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생각해보면 중간에 죽었다고 해서 범인에서 제외하기는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리고 범인이 밝혀진다. 전설적인 대가의 이름을 차용하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틀을 가져오면서 마지막으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두명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은 작가가 범인을 밝힐 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중간중간에 잘 읽어보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대목도 있고 전체적인 틀을 보면 범인이 확실해지는 장치도 있는데, 작가의 위와 같은 트릭 때문에 범인이 누구인지 잡아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추리소설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쓸 수 없는, 작가가 사랑했던 모든 미스터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오마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훌륭한 미스터리 작품을 써냈다는 것이 무엇보다 독특하고 (김전일을 머리에서 지운다면) 신선했다.
하지만 작가의 데뷔작이라 그런지 신선함은 있지만 복수를 하는 자나 살인을 당하는 입장의 인물이나 너무 평면적이다 못해 밋밋하다. 살아있는 인간의 반응이라고 보기에 양쪽 다 뭔가 어설프다. 인물을 다루는 데 작가는 능숙하지 못해서 미스터리가 빛을 더 볼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출판사에 한마디 하자면, p.222 하단에 '기어이 치오리가 코지로의 딸이 아니라는 데까지 상상력의 날개를 펴고 만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내용 전개상으로는 '기어이 치오리가 코지로의 딸이라는 데까지'가 맞는 건데 이런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두번째로 p.307 신문기사에 3월 26일인데 3월 16일이라고 되어 있는것, 세번째로 p.290 별표 바로 밑에 3월 31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26일이 수요일이면 31일은 월요일이 맞는데도 31일 일요일이라고 인쇄되어 있는 말도 안되는 출판사 측의 실수가 눈에 많이 거슬린다.
위에서 지적한 것과는 조금 다르게 '넷째날 육지' 챕터가 시작되는 p.213에 '역시 어제 모리스 쿄이치의 충고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가와미나미가 모리스를 만난 것은 어제가 아니라 그저께가 맞는 것 같은데, 어제라고 되어 있는건, 아직 내가 이 소설의 시간적 진행상황을 잘 몰라서일까...... 아니면 다시 출판사의 실수일까. 가와미나미 입장에서 모리스가 충고한 것은 '둘째날 육지' 부분이었고 범인이 나중에 트릭을 밝힐 때와 비교해보아도 p.213 문장에서는 '어제'가 아니라 '그저께'라고 하는게 맞는게 아닌가 싶다. 아닐 수도 있는데, 이부분을 면밀하게 따져보기는.. 좀 귀찮다.
출판사의 말도 안되는 실수 때문에 별 하나 감점.
관 시리지는 1.십각관 2.수차관, 3.미로관, 4.인형관, 5시계관, 6.흑묘관, 7.암흑관 등등.. 대충 파악된 것이 이 정도인데(암흑관 이후에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관 시리즈 전부 97년에 학산출판사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절판. 슬프다.. 십각관, 시계관과 암흑관은 출판하면서 왜 나머지는 출판 안해주는걸까. 내일 당장 동네 도서관가서 수차관부터 빌려봐야겠다. 시리즈를 중간에 건너뛰는건 너무 찜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