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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과학 - 위대한 석학 16인이 말하는 뇌, 기억, 성격, 그리고 행복의 비밀 ㅣ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1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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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누구나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고, 타인 또한 그러하리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마음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자신감은 쉽게 무너진다. 마음에 대한 질문은 심장과 콩팥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는다면 대답은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이 궁색함을 벗어나고 싶었던 옛사람들이 영혼과 같은 비물질적이고 초월적 개념을 끌어들였던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과학이 대단히 발전했다고 자부하는 현대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뇌가 없다면 마음도 없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뇌의 어느 부분이 언어를 다루고 어느 부분이 기억을 다루는 것처럼 뇌의 특정 부분이 마음을 다룬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이라는 마음의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히려 뇌가 가진 특정 기능들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즉 언어, 기억, 감정 등 마음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고 각 요소들이 뇌의 한 부분과 대응될 수 있겠지만, 그 중 한두 요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 자체가 없다고 부정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그저 마음이란 것이 뇌와 연동된다는 것,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뇌 작용의 부산물이라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할까? 이조차도 불분명하다. 뇌 작용의 부산물이라고 한다면 뇌가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하여 마음을 산출하는지 그 메커니즘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뇌를 가진 모든 생명체는 다 마음을 가진 것일까? 개나 고양이는 그렇다 하더라도 초파리나 모기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아니면 마음이란 뇌가 특정한 구조와 기능을 가져야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런 구조와 기능은 어떤 식으로 조합되어야 마음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가고 결국에는 미궁에 빠지고 만다. 자명하다고 여겨졌던 마음이 의문투성이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마음에 대한 여러 과학적 탐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책에는 총 열여덟 편의 논문과 인터뷰가 실려 있다. 저자들 모두 마음을 연구하고 있지만 각각의 영역을 보면 매우 다양한 분야에 넓게 펼쳐져있다. 책의 편집자이자 ‘엣지’를 설립한 존 브록만의 소개처럼 “이 책에서는 첨단을 달리는 이론심리학자, 인지과학자, 신경과학자, 신경생물학자, 언어학자, 행동유전학자, 도덕심리학자가 ‘마음’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탐구한다.”(10)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가설과 실험을 토대로 마음에 대한 최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양한 연구들이 한 방향으로 수렴되어 어느 정도 일치된 전망을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제각각으로 뻗어나가고 때론 상반된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6장에서 제프리 밀러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진화론의 성선택 이론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이러한 시도를 꺼려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나 스티븐 로즈를 비판한다. 밀러에 의하면 그들은 대중들의 반감으로 연구비가 줄어들까 걱정하여 “진화 일반과 동물 일반에 관한 글을 쓰는 한편으로 인간의 마음 주위에 선을 긋고 그 너머는 분석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과학의 영역 바깥에 놔두는 것”(136)을 마음 편해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에서 스티븐 로즈는 “자연에서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으며, 그런 설명들에 훨씬 더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160)고 대답하며, 자연에 대한 설명을 단순히 유전자로 환원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인간의 자기 성찰 능력에 대해서도 상반된 해석이 있다. 13장에서 V. S. 라마찬드란은 인간의 자기 인식 능력이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는 거울뉴런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나는 자기 인식이 단순히 거울뉴런을 이용하여 ‘마치 다른 누군가가 나를 보는 것처럼 나 자신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진화한 거울뉴런 메커니즘은 내면으로 향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268) 그러나 바로 다음 장에서 니컬러스 험프리는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성찰의 생물학적 기능은, 다시 말해 성찰의 능력이 진화한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도록 도우려는 것이 아니었을까?”(282)
이처럼 ‘지식의 최전선’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최신의 연구 성과들과 그에 따른 전망에 기초하여 마음에 대한 각자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지만 서로 일치된 의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며, 더구나 그것이 서로에 대한 치열한 논쟁으로 전개되기보다는 그저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결국 독자들이 어렴풋하게나마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그림을 그려볼만한 적절한 토대를 제공해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다면 이 책은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 책을 활용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다양한 이론들을 차근차근 이해해 감으로써 마음에 대안 나름의 만족스런 대답을 제시하는 정식 코스 요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하게 널려있는 여러 메뉴들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르는 게 좋을지 알려주는 시식 코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책을 통해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찾기보다는 ‘마음’이라는 주제에 궁금한 이들이 어떤 분야를 공부하면 좋을지 선택할 수 있도록 흥미를 던져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연구가 흥미를 끌었는데, 그 중 하나는 스타니슬라스 드옌의 ‘궁극적인 검사’(254~257)에 관한 것이다. 드옌은 앞으로 뇌파 검사 실험을 통해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지 판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보여준다. 만일 이러한 판별이 가능해지고 나아가 Yes/No와 같은 간단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면,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사람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이나 장기기증과 관련된 논란에서 자기결정권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조지프 르두의 정서 연구(16장)이다. 르두는 편도체의 암묵 기억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이란 애매한 개념, 나아가 인간의 정서가 뇌 신경과학의 차원에서 해명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르두 자신이 인터뷰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연구가 정신분석학뿐만 아니라 심리학의 몇 분야를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흥미로웠다.
<마음의 과학>은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궁금했던 이들에게 훌륭한 보석들이 널려져 있는 장소들을 보여준다. 물론 어떤 보석을 캐낼 것인가는 순전히 독자의 관심과 흥미에 달려있다. 앞서 열거한 이론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신경생물학, 언어학, 행동유전학, 도덕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의 학자들이 내미는 맛보기 음식들을 하나씩 맛본 후 맘에 드는 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다만 한 가지, 보석을 캐기 위한 좋은 도구들, 즉 각 글 말미에 참고도서 목록을 추가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