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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클래식 - 물리학의 원전을 순례하다
이종필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8월
평점 :
‘물리학 클래식’이라는 제목만 보고 단순히 요 몇 년 새 쏟아져 나온 ‘~ 콘서트’나 ‘~ 카페’ 혹은 ‘~ 시트콤’ 등의 중고생 수준의 교양도서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또한 고전이라고 해서 갈릴레이나 뉴턴과 같은 까마득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지난 세기, 즉 20세기에 이루어진 현대 물리학의 성과들 중 가히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10개의 원전 논문을 다루고 있는 해설서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논문 10편만 잘 챙기면 현대 물리학은 모두 복원할 수 있다.”는 저술 의도처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부터 양자 역학, 빅뱅 이론과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초전도 현상, 그리고 초끈 이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물리학을 떠받치고 있는 굵직한 기둥 열 개가 소개되어 있다.
물론 나와 같은 비전공자는 ‘현대 물리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심리적 두려움이 있다. 이는 아마도 현대 물리학이 고등학교 수준의 물리학 교과서에서 보았던 가시적 모델이나 실험을 넘어서는 극도로 추상화된 이론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저자가 저술한 탓인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여타의 번역서들에 비해 술술 읽히는 편이고,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해당 논문이 나오게 된 이론적 배경이나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그것이 학계에 끼친 영향들을 읽다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지는 그림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교양서 수준의 쉬운 책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저자는 서문에서 “물리학이나 과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지만, 이는 독자의 수준을 과대평가 한 것이라고 항변하고 싶다. 물론 저자는 설명 중 어려운 용어나 개념이 나오면 잠시 멈추고 설명한 후 다시 진도를 나가는 식으로 독자를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보통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주제 중 하나의 주제만 소개하는 데에도 두툼한 책 한 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적은 분량 안에 많은 내용을 담아내야 하기에 교양서나 교과서처럼 비전공자가 만족할만한 수준의 설명을 제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특정 이론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보다는 현대 물리학이 어떤 성취를 이뤄냈으며 이를 바탕으로 어떤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지와 같은 커다란 경향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세부적 이론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한 명의 저자가 일관성을 가지고 서술해나가고 있기에 각 이론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물리학에 대한 약간의 흥미와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으며, 저자가 의도했던 것처럼 일반인과 전문적 지식 사이의 디딤돌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어렵고 잘 이해도 되지 않는 과학 서적들을 왜 굳이 일반인들이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저자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20세기의 물리학은 위대한 발견적 성취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서 새로운 과학 혁명을 이끌었으며 이 혁명 과정을 통해 인간 인식의 지평을 놀라우리만큼 넓혀 놓았다.” 현대 과학이 넓혀놓은 인식의 지평에 한걸음 다가서서 나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 이것이 바로 어려움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과학책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