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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대리언 리더 지음, 배성민 옮김 / 까치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책에 대해 말하기 위해,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선입관, 즉 일종의 양가적 감정을 밝혀야겠다. 나는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정신분석학이 엄밀한 과학 혹은 의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현재로선)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어떤 말이나 행동을 보이는 이들이 있고 이들에게 정신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식이란 것이 대개 자의적이듯, 그 기준이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아직 회의적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과연 누구를 치료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인 대리언 리더도 이러한 생각에 약간은 동의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가 책의 서두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정신의학의 어떤 경향은 일반화된 과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을 위해 병의 증상을 세세하게 분류하고 각각에 따른 통상적인 치료법을 권장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증상에 따른 적절한 병의 진단과 처방은 정신의학이 보편의학으로 진입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이 과연 그러한 요소를 완비할 수 있을까? 저자가 언급하기도 한 데이비드 로젠한의 쿵 신드롬실험(44~45)이나 늑대인간판계예프 사례(“가장 위대하고 똑똑한 정신의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이 세르게이 판케예프를 관찰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판케예프를 조금씩 다르게 진단했다.”(320))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일한 증상에 대해서도 다른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기에 섣불리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것이 훌륭한 분석가와 그렇지 못한 분석가의 차이 때문일까? 만일 이 때문이라고 한다면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다른 의학 분야와 비교해보자. 수술과 같은 특정 기술에서 뛰어난 의사가 있을 수도 있고 장비의 보유 정도에 따라 약간의 차이도 있겠지만, 우리는 대략 어느 병원을 가도 유사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병원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완치율이 몇 퍼센트인가를 따지기보다는 친절하고 환자를 잘 돌봐주는가는 더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과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정 수준의 교육 과정을 거친다면 동일한 현상에 대해 동일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에, 새로운 발견이 보편적으로 확산될 수 있고 이에 대한 검증과 반증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과 절차를 이해하고 있기에 우리는 과학적 성과들에 대해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학은 이러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이란 단지 사이비 과학에 불과하니 무시해버려야 한다는 것인가? 몇몇 과격한 이들은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정신의학에도 나름의 현실적 유용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신의학이란 일종의 문학과 같은 것이어서 현실에 대한 정밀화는 아니지만 인간 삶의 어떤 측면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고,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어떤 통찰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학은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이 그의 나머지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이는 우리가 어린아이를 대할 때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 혹은 이전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내적 논리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질 수도 있다. 인간의 무의식이란 것에 대해 의식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태도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정신의학이 현대사회에 기여한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주저리주저리 개인적인 생각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 책의 세세한 설명을 따라잡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책들을 읽을 때면 늘 경험하는 어떤 비약이 있다. 즉 처음에는 아 그럴듯한데하며 쫄래쫄래 제 길을 따라 쫓아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난 누구? 여긴 어디?’하며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 미천한 배경 지식과 집중력의 부족 때문이다. 튼튼한 길잡이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더듬어 이 책의 밑그림을 그려보자.

 

대리언 리더는 점차 기계화되고 있는 현대정신의학의 경향을 비판하며 정신분석의 제자리를 되찾고자 시도하는 것 같다. 즉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보고 이를 세분화해서 각각에 대응하는 치료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태도가 광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처방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요즘의 정신의학은 망상처럼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보고 약물치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망상이나 환각과 같은 “2차 증상은 광기를 구성하는 것이라기보다 광기에 대한 반응에 가깝다.”(29)

 

그렇다면 정신병이란 무엇인가? 정신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이해해야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이가 자신의 세계에 질서를 도입하려고 만들어내는 허구이다.”(86) (자세한 과정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의미, 욕망, 관계가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어떤 이유들(외상이라 불리는 어린 시절의 특별한 경험들?)로 인해 이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즉 질서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세계에 어떤 어긋남이 생기는 것이다. 이 어긋남을 메우기 위해 도입되는 것이 망상과 같은 증상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구멍이 생길 때, 망상은 의미를 제공함으로써 그것을 메우려고 한다. 망상은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치료하려는 시도이다.”(95)

 

이 망상 역시 합리적 체계의 일부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 정신병이 일상생활과 충돌하지도 않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적 구조를 가지지만 정신병이 생기지 않은 채 살아간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219) 또한 정신병은 스스로 안정화되기도 한다. 평범한 삶이란 우리가 실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실재를 길들이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290) “정신병이 안정화되면, 정신병자는 사회생활을 잘 하면서 직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385) 그러나 이 시한폭탄은 특정한 계기를 만나면 촉발된다. 우리는 의미의 세계에 거주하며, 개인사에서 일어난 사건과 변화는 상징적으로 매개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우리가 점유하는 새 역할을, 우리가 차지하는 새 지위를, 때때로 타자와 가까워지는 순간을 상징화할 수 있어야 한다. 상징적 틀에 호소했지만 효과가 없을 때, 정신병이 촉발될 수 있”(248).

 

그러므로 정신병의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치료사는 환자가 똑바로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환자가 세계를 인지하는 올바른 방식을 익히지 못했다는 것을 알리려고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393) 오히려 세계의 어긋남과 촉발의 계기는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기에 분석가들은 사례마다 환자의 유아기와 가족관계를 꼼꼼하게 탐구해야”(195)하며, 나아가 라캉이 말한 소외된 주체의 비서로서 환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해야 한다.정신병이 촉발되는 환경을 알아내고 과거에 평형상태를 만들어낸 과정들을 찾아내는 작업이 이미 치료작업이다. 작료를 모으려고 설문지를 작성하지 말고 환자와 진지하게 대화를 할 때, 개인사에 대한 감각을 되찾도록 환자를 도울 수 있다.”(399)

 

즉 저자는 현대정신의학의 경향이 약물 등에 의존한 기계적 치료에 지나치게 경도되고 있다는 사실, 더 나아가 이러한 경향이 생물학적 환원주의로 치우침으로써 자칫 우생학에 빠질 우려가 있음을 비판하며 환자와의 진지한 대화와 같은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고전적 정신분석 방법론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얼마나 그럴듯한가? 사실 이렇게 대강의 정리를 해보았지만, 이런 대충의 그림이 저자의 의도를 얼마나 포착했을지 자신이 없다. 하물며 세부적인 논증까지 따져보기란 만무하다. 물론 군데군데 궁금증이 든 부분도 있지만 내 질문이 제대로 된 질문인지 확신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미천한 배경 지식과 집중력의 부족에서 기인한 일이기에 그저 다른 책들을 더 읽은 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보자고 다짐만 할 뿐이다. 매번 어기기만 하는 이 약속이 이번엔 지켜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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