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맨 - 양자역학의 영웅, 파인만
로렌스 크라우스 지음, 김성훈 옮김 / 승산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리처드 파인만에 대한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기초 과학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매우 척박한 우리 현실에도 불구하고 파인만과 관련된 책은 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많이 출판되고 있다. 당장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파인만으로 검색해 본다면 절판된 책을 제외해도 스무 권 이상이 검색된다. 왜 그럴까? 물론 무엇보다도 책날개에서 소개하듯 그가 “20세기 물리학계 최고의 지성인 까닭일 테지만, 또한 천재 혹은 영웅의 신화가 승자독식이 판치는 사회 분위기와 잘 어울려 상품가치를 지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파인만만큼 현대의 천재 혹은 영웅의 신화에 어울리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어린 시절의 영민함,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원자폭탄의 개발에 기여한 일, 노벨 물리학상으로 증명된 물리학계에서 이룬 위대한 업적, 뿐만 아니라 자물쇠 따기의 장인이자 열정적인 봉고 연주자, 그리고 카사노바 같았던 사생활까지 온갖 이야기꺼리가 넘쳐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전기도 이미 서너 권이 나와 있고 파인만 스스로가 재치 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도 이미 여러 권 출판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권의 전기가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그 의문은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풀린다. 이 책은 파인만의 다사다난한 일상적 에피소드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물리학이라는 학문 내에서 파인만과 그의 이론이 차지하고 위치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다. 이는 저자 자신이 물리학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즉 파인만을 둘러싸고 있던 과학적 배경과 더불어 파인만이 가졌던 의문과 사고 과정 그리고 해법의 도출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능력이 저자에게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러한 서술은 비전공자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적절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물리 이론들이 종횡무진 쏟아져 나와 도대체 뭐가 문제고 뭐가 중요한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기, 혹은 어쩌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최대한 친절하게 배경 지식과 이론적 내용을 설명함으로써 나와 같은 비전공자도 어렴풋하게나마 머릿속으로 대강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도와준다. 아니 오히려 이 어렴풋함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물리학을 공부해보고 싶은 충동까지 일게 한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그렇다면 물리학에 대한 흥미 말고 이 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저 파인만의 뛰어난 지적 능력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허접한 머리에 자책만 해야 하는가? 물론 도달할 수 없는 저 먼 곳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 와중에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파인만이 일생토록 견지했던 삶과 과학에 대한 태도가 그것이다.

 

저자도 약간의 불만을 담아 여러 번 지적하고 있지만, 파인만은 자신이 스스로 모든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이들의 성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아마도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고, 이 역시 남들보다 뛰어난 두뇌를 가졌기에 가능한 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온갖 다양한 정보들이 인터넷이라는 통로를 통해 밀물처럼 밀려드는 시대에 이러한 태도가 새삼 필요하다고 느낀다.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기에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하면 일단 무조건 신뢰하는 모습도 많거니와, 차근차근 검토해보거나 다른 의견과 대조해보지도 않고 다른 곳에 퍼트리기에 바쁜 세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또한 그는 한 번 갔던 길로는 절대로 두 번 다시 가려 하지 않았다.”는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잘 드러나듯, 파인만은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새롭고 다양한 분야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어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아니라 지금 자신이 궁금한 것이 해결될 수 있는가였기에 다양한 분야에 거리낌 없이 뛰어들 수 있었다. 오늘날처럼 인정과 성과가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그래서 자신의 꿈과 적성보다는 성공가능성과 사회적 지위에 모든 것을 맡기는 풍조 속에서 파인만의 태도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앞서 파인만에 대한 열광이 천재 혹은 영웅의 신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의심을 말한 바 있다. 모두에게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한 명이 되길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 한 명으로 표본으로 파인만이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인만이 보여주는 삶과 학문의 태도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에 집중하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역시 매력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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