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왼쪽부터 쭉쭉

* 미칠듯이 붉은 노을. 요새는 해가 짧아서 볼 수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녁마다 하늘은 어떤 색일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퇴근하면서 선물같은 하늘을 매끄럽게 볼 수 있다는건 도시가 아닌 한적한 곳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

* 그 사람과 젠가를 했다. 유행 지난지 한참 된 보드 게임을 하면서 난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아이들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보다 소근육보다 대근육이 먼저 발달되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집중을 요하는 놀이를 하기보다는 뛰어놀거나 몸쓰는걸 더 좋아한다.
 운동이라면 빼놓지 않고 잘하는데다 민첩하기까지 한 남자라며 큰 소리 치던 다 큰 남자가 어어, 하면서 번번히 넘어질만한 블록을 빼고, 온갖 규칙을 들이대며 게임은 정교해야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판 다 내가 이겼고,
나는 '전통주' 책을 사주라고 했다. 자, 이젠 술만 담그면 된다 이거지. 내가 과실주는 책을 보지 않아도 담글 수 있다고 하자, 그는 '과실주는 무효'라고 했다. 아, 이러다 둘이서 술독에 빠지는거 아닐까. 그건 좀 달콤할 듯.

* 다락방님과 다락방님이 좋아하는 장소에 갔다가 본, 까무러치게 귀여웠던 소변금지 경고문

* -아빠, 애들 동화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줄 알아?
 나는 아빠 근처에 동화책을 슬며시 놔드렸다. 뭐 그런걸 읽냐고, 텔레비전 리모컨만 있으면 다 나오는데라며 들은척도 안 하시던 우리 아빠.
 잠시 후,

* 비오는 날엔 습기 찬 버스에 그림을 그린다. 중학교 때 버스에서 친구가 손을 오르며 발바락 그리기를 알려준 이후로 쭉 발바닥을 그리다 요새는 멋쩍은 말을 적어놓는다.
과연 그럴까,
어쩌면,
비 맞고 싶다.
비 맞음 개털 냄새 헐헐 XX

비 그친 뒤엔 흔적도 안 남을 글씨.

* 컵에 물을 담아 고구마를 담궜을 뿐이다. 고구마는 어느새 이렇게 푸르고 싱싱하게 자랐다. 태연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이 녀석을 보니 나는 내 몸 어디에  물을 줘야 나도 좀 더 자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떠올랐다.

* 순전히 사장이 청소하시는 분하고 싸워서다. 아무리 싸웠기로서니, 우리 건물은 아예 청소를 안 한다고 할까마는 사장을 보면 아주머니 맘을 오천번 이상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월요일마다 우리는 청소를 한다. 나는 대걸레를 가지고 닦고 다니는데 힘껏 바닥을 문지르면 왠지 뱃살이 좀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청소 했다고 힘드니까 뭘 먹어대니 빠진 기분만 잠시 느낄 뿐이다. 
 청소할 때 안 하려고 얌체같이 구는 사람도 있고, 투덜거리면서 할거 다 하는 사람도 있다. 묵묵히 청소하는 사람이 제일 멋지지만 다른 사람이 안 한다고 투닥거릴 필요없이 제각자 할일을 하니 미워할 것도 없고, 힘 뺄 일도 없다. 내가 사용한 공간을 직접 청소하는 것과 누군가의 손을 빌리는 문제. 언젠간 제대로 된 글을 써보고 싶다.

* 우리 동네 터미널 가판대엔 한겨레-경향신문 순으로 신문이 놓여져 있다. 음식점에 가면 식탁 위에 떡하니 경향신문이 눈에 띈다. 정말이지, 먹고 사는 문제 하나만 해결되면 난 우리 동네에서 재미있게 살 자신 있는데.

* 뒷사람 생각 안 하고 의자를 끝까지 뒤로 젖히는 아저씨.
 머리를 손끝으로 콕콕 찔러주고 싶다. 가끔씩 살갗이 따갑거나 몸 이곳저곳이 찌릿거리며 전기 오는 느낌처럼 말이다. 아니면 머리털 하나를 살짝 잡아당기거나. 손톱으로 콕 찌른 다음에 난 자는 척을 하는건 어떨까. 걸릴까? 걸려서 아저씨가 날 깨우면 아주 귀찮은 표정으로 대체, 왜, 나를 깨우는지 모르겠다며 인상을 쓰고 혼잣말처럼 욕을 뱉어볼까? 내 앞자리였으면 한번 해보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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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ei 2009-11-28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드폰 사진- 아치편
그러나 타이틀인 '아치'님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는...

머큐리 2009-11-2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게요...아치님은 어디에...
가장 인상적인 사진... 고구마...그 생명력에 감탄합니다

쎈연필 2009-11-2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례 경향 순의 가판대가 인상적이네요. 단골 삼고 싶은 걸요.

웽스북스 2009-11-2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대학 1학년 때 친구들이랑 젠가를 했어요. 오랜만에 하니까 엄청 재밌던데요. ㅎㅎㅎ

Arch 2009-11-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가 찍은 사진, 뭐 그런거에요. 제 사진은 몇번 올려서 심심찮게 눈을 불편하게 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쿨럭
제랄님, 그렇죠? 멋진 동네라 그래요.^^
웬디양님, 젠가 연속 세번이면 왠만한 젠가 기법은 다 익힐 것 같아요. 이래서 얘는 금세 자취를 감춘 듯. 요샌 왠만한데서 찾기도 힘들어요.

다락방 2009-11-3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구마 사진을 보니 갑자기 감동이 ㅜㅡ (나도 키워볼까...흐음.........)

Arch 2009-12-01 17:00   좋아요 0 | URL
고구마는 배신하지 않는답니다.^^
 

뽀뽀 게임

옥찌가 생일 파티를 했다면서 선물을 한가득 가져왔다. 선물 포장을 뜯는 재미가 이런거구나. 나는 옥찌가 부러워서 나도 하나만 뜯어볼 수 있냐고 물었다. 옥찌는 테이프 붙은게 잘 안 떼지니까 이모가 좀 해보라며 선심쓰듯이 선물 하나를 던져주었다. 알록달록한 연필이며 지우개, 손수 글씨를 써넣은 카드까지. 예쁘고 귀엽다. 연필이 너무 많으면 굴러다니니까 이모가 갖고 있겠다고 하자, 옥찌는 무슨 무슨 조건을 내세우면서 그러라고 했다. 당분간 선물은 내 차지다. 이 나이에 왜 남의 선물을, 그것도 잘 쓰지도 않는 연필을 갖고 괜히 기분이 들뜨는지 모르겠다. 주인 올 때까지 귀여운 강아지를 맡고 있는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옥찌랑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옥찌에게 요새도 S랑 잘 지내냐고 물었다. 나를 타고 넘고, 손을 비틀며 장난을 치던 옥찌가 몸을 배배 꼬았다. 옥찌는 네살부터 S를 좋아했다.

- 지희야, S랑 좀 더 친해졌어?

- (눈으로 곰곰히 생각하더니) 내가 얘기하면 이모는 그 삼촌 얘기 해줄거야?

- 응? 그 삼촌이랑 S랑 무슨 상관이야?

- 그럼 나도 안 해.

- 아아아아(코를 사정없이 막고선) 해줘 해줘. 나도 말할게.

- 우리 뽀뽀 게임 했다.

- 그게 뭐야?

- 같이 뽀뽀하고 그러는거야.

- 아,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만들어준 놀이야?

- 아니. Y가 뽀뽀 게임하자고 해서 같이 한거야.

- 그럼 네가 좋아하는 수연이랑 하는거야?

- 아니. (이때 약간 날 무시하는 눈짓을 보냈다. 알거 다 알면서 그러냐는식인 것 같기도 하고) 남자는 여자한테, 여자는 남자한테 하는거야.

- 아, 이모도 해본적 있어.

- (믿기지 않는 다는 눈짓 한번) 그런데 요샌 안 해.

- 왜?

- 띠리 띠리리리리.

옥찌 얘기 듣고 아주 크게 웃었는데, 과연 그 이유는 뭘까요.


자, 이모 먹어

난 먹는게 참 좋다. 최근에 발견한 획기적인 사실, 국물 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평소 양보다 밥을 더 먹을 수 있다. 내 이 기쁜 소식을 측근에게 전하자, 그는 부끄러움도 없이 금세 눈을 내 배에 고정시켰다.

옥찌들도 누구 조카 아니랄까봐 먹을 것 욕심이 대단하다. 어제 저녁에는 직접 구운 김에 -민이 소금을 왕창 뿌린 김이 폭탄처럼 걸릴 때가 있으나- 배부른줄 먹고 밥을 먹고 있는데, 김이 몇장 남지 않은거다. 서로 눈치를 보던 옥찌들은 잽싸게 남은 김 두 개를 가져갔다. 김 먹고 싶은 욕심보다는 아기 때처럼 아 하면 먹을거 넣어줄까, 안 줄까 궁금해서 나도 좀 주라고 해봤다. 옥찌는 행동이 굼뜨더니 그거 하나 못챙겼냐는 눈짓으로 자기 차지인 김을 야금야금 떼서 먹었다. 민은 조금 고민하더니 내게 김을 주었다.

난 그만, 민이 좀 더 좋아지고 말았다.


화해는 어떻게 해야할까.

정재 오빠-지민이도 이렇게 부른다. 남자가 형보고 오빠라고 부르는건 정말, 귀엽다-가 준 딱지를 가지고 놀던 옥찌들. 자기들끼리 잘 놀고, 손도 잘 씻고, 밥도 잘 먹고 기타 등등 무리없이 각자 일을 잘 해서 당근으로 요구르트를 줬다. 요구르트 꼭지를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서 먹는 옥찌들을 보니, 어렸을 때 요구르트 바닥을 이로 틈을 내 먹던게 생각났다. 아무튼, 옥찌들은 자기들대로 놀고, 난 대충대충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서 사정을 들어보니 많이 남은 민의 요구르트를 지희가 모르고 먹었다는거다. 민은 울상이 돼서 징징거리고, 옥찌는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다가 같이 울려고 하는 찰나,

난 좀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평소 같으면 누가 옳고,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며 사과해라, 다음부턴 이러지마라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 민의 요구르트를 들고선 요술을 부려서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거라고 뻥을 쳤다. 물론 뒷감당 안 되면 도망칠 준비도 다 돼 있었다. -그렇다. 나는 주도면밀한 사람이다- 다행히 이모 장난이 통했는지, 민은 ‘허 참 별 이모 다 보겠네.’란 표정이 돼서 웃었고, 지희도 거짓말인거 다 아니까 이제 그만하지란 눈빛을 보냈다.

언젠가 김규항씨 글에서 아이들끼리 싸울 때 ‘양보해야한다’며 말했더니 그 후로 싸움이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한 말의 맥락을 살펴보자면 ‘충분해도 경쟁심 때문에 다투었지만, 모자라도 서로 양보하니 다 만족했다.’란 의미인데 난 좀 의아했다. 아이들이 무슨 양보 프로그래밍이 된 로봇도 아니고, 무작정 양보하라는 그 말에 어떻게 순순히 응하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은 자기 세계를 싸움이란 방법을 통해 확장해나가는게 아닐까.

나는 아이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만큼 싸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조금 더 먹기 위한 욕심과 자기만 좋은 것을 취하려는 경우라면 더더욱 필요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필요로 세상이 움직일 수 없을 뿐더러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욕심의 한계를 알 필요가 있다. 다툼없이, 강제된 양보란건 아이들이 싸워서 상처를 받고, 다시 화해하고, 또 싸워서 결국 누군가 중재를 하는 과정들이 담보하는 불편함과 입장 차이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난 옥찌들이 서로 양보하고 우애 좋은 오누이이길 바란다. 하지만 옥찌들이 자신이 왜 화가 나고, 상대방은 왜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를 이해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맨날 동생들이랑 투닥거리면서 여기까지 온걸 보면,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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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1-2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Arch 님. 멋있어요. 싸움에 대해서 한순간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Arch님의 이 페이퍼를 읽고 나니 어쩌면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죠. 아직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실히 판단하기도 힘든 어린 아이들한테 무조건 양보하라고 하는건 부조리하죠. 대체 왜 양보해야 하는지 본인이 스스로 느낄 수 있어야 하잖아요. 자신이 왜 화가 나고 상대방은 왜 나 때문이 기분이 나쁜지를 이해하는 건 정말 중요하죠.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건 바로 그것인 것 같아요. 그것만 알 수 있다면 오히려 다음번에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조심하게 될테니 말예요.

Arch 님은 엄청 좋은 이모네요. 제가 생각하는 나쁜 어른들까지 죄다 Arch님께 보내고 싶어요. 가서 좀 더 배우고 와, 하고 말이죠.

이뻐라 ㅠㅠ

Arch 2009-11-27 16:20   좋아요 0 | URL
금요일에 날도 춥고 어깨도 뻐근하고 눈도 침침한데 왜 이렇게 페이퍼를 쓰고 앉았을까를 생각해봤어요. 중독이란건 이미 알았고, 아마도 다락방님 댓글을 받고 싶어서란 생각이 들었죠. (또 나 좋아하는건 약도 없다고 약올릴거 알지만) 내가 엄청 좋은 이모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어른들을 내게 보내면 마구 괴롭혀줄 자신은 있어요. 저 아시죠. 괴력 아치예요^^

그나저나 문제 안 맞춰요?

다락방 2009-11-27 17:10   좋아요 0 | URL
음..신종 플루 옮길까봐? ㅋㅋ

그나저나 나도 뽀뽀게임 좀 해야되는데....이제 11월도 다 지나갔고......12월인데.........아 ...............................

Arch 2009-11-27 17:53   좋아요 0 | URL
뭐예요. 싱겁게 맞추기는, 칫!
J씨는 부끄러워서? 식상해서? 막 이러던데^^

음, 어떻게하면 다락방님 뽀뽀게임을 할 수 있을까~

다락방 2009-11-27 17:57   좋아요 0 | URL
나는 세상을 아이들의 눈으로 보잖아요. ㅋㅋ


그나저나 Arch님 갑자기 내가 아이들의 눈 얘기를 하니까 말인데, 혹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봤었나요? Arch님은 거기서 무얼 느꼈나요? 그 책이 어땠어요?

Arch 2009-11-28 00:0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가봐요. 난 애가 그렇게 말하는 것만 웃겼는데.

읽었는데, 제대로 안 읽었죠. 문고판으로 보거나 영어 공부한다면서 띄엄띄엄 본게 다예요. 띄엄띄엄 결과로 보자면 '그렇게 대단한'책으로 느껴지진 않았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뷰리풀말미잘 2009-11-27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는 옥찌들에게 이모라기보단 큰 누나 같죠. 가끔 애 셋이랑 놀아주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ㅎㅎ 흐뭇한 페이퍼였어요.

Arch 2009-11-27 17:31   좋아요 0 | URL
제가 좀 동안이죠. 미잘이 좋음 나도 좋아요^^

hanalei 2009-11-28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게임' 인 거죠?
 

  

  오늘 날씨는 많이 따뜻해졌지만, 좀 더 추워질 날들을 대비해 월동준비를 해보아요.

- 다른 팀의 난로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더니 조증 기간이었던 사장이 자기 것을 갖다 쓰라고 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사장은 울증이 도져 추워 죽겠다느니, 너무 추워서 회사 못나오겠다느니, 난방비 때문에 회사 말아먹겠다는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한테 난로 줘서 그렇단 소린 한마디도 안 하면서 말만 뱅뱅 돌리는식. 나는 다시 드려요? 라고 묻지 않았다. 안 줄려고 했어? 라고 맞받아치고선 사장 체면도 까먹고 잽싸게 가져갈까봐. 사장이 앓는 소리를 할때마다 사장님님 덕분에 무척 따뜻하다며 어먼 소리를 하고 있다. 말로 안 통하면 멍청이짓을 해야한다. 우리 사장한테 배운건 딱 그거 하나다.
 옆엣건 가습기 모양을 하고 있고, 수증기도 나오지만 폼은 안 나는 가습기. 수증기가 나오는 통을 잃어버려 제본된 플라스틱 표지 두개를 둥글게 말아서 수증기 입구로 만들어 쓰고 있다. 혼자 DIY라며 으쓱해있자, 깐죽남이 역시 다른 곳을 쳐다보며 추접스럽다고 말해줬다.



 출연: 다락방님이 보내준 보노 스프
 이 스프를 처음 먹고선  스프의 신세계가 열렸다며 환호했다. 다른 맛으로 마구마구 주문해서 계속 계속 먹었다. 첨가물을 본 순간 반사적으로 해로운 맛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맛있다. 맛있어서 해로운건지, 해롭기 때문에 더 맛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죽같은 스프, 스프같은 죽은 추운 겨울에 제격이다. 호호 불어서 먹는 스프 한잔의 여유랄까. 호호(이 웃음 소리는 호호 아줌마를 생각나게 한다. 호호 아줌마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



 카드 지갑을 산 곳에서 보내준 달력. 아직 12월은 멀었고, 그간 크리스마스때 별일 없이 보낸걸 보면 올해도 별일 없을텐데, 매년 기다린다. 매년 아이처럼 첫눈을 기다리고, 첫눈만큼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는 어른들의 달짝지근한 환상.

 겨울하면 생각나는 먹거리. 호빵, 군고구마, 군밤. 나는 축축한 냄새가 풍길때면 오뎅국이 먹고 싶다. 오뎅국에 붕어빵이랑 호떡이랑 바람빵 등등도 같이. 겨울 군것질거리는 따끈따끈하고 맛나다.

 얼마 전까지 형들이랑만 어울리던 Ch가 아치의 섬세하고 매력있고 다정다감한 성격 때문은 아니고 가끔 발현하는 광년이의 정체를 과학적으로 밝혀보겠다며 진상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치왕이냐니까, Ch는 헛소리 하지 말란 표정을 지어줬다. Ch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나의 침분비량과 이상 반응을 체크한다는데, 꽤 논리정연해 보여 흔쾌히 실험에 응해주고 있다. 응한다는건 열심히 먹고 배를 불리는게 다지만. 따끈따끈한 호박고구마도 먹고, 달걀이랑 이성당 빵집의 맛난 빵도 먹었다. 옥찌들 때문에 알게 된, 일반 새우깡 저리가라고 뻥뻥차는 우리 아이 착한 새우는 바삭바삭한게 아주 고소하다. 아, 자꾸 에드립이 생각나서 큰일이다. 큰일인데도 해버렸다. 우리 아치 착한 새우야? 이러니까 회사 사람들은 다들 눈치를 주며 '호응하지마, 호응하지마'한다. 흑



 겨울엔 아주 두꺼운 이불을 덥고, 보들거리는 양말을 신고 자야지. 누에처럼 이불 속에 꽁꽁 싸여서 맘 속으로는 책도 읽고, 뭐도 하고 뭐도 해야하지만 이불 속이 제일 좋다며, 겨울은 좀 그래도 된다며 버티고 있어야지.
 겨울엔 장갑과 마스크, 고무장갑으로 중무장 하고 옥찌들이랑 눈싸움을 해야지. 너무 신나게 놀다 침 흘리면 안 되니까 입은 꼭 다물고 아주 부지런히 눈을 뭉쳐야지.
 겨울엔 누구씨 밭에 있는 배추를 데려다 김장도 하고, 김장한 김에 고기도 삶고, 고기 삶은 김에 막걸리 먹으며 이게 다 아치가 힘 써서 배추 뽑은 덕분이라고 자랑해야지.
 겨울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겨울바다를 보러가야지. 터질듯한 햇살 말고, 보일듯 말듯한 노출 말고, 바람이 몰아치며 들려주는 파도 소리를 들어야지. 마른 바닷가에서 아주 오랫동안 서성여야지.
 겨울엔 그동안 모아놓은 푼돈으로 누군가의 겨울도 따뜻하게 해줘야지. 폼으로 하는 기부, 보잘것없는 기부로 생색 좀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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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겨울이 오면
    from I CAN'T KILL YOU 2009-11-25 12:46 
    겨울이 오면 하고 싶은 일  언젠가 book lover's christmas라는 이름의 카드를 친구에게서 받은 적이 있다. 그림 속엔 안락의자, 테이블 위에 놓은 핫초코, 매우 까다롭게 선정한 듯한 책 몇 권이 있었다. 그림 속에 들어가고픈 적이야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 그림만큼 기억에 남는 카드 그림도 드물다. 아, 책을 읽고 싶다. 다이어리를 쓰고 싶다. 아주 빈둥빈둥거리며 소녀 취향의 음악을 틀어놓고 싶기도 하다.  그보다는
 
 
Forgettable. 2009-11-2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른 바다에서 서성이는거 추워요 '-') 감기걸릴라 ㅎㅎ

하하호호아줌마투덜투덜아저씨아줌마가펼치는꿈속같은이야기꼬마친구숲속친구모두모두즐거워꼬마친구숲속친구모두모두즐거워
뭘 아무도 몰라요!
투닥투닥 놀고싶네요 언니랑 ㅎㅎ

Arch 2009-11-25 09:32   좋아요 0 | URL
우리 귀여운 뽀님, 마른 바다라고 쓴건 겨울 느낌이 그래서였는데 다시 마른 바다라고 하니까 어울리지 않는 조합같아요. 호호 아줌마를 다 아는구나^^ 투닥거리면서? 그건 옥찌들 전문인데^^

순오기 2009-11-24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아줌마~ 다들 알걸요.ㅋㅋ
아~ 마지막 부분이 판소리였다면 절창이에요.^^

Arch 2009-11-25 09:32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나만 모르는구나.
노래에서 판소리까지 나가야겠는데요^^

turnleft 2009-11-25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울에 강릉 바닷가에 가면 안그래도 흰 백사장이 더 하얗게 눈이 덮여있어요.
바람에 머리카락이 미친듯 휘날리지만, 두터운 점퍼에 목도리 칭칭 감은채 장갑 낀 손에는 오뎅국물이 든 종이컵을 들고 바다를 보고 있으면, 뭐랄까 비현실적인 공간 안에 서 있는 듯 아늑한 기분이 들지요.

아, 그러고보니, [Eternal Sunshine on Spotless Mind] 에도 눈덮인 바닷가에 침대가 놓여있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이 참 좋았어요.

Arch 2009-11-25 09:35   좋아요 0 | URL
턴레프트님 선명하게 떠올라요. 춥고 두꺼운 옷 때문에 거추장스럽고 다시 또 춥지만 아늑한 기분까지 들고야 마는 그 느낌. 턴레프트님은 겨울바다를 잘 아시는구나^^
누군가의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성도 알게 된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티없는 마음이란 말이죠? 전 조엘도 클레멘타인도 정말 좋았지만, 기억에 대한 영화를 만든 미셸 공드리가 제일 좋아요. 혹시 그 감독의 비카인드 리와인드란 영화 보셨나요? 아주 신나요!

머큐리 2009-11-25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부는 겨울바다... 왠지 여름과 틀리게 겨울바다하면...낭만적이에요..ㅎㅎ
물론 춥고..바람이 차겠지만...머 아치님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니까..ㅋㅋ

Arch 2009-11-25 09:35   좋아요 0 | URL
그렇죠? 머큐리님은 아시는구나^^

다락방 2009-11-25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은 겨울을 아주 잘 이겨낼 수 있을것 같아요. 아니 남들보다 훨씬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는 침분비량과 이상 반응을 체크한다는데, 만 읽고 완전 전혀 다른걸 생각했어요. 아, 산드라 브라운의 소설같은 실험을 하려나 보군, 하고 말이죠. 아아 근데 뭐야 뜬금없이 군고구마랑 계란이네...( '')

뭐, 군고구마랑 계란이 나쁘다는건 아녜요. 그냥 난, 음, 뭐, 그렇다는거에요.

전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생각만 하면 막 설레이다가 또 막 숨막히다가 또 막 무섭다가 그래요. 도대체 그 날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두려워요. 아 몰라몰라몰라몰라 ㅠㅠ

Arch 2009-11-25 09:38   좋아요 0 | URL
아, 산드라 브라운의 뭔데요, 뭔데요! 마구마구 상상 해봐야겠다. 그래서 슬쩍 방명록에 최대한 끈적이게 댓글을 달아야지. 물론 비밀로 크크~ 나의 다락방님에게는 겨울쯤이야 문제 없다란 생각이어요.
크리스마스는 매년 그랬는데 면역이 안 생기는거 같아요.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백신을 개발해서 내성이 생기도록 해야겠어요.

비로그인 2009-11-2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우리 서로서로 컨닝 해요. 아치님의 마지막 단락을 읽으니 겨울에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누가 봐도 `아주 따라하기로 작정을 했구만' 하는 소리가 나오게끔 따라해 보고 싶어진 걸 어쩝니까. 그래도 `원조'에게 허락(이 아니라 그냥 뭐 하겠다는 거죠)은 받고 써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말로 안 통하면 멍청이짓을 해야한다. 아, 이 말, 너무 좋아요. 정말 좋아서 손으로도 써봤어요. 하필이면 이런 말을 좋아하게 되어 죄송하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쩝니까.종종 상식이 다른 종들이 돌아다니는 걸요.

*옥찌들로 인해 새로운 세계를 늘 경험하시는군요. 저도 얼마 전 뽀로로의 친구들 이름도 다 외우고, 조카를 둔 지인 덕에 키즈 럭인가 하는 맛있는 뽀로로 껌도 얻었더랬어요. 당연히 이름이 뽀로로 과자겠지, 했는데 그런 어려운(?) 이름이 있었지 뭡니까. 아이들의 세계는, 제가 지나온 당연한 터널인데도 다시 들어가 보면 낯이 설어요.

*마지막 기부 이야기 말인데요, 언젠가 카나리 워프가 생기기 전 시티의 어느 은행원이 아주 거액의 유산을 모르는 이로부터 받았답니다. 그가 매일 출근길에 일 페니 정도를 걸인에게 주곤 했는데 그 걸인이 숨을 거두며 그 은행원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주었더랬어요. 걸인이 어찌 그런 큰 돈이! 하고 외치기 전, 그 은행원과 걸인의 유대가 어찌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Arch 2009-11-25 11:06   좋아요 0 | URL
* 아니, 그런건 말예요. 쥬드님, 그냥 하고, 아치 봤지, 나도 이렇게 하고 싶은게 많다라고 먼댓글로 남겨주면 저 자지러지게 좋아지고 말아요. 쥬드님이 하고 싶은건데 뭘~ ^^ 나, 원조 아치인거에요? ㅋㅋ

* 유사품으로 안 들리는 척, 말이 안 나오는 척, 몸이 안 움직이는 척 등등이 있어요. 난로는 약과고 사장의 만행은 헤아릴 수가 없어요.

* 저 과자 진짜 맛있어요^^ 옥찌들은 아토피 때문에 첨가물이 안 들어간 과자를 먹게 해요. 그래서 이 아이들의 과자 욕심이 장난이 아니게 됐지만. 뽀로로 친구들 이름을 외우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시작'이죠^^

* 얼마 전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구걸하는 분이 계셔서 선뜻 돈을 드렸어요. 구걸도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네, 구걸하는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이냐, 구걸보다 사회적인 해법을 찾는게 더 시급하다 등등의 얘기가 있고 그것보다 더 흉흉한 부자 걸인 얘기가 있지만 아직까진 나 좋을대로 하는 기부에 혼자 생색내는게 좋아요. 쥬드님이 말씀하신 둘 사이의 관계도 좋구요.
 

 금요일 저녁에 별다른 일이 없는한 그동안 미뤄놓은 빨래나 청소를 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손예진이 정말 예뻤고 손예진다웠던-연애시대보다 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를 볼까, EBS시네마 천국을 볼까, 어, 그런데 저건 뭐지? 만원의 행복처럼 미션을 지키는 것 같은데 일주일 동안 전기를 안 쓰고, 일회용, 비닐, 플라스틱을 안 쓰며 살아보기 컨셉의 MBC 스페셜이 하고 있었다. 미션의 주인공은 박진희와 이현우.
 바지런하고 예쁜 진희씨는 비닐 대신 신문지에 음식물을 싸서 장을 보고, 한시간 넘게 불을 지펴서 밥을 해먹는다. 복지관에는  두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가서 평소대로 봉사활동을 한다. 시루를 사다 콩나물을 기르고, 정말 꼭 해보고 싶었다며 닭을 데려다 먹이고 재운다. 이렇게 따뜻한 달걀을 본적 있냐며 환하게 웃는 그녀. 무릎이 아파 약을 짓는데 비닐 대신 종이에 약을 담아와 두시간 넘게 달여 먹다 그만, 밥 짓는데 두시간, 약 달리는데 두시간이라며 눈물을 보이고 마는 그녀. 난 불투명했던 이 배우가 좋아질 것 같다.
 반면 우리 현우씨. 자가 발전 자전거를 굴려 2인분 밥을 전기밥솥으로 해먹는데 2시간이나 걸리자, 매니저랑 밥통만 바라보는걸 다른 사람이 보면 우리 꼭 식충이 같다고 할거라며 웃는다. 재활용 집하장에 가서 쓸만한 물건을 고른 후 자전거로 다시 돌아오며 이것도 일이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이 남자. 무심코 종이컵에 오뎅 국물을 받았다가 재활용의 진수를 보여준 남자. 북한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환경을 생각하자는 노래를 만드는 남자. 출근할 때 걸으면서 10분 걸렸다고 하면서 차 타도 10분이라고 말하며 이거, 참, 놀랍지 않냐고 역시 무덤덤하게 말하는 이 남자. 전부터 좋았지만 아마도 난 이 남자를 더 좋아할 것 같다.

 진희씨가 그렇게 아끼고, 신경을 썼는데도 그녀가 일주일 동안 배출한 탄소량만 놓고 보자면, 잣나무를 세 그루는 심어야 한단다. 그렇다면 내가 하룻동안 대책없이 배출하는 탄소는 또 얼마나 많은걸까.

 미디어법은 나 혼자 힘으로 막을 수 없고,
4대강 살리기 삽질 역시 내 힘으로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내가 조금만 부잡스럽게 움직이고, 신경만 쓴다면 점점 더워지는 지구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배보다 배꼽이 큰 환경 보호 말고, 작고 별거 아닌 실천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음식 쓰레기 줄인다며 뭔가를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건 큰 오산이다. 육산은 지금 잔다. 아, 새벽에 이런 저질 개그는 쥐약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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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1-21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뭔가 뭉클하면서 감동과 반성을 함께 느끼면서 고개 끄덕이다가, 마지막 유머는 이해를 못해서 풀이 죽을 뻔 했는데 지금 읽어 보니 오산 대신 육산이 나온 거구나...하며 다시 민망해하며 웃었어요.^^

Arch 2009-11-22 20:22   좋아요 0 | URL
^^ 마지막 유머는 유머가 아니라 막개그라고ㅡ,.ㅜ;; 사람들을 급격히 민망하게 하는데 웃음 포인트가 있어요. 마노아님, 우리 잘 해봐요!

웽스북스 2009-11-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진희 정말 예쁘죠. 저는 원래도 좀 좋아했었어요. 아치님 써놓은 거 보니까 또 막 상상되네. ㅎㅎ
아내가 결혼했다, 정말 그러고보니 다들 손예진 얘기만 했었는데, 갑자기 저도 보고싶어져요.

칠산은, 제가 어제 화장도 못지우고 그냥 잠들었다는 건데, 물을 아끼고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ㅋㅋㅋㅋㅋ

Arch 2009-11-22 20:25   좋아요 0 | URL
그랬구나, 역시 웬디양님은 트랜트세터! 누구 좋아하는 것도 이렇게 한발 앞서다니^^ 아내가 결혼했다는 손예진 때문에 정말 좋았어요.

팔산은, 물 아낀다며 빨래를 안 해서 제 방에 이상한 냄새가 떠돈다는거에요. 전 제 방에 잘 안 들어가고, 거실을 떠돌고 있어요. 아, 구산도 생각났는데 말할까 말까. 웬디양님, 요즘은 어떤 화장 하실까^^ 전에 시크한 느낌이었는데~

바밤바 2009-11-22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EBS시네마 천국을 봤는데. 요즘 다시보기가 안되서 본방을 봐야 한다는~ 글에서 그대 말투가 묻어나는 듯 해서 재밌네요~ ㅎㅎ

Arch 2009-11-22 20:26   좋아요 0 | URL
다시보기가 안 된다니. 전 세명의 MC가 할 때 시네마 천국에 화르르 달아올랐어요. 요즘은 굳이 챙겨보지 않는데. 그대라, 그대라^^

뷰리풀말미잘 2009-11-24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탄소는 쓰는게 아니고 배출하는 겁니다.

Arch 2009-11-24 09:30   좋아요 0 | URL
쓴다는게 배출 아니에요? 버텨보는 중^^

머큐리 2009-11-24 16:14   좋아요 0 | URL
아치 힘내라...ㅎㅎ

Arch 2009-11-24 16:27   좋아요 0 | URL
아, 이제서야 아니구나란걸 느꼈음. 그러니까 탄소를 쓰면 온난화 걱정이 없잖아, 그치?
머큐리님이 힘내라고 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아무도 모르게 고쳐야지, 쓱쓱

새벽 2009-11-2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작고 별거 아닌 실천이 왜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군요... ㅠ 작은 불편도 싫어하게 되니까요 ,,
마지막 개그는 좀 지나서야 이해했네요 ㅋ

Arch 2009-11-24 16: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시뮬님. 전 뽀님 덕분에 시뮬님 서재를 알게 되었어요. 누추한 곳에 와주시고 감사해요.^^
그렇죠? 그런데 불편한 틈새로 좀 재미있는 것도 많이 보이고 그래요. 개그는, 정말 죄송해요. 몹쓸 개그는, 에잇!
 

  별거 없었다. 전에 재즈 댄스할 때 신었던 신발을 신고 와서 나 이런 것도 할 줄 안다며 근무 중에, 느닷없이, 사람들 앞에서 턴을 해보인게 다였다. 뭐 또 굳이 생각해내자면, J씨랑 캐치볼 할 때 이 양반이 내가 공을 못받을거라면서 내기를 거는데 번번히 내가 어설프게나마 공을 받아내 J씨 얼굴이 점점 벌개지는게 귀여워 잔디밭에 몇번 뒹군 것 밖에, 정말 그것 밖에 없었다. 물론 하이톤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오거나 어깨를 들썩이며 풍선에서 바람 빠질 때 나는 방귀 소리처럼 슉슉대며 웃기, 아무 이유없이 사람들을 치고 다니면서 얼어버릴만한 유머를 던지는 것 정도, 그래 그 정도는 뭐 껌이니까 정말이지 별거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회사 사람들은 날 광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두둥

 
처음에 말꼬를 튼건 깐죽남이었다. 물론 날 쳐다보고 말하진 않았다. Ch에게 은근하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더니 ‘아치, 광년이 같아.’라고 속삭인거다. 눈치 없고, 뻥튀기 자질이 상당한 Ch는 물 만난 개구리처럼 신나서 자신이 만난 동네 광년이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못을 박은건 물론 J씨였다. 줄곧 아무 말도 안 보태 나를 안심시키더니, 슬쩍 자리를 옮겨 포털 사이트 검색란에 ‘광년’이를 쳐보는거다. 검색되는게 없자, 광녀라고 쳐보이며 Madwoman이라고, 영어로는 그렇게 말한다고 전해줬다. 눈으로 찌릿 흘겼더니, J씨는 그저 궁금해서 쳐봤을 뿐이라며 딴청을 피웠다.

  그 후로 지금까지 사람들은 내가 웃음 소리가 약간만 커져도, 몸짓이 조금만 어색해도 광년이가 나오려고 한다는 둥, 슬슬 발동이 걸리는 것 같다며 날 약올린다. 호락호락 아치는 아닌지라(다 당해놓곤), 깐죽남에겐 별명 5종 세트를 지어줬고, Ch에게는 따로 만나서 제대로 하라며 협박을 했다. J씨에게는 내가 컵에다 얼음 꽉꽉 채워서 콜라랑 말아주는거 안 먹을거냐고 했더니 금세 꼬리를 내렸다.

  한번 새겨진 이미지는 잘 잊혀지지 않는 법이라, 어제도 밥 남기면 벌금낸다는 내기 때문에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는 남자들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큭큭 웃다 또 광년이란 소리를 들었다. 웃음 소리를 신호로 깐죽남이 다른 사람 쳐다보며 아치 안에 광년이 숨어있다며 깐죽대고, Ch가 부풀리고, J씨가 다시 mad, mad 어쩌고 저쩌고. 세명에게 연달아 별명을 불러주고, 왜 내게 광년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한건 아니고, 그냥 별로니까 그만 하라고 씁소리를 내줬다.

  그러다 정말 궁금해진게, 왜 미친 여자들만 돌아다닐까란 것이었다. Ch가 미친 남자들이 돌아다니면 위험해서라고 하길래, 광년이들은 좀 억울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도 정상은 아니니까 나보고만 광년이라고 하지 말고 남성형 미친 사람에 대한 말도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건 아니고, 재미로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깐죽남은 골똘히 생각하다 광춘이가 괜찮겠다고 했고, 난 ‘년’도 비하하는 말이니까, 광자식, 광새끼, 광놈 등등이 있을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낙점된게 광놈이. 광년이, 광놈이 히~

 오늘은 머리띠를 하고 왔다. 셋이서 아주 신이 났다. 이마가 튀어나왔다고, 삼자인데 앞머리를 올렸다고, 얼굴상이 희안하다고, 저 치마는 또 뭐냐고, 꼭 어떻게 하면 저 애를 울릴 수 있을까라며 셋이 내기라도 한 사람들 같다. 내기를 했을까? 그런데 어째. 난 이 정도에 울 정도로 시시껄렁하지 않고, 갈구는 말이 갖고 있는 손톱만한 관심을 즐겁게 받아줄 정도로 쪼오끔, 아주 조금 대범해진걸. 게다가 난 부정형 인간이라 상대방의 단점은 귀신같이 찾아내는 능력이 있으니, 결국 그들만 밑지는 갈굼이 되는거다. 

점심 시간이다. 금요일 점심은 다른 때보다 훠얼씬 맛있다. 축구와 캐치볼은 어느 정도 섭렵했는데 족구만큼은 30분 내내 서 있어도 공 세번 차보는게 다라 오늘은 운동하러 안 나갔다.
 어떻게 재미있게 쓸까 궁리하며 페이퍼를 쓰는건

정말이지, 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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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1-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Arch님 이미지가 광년이었던 거에요? 그런거에요?
난 슈퍼또라이만 미치게 들어봤는데. ㅎㅎㅎㅎㅎ

우리 좀 잘어울린다요..부끄..

Arch 2009-11-20 13:55   좋아요 0 | URL
이미지가 광년이가 아니라, 턴하고 잔디밭에 굴러서 그래요. 이미지가 그런게 아니라니까요^^ 동생이 그렇게 부르는거죠?

정말? 간질간질^^

Forgettable. 2009-11-2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나보고 아치님네 회사오면 아치님은 평범해질 거란 말(정확하게 이말은 아닌데 이렇게 이해, 내가 놀림거리가 된다는말??? ) 대수로운 말이 아니었군요!!!!! 광년이라니 ㅎㅎㅎㅎㅎ 이에 비해 나는 지극히 평범. 노멀. 기준점. 정상. ETC

광자식ㅋㅋㅋㅋㅋㅋㅋ
내게도 턴을 보여주세요!!

Arch 2009-11-20 16:57   좋아요 0 | URL
음, 내가 평범해지는게 아니라, 내가 뽀에게 했던 말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거란거죠. 그러니까, 제가 광년이 되고, 뭐 그런걸 보면 대충 짐작되겠죠?

그럼 뽀도 나한테 광년이라고 할거에요? 흠... 고민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