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없었다. 전에 재즈 댄스할 때 신었던 신발을 신고 와서 나 이런 것도 할 줄 안다며 근무 중에, 느닷없이, 사람들 앞에서 턴을 해보인게 다였다. 뭐 또 굳이 생각해내자면, J씨랑 캐치볼 할 때 이 양반이 내가 공을 못받을거라면서 내기를 거는데 번번히 내가 어설프게나마 공을 받아내 J씨 얼굴이 점점 벌개지는게 귀여워 잔디밭에 몇번 뒹군 것 밖에, 정말 그것 밖에 없었다. 물론 하이톤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오거나 어깨를 들썩이며 풍선에서 바람 빠질 때 나는 방귀 소리처럼 슉슉대며 웃기, 아무 이유없이 사람들을 치고 다니면서 얼어버릴만한 유머를 던지는 것 정도, 그래 그 정도는 뭐 껌이니까 정말이지 별거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회사 사람들은 날 광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두둥

 
처음에 말꼬를 튼건 깐죽남이었다. 물론 날 쳐다보고 말하진 않았다. Ch에게 은근하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더니 ‘아치, 광년이 같아.’라고 속삭인거다. 눈치 없고, 뻥튀기 자질이 상당한 Ch는 물 만난 개구리처럼 신나서 자신이 만난 동네 광년이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못을 박은건 물론 J씨였다. 줄곧 아무 말도 안 보태 나를 안심시키더니, 슬쩍 자리를 옮겨 포털 사이트 검색란에 ‘광년’이를 쳐보는거다. 검색되는게 없자, 광녀라고 쳐보이며 Madwoman이라고, 영어로는 그렇게 말한다고 전해줬다. 눈으로 찌릿 흘겼더니, J씨는 그저 궁금해서 쳐봤을 뿐이라며 딴청을 피웠다.

  그 후로 지금까지 사람들은 내가 웃음 소리가 약간만 커져도, 몸짓이 조금만 어색해도 광년이가 나오려고 한다는 둥, 슬슬 발동이 걸리는 것 같다며 날 약올린다. 호락호락 아치는 아닌지라(다 당해놓곤), 깐죽남에겐 별명 5종 세트를 지어줬고, Ch에게는 따로 만나서 제대로 하라며 협박을 했다. J씨에게는 내가 컵에다 얼음 꽉꽉 채워서 콜라랑 말아주는거 안 먹을거냐고 했더니 금세 꼬리를 내렸다.

  한번 새겨진 이미지는 잘 잊혀지지 않는 법이라, 어제도 밥 남기면 벌금낸다는 내기 때문에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는 남자들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큭큭 웃다 또 광년이란 소리를 들었다. 웃음 소리를 신호로 깐죽남이 다른 사람 쳐다보며 아치 안에 광년이 숨어있다며 깐죽대고, Ch가 부풀리고, J씨가 다시 mad, mad 어쩌고 저쩌고. 세명에게 연달아 별명을 불러주고, 왜 내게 광년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한건 아니고, 그냥 별로니까 그만 하라고 씁소리를 내줬다.

  그러다 정말 궁금해진게, 왜 미친 여자들만 돌아다닐까란 것이었다. Ch가 미친 남자들이 돌아다니면 위험해서라고 하길래, 광년이들은 좀 억울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도 정상은 아니니까 나보고만 광년이라고 하지 말고 남성형 미친 사람에 대한 말도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건 아니고, 재미로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깐죽남은 골똘히 생각하다 광춘이가 괜찮겠다고 했고, 난 ‘년’도 비하하는 말이니까, 광자식, 광새끼, 광놈 등등이 있을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낙점된게 광놈이. 광년이, 광놈이 히~

 오늘은 머리띠를 하고 왔다. 셋이서 아주 신이 났다. 이마가 튀어나왔다고, 삼자인데 앞머리를 올렸다고, 얼굴상이 희안하다고, 저 치마는 또 뭐냐고, 꼭 어떻게 하면 저 애를 울릴 수 있을까라며 셋이 내기라도 한 사람들 같다. 내기를 했을까? 그런데 어째. 난 이 정도에 울 정도로 시시껄렁하지 않고, 갈구는 말이 갖고 있는 손톱만한 관심을 즐겁게 받아줄 정도로 쪼오끔, 아주 조금 대범해진걸. 게다가 난 부정형 인간이라 상대방의 단점은 귀신같이 찾아내는 능력이 있으니, 결국 그들만 밑지는 갈굼이 되는거다. 

점심 시간이다. 금요일 점심은 다른 때보다 훠얼씬 맛있다. 축구와 캐치볼은 어느 정도 섭렵했는데 족구만큼은 30분 내내 서 있어도 공 세번 차보는게 다라 오늘은 운동하러 안 나갔다.
 어떻게 재미있게 쓸까 궁리하며 페이퍼를 쓰는건

정말이지, 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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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1-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Arch님 이미지가 광년이었던 거에요? 그런거에요?
난 슈퍼또라이만 미치게 들어봤는데. ㅎㅎㅎㅎㅎ

우리 좀 잘어울린다요..부끄..

Arch 2009-11-20 13:55   좋아요 0 | URL
이미지가 광년이가 아니라, 턴하고 잔디밭에 굴러서 그래요. 이미지가 그런게 아니라니까요^^ 동생이 그렇게 부르는거죠?

정말? 간질간질^^

Forgettable. 2009-11-2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나보고 아치님네 회사오면 아치님은 평범해질 거란 말(정확하게 이말은 아닌데 이렇게 이해, 내가 놀림거리가 된다는말??? ) 대수로운 말이 아니었군요!!!!! 광년이라니 ㅎㅎㅎㅎㅎ 이에 비해 나는 지극히 평범. 노멀. 기준점. 정상. ETC

광자식ㅋㅋㅋㅋㅋㅋㅋ
내게도 턴을 보여주세요!!

Arch 2009-11-20 16:57   좋아요 0 | URL
음, 내가 평범해지는게 아니라, 내가 뽀에게 했던 말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거란거죠. 그러니까, 제가 광년이 되고, 뭐 그런걸 보면 대충 짐작되겠죠?

그럼 뽀도 나한테 광년이라고 할거에요? 흠... 고민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