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왼쪽부터 쭉쭉

* 미칠듯이 붉은 노을. 요새는 해가 짧아서 볼 수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녁마다 하늘은 어떤 색일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퇴근하면서 선물같은 하늘을 매끄럽게 볼 수 있다는건 도시가 아닌 한적한 곳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

* 그 사람과 젠가를 했다. 유행 지난지 한참 된 보드 게임을 하면서 난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아이들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보다 소근육보다 대근육이 먼저 발달되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집중을 요하는 놀이를 하기보다는 뛰어놀거나 몸쓰는걸 더 좋아한다.
 운동이라면 빼놓지 않고 잘하는데다 민첩하기까지 한 남자라며 큰 소리 치던 다 큰 남자가 어어, 하면서 번번히 넘어질만한 블록을 빼고, 온갖 규칙을 들이대며 게임은 정교해야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판 다 내가 이겼고,
나는 '전통주' 책을 사주라고 했다. 자, 이젠 술만 담그면 된다 이거지. 내가 과실주는 책을 보지 않아도 담글 수 있다고 하자, 그는 '과실주는 무효'라고 했다. 아, 이러다 둘이서 술독에 빠지는거 아닐까. 그건 좀 달콤할 듯.

* 다락방님과 다락방님이 좋아하는 장소에 갔다가 본, 까무러치게 귀여웠던 소변금지 경고문

* -아빠, 애들 동화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줄 알아?
 나는 아빠 근처에 동화책을 슬며시 놔드렸다. 뭐 그런걸 읽냐고, 텔레비전 리모컨만 있으면 다 나오는데라며 들은척도 안 하시던 우리 아빠.
 잠시 후,

* 비오는 날엔 습기 찬 버스에 그림을 그린다. 중학교 때 버스에서 친구가 손을 오르며 발바락 그리기를 알려준 이후로 쭉 발바닥을 그리다 요새는 멋쩍은 말을 적어놓는다.
과연 그럴까,
어쩌면,
비 맞고 싶다.
비 맞음 개털 냄새 헐헐 XX

비 그친 뒤엔 흔적도 안 남을 글씨.

* 컵에 물을 담아 고구마를 담궜을 뿐이다. 고구마는 어느새 이렇게 푸르고 싱싱하게 자랐다. 태연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이 녀석을 보니 나는 내 몸 어디에  물을 줘야 나도 좀 더 자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떠올랐다.

* 순전히 사장이 청소하시는 분하고 싸워서다. 아무리 싸웠기로서니, 우리 건물은 아예 청소를 안 한다고 할까마는 사장을 보면 아주머니 맘을 오천번 이상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월요일마다 우리는 청소를 한다. 나는 대걸레를 가지고 닦고 다니는데 힘껏 바닥을 문지르면 왠지 뱃살이 좀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청소 했다고 힘드니까 뭘 먹어대니 빠진 기분만 잠시 느낄 뿐이다. 
 청소할 때 안 하려고 얌체같이 구는 사람도 있고, 투덜거리면서 할거 다 하는 사람도 있다. 묵묵히 청소하는 사람이 제일 멋지지만 다른 사람이 안 한다고 투닥거릴 필요없이 제각자 할일을 하니 미워할 것도 없고, 힘 뺄 일도 없다. 내가 사용한 공간을 직접 청소하는 것과 누군가의 손을 빌리는 문제. 언젠간 제대로 된 글을 써보고 싶다.

* 우리 동네 터미널 가판대엔 한겨레-경향신문 순으로 신문이 놓여져 있다. 음식점에 가면 식탁 위에 떡하니 경향신문이 눈에 띈다. 정말이지, 먹고 사는 문제 하나만 해결되면 난 우리 동네에서 재미있게 살 자신 있는데.

* 뒷사람 생각 안 하고 의자를 끝까지 뒤로 젖히는 아저씨.
 머리를 손끝으로 콕콕 찔러주고 싶다. 가끔씩 살갗이 따갑거나 몸 이곳저곳이 찌릿거리며 전기 오는 느낌처럼 말이다. 아니면 머리털 하나를 살짝 잡아당기거나. 손톱으로 콕 찌른 다음에 난 자는 척을 하는건 어떨까. 걸릴까? 걸려서 아저씨가 날 깨우면 아주 귀찮은 표정으로 대체, 왜, 나를 깨우는지 모르겠다며 인상을 쓰고 혼잣말처럼 욕을 뱉어볼까? 내 앞자리였으면 한번 해보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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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ei 2009-11-28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드폰 사진- 아치편
그러나 타이틀인 '아치'님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는...

머큐리 2009-11-2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게요...아치님은 어디에...
가장 인상적인 사진... 고구마...그 생명력에 감탄합니다

쎈연필 2009-11-2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례 경향 순의 가판대가 인상적이네요. 단골 삼고 싶은 걸요.

웽스북스 2009-11-2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대학 1학년 때 친구들이랑 젠가를 했어요. 오랜만에 하니까 엄청 재밌던데요. ㅎㅎㅎ

Arch 2009-11-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가 찍은 사진, 뭐 그런거에요. 제 사진은 몇번 올려서 심심찮게 눈을 불편하게 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쿨럭
제랄님, 그렇죠? 멋진 동네라 그래요.^^
웬디양님, 젠가 연속 세번이면 왠만한 젠가 기법은 다 익힐 것 같아요. 이래서 얘는 금세 자취를 감춘 듯. 요샌 왠만한데서 찾기도 힘들어요.

다락방 2009-11-3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구마 사진을 보니 갑자기 감동이 ㅜㅡ (나도 키워볼까...흐음.........)

Arch 2009-12-01 17:00   좋아요 0 | URL
고구마는 배신하지 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