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는 많이 따뜻해졌지만, 좀 더 추워질 날들을 대비해 월동준비를 해보아요.

- 다른 팀의 난로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더니 조증 기간이었던 사장이 자기 것을 갖다 쓰라고 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사장은 울증이 도져 추워 죽겠다느니, 너무 추워서 회사 못나오겠다느니, 난방비 때문에 회사 말아먹겠다는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한테 난로 줘서 그렇단 소린 한마디도 안 하면서 말만 뱅뱅 돌리는식. 나는 다시 드려요? 라고 묻지 않았다. 안 줄려고 했어? 라고 맞받아치고선 사장 체면도 까먹고 잽싸게 가져갈까봐. 사장이 앓는 소리를 할때마다 사장님님 덕분에 무척 따뜻하다며 어먼 소리를 하고 있다. 말로 안 통하면 멍청이짓을 해야한다. 우리 사장한테 배운건 딱 그거 하나다.
 옆엣건 가습기 모양을 하고 있고, 수증기도 나오지만 폼은 안 나는 가습기. 수증기가 나오는 통을 잃어버려 제본된 플라스틱 표지 두개를 둥글게 말아서 수증기 입구로 만들어 쓰고 있다. 혼자 DIY라며 으쓱해있자, 깐죽남이 역시 다른 곳을 쳐다보며 추접스럽다고 말해줬다.



 출연: 다락방님이 보내준 보노 스프
 이 스프를 처음 먹고선  스프의 신세계가 열렸다며 환호했다. 다른 맛으로 마구마구 주문해서 계속 계속 먹었다. 첨가물을 본 순간 반사적으로 해로운 맛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맛있다. 맛있어서 해로운건지, 해롭기 때문에 더 맛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죽같은 스프, 스프같은 죽은 추운 겨울에 제격이다. 호호 불어서 먹는 스프 한잔의 여유랄까. 호호(이 웃음 소리는 호호 아줌마를 생각나게 한다. 호호 아줌마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



 카드 지갑을 산 곳에서 보내준 달력. 아직 12월은 멀었고, 그간 크리스마스때 별일 없이 보낸걸 보면 올해도 별일 없을텐데, 매년 기다린다. 매년 아이처럼 첫눈을 기다리고, 첫눈만큼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는 어른들의 달짝지근한 환상.

 겨울하면 생각나는 먹거리. 호빵, 군고구마, 군밤. 나는 축축한 냄새가 풍길때면 오뎅국이 먹고 싶다. 오뎅국에 붕어빵이랑 호떡이랑 바람빵 등등도 같이. 겨울 군것질거리는 따끈따끈하고 맛나다.

 얼마 전까지 형들이랑만 어울리던 Ch가 아치의 섬세하고 매력있고 다정다감한 성격 때문은 아니고 가끔 발현하는 광년이의 정체를 과학적으로 밝혀보겠다며 진상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치왕이냐니까, Ch는 헛소리 하지 말란 표정을 지어줬다. Ch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나의 침분비량과 이상 반응을 체크한다는데, 꽤 논리정연해 보여 흔쾌히 실험에 응해주고 있다. 응한다는건 열심히 먹고 배를 불리는게 다지만. 따끈따끈한 호박고구마도 먹고, 달걀이랑 이성당 빵집의 맛난 빵도 먹었다. 옥찌들 때문에 알게 된, 일반 새우깡 저리가라고 뻥뻥차는 우리 아이 착한 새우는 바삭바삭한게 아주 고소하다. 아, 자꾸 에드립이 생각나서 큰일이다. 큰일인데도 해버렸다. 우리 아치 착한 새우야? 이러니까 회사 사람들은 다들 눈치를 주며 '호응하지마, 호응하지마'한다. 흑



 겨울엔 아주 두꺼운 이불을 덥고, 보들거리는 양말을 신고 자야지. 누에처럼 이불 속에 꽁꽁 싸여서 맘 속으로는 책도 읽고, 뭐도 하고 뭐도 해야하지만 이불 속이 제일 좋다며, 겨울은 좀 그래도 된다며 버티고 있어야지.
 겨울엔 장갑과 마스크, 고무장갑으로 중무장 하고 옥찌들이랑 눈싸움을 해야지. 너무 신나게 놀다 침 흘리면 안 되니까 입은 꼭 다물고 아주 부지런히 눈을 뭉쳐야지.
 겨울엔 누구씨 밭에 있는 배추를 데려다 김장도 하고, 김장한 김에 고기도 삶고, 고기 삶은 김에 막걸리 먹으며 이게 다 아치가 힘 써서 배추 뽑은 덕분이라고 자랑해야지.
 겨울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겨울바다를 보러가야지. 터질듯한 햇살 말고, 보일듯 말듯한 노출 말고, 바람이 몰아치며 들려주는 파도 소리를 들어야지. 마른 바닷가에서 아주 오랫동안 서성여야지.
 겨울엔 그동안 모아놓은 푼돈으로 누군가의 겨울도 따뜻하게 해줘야지. 폼으로 하는 기부, 보잘것없는 기부로 생색 좀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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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겨울이 오면
    from I CAN'T KILL YOU 2009-11-25 12:46 
    겨울이 오면 하고 싶은 일  언젠가 book lover's christmas라는 이름의 카드를 친구에게서 받은 적이 있다. 그림 속엔 안락의자, 테이블 위에 놓은 핫초코, 매우 까다롭게 선정한 듯한 책 몇 권이 있었다. 그림 속에 들어가고픈 적이야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 그림만큼 기억에 남는 카드 그림도 드물다. 아, 책을 읽고 싶다. 다이어리를 쓰고 싶다. 아주 빈둥빈둥거리며 소녀 취향의 음악을 틀어놓고 싶기도 하다.  그보다는
 
 
Forgettable. 2009-11-2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른 바다에서 서성이는거 추워요 '-') 감기걸릴라 ㅎㅎ

하하호호아줌마투덜투덜아저씨아줌마가펼치는꿈속같은이야기꼬마친구숲속친구모두모두즐거워꼬마친구숲속친구모두모두즐거워
뭘 아무도 몰라요!
투닥투닥 놀고싶네요 언니랑 ㅎㅎ

Arch 2009-11-25 09:32   좋아요 0 | URL
우리 귀여운 뽀님, 마른 바다라고 쓴건 겨울 느낌이 그래서였는데 다시 마른 바다라고 하니까 어울리지 않는 조합같아요. 호호 아줌마를 다 아는구나^^ 투닥거리면서? 그건 옥찌들 전문인데^^

순오기 2009-11-24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아줌마~ 다들 알걸요.ㅋㅋ
아~ 마지막 부분이 판소리였다면 절창이에요.^^

Arch 2009-11-25 09:32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나만 모르는구나.
노래에서 판소리까지 나가야겠는데요^^

turnleft 2009-11-25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울에 강릉 바닷가에 가면 안그래도 흰 백사장이 더 하얗게 눈이 덮여있어요.
바람에 머리카락이 미친듯 휘날리지만, 두터운 점퍼에 목도리 칭칭 감은채 장갑 낀 손에는 오뎅국물이 든 종이컵을 들고 바다를 보고 있으면, 뭐랄까 비현실적인 공간 안에 서 있는 듯 아늑한 기분이 들지요.

아, 그러고보니, [Eternal Sunshine on Spotless Mind] 에도 눈덮인 바닷가에 침대가 놓여있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이 참 좋았어요.

Arch 2009-11-25 09:35   좋아요 0 | URL
턴레프트님 선명하게 떠올라요. 춥고 두꺼운 옷 때문에 거추장스럽고 다시 또 춥지만 아늑한 기분까지 들고야 마는 그 느낌. 턴레프트님은 겨울바다를 잘 아시는구나^^
누군가의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성도 알게 된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티없는 마음이란 말이죠? 전 조엘도 클레멘타인도 정말 좋았지만, 기억에 대한 영화를 만든 미셸 공드리가 제일 좋아요. 혹시 그 감독의 비카인드 리와인드란 영화 보셨나요? 아주 신나요!

머큐리 2009-11-25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부는 겨울바다... 왠지 여름과 틀리게 겨울바다하면...낭만적이에요..ㅎㅎ
물론 춥고..바람이 차겠지만...머 아치님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니까..ㅋㅋ

Arch 2009-11-25 09:35   좋아요 0 | URL
그렇죠? 머큐리님은 아시는구나^^

다락방 2009-11-25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은 겨울을 아주 잘 이겨낼 수 있을것 같아요. 아니 남들보다 훨씬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는 침분비량과 이상 반응을 체크한다는데, 만 읽고 완전 전혀 다른걸 생각했어요. 아, 산드라 브라운의 소설같은 실험을 하려나 보군, 하고 말이죠. 아아 근데 뭐야 뜬금없이 군고구마랑 계란이네...( '')

뭐, 군고구마랑 계란이 나쁘다는건 아녜요. 그냥 난, 음, 뭐, 그렇다는거에요.

전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생각만 하면 막 설레이다가 또 막 숨막히다가 또 막 무섭다가 그래요. 도대체 그 날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두려워요. 아 몰라몰라몰라몰라 ㅠㅠ

Arch 2009-11-25 09:38   좋아요 0 | URL
아, 산드라 브라운의 뭔데요, 뭔데요! 마구마구 상상 해봐야겠다. 그래서 슬쩍 방명록에 최대한 끈적이게 댓글을 달아야지. 물론 비밀로 크크~ 나의 다락방님에게는 겨울쯤이야 문제 없다란 생각이어요.
크리스마스는 매년 그랬는데 면역이 안 생기는거 같아요.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백신을 개발해서 내성이 생기도록 해야겠어요.

비로그인 2009-11-2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우리 서로서로 컨닝 해요. 아치님의 마지막 단락을 읽으니 겨울에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누가 봐도 `아주 따라하기로 작정을 했구만' 하는 소리가 나오게끔 따라해 보고 싶어진 걸 어쩝니까. 그래도 `원조'에게 허락(이 아니라 그냥 뭐 하겠다는 거죠)은 받고 써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말로 안 통하면 멍청이짓을 해야한다. 아, 이 말, 너무 좋아요. 정말 좋아서 손으로도 써봤어요. 하필이면 이런 말을 좋아하게 되어 죄송하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쩝니까.종종 상식이 다른 종들이 돌아다니는 걸요.

*옥찌들로 인해 새로운 세계를 늘 경험하시는군요. 저도 얼마 전 뽀로로의 친구들 이름도 다 외우고, 조카를 둔 지인 덕에 키즈 럭인가 하는 맛있는 뽀로로 껌도 얻었더랬어요. 당연히 이름이 뽀로로 과자겠지, 했는데 그런 어려운(?) 이름이 있었지 뭡니까. 아이들의 세계는, 제가 지나온 당연한 터널인데도 다시 들어가 보면 낯이 설어요.

*마지막 기부 이야기 말인데요, 언젠가 카나리 워프가 생기기 전 시티의 어느 은행원이 아주 거액의 유산을 모르는 이로부터 받았답니다. 그가 매일 출근길에 일 페니 정도를 걸인에게 주곤 했는데 그 걸인이 숨을 거두며 그 은행원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주었더랬어요. 걸인이 어찌 그런 큰 돈이! 하고 외치기 전, 그 은행원과 걸인의 유대가 어찌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Arch 2009-11-25 11:06   좋아요 0 | URL
* 아니, 그런건 말예요. 쥬드님, 그냥 하고, 아치 봤지, 나도 이렇게 하고 싶은게 많다라고 먼댓글로 남겨주면 저 자지러지게 좋아지고 말아요. 쥬드님이 하고 싶은건데 뭘~ ^^ 나, 원조 아치인거에요? ㅋㅋ

* 유사품으로 안 들리는 척, 말이 안 나오는 척, 몸이 안 움직이는 척 등등이 있어요. 난로는 약과고 사장의 만행은 헤아릴 수가 없어요.

* 저 과자 진짜 맛있어요^^ 옥찌들은 아토피 때문에 첨가물이 안 들어간 과자를 먹게 해요. 그래서 이 아이들의 과자 욕심이 장난이 아니게 됐지만. 뽀로로 친구들 이름을 외우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시작'이죠^^

* 얼마 전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구걸하는 분이 계셔서 선뜻 돈을 드렸어요. 구걸도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네, 구걸하는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이냐, 구걸보다 사회적인 해법을 찾는게 더 시급하다 등등의 얘기가 있고 그것보다 더 흉흉한 부자 걸인 얘기가 있지만 아직까진 나 좋을대로 하는 기부에 혼자 생색내는게 좋아요. 쥬드님이 말씀하신 둘 사이의 관계도 좋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