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에 별다른 일이 없는한 그동안 미뤄놓은 빨래나 청소를 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손예진이 정말 예뻤고 손예진다웠던-연애시대보다 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를 볼까, EBS시네마 천국을 볼까, 어, 그런데 저건 뭐지? 만원의 행복처럼 미션을 지키는 것 같은데 일주일 동안 전기를 안 쓰고, 일회용, 비닐, 플라스틱을 안 쓰며 살아보기 컨셉의 MBC 스페셜이 하고 있었다. 미션의 주인공은 박진희와 이현우.
 바지런하고 예쁜 진희씨는 비닐 대신 신문지에 음식물을 싸서 장을 보고, 한시간 넘게 불을 지펴서 밥을 해먹는다. 복지관에는  두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가서 평소대로 봉사활동을 한다. 시루를 사다 콩나물을 기르고, 정말 꼭 해보고 싶었다며 닭을 데려다 먹이고 재운다. 이렇게 따뜻한 달걀을 본적 있냐며 환하게 웃는 그녀. 무릎이 아파 약을 짓는데 비닐 대신 종이에 약을 담아와 두시간 넘게 달여 먹다 그만, 밥 짓는데 두시간, 약 달리는데 두시간이라며 눈물을 보이고 마는 그녀. 난 불투명했던 이 배우가 좋아질 것 같다.
 반면 우리 현우씨. 자가 발전 자전거를 굴려 2인분 밥을 전기밥솥으로 해먹는데 2시간이나 걸리자, 매니저랑 밥통만 바라보는걸 다른 사람이 보면 우리 꼭 식충이 같다고 할거라며 웃는다. 재활용 집하장에 가서 쓸만한 물건을 고른 후 자전거로 다시 돌아오며 이것도 일이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이 남자. 무심코 종이컵에 오뎅 국물을 받았다가 재활용의 진수를 보여준 남자. 북한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환경을 생각하자는 노래를 만드는 남자. 출근할 때 걸으면서 10분 걸렸다고 하면서 차 타도 10분이라고 말하며 이거, 참, 놀랍지 않냐고 역시 무덤덤하게 말하는 이 남자. 전부터 좋았지만 아마도 난 이 남자를 더 좋아할 것 같다.

 진희씨가 그렇게 아끼고, 신경을 썼는데도 그녀가 일주일 동안 배출한 탄소량만 놓고 보자면, 잣나무를 세 그루는 심어야 한단다. 그렇다면 내가 하룻동안 대책없이 배출하는 탄소는 또 얼마나 많은걸까.

 미디어법은 나 혼자 힘으로 막을 수 없고,
4대강 살리기 삽질 역시 내 힘으로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내가 조금만 부잡스럽게 움직이고, 신경만 쓴다면 점점 더워지는 지구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배보다 배꼽이 큰 환경 보호 말고, 작고 별거 아닌 실천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음식 쓰레기 줄인다며 뭔가를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건 큰 오산이다. 육산은 지금 잔다. 아, 새벽에 이런 저질 개그는 쥐약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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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1-21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뭔가 뭉클하면서 감동과 반성을 함께 느끼면서 고개 끄덕이다가, 마지막 유머는 이해를 못해서 풀이 죽을 뻔 했는데 지금 읽어 보니 오산 대신 육산이 나온 거구나...하며 다시 민망해하며 웃었어요.^^

Arch 2009-11-22 20:22   좋아요 0 | URL
^^ 마지막 유머는 유머가 아니라 막개그라고ㅡ,.ㅜ;; 사람들을 급격히 민망하게 하는데 웃음 포인트가 있어요. 마노아님, 우리 잘 해봐요!

웽스북스 2009-11-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진희 정말 예쁘죠. 저는 원래도 좀 좋아했었어요. 아치님 써놓은 거 보니까 또 막 상상되네. ㅎㅎ
아내가 결혼했다, 정말 그러고보니 다들 손예진 얘기만 했었는데, 갑자기 저도 보고싶어져요.

칠산은, 제가 어제 화장도 못지우고 그냥 잠들었다는 건데, 물을 아끼고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ㅋㅋㅋㅋㅋ

Arch 2009-11-22 20:25   좋아요 0 | URL
그랬구나, 역시 웬디양님은 트랜트세터! 누구 좋아하는 것도 이렇게 한발 앞서다니^^ 아내가 결혼했다는 손예진 때문에 정말 좋았어요.

팔산은, 물 아낀다며 빨래를 안 해서 제 방에 이상한 냄새가 떠돈다는거에요. 전 제 방에 잘 안 들어가고, 거실을 떠돌고 있어요. 아, 구산도 생각났는데 말할까 말까. 웬디양님, 요즘은 어떤 화장 하실까^^ 전에 시크한 느낌이었는데~

바밤바 2009-11-22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EBS시네마 천국을 봤는데. 요즘 다시보기가 안되서 본방을 봐야 한다는~ 글에서 그대 말투가 묻어나는 듯 해서 재밌네요~ ㅎㅎ

Arch 2009-11-22 20:26   좋아요 0 | URL
다시보기가 안 된다니. 전 세명의 MC가 할 때 시네마 천국에 화르르 달아올랐어요. 요즘은 굳이 챙겨보지 않는데. 그대라, 그대라^^

뷰리풀말미잘 2009-11-24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탄소는 쓰는게 아니고 배출하는 겁니다.

Arch 2009-11-24 09:30   좋아요 0 | URL
쓴다는게 배출 아니에요? 버텨보는 중^^

머큐리 2009-11-24 16:14   좋아요 0 | URL
아치 힘내라...ㅎㅎ

Arch 2009-11-24 16:27   좋아요 0 | URL
아, 이제서야 아니구나란걸 느꼈음. 그러니까 탄소를 쓰면 온난화 걱정이 없잖아, 그치?
머큐리님이 힘내라고 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아무도 모르게 고쳐야지, 쓱쓱

새벽 2009-11-2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작고 별거 아닌 실천이 왜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군요... ㅠ 작은 불편도 싫어하게 되니까요 ,,
마지막 개그는 좀 지나서야 이해했네요 ㅋ

Arch 2009-11-24 16: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시뮬님. 전 뽀님 덕분에 시뮬님 서재를 알게 되었어요. 누추한 곳에 와주시고 감사해요.^^
그렇죠? 그런데 불편한 틈새로 좀 재미있는 것도 많이 보이고 그래요. 개그는, 정말 죄송해요. 몹쓸 개그는, 에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