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헤르타 뮐러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몇 해 전부터 이맘때가 되면 작은 울렁증이 생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어떤 이가 이 상을 거머쥘까 하는 궁금증을 조용히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올해는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의 막연한 기대가 올해는 실현이 되는 것이라 여기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수상 발표가 있는 날에는 오후 4시부터 TV를 켜놓고 거실을 서성거렸다. 그렇게 하면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타는데 도움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아쉽게도 잡힐 듯 했던 꿈은 또다시 저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이제 다음을 기약해야 하지만 그날이 멀지않았다는 확신이 생겨 기다림이 지루하진 않을 것 같다. 한국 작가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고, 한국 문학이 큰 관심을 받게 될 그날을 기다리며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을 작정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그 관심의 일환이 되겠다. 이 책의 작가 헤르타 뮐러는 2009년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다. '응축된 시정과 진솔한 산문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는 것이 수상 이유였는데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이 책을 펼쳐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읽기를 몇 차례나 반복해야했다. 글이 담고 있는 상징성과 함축성이 강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이 글을 이토록 비밀스럽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나는 책 읽기를 멈추고 작가 헤르타 뮐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그녀는 공산 독재정권 하에서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졸업 후엔 기계공장에서 번역자로 일했는데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끄나풀이 되라는 요구를 거부하여 해직 당했다고 한다. 작품을 발표했을 때는 독재정권과 비밀경찰을 공공연하게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출판을 금지 당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잿빛의 시대를 살아 낸 작가이다. 그것이 이 글을 상징적이고 함축적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지 생각을 하면서 읽자 책 넘기는 속도가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난해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의 열쇠는 바로 '그녀의 삶'이었다. 이 소설은 그녀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삶을 이해해야 하고 그녀가 왜 이 소설을 썼는지, 소설 속에서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이 책의 주인공 '아디나'가 그녀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공포의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팔게 될까봐 가장 공포스러웠던 아디나는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온당치 못한 일을 온당치 못하다고 말해 감시를 당하게 된 아디나 역시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겨울이 도시에 와 있던 시절(p.272), 하늘이 회색이던 시절(p.285), 도대체 정의는 어디 있어요, 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던 시절(p.267), 의지할 데 없던 시절(p.164), 독재자의 권력 아래에서 죽은 체 해야 했던 시절(p.58)의 증인이다. 한 시대의 증인으로서 날카로운 기억의 흔적을 이 책을 통해 남긴 것이다. 증인이라도 있어야 잘못된 일들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테니까. 같은 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더이상 없어야 할 테니까.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계속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시대의 증인이 되어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어 줄 것이기에. 우리가 삶을 그려보다 생채기 나거나 목안에 혹이 생기지 않게 해줄 것이기에. 여러 가지 문제들로부터 인간의 삶을 지켜주는 삶의 도구가 되어줄 것이기에. 때문에 남은 이들에게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찾는 것은 가장 큰 의무이자 권리 일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삶을 글자라는 발자국으로 남겨준 작가 헤르타 뮐러에게 감사한다. 어두운 골목길을 비춰 준 외로운 등불이라도 있어 아류 인생도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다. 비록 그 시대가 반복되더라도.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겨나더라도.    

p.49 그들이 서로 얘기하지 않을 때, 그들은 살아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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