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엘료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감동을 느끼고 공감하는 사람 역시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그의 작품『연금술사』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열심히 읽는 독자도 많겠지만, 오히려『연금술사』를 읽고는 그의 다른 작품을 찾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란 말이다. 나는『연금술사』이후로 한동안 코엘료의 작품을 찾지 않았다. 세계적인 작가의 책을 일부러 피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감을 느끼고 나자, 다시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연금술사』를 읽고 코엘료에 공감하지 못했다면,『오자히르』나『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어보라는 지인의 말에 힘입어 다시 코엘료의 작품을 찾게 되었다.

 나와 오 자히르와의 만남이 코엘료와 나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주길 바라며, 얇지 않은 이 책을 한 장씩 넘겨갔다. 이 책을 넘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 책이 소설인지, 자서전인지 확인하기 위해 표지를 확인했다. 파울로 코엘료 장편소설. 소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읽어가는 내내 이 책이 코엘료의 자서전 같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 책의 주인공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책이 출간되고,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의 부를 축적한 작가의 모습이 코엘료를 계속 연상케 한다. 코엘료가 아니라면 어떤 작가가 이런 주인공을 내세울 수 있을까. 그와 닮은 주인공과, 실제로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소설 속에 영입시킴으로써 그의 사유와 성찰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만든다.

 베스트셀러의 작가와 그의 아내.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랑해서 결혼했고, 때론 다투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며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을 보낸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비교적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아내가 없어진 것. 그러나 그는 아내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딘가로 간 것임을 알고 있다. 많은 것을 가진 아내가 왜 나를 떠났을까. 왜... 왜... 그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엉켜버린 실타래를 찾아내 풀어야했다. 어느 순간부터 행복하지 않다는 그의 아내는 어떤 책에서 읽었다는 “프리츠, 넌 모든 게 지금 같았다고 생각해?” 하는 물음을 끌어들이며 그에게 말한다. 그 질문(한스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다고.

 아내가 없어진 후 그는 매순간 떠난 아내에게 집착하게 된다. 어떤 질문도 답변 없이 놓아두지 않고, 모든 공간을 점령해 버리고, 우리로 하여금 만물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자히르. 그의 아내는 그에게 자히르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빈 공간을 꽉 채워버린 자히르가 된 그녀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그도 한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서야 한다.

 모든 것은 지금 같지 않았다. 살아가며 자신이 이룩한 역사에 얽매여,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에만 머무르는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더 넓은 길로는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길 포기했고, 우리가 가진 것에 순응하게 된 것이다. 사는 것이 다 그렇지, 하며 오히려 다를 것 없는 일상을 감사히 여기며, 다른 사람들이 이것이 ‘너’야 하고 규정해 준, 이것이 나의 모습이야 하고 자신이 믿고 있는 모습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어쩌면 자신이 이룩한 역사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주인공은 알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개인적 역사는 중요하지 않으며, 삶은 축적된 경험의 역사이기를 멈추고,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나는 가끔, 때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나의 과거를 잊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으며, 같은 일상과 같은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일 수도 있다. 평소의 내가 하지 않았던 도발적인 행동을 해도 나를 몰랐던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을 것이기에 사람들이 그게 너야, 너 다운거야, 하며 씌워준 가면도 벗어젖힐 수도 있을 것이다.

 정해진 나의 모습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나의 욕구와 아내를 찾기 위해 한스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그와 어느 순간 만나게 된다. 나 개인의 과거사로부터 해방되자, 예전의 열정이 되돌아왔다는 그는 사라져가는 열정을 가만두지 말라고, 자신이 뭘 위해 투쟁하고 있는지를 잊었을 때는 이유를 찾아 나서라고 한다. 더욱 자유롭기 위해, 새사람이 되기 위해 쌓는 법만 배우지 말고 비우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내 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혀 모든 것이 나갈 수 있도록, 밖의 모든 것은 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하라며 내 안의 창문에 노크를 한다. 나는 그리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가진 자히르를 내보내고 더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은 대답할 수 없지만 내가 그가 보낸 자유의 메시지를 받은 것은 확실하다. 또한『연금술사』를 읽고 코엘료의 작품에 감명을 받지 못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며 권해준 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 것도 확실하다. 이 작품이 내가 코엘료에게 한걸음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그가 보낸 자유의 메시지를 보관함에 넣어두고, 내 마음의 창문이 굳게 닫힐 때면 다시 활짝 열 수 있는 스위치로 활용하려 한다.『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도 곧 읽게 될 것 같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09-07-1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요. 너무 이뻐요^^
마음껏 책을 못 읽는 대신에 이렇게 좋은 리뷰 덕분에 제 눈이 즐기고 있어요. ㅎㅎㅎ
리뷰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어느멋진날 2009-07-11 11:07   좋아요 0 | URL
와~후애님이 오셨네요^^ 표지 정말 이쁘죠? 저도 그 생각했었어요ㅎㅎ 한국에 계신 것이 아니라 책을 맘껏 못 읽으시는군요. 멀리 계시지만 마음만큼은 멀리 계신 것 같지가 않네요.

유쾌한마녀 2009-07-1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히르'가 단어였군요!! 전 제목만 봐서는 대체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저도 멋진날님처럼 코엘료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 리뷰 보고 살~짝 관심이 가는데요?? 나중에 함 읽어봐야겠어요 ^^

어느멋진날 2009-07-13 20:41   좋아요 0 | URL
오늘 코엘료 신간을 예약 받는다는 문자를 받았어요.ㅎ 전 신간에도 관심이 간다는,, '자히르'는 아랍어래요. 어떤 대상에 대한 집념,집착,탐닉,열정 이런 것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네요.^^

유쾌한마녀 2009-07-1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끌리는 단어!!! 멋진날님에게 있어서 자히르는 뭔가요?

어느멋진날 2009-07-13 21:20   좋아요 0 | URL
저에게 자히르는.... 공무원 시험?? ㅠㅠ 흑흑,,

유쾌한마녀 2009-07-13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날님의 자히르가 즐거운 낭만이 되는 날이 빨리 왔음 좋겠군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어느멋진날 2009-07-13 21:2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마녀님두요. 우리 청춘이잖아요ㅠ 빨리 끝내 놓고 놉시다!

유쾌한마녀 2009-07-13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은 60세 부터래요....ㄷㄷㄷ......;;;;;

어느멋진날 2009-07-13 21:31   좋아요 0 | URL
맙소사!! 그럼 우린 청춘되려면 멀었네요ㅠㅠ 앙앙ㅠㅠ

유쾌한마녀 2009-07-1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까지는 36년이나 남았어요; 그때까지 뭐할까요??ㅋㅋㅋㅋㅋㅋ

어느멋진날 2009-07-13 21:35   좋아요 0 | URL
뭐 그냥 청춘인 양 즐깁시다.ㅋㅋ 놀러두 가구^^ 책도 읽고,, 강태공처럼 때를 기다립시다. 청춘의 때를? ㅋㅋ

유쾌한마녀 2009-07-1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태공이요?? 낚시만 하자구요?? 누굴 낚을까요?? 란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킹콩을 들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공부가 제일 편한 거야!" 학교 다닐 적 어른들이 늘 하시던 이 말씀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야 힘들면 좀 쉬었다 하고, 아프면 약 먹고 좀 괜찮아지면 또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지만, 운동은 부상당하면 자칫 선수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다칠지도 모르지만, 꿈이 좌절 될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앞을 향해 나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의 많은 운명들 속에는 몸을 써야하는 운동선수의 운명도 있을 것이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처럼, 이런 별도 있고, 저런 별도 있는 것이 여기 이 세상에서도 적용되는 룰이기에.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경기 종목 중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종목이야!" "왜 그런 무거운 걸 드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그 종목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대개의 운동 종목들이 그렇듯이 역도 역시 메달 색깔에 따라 대우도 달리 받으며, 또 올림픽 때 잠깐 말고는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88올림픽 때 부상으로 동메달에 그친 역도 선수 이지봉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세상은 그를 쉽게 잊었고,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리스트인 그에게는 노력의 대가라는 값진 선물도 없었다. 남은 것은 운동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것과 부상으로 생긴 영광 아닌 흉터자국뿐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전전하다 시골의 한 여중학교의 역도 선생님으로 가서 가난과 놀림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그렇지만 꿈만은 충만한 시골소녀들과 만나게 된다. 역도라는 것을 배워봤자 좋을 것이 없다며, 부상당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며, 지금 내 모습이 좋아 보이냐고 하며 다른 것을 배우라고 하는 그에게 이것은 자신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며, 역도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도 해본 적이 없다고 가르쳐달라고 시골소녀들은 다부지게 말한다. 그렇게 자신들의 영혼을 물들일 이지봉 선생님과 시골 소녀들의 잊지 못할 순간은 시작된다. 각본도 대본도 없는 그래서 더욱 재밌고 극적인 그녀들의 스포츠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선수 입문 초기시절부터 제법 선수 티가 나게 되기까지 6명의 역도부 소녀들은 서러운 일도 함께하고, 무시당하는 것도 함께 당하고, 상 받는 것도 함께 받으면서 가족 못지않은 따스함을 나눈다. 그 중 누군가 울면 달래기보단 더 서럽게 같이 울었고, 또 누군가 아파하면 그보다 더 아파하며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다부진 근성을 가지고 허리통증이 와 고통스러워도 이지봉 선생님의 위로 몇 마디에 다시 용기를 내는 영자, 자신의 무게보다도 더 무거운 것을 번쩍 들면서도 자신의 사랑 앞에선 수줍어 머리를 귀 뒤로 슬며시 넘기며 뺨을 붉히는 소녀, 단지 역도복이 예뻐 보여 역도부에 들어와 메달은 하나도 못 땄지만 다른 역도부 소녀들에게 멘탈트레이너가 되어준 소녀, 효심 지극한 소녀, 그런 소녀들을 끝까지 믿고 응원해준 킹콩 이지봉 선생님... 그녀들과 이지봉 선생님이 만들어 가는 드라마에는 누구보다 유쾌한 코미디, 로맨스,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 극적인 일 이 모든 것이 녹아있다.

 심판 판정 시비가 적어 자신의 체력과 힘만으로 결과를 내는 정직한 스포츠를 그녀들은 우직하게 또한 가슴 찡하게 해 나간다. 그녀들이 온 힘을 다해 자신 앞에 주어진 역기를 들어 올리고, 성공 했다는 부저 소리가 울릴 땐 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뭉클했다. 살아가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역기를 들어 올렸을까. 이 정도쯤이야 문제도 아니지, 하며 번쩍 들어 올린 역기도 있었을 것이고,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무게의 역기를 들어 올리려다가 다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가며 우리는 어른이 되가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금메달 땄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금메달 인 것도 아니고 동메달 땄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까지 동메달이 아니라는 이지봉 선생님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어떤 일에 최고의 성적을 내지 못했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스스로에게 금메달을 수여해도 될 것이다. 매 순간 노력하고 도전하려는 자신만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킹콩 보다 더한 것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결말이 뻔해 보이는 스포츠를 다룬 영화인데도 무한한 감동을 준 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부터 쏟아 붓는 비속에도 오늘 이 영화를 함께 보러 간 친구의 한마디는 "영화 잘 골랐네.^ㅡ^" 였다. 배꼽 빠지게 웃다가 눈물범벅이 되어 영화관을 나왔다. 내가 들을 킹콩의 무게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더욱 가벼울 것임을 확신하며...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이] 2009-07-0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 류의 영화는 너무 손발 오그라들거 같아서 안보는데ㅋㅋㅋ

어느멋진날 2009-07-08 14:26   좋아요 0 | URL
킹콩을 들다 안보셨죠? 안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ㅋㅋ

[해이] 2009-07-0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ㅋㅋㅋㅋㅋㅋ

어느멋진날 2009-07-09 09:00   좋아요 0 | URL
ㅋㅋ 제 유머가 재미없었나요?

[해이] 2009-07-0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배꼽이 빠졌어요ㅋㅋㅋ 수술해야 할듯

어느멋진날 2009-07-09 14:11   좋아요 0 | URL
ㅋㅋ 배꼽까지 빠지시면 어뜩해요~^^

유쾌한마녀 2009-07-09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진 안았지만 이거 엄청 재밌다고 요즘 난리도 아니던데요??ㅎㅎ

어느멋진날 2009-07-09 22:48   좋아요 0 | URL
정말 재미있었어요^^ 웃다가 울다가 ㅋㅋ 언제 영화 한편 같이 보아요^^

유쾌한마녀 2009-07-1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용~!ㅎㅎㅎ

어느멋진날 2009-07-13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월 1주 이주의 다음 블로거뉴스 특종으로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ㅡ^
 
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쉽게 상상이 가지는 않겠지만 머릿속에 한번 그려보자. 높이 2,408m, 674층으로 인구50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한 타워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63빌딩이 높이 249m(해발264m)로 남산보다 1m가 낮은 높이라고 하니 거의 그 10배의 높이를 가진 셈이다. 63빌딩보다 10배가 높은 곳? 에이~ 그런 곳이 어디있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말해둔다. 여기 있다. 바로 빈스토크!

독서가 가진 미덕이 자신이 가보지 못한 어떤 세계를 탐험하게 해주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책은 그 미덕을 200%이상 달성한 것 같다. 작가의 엄청난 상상력과 통찰력에 연신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신비의 세계,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빈스토크에 다녀온 작가가 장편의 기행문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빈스토크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미지의 곳, 상상의 세계, 그러나 그곳이 멀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곳이 우리 사는 곳이랑 참 많이도 닮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공간은 다르지만 공유하는 시간은 같았던 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공간 또한 같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미 빈스토크의 주민이었으므로. 이렇게 나와 시공간을 함께하는 그곳의 주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 덧 이 책은 마지막 장으로 가있다. 미세연구소의 박사들 이야기, 작가 K이야기, 어떤 이의 첫사랑 이야기(그 첫사랑을 꼭 구했기를 바라며...), 경비대 교통과에 들어간 어떤 이의 이야기, 코끼리 아미타브를 돌보는 사람 이야기, 비밀 요원 세흐리반 이야기, 도란도란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끼어들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기 층 집값은 얼마에요? 여기 가장 큰 서점이 어디죠? 여기 제일 맛있는 음식은 뭔가요? 여기 작가 중에 K씨가 유명하다고 하는데,『곰신의 오후』읽어 봤어요? 이런 것들을 마구 물어보고 싶은 충동 말이다. 여기로 이사 오면 몇 층이 좋을까나, 하는 생각도 몇 번이나 했다. 농구장이 있는 77층이 좋겠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내가 농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님을 밟힌다. 단지, 멋진 농구 선수들을 보고 싶으므로.) 아, 리조트가 있는 410층도 괜찮을 텐데...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곳 주민들의 특성이었다. 흔히 들어본 고소공포증 말고 저소공포증 말이다. 1층에를 못가 해외도 못나가는 작가 K도 그렇고 50층 아래로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최신학이 그렇다. 병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이것이 빈스토크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의 증거라고 한다. 그들은 빈스토크가 붕괴되는 것보다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더 무서워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빈스토크를 떠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점에서 맞는 말 같다. 이곳의 토박이 개는 땅 냄새를 킁킁 거리며 맡아서 집을 찾아오지는 않지만, 엘리베이터를 얻어 타고 집으로 찾아온다.(위에 이곳 주민들의 특성이라고 했는데, 이 개도 엄연히 주민이다. 돈도 아주 많은^^) 매일 좌파니 우파니 무조건 나눠놓으려고 하는 우리시대를 그곳은 직파(수직주의)니 평파(수평주의)니 하며 나누는 것으로 갈음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회피해버리는 세태, 무슨 문제만 생겼다 하면 제일 먼저 달아나버릴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을 때만 애국자 인척 하는 모습이 어느 곳의 정치인들과 참 비슷하다. 그럼에도 빈스토크가 바벨탑이 아닌 이유는 희망과, 신뢰와, 정의 상징! 파란 우편함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엘리베이터 이용자들이 자신이 내릴 위치의 우편을 가지고 내려 자발적으로 집배원이 되는 훈훈한 시스템.(내가 빈스토크에 가면 제일 먼저 해보고 싶은게 파란 우편함을 통해 편지를 보내보는 것이다.)

 어디서나 사람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에너지 얼마쯤은 존재하나보다. 빈스토크의 파란 우편함처럼 말이다. 독자들의 간지러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상처 난 부위에는 약을 발라주는 배명훈 작가 같은 작가들이 이 시기에 많이 나와 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배명훈 작가의 좋은 에너지에 감사한다.^-^ 유쾌! 상쾌! 통쾌한 빈스토크 타워에 많이들 놀러 가시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쾌한마녀 2009-07-0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약간 베르나르베르베르 작품같은 느낌도 드는데요?? 엄청난 상상력^^ㅎㅎㅎ

어느멋진날 2009-07-10 13:55   좋아요 0 | URL
ㅎㅎ 한국의 베르나르베르베르 인가요?^^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네요.
 

  여름은 어느덧 성큼 우리에게 다가왔고, 이제 장맛비가 곧 우리를 덮칠 준비를 하고 있다.  눈감고 귀 닫아 버리고 싶을 만한 일들이, 국민들의 짜증지수까지 몽땅 올려주고 있는 시점이다. 그렇다고 마냥 앉아서 불쾌지수 세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애꿎은 지인들에게 짜증을 들이 부을 수도 없는 일이다. 접시는 깨라고 있고, 스트레스는 풀라고 있는 법! 장마전선이 우리에게 다가와도, 우리들의 행복전선은 너무 멀리가지 않게 잡아두어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행복전선을 잡을 것인가.
 윤흥길의 소설「장마」의 마지막 구절처럼 장마는 정말 지루할 지도 모른다. 이 지루할 장마를 나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전집 혹은 읽었던 전집을 다시 읽으면서 덜 지루하게 보낼 예정이다. 내 맘대로 장마기간 동안 읽고 싶은 전집들을 적어본다.

1. 삼국지   







 

 

 

 

  

  

 전집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삼국지일 것 같다. 어릴 적 만화 삼국지로부터 시작해서(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었던 만화 삼국지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가 모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유비가 이겨서 형님이 되었다고 나온다. 지금 생각하면 살짝 웃음이 난다.) 10권짜리 전집을 읽기까지 나는 몇 권의 삼국지를 읽었던가. 그 횟수는 셀 수 없지만 읽을 때마다 설레고 두근거렸던 내 가슴은 기억이 난다. 내가 이 책을 초등학교 때 읽었을 때와 좀 커서 읽었을 때의 가장 달라진 점은 아마도 좋아하는 주인공이 바뀌었다는 것일 것이다. 어릴 적엔 대장 유비가 너무 멋있고 보였고, 관우의 긴 수염을 상상해 보고는 내 남자친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좀 커서는 조자룡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다. 조자룡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다. 오랜만에 조자룡을 다시 만나러 가야겠다. 

  

2. 태백산맥     

 

 

 

 

 

 

 

 

 

  

   

    

 태백산맥. 언제나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벼르고 있었던 책이다. 그러나 그 맘과는 다르게 10권이나 되는 책을 읽어 내려갈 엄두가 쉬이 생기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맥이라는 태백산맥, 제목부터 무시무시한, 그러나 80년대 분단문학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이라 평을 받고 있는 이 작품을 더 이상 모른 체할 수가 없다. 나보다 2살 어린 사촌동생이 1학기에 수강한 과목의(과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떤 교수님께서 태백산맥을 읽고 리포트를 써오라는 과제를 내주셨다고 한다. 몇 주 동안을 쩔쩔 매던 동생은 “언니~ 언니도 태백산맥 읽어봐, 뿌듯^^” 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렇게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해주시던 우리 과 교수님들의 간곡한 부탁(?)에도 읽지 않았던 책인데(우리 국문과 학생들이 읽지 않는다면 이 책을 누가 읽겠냐고 하시며...), 사촌동생의 앙큼한 문자에 자극받아 얼마 전에 구매하였다. 국문과의 명예를 걸고 기필코 이번 장마기간에 읽어내겠다. 비장! ㅋ   

 

3. 셜록홈즈 전집

 

 

 

 

 

 

 

 

 

     
 어릴 적 유난히 책을 좋아하던 동생은 특히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을 좋아하였다. 동생 덕에 처음 셜록 홈스를 읽게 된 것이다. 처음 나는 아서 코난 도일이 작가인지 소설의 주인공인지, 반대로 셜록 홈스가 작가인지 주인공인지 매우 헷갈렸다.(사실 지금도 조금?ㅋㅋ) 작가와 주인공의 실제 성격도 매우 흡사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서 코난 도일이든 셜록 홈스든 그것이 나를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확신한다. 명탐정의 대명사 홈스이야기를 곧 긴 휴가를 나올 동생과 함께 읽고 싶다.(동생곰~친구들이랑 술 마셔야 한다고 이 누나와 홈스를 뿌리치지 않기를 바란다.) 

  
 뭐, 장마라고 그렇게 우울하게 보낼 것 같진 않다. 조자룡과 큰 산맥, 홈스까지 나와 함께 할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독서삼여(讀書三餘) 중 하나가 비가 올 때라고 하지 않는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비와 함께 내가 사랑하는 주인공들을 만나러 갈 테다. 
 내가 이 전집들을 다 읽었을 때쯤엔 장마전선은 물러가고, 여전히 행복전선은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6-28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이] 2009-06-28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전집은 싫어요 ㅋㅋ

어느멋진날 2009-06-29 09:06   좋아요 0 | URL
ㅋㅋㅋ 왜요~~재미있는 전집도 많을걸요?^^

[해이] 2009-06-2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집중에 재미나게 읽은거라곤 삼국지 뿐 ㅋㅋㅋㅋ 사놓고 안읽은 전집류가 많아서요!

어느멋진날 2009-06-29 10:21   좋아요 0 | URL
이번 기회에 읽어보셔요^^ 근데 해이님 진짜 전집류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저번에 사진보니,,

2009-06-29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9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09-06-2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백산맥은 오래전에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요 위에 욕심나는 전집이 하나 있네요.
제가 좋아하는 셜록홈즈 전집이랍니다.
너무 갖고 싶어요~

어느멋진날 2009-06-29 14:17   좋아요 0 | URL
헤헤^^ 후애님도 셜록홈즈 좋아하시는구나ㅎㅎ 왠지 모르게 마음씨 고운 후애님과 소녀적인 감성이 담긴 셜록홈즈가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번 장마기간에 셜록홈즈 다 읽으면 리뷰쓸께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09-07-0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년도 더 된 셜록홈즈 전집을 갖고 있어요.일본어 판을 다시 번역한 중역이라 고유명사가 좀 이상한 게 있긴 하지만 싸게 샀지요.

어느멋진날 2009-07-03 09:17   좋아요 0 | URL
와,,기다렸어요ㅎㅎ 30년도 더 된 책이면 우와~ 저희집엔 삼국지가 오래된 책이 있어요. 20년은 넘었을 것 같은데,,, 오래된 책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어느멋진날 2009-07-03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 5주 이주의 다음 블로거뉴스 특종으로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ㅡ^

릴케 현상 2009-07-06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뤼팽 전집은 어떤가요^^ 홈즈에 밀리다니 섭하네요

어느멋진날 2009-07-06 09:11   좋아요 0 | URL
자명한산책님 반가워요^^ 하하,, 제 맘대로 읽고 싶은 책을 올려 놓다보니 ㅋ 서운하신 분이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어요.ㅋㅋ 뤼팽과 홈즈에 대결구도를 제가 몰랐네요ㅋ 뤼팽 전집두 읽어 봐야겠어요^^

유쾌한마녀 2009-07-0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것 중에 소설은 아니고 전집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것 중에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완전 강추요~! 지금도 계속 발간 중인데 정말 온갖 다양한 분야에 대해 적당한 깊이로 다룬 책이랍니다 ^^ 한두권씩 읽다보면 어느새 풍부한 식견을...ㅎㅎ 도서관에서 엄.청.자.주. 빌려보던 전집이랍니다 *^^*
나중에 제 아이가 글을 읽을 수 있게되면 그 전집을 꼭 사서 읽게할거예요 ㅋ

어느멋진날 2009-07-09 22:49   좋아요 0 | URL
시공 디스커버리총서? 처음 듣는 책이네요. 마녀님이 추천하신 거라면 꼭 봐야지요^^ 어떤 책인지 궁금해지네요.

유쾌한마녀 2009-07-10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한 권당 대상을 하나씩 정해놓고 그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답니다/ 코끼리, 마야, rock, 종이, 패션, 고흐, 문자, 바흐, 등등...저번엔 아마존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읽고나서야 그 땅이 여전사의 땅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ㅎㅎ/ 근데 당장 사서 읽기엔 그 많은...금액이 ㄷㄷㄷ;;;

어느멋진날 2009-07-10 19:20   좋아요 0 | URL
왠지 쉬운 내용은 아닐 것 같다는 ㅋ 그래도 꼬옥 보겠습니다. 무슨 책인지 좀 알아봐야 겠어요^^

어느멋진날 2009-07-10 19:24   좋아요 0 | URL
맙소사!! 120권이 넘네요? 깜짝 놀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