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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아저씨 ㅣ 민들레 그림책 5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1월
평점 :
첫 페이지를 펼치면 황소가 아닌 하얀 소가 책에서 빠져 나올 듯, 걸어 나올 듯 서있다. 매끈한 그림이 아니라 입체감은 돋보이지만, 그 이유로 또렷한 선으로 대상을 표현하진 못한다. 그런데 유독 황소의 부라린 눈만 눈에 들어 온다.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그 눈을 따라가 보면 잘 봐야 보이는 쬐끄만 새앙쥐 한 마리. 야, 여기 새앙쥐가 있었네, 와, 황소와 새앙쥐라…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가만. 그런데 황소라고 했는데 왜 하얀 색일까…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두 번째 장을 펴보자, 아 너무 허무하게 답이 나와 버렸네. 아, 이 흰색은 달님이 뿌려 놓은 은가루였구나…그리고 이 푸른 빛은 밤이어서 그랬구나….아이, 난 또 황소가 추운 나라에 가서 눈을 맞았나 보다 그랬지.
가만, 이 그림은 뭔가 다르잖아, 뭐가 다르지? 이건 튀어나와 보이게 그린 건가 안에다 무얼 집어 넣은 건가, 캔버스에 삼베를 발랐구나. 아,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한국적인 느낌이었어. 그냥 그랬어. 이 색도, 터치도, 삼베도 이 울룩불룩한 표면도 이 이야기와 참 잘 어울린다. 보면 볼수록 그런 생각이 드네…
다 보고 나니 제목을 좀 바꾸고 싶단 생각이 든다. 황소아저씨라고 하면 어딘지 우직하고 무뚝뚝한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은 아기자기 귀여운 책이기 때문이다. 아, 저자는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 잘하고 거친 숨을 몰아 쉬는 황소를 연상하며 그림책을 펴든 독자들에게 이런 귀엽고 정겨운 이야기를 선사함으로써 감흥을 배가 시키려는…(사실,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펴들고 읽을 텐데, 내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호흡으로 부드럽게 리듬을 타듯이 읽히는 맛은 참 감미롭다고 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아 또 있었네, 따뜻하고 포근한 이야기. 그 느낌은 첫 문장부터 예감되었다.‘황소 아저씨네 추운 외양간에 하얀 달빛이 비치었어요.’
이 책에는 살아 있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갑자기 설명하기가 싫어지네요. 그냥 보셔요. 설명이 부질 없게 느껴지는 책이걸랑요. 달밤에 황소 등을 타 넘다 내 팽겨쳐진 새앙쥐의 사연이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정서가 듬뿍 담긴 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