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나는 친척들이 모이면 주로 이런 얘기를 듣곤 했다.
'어디서 비린내 나지 않냐?'
내 스스로 생각해도 난 좀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싶게,
멸치를 먹을때면 문득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이런 것일까를 떠올릴 만큼
심하게 말랐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역시 그 시절에도 주욱 말랐으나
그래도 키가 컸는지 뼈가 늘었는지 고 3때는 43kg정도는 꾸준하게 유지해주셨다.
남들은 결코 인정하지 못하지만 대학때도 남모르게 꾸준하게 자란 나는
드디어 46kg을 탈환하게 되었다.
그 이후 갑자기 먹성이 좋아져서는
언제나 식전 46kg, 식후 48kg 이라는 보고도 못 믿을 스펙타클한 몸무게 변화를 자랑했다.
당시 내 별명 쓰레기통이었다.
먹어도 버린거나 마찬가지라며 나와 함께 뭘 먹을때마다
지인들은 하나같이 내 입에 들어가는 각종 먹거리들을 심히 아까워했더랬다.
20대 중반까지 나는 꾸준히 식전과 식후 2kg차이를 유지하며 살았었다.
그러다 서른이 되었을 무렵
내가 무려 서른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충격을 먹었는지 아니면 먹고 사느라 고생을 너무 해서인
지 몸무게가 다시 44kg이 되었다.
그 당시 카메라를 들고 몸무게를 찍었는데 갑자기 45kg 이 조금 넘게 나와서 무척 기뻐했더랬는데
알고보니 카메라 무게였더랬다.
날씬하면 날씬할수록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시기에 기뻐한 이유는
살빠지니 더 늙어보인다, 늙어 살 빠지면 사람이 없어 보인다 등등
하도 여러말을 들어서였다.
제일 심한말은 성냥 같다는 말이었다. (머리통은 더이상 빠질 살이 없어 그대론데 몸통이 너무 빠진 나머지 멀리서 걸어오는데 꼭 성냥 같다며 박장대소하던 그 지인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그 후 찌고 빠지고의 세월을 거쳐
언젠가 마의 몸무게라 생각되었던 50kg을 돌파한적이 있었었다.
당시 내 홈피에 올린 사진의 댓글에는
살이 찐거냐 아니면 부은거냐, 신장에 문제가 있냐 등등의 걱정어린 안부글들이 즐비했더랬다.
그때, 실은 조금 다이어트 비슷한걸 했다.
다이어트라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밤 12시 이후에는 안먹기라는
남들이 들었을때 다소 말도 안되는 슬로건을 내걸고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다.
이건 다 24시간 문을 여는 분식점 탓이라며
앞으로는 밤 12시 넘어서 김밥과 떡볶이와 비빔만두를 먹지 않으리라 독하게 다짐한 덕분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46kg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다시 살이 좀 빠지기 시작하더니 44kg대로 내려가게 되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이 몸무게가 되니
지인들은 이제 나에게 골다공증과 빈혈등등
외관상의 이미지가 아닌 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증상들 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좀 걱정이 되었다.
이 나이에 벌써 뼈가 부실하면 나중에는?
그러다 한 지인이 말한 조기 폐경이 올 수 도 있다는 말이 결정타였다.
그래서 약 5일간에 걸친 먹고 찌기 프로젝트를 실천했다.
첫째 날, 일단 삼시 세끼 다 먹고 12시 넘어서 야식 집에다
김치 해물 우동과 초밥 22개 셋트를 시켜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물론 하이네켄도 4병이나 따 주심으로 인해 일단 위장을 늘이는것에 최선을 다했다.
둘째 날, 역시 삼시 세끼를 다 먹고 간식으로 내가 개발한 영양죽
(몸에 좋다는걸 다 때려넣고 끓이면 된다.) 을 끼니와 끼니 사이에 섭취를 했다.
그리고 직접 쿠키를 구으사 우유와 함께 신나게 먹어주셨다.
셋째 날, 어딘가 좀 불안한 구석이 있는 것이 내가 육고기를 잘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음을 발견
그 길로 내가 유일하게 먹을 줄 아는 육고기인 삼겹살집으로 달려가 지인들과 함께
고기가 조금이라도 빨리 익게 하기 위해 숟가락으로 눌러 지져가면서 먹었다.
이젠 누가 돈을 준다고 해도 더는 못 먹겠다,
앞으로 반년 정도는 삼겹살이 꼴도 보기 싫을 것 같다 하는 지인들을 억지로 설득해서
마지막에 밥을 볶아 먹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넷째 날, 육고기 만으로 단백질을 섭취한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서
새벽 3시에, 새벽 5시까지 영업을 한다는 횟집에 전화를 해서 광어회 중자와 매운탕을 시켜서
혼자 매트릭스를 감상하며 다 먹었다.
좀 어울리진 않았지만 역시 하이네켄 3병을 함께 비웠다.
물론 매운탕과 함께 먹을 입가심용 공기밥을 추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섯째 날, 아무리 야식을 시키려고 눈을 까뒤집어도 일요일에 장사를 하는 곳은 그리 흔치 않았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어제 먹은 횟집에 다시 전화를 해서 똑같이 주문을 하고
좀 어울리지 않던 하이테켄 대신 소주와 콜라를 시켜서 먹었다. (배달온 아저씨가 무뚝뚝했던 어제와 달리 약간의 미소를 날려주셨다.)
혹여 채소에 든 각종 비타민이 부족할까봐 걱정이 되어
상추와 깻잎을 두 배로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게다가 깻잎에는 무려 철분도 있지 아니한가.)
이렇게 해서 지금 내 몸무게는 방금 옷을 입고 체크해 본 결과 45.4kg이 나왔다.
그 소중한 노력들이 빛을 발해 무려 1kg 의 살로 승화한 것이다. (0.4kg을 뺀 것은 옷 무게라 치자.)
그러나 오늘은 좀 먹다 먹다 지친감이 있어서 그냥 삼시 세끼 다 섭취하는 것으로 말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뭔가를 좀 시켜볼까 했지만
회를 더 먹었다가는 내가 광어인지 광어가 나인지 모를 지경일것 같고
아무리 음식점 매뉴판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그다지 땡기는 것들이 없다.
그래도 그냥 있기는 좀 불안하여
마지막으로 귤 3개와 쿠키 한 개와 우유 두 컵을 마셨다.
이제 무슨일이 있어도 45kg대의 몸무게는 절대적으로 유지하리라.
절대 조기폐경이나 빈혈 골다공증 같은건 걸리고 싶지 않다.
그러기엔 아직 너무 젊다.
내일은 모처럼 연주회가 끝나서 할일 없이 놀고 있다는 지인을 불러
밑반찬이 밑도 끝도 없이 나온다는 전라도식 한정식집에 가서
깡그리 다 먹어 치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