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님께 찾아갔다.

수면제를 처방 받으러.

이번에는 이곳 저곳 돌아다님 스러운 것을 해야 해서

병원 올 시간 없어 최장 얼마까지 수면제 처방이 가능한지 물었다.

김 선생님. 왕창 털어넣으면 죽습니다. 하면서 보름치를 처방 해 주셨다. (원래는 2주 처방이 원칙.)

그러면서 말씀하신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가장 유토피아적인 삶을 지금 니가 살아내고 있다고.

일과 사랑이 함께 얽혀있고 거기다 뮤즈까지 있으니 완전 니 인생 노난 순간이라 한다.

거기다 일 끊이지 않고 들어오니 금상첨화라 하신다.

음... 그렇구나 내 인생에도 반짝 하는 순간이 있긴 있구나.

끽 소리 한 번 내고 꽥 하고 줄을 줄 알았는데.

적어도 끼이이익~ 소리는 낼 수 있을지도.

그러면서 하시는 말.

요즘 글 안나와 돌겠다며,

해서 장비탓을 한다며.

컴퓨터가 맘에 안들어 에잇. 핸드폰이 문젠가봐 이잇.

아니야, 책상이야, 책상이 맘에 안들었어 (책상 실제로 손으로 들어 올리신다. 빵터짐.)

해서 내가 좀 보여 드렸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이 작은 넷북.

그러나 들어보시면서 허걱 하신다.

사람 좀 때려잡을 무게.

그래서 내가 그랬다. 혹여 가능하시다면 무척 가벼운 맥북에어 이런 거 구입하시라며.

그러자 그거 사용법 좀 거시기하게 어렵지 않나 하신다.

물론 나 같은 인간은 전원 자체를 못 켜지만

선생님이시라면 전원 켜는 것을 비롯해서 그것으로 글 쓰고 뭔가를 하고 다 하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세 번째 책을 보고 한 출판사에서 연애서 컨택이 왔는데

솔직히 그 책은 수정 자체를 못 해서

내 부분은 쏙 빼고 선생님이 하신 피처링 부분만 읽으며 오~ 한다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자기 원고는 너무 전문용어가 많아 내 글이 쉽고 재미지다 하신다.

그저 난 선생님과 윤 에디터에게는 석고대죄해야 할 존재일지니...

(비록 고의는 절대로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건 책임은 내게 있다. 것도 원 헌드래드 퍼센트!)

그리고 내 바탕화면 보셨다.

나의 파란 눈.

일명 '박 자까가 지켜보고 있다!'

이미 일 안된다 징징거리는 잡지사 에디터 친구들과 동료 작가 및 지인들에게 유포결과

닥치고 일 하게 되더란다.

나 역시 바탕 화면 보면 입닫고 일 하게 된다.

선생님 기립박수, 브라보, 뒤집어짐 하신다.

정말이지 굿 스러운 아이디어라 하심.

(이쯤 되니 내 에세이 '일상으로의 초대' 에 저 눈깔 사진 속지에 집어넣어? 싶기도.

아마 마케팅팀과 디자인팀의 완강한 반발이 있을 것 같지만 어떻게 좀... 안될깝쇼?)

음... 저 팀들은 어떻게 구워 삶는다 하더라도 사장님과 편집장님은 안되겠구나.

니가 우리 출판사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물 말 경우 니가 손해 배상해라 하면 끝장.

지 인생도 부도수표인 주제에 남의 인생까지 만기 돌아온 어음에 채권스럽게 만들 수는 없는 법.

아무튼 그렇게 해서 30분 간의 면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항상 그렇지만

김 선생님을 만나면 너무 좋다.

언제나 이대로 좋아요 괜찮아요. 그러면 그런대로 살아요 해 주신다.

절대로 용기내라 힘내라 얼른 일어나라 달려라 달려 넌 할 수 있다스러운 말 하지 않으신다.

내가 본 최고의 상담자이시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어떻게 해 봐라, 바꿔라 하지 않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도 된다고 말 해 주는 것은

정말이지 대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대가 발 뒷굼치도 못 미처 잘은 모르겠다만)

선생님의 병원이 초대박이 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선생님. 그 자신의 힘이시다.

예쁜 인테리어와 책 내고 방송 탔네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정말 작은 부분이리라.

공감과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시다.

너 혼자 성장이 아니다. 함께 손 잡고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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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좀 이상하다.

똑같은 글자가 두 개 연달아 있다.

그러니까 미미, 라라, 토토 정도 생각하시면 되겠다. (요새 토토는 안보이든데 어떤년이랑 바람났는지..)

거기다 이름이 약간 차이니즈 스러워서

사람들이 화교라는 오해를 하기도.

물론 가명이냐의 오해는 너무 당연해서 이젠 저렇게 안 물어보면 그게 더 이상하다.

간혹 고객님 성함이? 해서 이 쪽에서 내 이름을 말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백의 백 절대 못 알아 듣는다.

네? 하고 꼭 다시 물어본다.

간혹 알아듣는 상위 0.1% 가 있긴 하지만, 그들도 모모모 맞으시죠? 하고 다시 확인사살 하신다.

나, 알에서 태어난 자손이며

대헌공파 37대손 토종이다.

그리고 내 이름 울 아부지가 지었으며 민증 및 호적 등,초본에 똑같이 적혀있다.

국내산 토종이고, 가명 아닌 실명이다.

처음으로 내 이름을 영어로 적어보았을 때,

이거 잘만 하면 좀 웃기겠는데? 싶어서 적어봤다.

그랬더니 오~ 공원. 청바지. 청바지. 좋다 좋아.

간혹 병신아 Jin 이거든? 하는데 내가 병신스럽긴 하지만 나도 안다. 그러나 부러 저렇게 적었다. 진짜다.

난 뜻한 바 있었다.

공원도 좋아하고 바지는 청바지 밖에 없다.

그리고 공원에는 무조건 청바지가 짱이다.

간혹 카페에 있다가 보면 이런 엄마들을 본다.

'우리 안젤리나 졸리는 공부밖에 몰라요, 취미가 공부라나요? 오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어머 졸리 엄마 좋겠어요. 우리 브래드 피트는 다 좋은데 애가 거짓말을 못해요. 너무 솔직한거도 사실 흠인데, 이 거친 세상 어찌 살아가려고 애가 그렇게 정직하고 바른지 걱정이 태산이에요'

한다.

그러면 생각한다.

아, 애들이 좀 섞어 섞어구나.

그러나 잠시 후 카페로 그들의 자식 걸어들어온다.

얼굴 보면 누가 봐도 국내산이다.

그러면 엄마가 말한다.

'졸리, 하우아유 투데이? 아유 하피?'

그럼 졸리가 졸린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학원 가기전에 PC방 들려서 인강 30분 듣고 가야하니까 3천원만 줘'

피트 역시 마찬가지

'엄마 학습지 사야돼 3만원'

내 장담하건데 졸리는 인강 들으러 PC방 가는 거 아니다.

가서 게임한다. 그리고 PC방 30분에 3천원 아니다.

그리고 피트는 이따 밤에 엄마가 새로 산 학습지를 보자고 하면 학원이나 학교에 두고왔으니 내일 보여주마 할 것이나, 그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으리...

이들이 좀 더 기특하다면, 어차피 우리 이름이 졸리고 피트인데 이건 뭐 이쯤 되면 사귐질 일지도.

공부가 취미인 졸리는 연애도 취미이며,

절대 거짓말을 못하는 피트는 졸리와 연애중임을 엄마한테 말 안한다.

아무튼 요즘 엄마들. 멀쩡한 애 한국 이름 놔두고 왜 저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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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3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12-02-24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호.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제 이름이 그리 싫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 업을 하면서는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기억을 해 주니까요. 반항기, 신비로움, 고상함. 중 저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반항기 밖에는 없지만 앞으로는 신비하고도 고상한 무언가가 되어보고 싶네요.^^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조질 때는

편먹고 한 아해를 어찌 하였을 때,

그리고 치고 박고 싸웠을 때.

그러나 모친이 우리를 조지는 때는 실로 다양하였으나

그 중 가장 크게 진노하실 때는 바로 거짓말 하다가 들켰을 때였다.

모친은 솔직하게 말 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노라 하시지만

익히 그렇지 아니하다는 것을 경험한 바

우리들은 모친 앞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주 거짓말을 하고 했다.

그러나 대게의 엄마라는 존재들이 그러하듯.

자식새끼들의 뻥치시네는 귀신같이 알아내신다.

더구나 기습 질문 시 이 의심의 눈초리에서 피해나갈 길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미 준비된 거짓말일 경우 사전 연습과 리허설을 통해 형제자매들끼리 서로 도와 가능하기도.)

만약 거짓말 하다가 발각이 되면

그 즉시 모친은 물었다.

‘몇 대 맞을래?

이때, 오... 맞는 대수의 자유를 하면서

‘한 대요!’ 이 지랄을 했다가는 큰일 난다.

지가 한 잘못에 비해 한 대라니. 말도 안 되는거지.

해서 이때는 세 대요 정도가 적당하다.

그러면 모친 그래? 하면서 다섯 대를 때리신다.

모친은 아버지와 달리 마음이 약하지 아니하셨다.

해서 우리에게 앞으로나란히를 하게 한 다음

(손가락이 부러진다는 이유였음. 이건 부친도 마찬가지.)

정확하게 박자 맞추고 강도 똑같이 다섯 대를 딱.딱.딱.딱.딱. 치신다.

어느 날 내가 도자기를 홀라당 처 깨 버렸다.

즉시 형제자매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오공본드 오초본드 기타 등속을 이용해서

산산이 부서진 조각 들이여를 기똥차게 맞추었다.

우리가 봐도 감탄스러울 지경.

해서 그대로 있던 자리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런데 이게 좀 선대 어르신이 가보로 남긴 이조백자스러운 무언가였나보다.

난 그냥 옛날 술병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이것이 돌았는지 아니면 조상님의 준엄하신 무언가인지

경고도 없이 팍삭 하고 무너졌다.

것도 모친 떡하니 거실서 TV보시는데 (TV옆에 이 백자 있었다.)

모친, 처음에는 아니 이런 변고가 있나 하며 화들짝 놀라셨으나

이내 칠해 칠해 본드질스러운 것을 발견.

이미 깨진 것을 애새끼들이 다시 처 붙여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서 모친 우리들을 불러 차례로 취조를 하기 시작했다.

‘니가 깨었느냐?

‘아니옵니다’

‘그렇다면 니가 깨었느냐?’

‘아니옵니다.’

마지막을 내 차례

‘그럼 너구나!’

‘어마마마 저는 죽어도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진짜 엄창..이 아니고 아무튼 엄청 아니했나이다’

모친, 대번 눈치 까셨다.

원래 거짓말을 하는 자 말이 길게 마련이다.

거기다 당황해서 엄창 뭐 이런 거 까지 했으니.

해서 다시 물으셨다.

‘넌 것 같은데?’

‘전 아닙니다. 절대로요’

모친, 휴~ 하시더니 한 번 더 묻는다.

‘진짜 아니란 말이지?’

‘진짜 아니에요’

아, 그냥 했다고 할 것을 그러면 예의 그 다섯 대의 강도가 그 정도였을 것을

이 날 아주 모친 있는 힘 없는 힘 다 실어 일명 사랑의 매를 드셨다.

진짜 아주 뒤지게 아팠다.

보통은 앞으로 나란히 한 다음 다 맞고 나서 주저앉는데

이 날은 한 대 맞고 주저앉고 엉덩이 만지고 좀 처 울고 또 다시 하고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울먹울먹 하는 나에게 모친 안아 주면서 큰 소리로 따라 하란다.

‘다시는’

‘다시는’

‘거짓말을’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저 말 자체가 거짓말이었지만 어쨌건 하라니까 시킨 대로 했다.

그리고 나도 좀 억울한 무언가가 있었다.

강도가 너무 쌔셨던거지. 모친 말로는 세 번의 기회를 주었다 하시지만

거짓말 하는 입장에서는 캐물으면 캐물을수록 기회가 아닌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해서 나도 모친께 따라하라고 했다.

‘어린이를’

모친 좀 어이가 없었는지 ‘이린이뤄얼’ 하신다.

‘몽둥이로’

‘몽둥이로’

‘너무 쌔게 두들겨 패지 않습니다.’

‘너무 쌔게.. 아이고 미안하다 내 새끼’

그리고 모친과 나 얼싸안고 울었다.

난 궁뎅이가 아파서, 모친은 마음이 아파서.

그리고 그날 밤 모친 나 자는 방에 들어와 엉덩이 벗기고 약 발라주는 아름다운 모습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밤 9시만 되면 너무나 잠이 쏟아지는지라 모친은 디리디리 주무시고

대신 형제자매들이 이 역할을 해 주었다.

발라주면서 서로 서로 그랬다.

‘야, 몸에서 좀 없어졌으면 하는 부분이 엉덩이 아니니?

‘그러게 꼴보기 싫게 이런 건 왜 있나 몰라’

바보 같은 것들. 그나마 엉덩이가 지방이 많아서 맞으면 덜 아프다.

그 강도로 다른 곳을 맞아봐라 죽지 죽어.

아무튼 그날의 조짐 이후.

모친 때 밀어주다가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는 내 푸르딩딩한 엉덩이 멍 보고 좀 깨달은 바 있으신지. 다시는 그 강도로 때리지 아니하셨다. 그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대신 다섯 대 때리고 말로 사람 때려 잡으사 아싸리 소녀를 한 대 치옵소서 했지.

요즘에는 애들을 절대 안 때린다더만

우리 때는 그랬다.

잘못하면 처 맞았고, 또 잘들 때리셨다.

아동 폭력에 대한 계념도 없었고, 다른 집구석 사정은 몰라도 우리 집구석은 아동폭력까진 아니었다.

폭력 하면 오히려 형제자매들간의 폭행시비가 더 큰 문제라면 문제였달까?

암튼 애새끼들은 자주 조짐을 당하고 처 울고

엄마들은 한 손으로는 어깨를, 한 손으로는 요리조리 피하는 애새끼의 궁뎅이를 찰싹 때리면서 ‘이 새끼가 그래도 끝까지..’ 했더랬다.

저 교육법이 옳았는지 아니면 절대 해서는 안 되고 무조건 말로 타일러야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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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듀나라는 이름을 쓰는 이가 있었다.

소문이 무성했다. 한 사람인데 여러사람 인 척 하며 글을 쓴다더라, 여러 사람이 한 사람처럼 듀나라는 이름을 쓴다더라, 철저하게 가려진 인물이라 일도 이메일로만 하지 절대 얼굴 안보여 준다더라 등등.

지금도 그 분이 듀나라는 이름을 갖고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분이 내신 책을 읽은 것이 꽤 오래 전 일인 것 같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어렸으므로 막연하게 우와 멋있다. 나도 나중에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한 이름 쓰면서 모르는게 없는 그래서 듀나같은 그런 무언가를 해 보아야지 했다.

그리고 저 소망을 잊어갈 즈음 나는 일을 하게 되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 분의 존재 여부를 혹은 어떤 분인지 업계 사람들에게 물어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막연하게 저 뭐뭐더라 정도만 알고 있는 나로 남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 호기심 따위 채우자고 남을 캐내는 건 좀 돈 인간이나 할 짓이니까.

뭐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 보니 나 역시 그렇게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작은 소망에서 출발했지만 내가 내 글을 읽어봐도 이건 오합지졸 말고는 달리 표현 할 길이 없다. 관심이 사방에 뻗어있고 온갖 것에 대해 다 말하고 싶어하고 도무지 통일된 분위기 내지는 일관성 없고 (이건 수정 작업을 하며 절절하게 느꼈다.)

간혹 신상 털기를 하는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들을 보는데, 다른 벌 다 필요 없고 일단 옷 다 벗긴 다음 명동 한 복판에서 딱 30분만 세워놓으면 자기가 무슨 짓거리를 한지 알거라 본다. 똑같이 그 신상 털어 네티즌들에게 까발려지게 하는 것은 단 30분 만에 알아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세상 모든 일을 이에는 이로 나갈 수 없으니까. 똥물 뒤집어 썼다고 나도 똥 싸서 끼얹는게 답만은 아니니까.

지금 이 시대에는 듀나같은 존재가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호기심 천국인 인간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 해서든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아 낼 테니까. (이 모든게 컴퓨터 인터넷으로 가능한 세상이 참 저주스럽다.) 그래서 주민등록 말소하고, 시골에 잠적하여 외국의 서버를 이용해서 글을 쓰고 출판 관계자들에게 매일 매일 이메일 주소를 바꾸어 일 하지 않으면 금방 다들 알아 낼 것이다. 영장 없이는 알아내는게 불가능할 지경으로 자신을 숨기지 않는 한 말이다.

나는 듀나가 존재했던 시절이 그립다. 한 때 배우 배두나가 자가가 듀나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는 얘길 들은적이 있는데 그때도 사람들은 호기심 천국은 마찬가지 였지만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 호기심이었고, 그걸로 뭔 짓거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듀나가 가능했던 것이겠지.

아직도 나는 듀나를 꿈군다.

아 궁금해라 까지만 가능한 듀나.

혹시 이런거 아닐까? 정도의 귀여운 추측만 해 보는 사람들이 있는 듀나.

간혹 연예인의 뭐뭐가 어떠했더라 하는 얘기들을 하는데

그 자리에서 CF를 찍은 감독이나 기자, 매니저에의 입에서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면 거의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저런 사람들은 밥줄이 달린 문제이므로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와 작업을 했다고 해서 절대로 일반인에게 발설하지 않는다. 동종업계자들 사이에서는 말이 돌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관계자들은 절대로 저런 짓을 하지 않았다. 밥 줄 끊기고 그 업계에서 매장당하고 싶은게 소원이 아니라면 말이다.

다들 좋은 얘기 정도만 해 준다. 나에게도 마찬가지. 물론 들은 얘기들도 있지만 그건 그냥 인간이 다들 그런 부족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고 연예인은 신이 아니란 생각을 하면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그리고 대게는 직장인들이 하는 아, 회사 진짜 맘에 안들어 정도라는 것.

듀나는 아직도 책을 내고 글을 쓰고 활동을 하고 있을까? 내가 모르니까 뭐라 확신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아마도 조금 방법을 바꾸어서 활동해야 가능할지도. 신상털기하면 다들 금방 알아내는 인간들이 있으니.

그래도 듀나가 있던 그 순진하고 귀여운 세상이 그립다.

다만 그냥. 앞으로는 듀나가, 듀나 스러운 무언가가 존재하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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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2-24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정은궐 작가가 있지요. 그(녀) 역시 정체 불명이라고 하던데요?

플라시보 2012-02-24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오~ 아직도 그런 듀나스러운 것이 존재 할 수 있는 세상이군요. 만만세입니다. 한 번 찾아서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궁금해요. 제2의 듀나는 어떤 모습일지.^^
 

시라노 연애 조작단이 있다면

나의 형제 자매들은 성적표 및 삥땅용 증빙서류 조작단이었다.

일단 계획은 내가 짠다.

학급 등수, 전교 석차, 편차, 퍼센티지 뭐 이런거 계산한다.

(내가 산수, 수학 못해도 확률스럽고 통계스러운 건 좀 한다. 왜냐, 살려면 필요하거든.

그 성적표 그냥 주면 죽거든.)

그리고 컴퓨터로 이걸 만드는 것은 둘째의 몫

선을 긋고 내가 불러주는 숫자를 타다닥 친다.

그러나 가장 최고의 작업은 뭐니뭐니 해도 무슨 중학교 스런 도장.

이건 막내가 판다.

지우개에다 열심히, 매우 꼼꼼하게 판다.

간혹 처 들킬 경우를 대비해서 부모님 도장까지 두 개를 제작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장은 사실 삥땅용 증빙서류로 부모님의 피같은 돈을 뜯어 낸 다음

그걸로 도장집에 가서 파면 되겠지만

우리, 좀 이상한 고집있었다.

내 집은 내 손으로 지을거에요 를 열심히 들으사.

우리 성적표 및 삥땅용 증빙서류는 우리 손으로 만들거에요. 존재하셨다.

그러나 이걸 그냥 프린트해서 도장 꾹 찍어 주면 하수.

반드시 학교 앞 문구사에 가서 갱지스러운 것에다가 복사를 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 학교 마크스러운 무언가는 푸른색 잉크로 도장 꽉.

실제 성적표에 부모님 도장을 찍어야 할 경우 인주를 이용하면 된다.

이렇게 우리는 조작하고 또 조작하였다.

간혹 전교 1등 이런거 해서 엄마 아빠께 효도 한 번 제대로 할까? 하다가

담임한테 감사전화 드리면 끝장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참곤 했다.

해서 우리의 전학년 성적표는 모두 조작이었으며 (집구석으로 배달 이런 시스템 도입되기 전까지.)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말 한 돈의 70% 는 우리가 챙겼다.

그 돈으로 CD도 사고 월간 모시기도 사고 만화방에서 죽때리기도 하고 떡볶이랑 컵라면도 사 먹었다.

아주 가끔은 친구들에게도 만들어서 염가 판매를 하기도.

허나 저 짓은 주도 면밀하며 연기력 뛰어난 친구에게만 해야 한다.

잘못 했다가는 우리도 덤태기로 연좌죄에 걸려들어 당장 학교서 부모님 호출 이럴 위험 다분하다.

그래서 친분이 매우 두터우며 주도 면밀하고 연기력 뛰어나며 동시에 다소 뻔뻔한 애들한테만 해줬다.

아니면 성적 왕창 떨어져서 이 성적표 내밀었다가는 내일 학교에 목발 짚고 오겠다 싶은 애들도.

그렇게 시작된 조작질은 딱 거기서 멈췄다.

물론 지금 포토샵을 전공한 둘째와 막내를 이용 해 먹을 경우.

나는 하버드 최연소 합격자에 동시에 MBA 과정을 우수한 성정으로 사뿐히 밟고

심심해서 놀이삼아 서울대 강의중 이런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건 하지 않는다.

왜냐, 사기니까.

부모님한테도 물론 사기친 건 맞지만 핏줄끼리 살짝 치는 사기는 사기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저 짓거리 대외적으로 했다가는 신 아줌마 꼴 난다.

(하긴 그 꼴 나기 전에 내 글 몇 개 읽어보면 댐시 뽀록난다.

하버드 최연소 합격자. 일반 동사와 B동사 구분치 못한다.)

아무튼지간에 저때 저 작업을 하면서 매번 더더욱 디테일해져 가고 발전스러워지는 그 결과물에

우리 셋은 부둥켜안고 서로를 토닥이며 말했다.

'내 공이 제일 커, 이건 다 내가 잘나서야'

'아니지, 저 선 긋고 그 안에 딱 중간에 숫자 넣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지랄마 뭐니 뭐니 해도 신성한 막노동이 최고야, 거기다 장인정신 좀 봐라'

음... 생각해보면 참 재미진 시절이었다.

요즘 아해들은 성적을 어찌 속일까?

못하겠지? 이너넷으로 댐시 검색 가능할테니.

그럼 학교 홈페이지 자체를 만들어 버리는 아해도 있으려나?

아마 우리 셋이 지금 태어나 학생스러운 무언가의 신분이라면 분명 했지 싶지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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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2-2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재미지게 사셨네요. 아이참, 난 왜 이런 추억을 못 만든 거지. -.-;;

플라시보 2012-02-2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공부를 잘 하셨나봅니다.^^ 공부를 못 해도 너무 못하면 저런 짓을 하게 된답니다. 조짐을 당하지 않으려면 조작과 거짓이 난무할 수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