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떤 일들은 때로는 모르는게 약일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모르는게 약 이라는 것을
그 몰라야 하는 것을 알게 된 후에나 알게 된다.
그 전에는 모르는게 차라리 나을 그 사실을 아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진심 어쩌고 진실 어쩌고 하면서
그것을 내가 꼭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일들은 한 번 경험을 해 버리고 나면
다시는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러니까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셈이다.
그리고 분명 그 앞에서 우리는 건너지 않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건넌다.
강의 이쪽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몰라야 할 일들을 자꾸만 알게 되고
이미 경험을 해 버려서 그 경험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그런 것들이 쌓이는게 어른이 되는 일인것 같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어떤 경험담도 떠벌리지 않고
조용히 입 다물고 침묵하게 될 때
어쩌면 우리는 완전하게 철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철이라는 것이
정말 반드시, 꼭, 기필코, 어쨌건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냥 좀 철 없이 살면 안되는 것일까?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들은 피해가면서
건너지 말아야 할 강 같은건 아예 건너고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살면 안될까?
갑각류처럼 단단한 외피를 가진 것들은
그 속살이 홀로는 형태도 유지하기 힘들만큼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외피가 외부에 의해 상처를 입게 되면
단단하게만 보였던 그 사람은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아프지 않은 자는 아픈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할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차라리 TV 인간극장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한이 있어도
자신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이제 남은 일은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냐는 것이다.
모르는게 약인데 이미 나는 알아버려서 내 손에는 약이 없고
경험하지 않는게 최선인데 이미 나는 그 강 앞에서 사공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그 배를 타야하는가 타지 말아야 하는가
혹은 나 혼자는 억울하다며 누군가를 함께 태워야 하는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마음으로는 이 모든걸 혼자 짊어지고 가는것이 내 자존감을 지키는 가장 좋은 길인데
이 알수 없는 배신감 같은것이 꼬물거린다는게 문제이다.
바로 이럴때 인간은 복수를 생각하는 것이겠지?
혼자만 괴롭고 혼자만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복수.
하고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금자씨를 봐도 그렇다.
흰 두부 케이크에 얼굴을 처박는다고 해서
하얗게 죄가 없어지는건 아니니까 말이다.
더구나 복수는 상대가 고통을 느끼기만 할 뿐
반성을 하게 만들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