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배심원
존 그리샴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때. 나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늘 교과서 이외의 책들에 빠져 있었다. 당시 나를 매료시킨 작가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존 그리샴, 마이클 클라이튼이었다. 어른이 되어버리고 나서는 내 독서 취향이라는 것도 꽤나 많이 바뀌여서 나는 더 이상 위에서 언급한 작가들의 책을 사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을 지루해서 미처버리지 않도록 해 준 것에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존 그리샴의 책은 정말로 간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어찌어찌해서 내 손에 들어온 책은 상당히 두꺼웠다. 그의 책은 주로 두터워서 1.2권으로 되어있는게 많은데 요즘은 존 그리샴도 잘 안팔리는지 다소 두꺼워도 한권으로 쇼부를 보려는것 같다.

솔직하게 말 하자면 오랜만에 만난 존 그리샴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템포도 많이 느려졌으며 책장을 늘리는것 만이 자신의 사명이라는듯 아주 길게 늘여놓았다. 그래서 두꺼운 책으로 인해 손목 관절에 무리가 올때 마다 나는 존 그리샴이 원망스러웠다. 그의 장기였던 법정 스릴러라는 점은 여전했지만 뭐랄까 김빠진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예전의 그 톡 쏘던 장기가 이제는 많이 시들해졌는지. 아니면 내가 그 사이에 너무도 재밌는 책을 많이 봐 버려서 눈이 높아져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지방 신문인 포드 카운티 타임스의 편집장 윌리가 9년동안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겪는 것.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가장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기억될 로다 카셀로를 죽인 대니 페드깃에 대한 내용이다. 물론 이 사건들은 두개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편집장인 윌리는 이 사건에 유달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처음부터 형사 못지 않게 꼼꼼한 취재를 거쳐 신문에 싣는다. 어떤 정황으로 봐서도 사형을 선고받아 마땅한 대니 패드깃은 집안의 막대한 부와 늘 저질러왔던 부정부패 덕분에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로부터 9년후 대니 패드깃은 가석방되고 윌리는 9년동안 운영해 왔던 신문사를 팔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니 패드깃 가문은 온갖 비리의 온상이다. 그들은 마피아처럼 무법자들이다. 그래서 그 집안의 한 구성요원인 대니 패드깃이 부녀자를 강간 살해하고 그 모습을 그녀의 두 아이들이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선고받지 않게 된다. 하지만 대니 패드깃 가문이 내게는 그다지 잔악무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한 비리와 악이 판을 치고 있다. 부녀자를 강간 살해하는 일 정도는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일어난다. 연쇄살인사건이 비교적 적었던 우리 나라도 얼마전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이고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에서도 더할 수 없는 끔찍함을 보여주었다. 그에비해 로다 카셀로를 마음속으로 조금이나마 흠모해 왔던 대니 패드깃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끔찍하기는 하지만 연쇄살인범 만큼은 아니다. 슬픈 사실이지만 나는 이미 대니 패드깃이 로다 카셀로를 강간 살해하는 것에 끔찍해하고 반드시 처죽여야 한다며 부르르 떨기에는 세상의 험한 일들을 너무 많이 보아버렸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는 지금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범죄에 대해 상당히 두려워하는 한편(자신에게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어지간해서는 충격을 받지 않을만큼 (남의 얘기일 경우) 무뎌져 버렸다. 그래서 조용한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이 살인사건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와닿지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존 그리샴이 쓴 글을 봤다. 자기가 언급한 법들 중에서 폐지된것이 많으니 제발 자기에게 항의 편지를 보내지 말라. 이미 자기도 알고 있는 고의적 오류이다며 매우 피곤한 필체로 역자후기를 대신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갑자기 존 그리샴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얼마나 그런 편지들을 많이 받았으면 역자 후기에 저런 얘기를 적어놓았을까 하고 말이다. 누구나 지적을 받는것은 싫어한다. 더구나 자기가 충분히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한 끝도없는 지적은 정말이지 구토가 넘어올것 같다. 사람들은 더럽게 한가하여 날이면 날마다 남들을 귀찮게 하는 짓을 절대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러한 이유로 얼마전 쓰던 칼럼을 때려 치우려고 했으나 기자가 전화해서 원고마감을 독촉하니 갑자기 무뇌아라도 된것처럼 내일 모레까지 써 드릴께요. 해 버렸다. 나도 그들에게 존 그리샴처럼 말하고 싶다. 다 아니까 제발 메일좀 보내지 말라고 말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냐 2004-09-0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두 기사에 대해 항의 받으면 피곤해요. ㅠ.ㅠ
그리샴, 저 책도 저를 기다리고 있는데..쩝.

플라시보 2004-09-0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냐님에게도 항의를 하는군요. (전 저처럼 어설퍼야만 항의를 받는줄 알았어요. 흐흐. 근데 대체 마냐님께 항의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님은 저 책을 읽고 기사를 쓰셔야 하나봐요. 좀 두껍긴 하지만 영 안읽히는 타입은 아니니 걱정마세요^^

bono 2004-09-0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요즘에 출판사 세곳에서 동시에 마감 압박을 받고있습니다. 제발 독촉 메일 좀 안보내줬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시드니 셀던의 Are you afraid of the dark? 마감이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고작 3분의 2 끝났을 뿐입니다. 셀던 아저씨... 휙휙 넘어가고 재미있긴 한데... 언제나처럼 좀 허무맹랑한 스토리네요. 다소 비현실적이고...

플라시보 2004-09-0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ono님. 마감 독촉을 세 군대씩이나... 괴로우시겠습니다. 저는 오늘 마감 독촉을 받아서 (원래 어제인데 오늘 12시 이전까지 보내라고 해서) 개발새발 써서 보냈습니다. 마음에 하나도 안드는 원고이니 또 독자들로 부터 항의가 빗발치겠지요. 아.... 생각만 해도 머리아픕니다. 요즘은 시드니 셀던을 번역하시나봐요.^^

마태우스 2004-09-03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려고 보관함에 넣어 뒀어요. 언젠가 갑자기 15권쯤 지를 때, 살 거예요.

플라시보 2004-09-03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그러시군요. 부디 님은 재밌게 보시길^^ (책이 좀 두꺼우니 감안하세요. 팔뚝은 굵으신가?^^)

털짱 2004-09-0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아무리 좋아하던 작가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향이 바래지요.. 유효기간이 있나봐요.. 새로운 금맥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
 


본 슈프리머시는 알다시피 본 아이덴티티의 속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냥 본 아이덴티티에서 맷 데이먼이 암살요원인데 기억을 잃었더라 이외에는 정말 까맣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맷 데이먼을 제외하고는 전편에서 봤었는지 안봤었는지 영 아리까리했다. 그래서 내가 본 아이덴티티를 언제 봤는지 찾아봤다. (무섭게도 나는 그런걸 다 기록해둔다.) 2002년 10월 18일. 어제가 2004년 9월 1일이었으니 이거 속편치고는 너무 늦장을 부려주셨다. 반지나 메트릭스도 1년 정도 텀을 뒀을 뿐인데 말이다. 따라서 기억이 안난건 내 탓이 아니다. 2년이나 본 아이덴티티를 기억해 주길 바란 본 슈프리머시의 잘못이다.

솔직하게 말 해서 스토리는 그저 그랬다. 별로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기억을 잃은 전직 킬러 맷 데이먼은 인디아의 한 해변 마을에서 어떤 여자와 조용히 살고자 한다. 그렇지만 전에 그를 데리고 있었던 정보기관과 그와 일이 얽혀있는 악당들이 그를 가만두질 않는다. 그래서 그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 도망을 다니고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옛 일들을 다 기억해 내고 누명도 벗게 되며 오랜세월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실체를 잘못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 찾아가서 사죄까지 한다.


2년이나 지나서 등장한 맷 데이먼은 우선 살이 많이 빠졌다. 재능있는 리플리씨때만 해도 얼굴에 살이 좀 있어서 살짜쿵 멍청해 보일때가 있었는데 이젠 얼굴선 어디에서도 그런면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초반부에 좀 긴 반바지 입고 해변을 뛸때는 다리가 짧아보이는 것이 흠이지만 그 이후로는 계속 긴 코트 차림이라 상관없다. 아무튼 약간 느끼해 보이던 애단호크가 가타카에서 살을 쫙 빼고 나왔을때처럼 맷 데이먼의 체중 변화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자동차 추격씬이다. 카레이서들이 뽑은 가장 잘 된 추격씬이라나? 아무튼 나는 기술적인 면은 잘 모르겠고 다만 편집이 정말 예술이었다는 것 만은 자신있게 말 할수 있다. 어찌나 빠르고 긴장감있게 편집을 잘 했는지. 정말 편집자에게 가위손이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꽤나 긴 시간동안 자동차 추격이 이어지는데 카메라도 다각도에서 화면을 잡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별다른 트릭이나 특수효과 없이 (이를테면 자동차들이 서로 처박아서 뻥뻥 터지는) 도 상당히 스펙타클한 장면을 잡아내어 영화사에 남을 자동차 추격씬인것 같다. (물론 나는 트리니티가 역방향으로 오도바이를 몰던 매트릭스3를 최고의 자동차 추격씬으로 꼽는다만은) 영화의 제일 처음 맷 데이먼이 쫒길때 악당이 우리의 차 뉴 EF소나타를 타고 있어서 겁나게 반가웠다. 다만 맷 데이먼이 그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서 여자친구에게 '옷차림도 이상하고 차도 이상해' 라고 말하는게 좀 아쉬웠다. 내가 보기에는 행동만 수상쩍을 뿐 별로 안 이상하던데..

영화의 스토리는 상당히 밋밋하게 나가 버린다. 음모고 뭐고 간에 관객이 처음부터 다 알고 들어가도록 한다. 그럴것 같으면 장면장면이 기대에 부흥을 해야 하는데 솔직하게 말 하자면 자동차 추격씬을 빼고는 별로 집중이 안될만큼 지루했다. 너무 뻔한 스토리라고나 할까? 이미 기억상실증에 걸린 전직 특수요원들의 얘기는 신물이 나도록 영화에서 우려 먹었다. 그런데 이 영화. 무슨 배짱인지 전혀 새롭지 않은. 오히려 가장 구태의연한 방법을 선택한다. 감독이 영화를 아주 클래식하게 만들고 싶었나보다. 아무튼 자동차 추격씬을 빼면 그저 그런 영화였다. 그나마 고질라의 동원참치처럼 예기치않게 등장한 뉴 EF소나타가 쬐끔 반가웠던게 위로가 되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라시보 2004-09-02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아일합운빈현님. 네 저도 봤어요. 헤드윅이 한국 여성들과 밴드를 만들어서 클럽은 아닌것 같고 암튼 많이 조용해보이는 곳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 약간 우스꽝스럽게 나오긴 했지만 그나마 멀쩡하게 나온 모습인것 같아요^^

nugool 2004-09-0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제 본 영화시군요. 정말이지 요샌 헐리웃 영화를 보면 감흥이 없어요. 너무 익숙해져 버렸나봐요. 그들식의 영화..

플라시보 2004-09-02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어제 본 영화입니다. 님 말씀처럼 요즘의 헐리우드 영화는 점점 더 시시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안일한건지 우리의 눈이 높은건지..^^ 오늘은 알포인트를 봅니다. 무섭다던데...두렵지만 보고픈 마음이 앞서서요^^

panda78 2004-09-0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이상한 흰색 차.. 가 소나타라면서요...? ^^;;

마냐 2004-09-0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안그래도...옆지기가 본 아이덴티티를 다시 디비디로 보고난뒤 영화를 보자구....했는데....그나마도 안 땡기게 하시는군요...흐흐.

플라시보 2004-09-03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nd78님. 네 뉴 EF 소나타 라는군요^^ (영화끝나고 집으로 가는길에 앞차가 뉴 EF 소나타 였어요. 흐흐)

마냐님. 흐...자동차 추격씬은 멋지구리해요. 그것만 봐도 뭐 큰 손해는 아닙니다.글고 맷 데이먼 멋있잖아요.^^

털짱 2004-09-0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맷 데이먼이라.. 음... 멋진 분이지요.. 저도 좋아하는 배우예요.^^
 

아무리 찾아봐도 그 제품이 없어서 가장 비슷한걸 올렸다.

원래 이름은 새우 다시팩. 국물을 내는 티백인데 멸치와 다시마 그리고 말린 새우가 들어가 있다. 국물을 내기 위해 멸치나 다시마를 넣을 경우 일일이 젓가락으로 건져야 하는데 이 제품은 티백으로 되어 있어서 간편하게 국물을 낼 수 있다.

얼마전에 집에서 김밥을 말아 먹으면서 새우 티백으로 국물을 내어봤더니 간편하고 맛도 좋았다. 가격은 2,500원선. 대형 마트 내 건어물 코너에 가면 구입할 수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4-09-01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국물내는데 티백포장도 있군요. 새로 알았습니다.^^

플라시보 2004-09-01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편하게 살려고 하다보니 저런 제품들은 눈에 쏙쏙 잘도 들어오더라구요.^^ 국물을 만들어 먹어 봤는데 괜찮더라구요. 님도 나중에 한번 써 보시길.

sooninara 2004-09-0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요즘 드라마 '애정의 조건'에 나오는 티백이죠? 그드라마 잘은 안보는데 지나가다 보니 멸치 티백에 대해서 PPL인지 한참 나와서 웃었답니다..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편하게 국 끓이라고 가르쳐 주더군요..멸치회사 사장인 시어머니가 집에서 살림하는 시아버지를 위해서 일부러 만들어준 상품이라고^^

플라시보 2004-09-0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정의 조건 스폰서가 멸치 회사라는군요. 흐흐. 저는 문제의 장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극중에서 내내 멸치 얘기가 빠지질 않더라구요. 아무튼 편하긴 편합니다. 흐흐^^

biseol 2004-09-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트에 가면 꼭 보는 게 '새로운' 제품들이 있나..하는 건데..
저 제품은 첨 봤어요.. 이런.. ㅋ 플라시보님 잘 보고 갑니다!!

플라시보 2004-09-0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제품을 진열되어 있는게 아닌 계산대에서 앞에 서 계시는 아주머니가 계산하는걸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속으로 다짐했죠 '담번에 장볼때 꼭 사야지. 근데 얼말까?'^^
 


다 큰 남자가 저런 표정을 짓는다면 그건 뭘 의미하는 걸까? 놀람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한 톰 행크스의 표정 연기는 마치 고무로된 피부를 가진듯한 짐 캐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다. 즉 짐 캐리의 연기는 감탄할 수는 있어도 감정 이입이 되지는 않는 반면 톰 행크스의 연기는 바로 내 일처럼 와 닿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톰 행크스가 가진. 일면 평범한듯 보이는 마스크의 힘인지도 모른다.

터미널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이다. 과거에는 확실한 거장이자 흥행의 마술사였던 스티븐 스필버그. 하지만 그도 세월이 지날수록 감각이 떨어지는지 자신의 주 종목인 SF영화를 제외한 드라마에서는 명성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내고 있다. AI같은 경우 스필버그가 너무 스토리를 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그의 장기인 SF에서마저 스필버그 특유의 상상력이 스토리에 파뭍혔었다. 다행스럽게도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역시 스필버그라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다시 제 자리를 찾는듯 했다. 그러나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스타 칩을 썼지만 생각만큼 흥행하지는 못했다.  이제는 스필버그의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재미있고 무조건 신나던. 영화계의 보증수표라고 말 하기에는 2% 부족하다.

영화의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유럽의 작은 나라인 '크라코지아' 에서 미국으로 간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공항에 도착한 첫날 입국이 거부된다. 그의 나라에 내전이 일어나서 일시적으로 유령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권과 신분증등 모든 것의 효력이 사라져서 그는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갈수도 그렇다고 해서 공항 게이트를 빠져 나갈수도 없다. 할 수 없이 그는 나라의 사태가 진정될때 까지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다. 그 기다림이 하루에서 이틀로이어지더니 무려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된다. 이 영화는 빅터 나보스키라는 남자가 뉴욕 JFK공항에 9개월간 살면서 겪게되는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전개가 된다. 국제 미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빅터 나보스키. 저 맨 위에 사진은 영어를 잘 못해서 말이 통하지 않는 그가 TV화면을 통해 자기 나라의 내전을 보고 난 이후 충격을 받아 울먹이는 모습이다.


톰 행크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로드 투 퍼디션], [캐치미 이프 유 캔] 에 이어 4번째로 출연한다. 다양한 배우들과 작품을 하는편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감독 작품에 시리즈가 아닌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그가 가장 많이 등장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가 가진 평범한 이미지 때문이다. 그는 악역으로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말쑥한 신사로도 보이지 않는다. 어떨때는 약간 멍청해 보이기도 하고,무언가 큰 문제를 일으킬 남자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는 맡은 역활에 따라 어떤 연기를 보여주느냐에 쉽게 극중 인물과 동화가 된다. 예를 들어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 같은 잘 생긴 배우들을 보자. 그들은 스크린에 등장 하는 것 만으로도 관객들로 하여금 무언가 특별하고도 대단한 사람 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톰 행크스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편안하게 스크린을 응시한다. 그리고 곧 그가 보여주는 연기를 마치 실제로 일어나는 일 처럼 받아들인다.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는 아무리 연기를 잘 한다고 해도 실제처럼 보이기는 어렵다. 왜냐면 그러기에는 그들은 너무 특별하게 생겼으니까.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서 내가 떠 올린 영화는 [캐스트 어웨이]였다. Fedx직원인 톰 행크스가 어느날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남는 얘기인데 어떻게 보면 상당히 치열한 생존 영화일수 있는데도 톰 행크스는 그 분위기를 귀엽게 만들어 버렸다. 특히 거의 마지막 탈출 부분에서 윌슨 (배구공으로 인형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윌슨이다.) 을 잃어버리고 막 울부짖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불쌍한 동시에 너무나 귀여웠다. 무인도에 떨어져서 살아남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톰 행크스는 그 분위기를 아주 묘하게 만들어버렸다. 어떤 것이건 상황을 치열하고 심각하게 만들지 않는것 그게 톰 행크스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나라가 사라져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가 살 수 있는 구역은 오직 JFK공항 내에서만이다. [캐스트 어웨이]에서의 공간적 한정성이 무인도였다면 이 영화에서의 공간적 한정성은 JFK공항이다. 다만 무인도는 인간이라고는 그 하나 뿐이었지만 JFK공항에는 하루에도 수천명의 인파가 넘쳐나는 곳이다.

빅터 나보스키는 공항에서 체류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인간이다. 마치 언젠가는 공공장소인 공항에 갖혀 살 것을 예감이라도 했다는듯 그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는 거기서 직업까지 가지게 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울고 불고 절망스러워 하면서 약이라도 털어 넣었겠지만 빅터 나보스키는 포스터에 등장하는 저 제일 위에 사진에서만 저런 표정을 지을 뿐. 그 다음부터는 내내 웃으며 산다. 공항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지고 생존하는 법도 빨리 터득한다. 심지어는 1등석 여승무원인 미모의 캐서린 제타 존스와 로멘스까지 마련되어 있다.  비록 정상적인 입국을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JFK공항에서의 삶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빅터 나보스키가 JFK공항에 9개월동안 살게된 이야기를 아주 성공적으로 마쳤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늙어버린 스필버그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AI에서처럼 어느 순간 딱 영화가 끝이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멋지겠다 싶은 부분에서 계속 얘기를 더해간다. 끝날 만 하면 '그런데 말이지' 하면서 이어가는 것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언제 컷을 외쳐야 하는지 잊어버린 마냥 영화는 지지부진하게 계속 이어진다. 더구나 그 이어짐을 위해 등장하는 피넛 캔 속의 비밀이랄지 빅터 나보스키가 뉴욕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너무나 작위적이여서 어색하기만 하다. 거기다 판에 박힌 캐릭터들의 등장과 굳이 영화에서 악당이 하나쯤은 있어야 맛 이라는듯 등장하는 어설픈 악의 세력들은 더더욱 진부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상당히 귀엽다. 왜냐면 톰 행크스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모르는 톰 행크스를 마치 다 자란 아기처럼 그려놔서 영어를 못하면 행동까지 아이같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톰 행크스는 맡은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그가 아니면 누가 저런 표정을 짓고 저런 웃음을 날릴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JFK공항은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셋트에서 촬영이 되었다고 한다. 9.11테러 때문에 공항 촬영이 무산되자 그들은 아예 공항을 만들어 버렸다. 그 거대하고 정교한 셋트를 보면서 역시 스필버그의 스펙터클은 비단 공룡이 뛰어다니는 거대한 공원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어떻게 보면 한정적인 공간인 JFK에서 이뤄지는 얘기인데도 우리는 조금도 답답함을 느끼지 못한다. 만약 카메라가 좀 폐쇄적인 화면을 담았더라면 우리는 빅터 나보스키의 귀여움을 느끼기 보다는 보다는 공항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빅터 나보스키의 딱한 처지에 대해 더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어떤 드넓은 공간에서 촬영한것 못지 않게 JFK공항 셋트에서의 촬영한 화면은 시원시원하다. 수많은 인파가 오가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빅터 나보스키는 오히려 상상을 초월하는 대 저택에 살고있는 철부지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끝으로 영화를 보다가 보면 거의 기절하게 귀여운 장면이 나온다. 톰 행크스는 아니고 등장 인물중 한명이 너무나 귀엽고 엉뚱한 짓을 한다. 바로 그런것. 그런 스필버그식 유머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스필버그 영화를 절대 포기할수 없을 것이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arsta 2004-08-3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행크스 저 표정..아아 정말 끝내줍니다.
사진을 정말 필요한 곳에 샥샥 넣으셨네요. 플라시보표 리뷰, 오늘도 역시나 굿 입니다. ^^

플라시보 2004-08-3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톰 행크스 정말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듬직한 남자도 좋지만 가끔은 저렇게 뭔가를 도와주고픈 남자가 땡길때도 있습니다. 흐흐^^

sooninara 2004-08-3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구 보고 싶어집니다..터미널 찜....

플라시보 2004-08-3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ooninara님. 심각하게 파고들지 않으면 충분하게 유쾌한 영화입니다. 할랑한 마음으로 재밌게 즐기시길^^

마냐 2004-08-31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각하게 파고들지 말아야겠네요. 다들, 그 남자가 미국에 가야만 했던 이유에서 확 깬다고 하던데...ㅋㅋ

플라시보 2004-08-3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도 좀 확 깼습니다.^^ 고작 저것 때문에 이 고생을 하다니 하면서 말이죠. 근데 제 친구는 이해가 간다고도 하고...암튼 뭐 그렇습니다.

털짱 2004-08-3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저 영화의 주인공은 몹시 외롭고 고단하게 드골공항에서 살았다더군요. 다행히 스필버그가 판권료로 지불한 거액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만...

마태우스 2004-08-3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영화감상문은 언제 읽어도 멋지십니다

2004-08-31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09-0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흐흐. 칭찬 감사합니다.^^

RainSmile 2004-09-0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진짜 웃긴, 할부지!! ㅋㅋ 돌리던 접시 두고 가버리는 뒷모양이 어찌나 웃기던지.ㅋㅋㅋ 조금 깨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대략 즐거웠다는 흐흐.

플라시보 2004-09-0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밌었죠. 그런데 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서재 주인보기로 고쳐주심 안될까요? 부탁드립니다.

비누발바닥 2004-09-2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갠적으로 보고싶었는데......
시간이 나질 않아서 못보고있었는데 님의 글을 읽고 많은 도움 됐습니다~`
 


삽 모양의 티 스푼. 버터 나이프. 포크.

모양이 무지하게 귀엽다. 저 티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푹푹 푸다가 보면. 강원도 어드매서 군 생활을 한 사람들은 눈내린 어느날 아침의 삽질이 떠 오를지도...

별게 다 앙증맞은 세상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panda78 2004-08-29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삽 모양의 티스푼, 정말 깜찍하네요. ^-^

sweetmagic 2004-08-2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 ㅈ ㅓ, 저 삽 있어요 ~~ ㅎㅎㅎ
아이스크림 퍼 먹을때 마지막 바닥에 깔린거 퍼먹을때 좋아요 아 ~~ 반갑다`~!!

LAYLA 2004-08-3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공공의 적에서 군인들이 이유를 알고 삽질하냐?! 하는 대사가 생각이 나네요...^^

2004-08-30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8-31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08-3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도와드릴께요.^^ 제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수 있는데까진 도와드릴께요. 알다시피 님이 부탁한 부분이. 제가 님에 대한 기본 정보를 좀 알아야 도와드릴수 있거든요. 혹시 MSN메신저 하시면 대화를 하면서 도와드릴께요.

털짱 2004-08-3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민이랑 저 스푼으로 아이스크림 떠먹으면 낭만적이겠다. 이히히히히=3=3=3

2004-09-01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9-01 0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9-01 0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9-01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9-01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