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슈프리머시는 알다시피 본 아이덴티티의 속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냥 본 아이덴티티에서 맷 데이먼이 암살요원인데 기억을 잃었더라 이외에는 정말 까맣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맷 데이먼을 제외하고는 전편에서 봤었는지 안봤었는지 영 아리까리했다. 그래서 내가 본 아이덴티티를 언제 봤는지 찾아봤다. (무섭게도 나는 그런걸 다 기록해둔다.) 2002년 10월 18일. 어제가 2004년 9월 1일이었으니 이거 속편치고는 너무 늦장을 부려주셨다. 반지나 메트릭스도 1년 정도 텀을 뒀을 뿐인데 말이다. 따라서 기억이 안난건 내 탓이 아니다. 2년이나 본 아이덴티티를 기억해 주길 바란 본 슈프리머시의 잘못이다.
솔직하게 말 해서 스토리는 그저 그랬다. 별로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기억을 잃은 전직 킬러 맷 데이먼은 인디아의 한 해변 마을에서 어떤 여자와 조용히 살고자 한다. 그렇지만 전에 그를 데리고 있었던 정보기관과 그와 일이 얽혀있는 악당들이 그를 가만두질 않는다. 그래서 그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 도망을 다니고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옛 일들을 다 기억해 내고 누명도 벗게 되며 오랜세월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실체를 잘못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 찾아가서 사죄까지 한다.
2년이나 지나서 등장한 맷 데이먼은 우선 살이 많이 빠졌다. 재능있는 리플리씨때만 해도 얼굴에 살이 좀 있어서 살짜쿵 멍청해 보일때가 있었는데 이젠 얼굴선 어디에서도 그런면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초반부에 좀 긴 반바지 입고 해변을 뛸때는 다리가 짧아보이는 것이 흠이지만 그 이후로는 계속 긴 코트 차림이라 상관없다. 아무튼 약간 느끼해 보이던 애단호크가 가타카에서 살을 쫙 빼고 나왔을때처럼 맷 데이먼의 체중 변화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자동차 추격씬이다. 카레이서들이 뽑은 가장 잘 된 추격씬이라나? 아무튼 나는 기술적인 면은 잘 모르겠고 다만 편집이 정말 예술이었다는 것 만은 자신있게 말 할수 있다. 어찌나 빠르고 긴장감있게 편집을 잘 했는지. 정말 편집자에게 가위손이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꽤나 긴 시간동안 자동차 추격이 이어지는데 카메라도 다각도에서 화면을 잡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별다른 트릭이나 특수효과 없이 (이를테면 자동차들이 서로 처박아서 뻥뻥 터지는) 도 상당히 스펙타클한 장면을 잡아내어 영화사에 남을 자동차 추격씬인것 같다. (물론 나는 트리니티가 역방향으로 오도바이를 몰던 매트릭스3를 최고의 자동차 추격씬으로 꼽는다만은) 영화의 제일 처음 맷 데이먼이 쫒길때 악당이 우리의 차 뉴 EF소나타를 타고 있어서 겁나게 반가웠다. 다만 맷 데이먼이 그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서 여자친구에게 '옷차림도 이상하고 차도 이상해' 라고 말하는게 좀 아쉬웠다. 내가 보기에는 행동만 수상쩍을 뿐 별로 안 이상하던데..
영화의 스토리는 상당히 밋밋하게 나가 버린다. 음모고 뭐고 간에 관객이 처음부터 다 알고 들어가도록 한다. 그럴것 같으면 장면장면이 기대에 부흥을 해야 하는데 솔직하게 말 하자면 자동차 추격씬을 빼고는 별로 집중이 안될만큼 지루했다. 너무 뻔한 스토리라고나 할까? 이미 기억상실증에 걸린 전직 특수요원들의 얘기는 신물이 나도록 영화에서 우려 먹었다. 그런데 이 영화. 무슨 배짱인지 전혀 새롭지 않은. 오히려 가장 구태의연한 방법을 선택한다. 감독이 영화를 아주 클래식하게 만들고 싶었나보다. 아무튼 자동차 추격씬을 빼면 그저 그런 영화였다. 그나마 고질라의 동원참치처럼 예기치않게 등장한 뉴 EF소나타가 쬐끔 반가웠던게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