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샤넬 - Coco before Chane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글쎄요...코코샤넬의 삶을 다 표현하기에는 좀 영화가 짧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실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건, 매우 뒤늦게도 이 책의 후속작인 '죽음의 미로'를 중간정도 읽었을 때였다. 아무래도 새로 시작하는 이야기라기엔 옛날을 회상하는 부분이 많아서 뭐지? 하고 물음표만 늘리고 있다가 문득, 아.......하고 이 책이 떠올랐다. 쯧쯧쯧,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책은 순서대로 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축복받은(!) 토요일 오후에 침대에서 뒹굴거릴 때 깨닫기엔 너무 슬픈 일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난 '죽음의 미로'를 다 읽고 당장 도서관에 달려가 이 책을 빌려왔다. 다행히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만큼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닌지 서늘한 도서관 한 구석에 얌전히 꽂혀있었다. 이제라도 알아차려서 다행이지.

 

시리즈의 두번째 권부터 읽은지라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있었다. 앞에서도 썼지만, '죽음의 미로'에는 종종 '시몬'이나 '보호견'이 회상 속에서 등장한다. 처음에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지만(난 까탈스럽기보다는 둔감한 독자기 때문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시몬'이 누구인지, 앨리의 아빠와는 도대체 어떤 사이였는지, 역시 종종 등장하는 '보호견'이 어떤 존재였는지 책을 펴기 전부터 궁금해 하고 있었다. 순서가 뒤바껴도 한참 바뀌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기대에 기대를 하고 읽은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 시몬! 난 첫 등장부터 이 작은 유대인이 좋아졌다. (내 상상 속에서) 순박해 보이지만 작은 눈을 영리하게 빛내는 이 애처가 아저씨가 유대인인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기에. 아델리아의 어리숙함(아델리아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구석이 있다)에 난처해 하는 그가, 단서를 잡으러 나가서 양털 제조에 대해 배워 천진하게 알려주는 그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너무 슬퍼졌다. 의도치 않게 그의 미래를 알고 있어서. 누군가의 미래를 미리 안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아델리아는 내가 좋아할만한 여자였다. 굳이 말하자면, 여자라고 무시당하는 게 짜증스러울, 능력있고 자각있는 여자. 안전한 '의사들의 도시'에서 살아온 아델리아는 난생 처음 건너온 잉글랜드에서는 '의사'라는 자신을 당당히 내보일 처지가 아니다. 그것 하나만으로 '마녀'로 몰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어디까지나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다. 죽은자들을 위한 의사. 그들을 대신해 말을 해주는 의사.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에요. 나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말하려고 온 겁니다. (124)

 

난 그 투철한 직업정신과 대비되는 순진함, 그럼에도 반짝이는 영민함에 대번에 아델리아가 좋아졌다. 아마 현대에 태어났어도 그렇게 도도하고 순진했을 것 같다.

 

줄거리를 대충 말하자면, 잉글랜드의 어느 마을에서 아이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게 유대인의 짓이라 생각해 유대인을 핍박하고, 그때문에 부유한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못 받게되어 슬픈 헨리왕은 저 멀리 시칠리아에서 사건을 조사해줄 '죽은 자를 다루는 의사'를 초청하게 된다. 불행히도 여자의사가 마녀로 몰리던 시절, 뛰어난 재능으로 이름을 날리던 아델리아는 난데없이 잉글랜드로 가게 되고 살인범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동시에 사건을 하나하나 파헤쳐 가는데...

 
난 역사는 잘 모른다. 우리 나라 역사도 헷갈려하는 마당에(자랑은 아니지만) 남의 나라 역사가 머리 속에서 제대로 정리되어 있을리 만무하다. 덕분에 옛날 사회 시간에 배웠던 기억을 되살리느라 끙끙대며 책을 읽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가볍게 넘어갔다. 어차피 외국의 '중세'는 비슷비슷한데다 역사적 지식을 그렇게 요구하는 책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자세히 알고 있다면 '역사적' 재미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역사시간이 재미있었던 유일한 순간은 역사 속 야사와 비사를 속삭여주던 순간이었다. 불행히도 내 머리는 역사와 년도는 거부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동화마냥 머리속에 박혀 있다. 해가 지날수록, 어린 시절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단순히 내가 싫어서) 역사에 흥미가 가는 것도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이제 슬슬 나도 뒤를 돌아보게 된 것인가...

 

중세시대에는 종교가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권력에도 큰 비중을 차지했고) 책에서는 종교적인 배경이 종종 등장한다. 수도원장, 수녀들... 은수자라는 듣도보도 못한 존재(은둔해서 수행하는 사람)... 딱히 종교를 가지진 않았지만 그 당시 종교와 권력이 상충하던 시기는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는 편이다. 기독교 관련 강의시간에도 재미있게 들었던 부분이기도 하고. 하지만 종교를 떠나서 이 책 덕분에... 책 끄트머리에서야 겨우 호쾌하게 등장하는( 맨 앞에서도 나오지만 거기선 너무 제멋대로이기만 하니까) 헨리왕에게 관심이 높아졌다. '이 사람'이 '그' 헨리왕이라 이거지.

 

-매복 기습이라고 아델리아는 생각했다. 성공적이든 아니든, 교활함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행위를 지금 구경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깨달았다. (511)


헨리왕 말고 이 책에서 가장 매력있는 등장인물은 단순히 내 관점에서, 주인공 아델리아가 아닌 유대인인 시몬이다. 그 시절은 기독교가 성행하고 있었고 힘이 있는 종교였기 때문에(현대도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상당히 핍박받고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탄생한 부당한 대접은 비합리적이지만, 어디 인간의 생이 합리적으로만 흘러가던가. 그것은 그 시대 유대인들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빚이었다. 어느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미개하다, 라는 인종주의도 싫지만 단순히 어느 민족이 예전-까마득한 예전-에 했던 일 때문에 겪는 민족차별은 더 싫다. 현재를 살아라, 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오로지 '가르침' 뿐이라고 믿기 때문에. 현재가 과거를 짊어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시몬이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데에 단순히 열이 받았다. )

 
재미있는 책이었다. 아델리아의 다음 행보가 상당히 기대된다. 실은 이미 두번째 권은 읽었지만서도.
 

-내일이란 건 없다, 그는 그걸 모른단 말인가? 내일이란 것들은 무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오늘, 지금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예의 따위를 신경 쓸 시간이 없다. (4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벨의 개
캐롤린 파크허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난 차에 굉장히 약해서 몸이 약해지면 어김없이 멀미를 한다. 차 안에서 글자를 봐도 그렇다. 책도 아니고 단순히 핸드폰으로 문자를 봐도 머리가 핑-도는 짜증스러운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내가 일요일 오후 차 안에서 책 한권을 잡고 있었다. 내가 징징거릴 걸 민감하게 알아챈 엄마는 차 안에서 웬 책이야, 라고 말했고 난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다.

 

"엄마, 이 사람 아내가 막 자살하려는 참이란 말이야."

 

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렉시는 이미 책의 첫장부터 죽은 채 등장했으니까. 하지만 어둠 속 작은 구원에 매달리듯 난 렉시의 마지막이 무언가 특별하고 우리에게 알려주고픈 뭔가를 던져줄거라 믿었다. 자살을 선택이라고 믿는 여자. 그리고 그녀의 헌신적인 남편. 두 사람이 날 잡고 놔주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교수인 폴은 집에 전화를 했다가 낯선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랑스런 아내 렉시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채 발견되었다는 형사의 목소리였다. 그 후, 아내를 너무 사랑하던 폴은 렉시가 죽던 당시 함께 있던 개,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쳐 렉시가 죽던 그 날의 미스터리를 풀어보려 하는데...

 

개가 말을 한다면...이라는 상상은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테마다. 우리집은 그렇게 개를 미친듯이 아끼고 사랑하는 집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줄곧 일이년의 공백을 사이에 두고 강아지를 데려오곤 했다. 요크셔테리어에 마르티스... 지금의 강아지는 시츄로 굉장한 먹보지만 애교가 많다. 강아지들을 키우다보면 절실하게, 이 녀석이 말을 할 줄 알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정확히는 말을 알아들을 줄 알면 좋을텐데, 지만. 화장실을 못 가릴 때나, 밖에 나가야 하는데 바지 가랑이를 물고 놓지 않을 때, 아파서 낑낑 대는데 나는 영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르겠을 때. 애처롭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난감하기도 하고. 그럴 때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머리를 쓰다듬고 말하는 거다. '네가 말만 할 줄 알아도...'

 

물론 그건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다. 사실 실제로 개가 말을 하게 되면 오히려 오싹하지 않을까 싶다. 싫다, 싫어. 유창하게 말을 강아지라니. 하루 이틀이야 재밌겠지만 나중에는 감시당하는 느낌이나 안 들면 다행이겠지...

 

폴은 아내를 잃은 슬픔에, 실은 그녀가 자살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에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일에 매달린다. 폴과 렉시는, 이성적인 남편과 감성적인 아내였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아내의 죽음은 남편의 이성을 여지없이 흐트러트린다. 순수한 애정. 그 애정이 독이 된다.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폴이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일상을 그리지만 실제로는 폴이 바라본 렉시를 '보여주고' 있다. 예쁜 렉시, 엉뚱한 렉시, 예술가답게 복잡한 렉시... '폴이 바라본' 렉시는 그랬다.

 

과연, 남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린 자주 '우리가 남이니?'라고 말하지만 '남'이란 개념은 결국 '자기가 아닌 존재'를 말하는 거고, 그렇게 치면 부모님조차 남인 셈이다. 결국 어느 정도까지 이해는 해도 100% 이해하기란 어려운 그런 존재. 친밀도에 따라 이해도도 다르겠지만 다른 어떤 존재를 100% 이해한다는 것 또한 무서운 일이 아닐까.

 

폴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렉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그 마지막에서 깨닫는다. 진실, 그것만이 위안이라고. 내가 편하자고 상상한 모습이 아니라, 환하게 웃든 찌푸리며 화를 내든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걸.

 

바벨의 개, 바벨탑에서 막 도망쳐 나온 폴과 로렐라이의 슬픈 '렉시' 그리기. 어리석고 사랑스럽고. 축축한 코를 부비며 주인을 올려다보는 강아지를 닮은 소설이었다.

 

-당신이 듣지 않으면 나는 말할 수 없어요 (14)

 

-내가 도달한 결론은, 모든 개들은 목격자라는 것이다. 개들은 우리의 가장 사적인 순간에 언제나 함께 한다. 우리가 혼자라고 생각할 때도 개들은 같이 있다. 개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개들은 심지어 대통령의 무릎에도 앉는다. 사랑과 폭력 행위, 입씨름과 싸움을 지켜본다. 아이들의 은밀한 장난도 본다. 그들이 본 것을 죄다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그들과 함께 했던 삶의 빈틈이 메워질 텐데. 뭔가 시도해 보는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19)

 

-느긋하고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입술에 가벼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기운이 났다. 내 앞에 새로운 하루가 펼쳐져 있었다. 가능성이 넘치는 하루가. 얼른 렉시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59)

 

-다른 사람의 심장이나 간, 신장을 이식받은 사람은, 음식이나 좋아하는 색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치 장기에 옛 기억이 담겨 있어서, 새 주인의 몸속에서 과거가 들어갈 자리를 찾는 것 같다나. 바로 내가 내 몸 안에 렉시를 그런 식으로 담고 있었다. 그녀가 내 안에 자리 잡은 후, 나는 그녀의 스타일로 보고 듣고 맛보게 되었다. (63)

 

내 최고의 기사를 빼앗아가는구나. 내가 오늘 알게 된 것을 어제도 알았다면, 네 잿빛 눈을 빼고 흙으로 된 눈을 박았을 것을. 네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제도 알았다면, 살로 된 네 심장을 빼고 돌로 된 심장을 박았을 것을. (82)

 

-"가서 렉시를 데려와."
나는 개가 아는 모든 명령어를 외쳤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나는 로렐라이를 막지 못한다. 그 마법 주문을 내뱉은 후로는 막을 재간이 없다. 로렐라이는 집을 빙빙 돌면서, 잃어버린 것을 찾아 헤맨다. (89)

 

-자살은 한순간일 뿐이라고 렉시는 내게 말했다. 그녀는 내게 자살을 꼭 그렇게 표현했다. 한순간의 일이라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태양이 빛나고 있으며, 보고 싶어 안달하던 영화가 이번 주에 개봉한다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 없게 되는. 잘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리란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영영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자신에게 묻는다. 이게 다란 말이야? 이런 일이 닥칠 줄 알았지만 오늘이 그날일 줄은 몰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순간은 끝난다. 그 영화를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키우는 개를 보면서 내가 없어지면 누가 개를 보살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평범한 생활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에 계속 남는다. 그 생각을 일부러 하지 않더라도, 그날의 선택권이 내게 있다는 걸 알고 위로를 받는다. 사탕을 뺨 안쪽에 밀어넣듯이, 그 생각을 마음 구석에 밀어놓는다. 그 뒤에 묻어둔 기억은 혀를 굴릴 때의 달콤한 쾌감과 똑같다. (105)

 

-내가 어렸을 때, 과장법을 많이 쓰던 어머니는 이런 말을 즐겨 했다. 세상이 끝날 때, 마지막으로 내가 떠오를 거라고. 땅이 갈라지고 발밑으로 흙이 내려앉을 때 어머니는 하늘로 날려보내듯 내 이름을 외칠 거라고 했다. 매일 나이 드는 걸 알고 놀라는 지금에야 어머니의 말이 과장만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는 이런 이름을 하나씩 품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름의 가치는 그런 마지막 순간에 입에서 흘러나오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게 언제나 예상하는 이름일 것 같지는 않다. 내 어머니조차도 그랬을 것이다. (141)

 

-작은 역할을 하더라도 내가 나오는 대목을 읽는 게 좋았다. 다른 사람의 꿈에 내가 등장하는게 만족스러웠다. 그건 어떤 면으로든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니까 내 마음의 벽 밖에서도 내가 존재감 있고 가치 있다는 증거니까. (303)

 

-누구나 심장이 두 개란 말이 맞지 않을까? 주먹처럼 뒤에 웅크리고 있는 비밀 심장.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단순한 심장 밑에서 비비꼬여 쪼그라든 채 살아가는 심장. ...두 번째 심장을 어두운 색으로 만드는 것은 꿈의 내용이 아니라, 잠이 오지 않아서 깨어 있을 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들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그런 생각들이고. (306)

 

-그대는 나의 가장 멋진 기사님. (314)

 

-거기 삶의 큰 거짓과 죽음의 큰 거짓이 있었다는 걸 이제는 똑똑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사람들에게 자살은 결코 선택하지 않을 순간이다. 하지만 결국 그걸 선택하리란 걸 아는 사람들, 자기에게 선택권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은 다르다. (336)

 

-그런데 당신은 인생의 하루가 그런 식으로 사라져가는 게 두려워져. (338)

 

-그래서 나는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여러 번 보더라도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341)

-우리 사이에 있던 어두운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도, 너무 환해서 똑바로 바라볼 수 없던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그 여인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려 노력한다. 슬픔에 위안이 되게 내 마음대로 짜 맞춘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시간이 흘러, 용서라는 약이 갈라지고 찢긴 내 가슴을 씻어줄수록 나는 알게 된다. 그녀를 본모습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내가 우리 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임을. (3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몇 년 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했었다. 반쯤은 생각보다 재미없는 대학생활을 벗어나고 싶어서 선택한 어학연수는 공부보다는 새로운 무언가가 그저 재밌는 나날이었다.  그래도 처음 어학원에 들어섰을 때는 엄청 긴장해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면서도 규칙에 얽매이는 나로서는 어학보다는 '학원'이라는 곳이, 심지어는 한국말도 통하지 않을 미국에 있는 기관이 어쩐지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 그 뒤로 거의 1년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게 놀기도 놀았지만... )

 

어찌어찌 들어간 반에서 제일 첫 날 가르쳐 준 것은, 간단한 인사법과 자기소개법,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질문이나 말 같은 미국에 적응하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인사법(Hello,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이나 자기소개법은 그렇다 쳐도 나는 해서는 안 될 질문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왜 나이를 물어보면 안 되는거래? 보통 만나서 나이로 언니/동생을 정하는 나라에서 자라난 나에게 그 항목은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어. 나는 이미 한국에서 16시간 떨어진 미국땅에 혼자였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 뒤로도 나는 습관적으로 나이를 물었다...)

 

그 첫 날, 작고 단단한 체격의 금발 선생님은 흑인들에게 'negro'란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말했다. 작은 단일민족의 나라에서 자라난 수도권 방콕소녀였던 나에게 인종차별이란 주제는 멀고도 먼 이야기였었다. 그런데 그 첫 날, 나는 아, 여기가 진짜 미국이구나-하는 단순한 감상과 함께 인종차별이 정말로 있는거구나, 하고 조금은 얼빠진 생각을 떠올렸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 때도, 지금도 가끔씩은 그렇게 오히려 강조를 해대는 것조차 차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다를 거 없다면 말도 거칠게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뭐, 뚱뚱한 사람에겐 돼지라고 부르면 안 되고 나같이 키가 작은 사람에게 난쟁이 똥자루라고 부르면 기분 나쁜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이해하고 말고가 아니라, 당장 백인들에겐 우리 나라 사람도 황인종으로 colored people에 속하니 당장 우리 이야기일런지도 모르겠지만.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라니 내가 좋아하는 '책 제목의 기준'에서 한참 벗어난 길이다. 거기다 악녀일기, 라는 묘하게 칙릿소설 같은 제목 덕에 사실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악녀는 좋아한다. 팜프파탈이라든지) 하지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 어느 날 오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시킨 건 없지만 택배 받는 걸(특히 책 택배) 좋아해서 좋아라 받아들고 두근두근대며 뜯어보았다. 그랬더니 두둥. 으음, 이것 참 내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책 선택인걸. 하면서도 괜히 신이 났다. 과연 선물의 의외성은 정말 놀랍군.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펴들고 정말 놀랐다. 생각했던 칙릿 소설도 아닐 뿐더러 글자 크기도 크고 소설이라기 보다는 동화...보다도 동시같았달까. 차근차근 <저자의 말>부터 읽어가니 어어... 인종차별 이야기란다. 인종차별이라고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에 미국 도로에서 차타고 지나가며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던 금발머리 놈밖에 모르는데... 조금 걱정하며 책장을 넘기니 정말, 읽기는 쉬웠다. 글자도 크고 주인공 '마리아'의 일기 형식이라 -분명 마리아는 여느 아이들처럼 일기 쓰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은 모양이다- 줄이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었다. 인종차별 이야기라길래 뭔가 다툼이라도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온 다툼은 노예와 바람핀 아빠와 엄마 사이에만 존재했다.

 

마리아는 부유한 집의 딸로 14살이 되어 자신의 개인 노예를 가지게 된다. 마리아는 엄마 친구댁 아들 루카스를 좋아하고, 가슴이 좀 더 나오길 바라는(!) 평범한 소녀다. 마리아가 선물로 받은 노예 꼬꼬는 말도 잘 듣고 일도 잘하지만 좀 따분하다. 어느 날 루카스네 아줌마가 노예를 사지 않겠냐고 한다. 꼬꼬도 일을 잘 하지만, 아줌마네 노예 울라는 화장품도 마사지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마리아는 노예시장에 나가 꼬꼬를 팔고 돌아온다. 마리아의 인생은 즐겁고 행복하다-.

 

작가의 의도대로, 읽고나니 좀 오싹했다. 저 시대에는 '노예' 라는 게 당연했다. 생각해 보면 옛날 내가 읽었던 책의 '인종과 상관없이' 상냥한 어린아이는 그 시대 개념으로는 좀 이상한 거 아닐까. 아마 마리아는 평생을 저렇게 노예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리며 살다 죽겠지. 향내나는 방 안에서 예쁜 옷을 입고 하하호호 수다를 떨면서도 누가 그 옷을 준비하고 차를 준비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도 않을테고.

 

조금 분개하며 책을 덮었지만, 뭐랄까. 옛날 공산주의에 대해 배울 때도 생각한 거지만, 인간이 누구나 평등해지는 시대는 오지 않는다. 이 시대조차 인종차별이 그리 심하지 않다뿐이지 아직 존재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산으로 사실상 계급이 나뉜다. (영국에는 귀족제도가 남아있지만 그거야 그쪽 나라 사정이고) 쪼끔 더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사람이 평등한 때는 죽고난 다음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것마저 아니라고 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애써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2백년 전의 악녀일기 덕분에 오늘도 이런저런 생각만 잔뜩 했다. 작가 아저씨는 내 이 반응을 보고 좋아하시겠지만서도, 나의 이 풀길 없는 답답함은 어쩌란 말이냐... 책 속으로 뛰어들어가 하하호호 신난 마리아 머리를 꽁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프스튜 자살클럽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이은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지는 한참인데 이제야 리뷰를 쓰게 되서 좀 스스로 어색하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그당시 난 이게 과연 미스테리 소설에 넣어야 하는지 그냥 소설 카테고리에 넣어야 하는지 잠깐 생각해 봤지만 생각나는 건 뜬금없는 초콜릿 케이크였다. 자취하는 먹보는 늘상 배고픈 법이다. 결국 집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서야 슬슬 이 책은 미스테리 소설 카테고리에 넣어야겠다, 고 결심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간단했다. 난 스트레스가 쌓이면 읽는 책의 종류가 99.9%의 확률로 '추리소설'에 편중된다. 이 책은 저번 학기의 불행한 기말고사 전, (공부도 안 하면서) 스트레스에 지친 내가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이다. 제목에 떡하니 '자살클럽'이라는 자극적인 말이 쓰여 있길래 집었는데 표지의 남자들 얼굴이...저 나이대의 남자들이 옹기종기 캔 속에 모여있는 모습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보다는 수염이 너무나 인상깊어 '비프스튜'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식욕이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책 구성 자체는 아기자기한 편이다. 소제목에 2페이지를 할애해서 각 사건의 구별을 뚜렷히 해 줄 뿐 아니라 한 두 문장을 집어넣어 좀 더 기대하게 만든다. 각 사건 뒤에는 요리수첩처럼 요리에 관한 짤막한 글이 백과사전 마냥 실려 있는데 꽤나 흥미롭다.

 

줄거리는 사실 아주 간단하다. 비프스튜 클럽이라고 불리는 남자들 10명의 모임은 한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식사를 대접한다. 장장 21년간 지켜져온 클럽은 클럽을 결성했던 라모스가 죽고 난 뒤 엉망진창으로 와해되기 시작하고... 화자인 (뚱뚱한) 다니엘은 그런 클럽이 안타까워 어떻게든 활기를 불어넣고 싶어한다. 우연히 만난 루시디오라는 이름의 엄청난 실력의 요리사가 다음 식사를 준비하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기가 막혔다. 만찬의 다음 날 멤버 하나가 죽기 전 까지는. 처음 회원들은 그걸 모르고 다음 달마저 다른 회원 하나를 상납하고야 만다. 슬슬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는 회원들, 하지만 루시디오의 요리를, 그들은 거절 할 수가 없다...

 

끝까지 스토리를 말하자면 다른 분들에게 실례일까; 나름의 작은 반전이랄까, 반전이라는 말로 칭하기엔 너무 소소하지만, 수수께끼는 풀린다. '왜' 루시디오가, 라는 질문이. (아- 뭐랄까 다른 분들도 금방 아시게 될테니까...그래도 네타일까나;)

 

제목이 왜 비프스튜 '자살'클럽일까. 멤버 중 하나인 사무엘은 다니엘이 왜 루시디오가 멤버들을 죽일까, 라고 의문을 표하자 정정한다. 왜 우리가 '자살'하고 있는가, 라고.

 

첫번째 희생자와 두번째 희생자까지는 혹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뒤부터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은, 확실히 자살이라고 불릴만하다. 미식가들이란 다 그런것일까. 아니, 사실 그들은 특별히 '미식가'라기엔 문제가 있는 자들이었는데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둘도 없는 미식가였다. 죽음의 요리를 거부하지 못하는 슬픈 미식가. 독을 내민 것은 루시디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건 멤버들이다.


자살이라는 단어는 또한 그것이 단지 미각, 식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걸 뜻한다. 그들은 21년간 클럽을 운영해오면서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애당초 건실한 점은 없었던 그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초라해지고 인생에 고뇌가 묻어난다. 철없는 듯 아직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감싸주지만, 인생의 굴곡은 피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은 마지막을 '선택'해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이번 차례라는 걸 알고 받아 들일 것인지, 피할 것인지. 이 바보같은 사람들은 '미식가'답게 마지막을 택했다.

 

글쎄,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이런 바보들...하고 조금은 안타까워하고 그저 음식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 한 편으로 이 사람들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답게, 클럽 사람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게 되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죽음을 택해서 마음이 가벼워 졌다면 그걸로 됐다, 고.

 

나로서는 그게 과연 어떤 엔딩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리석고 뚱뚱한, 아이같은 남자들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그런 '맛난' 책이었다.

 

-대개 추리소설에서는 최후에 남는 사람이 범인이다. 만일 둘이 살아남으면 하나는 바람잡이고, 다른 한 명이 범인이다. (14)

 

-자기의 죄를 종이에 적어 세상에 알리는 사람은 미치광이 소설가뿐이다. (14)

 

-개성이 각기 다른 우리는 미각을 공유하는 떠들썩한 의식을 통해 친밀함과 특이함을 마음껏 과시했다. 우리는 인생의 쾌락을 음미했다. 우리의 식욕이,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통해 배우게 될 온갖 쾌락을 대표한다고 믿으며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세상을 원했지만 아, 결국은 자기 오물을 묻히고 돌아다니는 한낱 실패한 모임으로 끝나버렸다. (23)

 

-어떤 예술도 이처럼 진가를 인정받기 위해 파괴가 필요하고, 숭배와 소비가 동일한 행위라는 철학적 도전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감각의 인지라는 면에서 어떤 예술도 먹는 행위에 비할 수 없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엉덩이를 실제 손으로 톡톡 건드려보는 것뿐이다, 라고 말햇다. (27)

 

-어느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몇 초 사이에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복어의 풍미를 높이는 겁니다.(41)

 

-치명적인 생선을 맛보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유대감을 복원하고, 라모스의 죽음이 몰고 온 비통함과 맞비난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53)

 

-수년만에 처음으로 친구의 기쁨이 내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꼈고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다, 우리 클럽은 아직도 구원받을 수 있고 나도 구원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이 결국 파멸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다. (63)

 

-지난 몇 년간 어려움이 커지면서 우정도 녹슬었고 사울로는 번번이 믿을 수 없는 친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지만 그럼이도 나는 그들을 그리워한다. (101)

 

-게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분명 음식에 대한 미감을 상승시켰다. 루시디오가 복어에 대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죽음에 대한 위협은 틀림없이 혀의 미각세포에 영향을 끼쳤다. 맛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 모두는 행복감에 도취된 상태에서 음식을 즐겼다. (109)

 

-우리가 사형수를 부러워 하는 것은 그가 자기 삶을 언제 어떻게 끝맺을지 알기 때문이야. 그가 우리보다 더 나은 독자이기 때문에 부러워하는 거지. (123)

 

-"왜 우린 스스로 독살당하려는 거지?"(152)

 

-죽음을 앞두면 누구라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의미를 갖게 되는 법이다. (174)

 

-자네들도 알다시피 처음부터 이것은 일종의 보복이었어. 루시디오는 처형자였고. 자네들은 모두 그 의식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고, 보복이 자신을 겨냥한 거라고 믿었지.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했어. 죽은 친구들 모두 스스로 죽어 마땅하다고 믿었지. (202)

 

-초콜릿마니아는 마르키즈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205)

 

-내가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라면 그 괴로운 작업을 해야 하리라.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218)

 

-그것은 추리소설을 읽기 전에 마지막 책장을 미리 들춰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좀 더 효과적으로 책을 읽게 될 것이다. (2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